"다행입니다..."

그리고 다시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잠들자, 아엔은 도망치듯 그 병실에서 나와버렸다. 왜 그런 표정을 짓는거냐. 저자식은? 기분나빠, 기분나빠, 중얼거리면서...아엔은 처음 받는 그 감정에 토기감을 느꼈다.

*

리차드는 아엔네가 가져온 자료의 해석이 완료되자, 가장 먼저 연구원들에게 받아서 읽었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정말로 이게 끝인가?"
"네, 저희로서 해석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다입니다. 언어 체계가 지구상의 것과 비슷하다면 말입니다."
"...그래, 돌아가보게."

연구원이 돌아가자 리차드는 이것을 어떻게 해야하나, 잠시 이마를 짚었다.

'지구는 멸망한다, 라니 웃기지도 않지.'

그리고 종이를 구겨 버렸다. 녹스는 끊임없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 데이터를 분석할때마다, 리차드는 기묘함에 휩싸였다. 마치 '인간이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만 공격해오는 것 같았다. 에스퍼의 수, 부상자의 수, 현재 살고 있는 현존 인류의 병력, 사망자의 수 등등 이 녹스들의 출현 빈도나 강도는 미묘하게 이 수치들과 비례하고 있었다.

'무엇이냐, 우리의 적은...신인가. 혹은 심판자인가...아니면 악마인가.'

평소의 그 같았으면 말도 안된다고 피식 웃었겠지만, 최근의 데이터를 보니 웃을수가 없었다. 녹스의 세기나 숫자는 요근래 계속 상승수치였다. 그러다가 줄어든 때가 유일히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저번의 '작전' 때문에 아엔이 이곳을 떠나있을 때였다.

'그럴리 없어, 단순히 우연이겠지.'

리차드는 이마를 꾹꾹 짚으며 의심을 가라앉히기 위해 자료들을 더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선과 수치들이 나타내는 것 중에서, 그를 안심시키는 것은 없었다.

*

"넌 연락도 없냐?"
"... ..."

고개를 숙이며 아마 미안하다고 말하는 거 같았다. 며칠 뒤 퇴원해온 슐츠는 목발을 짚은 채로 아엔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일 이후로 변한건 거의 없어보였다. 아엔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아엔도 슐츠도 딱히 그것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어보였다.

"어이, 너. 뭐야? 이건."

슐츠의 방 안에 있는 간편식 용기들과 약봉투를 보고 아엔이 툭 발로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