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이리와요.
조회 : 946 추천 : 0 글자수 : 5,116 자 2022-12-24
겨울이라 그런 건지 밖은 아직 어두웠다.
어제 너무 많이 잤던 걸까.
아윤은 그냥 눈이 떠졌다.
밤새 안고 있었던 건지 앞에는 이안의 티셔츠가 보이고 등에는 감싸고 있는 그의 팔이 느껴졌다.
느릿하고 규칙적인 숨소리가 음악처럼 귀에 들려왔다.
혹시 자는 거라면 깨울까봐 아윤은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이안이 고개를 살짝 내 쪽으로 숙이고 잠들어 준 덕에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단정하게 감겨 있는 두 눈과 입술이 보였다.
어둠이 주는 고요함과 포근함 속에서 이안은 정말 깊게 잠이 든 듯했다.
그림같은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보니 문득 이안의 팔이 저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밤새 자신의 머리가 팔을 누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지금도 그러고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팔을 빼줘야겠다고 생각한 아윤이 머리를 옮기려고 슬금슬금 몸을 움직일 때였다.
“뭐해?”
나지막한 이안의 목소리에 아윤은 몸을 멈췄다.
조심한다고 했는데.
“어. 깼어요? 팔 아플까봐서요.”
“팔?”
살짝 멍한 눈빛으로 이안이 팔을 내려다보고는 아윤을 끌어당겨 원래 자리에 돌려 놓았다.
“안 아픈데.”
아윤을 다시 품에 넣은 이안이 등 뒤에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귓가에 이안의 숨결이 닿자 본능적으로 아윤의 몸이 살짝 떨렸다.
“왜 이렇게 일찍 깼어?”
“어제 너무 많이 잤나봐요. 내가 깨웠어요?”
“응.”
숨이 닿는 위치가 좋지 않았다.
이안이 내는 낮은 소리가 목 근처를 자꾸 간질였다.
체온이 올라가는 기분에 아윤은 슬쩍 몸을 띄우려고 했다.
그게 싫었는지 이안이 아윤을 끌어 안았다.
“자꾸 어디가.”
나직한 말에는 불만이 묻어있었다.
아윤이 작게 대답했다.
아침부터 말하기는 좀 민망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게 간지러워서요.”
“뭐가?”
“목 근처가요? 숨이 자꾸 목에 닿아서 기분이 이상해요. 자세를 바꿀까요? 내가 안아주는 건 어때요?”
그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늘 내가 안겨 있으니 이런 기분을 이안은 모를 것 같았다.
그 말에 잠깐 이안이 조용해졌다가는 웃었다.
소리가 아까보다 좀 멀리 들렸다.
“좋은 제안이긴한데 팔이 아플걸.”
“괜찮아요.”
“강아윤은 늘 괜찮지.”
이안의 팔이 풀어졌다.
몸을 돌리자 옅은 미소가 맺힌 이안의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까맣고 장난기가 담긴 눈빛이 물었다.
“기분이 어떻게 이상한데?”
“몰라서 물어요?”
“아니. 알 것 같긴 한데 겪어 본 적은 없어서.”
“그럼 겪어 보면 되겠네요.”
아윤이 화사하게 웃고는 옆으로 움직여 한 쪽 팔을 뻗었다.
“이리와요.”
갑작스러운 아윤의 행동에 이안의 얼굴이 당황스러움으로 물들었다.
고민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 이안의 팔을 아윤이 잡아당겼다.
“왜요? 잠깐은 정말 괜찮아요. 밤새 하는 것도 아닌데요.”
그 말에 이안은 못 이기는 척 아윤의 팔 위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저 쪽 보고 누워볼래요? 아까 나처럼요.”
아윤의 말을 따라 이안은 옆으로 돌아누웠다.
그러자 기다렸던 아윤이 등 뒤에서 이안을 꼭 안았다.
그 움직임에 이안의 몸이 흠칫했다.
이건 생각보다 더 이상한 기분이었다.
자신보다 훨씬 작은 강아윤이 팔베개를 해주고 뒤에서 끌어안고 있다는 건.
그와 동시에 방의 온도보다 따뜻한 공기가 귀 언저리와 목 근처에서 느껴졌다.
어쩌지.
벌써 곤란해졌는데.
“생각보다 이상하지 않아요?”
이미 곤란한 이안에게 아윤은 쐐기를 박았다.
귀 바로 옆에서 들려 오는 목소리가 매혹적이었다.
그런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간지럽다는 말로 이게 설명이 되나?
이안이 몸을 돌려 아윤을 바라보았다.
“기분이 이상하다고?”
“아니에요? 내가 이상한 건가?”
이안의 낮게 깔린 음성에 이번엔 아윤이 당황해 반문했다.
맑고 커다란 갈색 눈이 흔들리는 걸 보며 이안이 중얼거렸다.
“난 몸이 이상한데?”
작은 소리였지만 아윤에게는 아주 크게 들렸다.
겨울인데 방안이 자꾸만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아윤이 어색하게 웃으며 팔을 뺐다.
“그렇죠? 기분이 이상해지다보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어느새 이안은 아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안의 긴 손가락이 아윤의 손가락 사이 사이를 파고들었다.
“몸이 아픈 거지 입술이 아픈 건 아니잖아?”
중얼거리며 이안은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손만 안 대면 되지.
혼자 생각하고 나름 타당한 변명까지 마친 이안이 매력적이게 미소지었다.
그러자 뭔가 말하려는 듯 아윤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이안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뒤이어 아주 오랫동안 이어진 깊고 다정한 입맞춤 속에서 아윤은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리고 당연히 다음을 기대하던 중에 이안의 입술이 떨어졌다.
얽혀있던 손가락들도 자유로워졌다.
순식간에 아윤의 몸 위쪽에 자리하고 있던 이안이 사라졌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아윤이 몸을 일으켰다.
둘러보니 침대 끝에 서 있는 이안이 보였다.
“왜 거기 가있는 거예요?”
“나름 자제력을 발휘하는 중이야.”
“네?”
“너 괜찮아질 때까지는 참으려고.”
그렇게 내뱉듯 말하며 이안은 또 후회했다.
키스만 하는 건 괜찮겠다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욕심은 끝이 없었다.
손을 잡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정말.
그런 이안을 어이없이 바라보던 아윤이 일어났다.
천천히 걸어와 이안의 앞에 선 아윤이 살포시 웃었다.
“멍은 없어지려면 아주아주 오래 걸려요. 알아요?”
“얼마나?”
“모르죠. 오늘 내일은 아닐거고, 열흘이면 괜찮아질까요? 한 달은 걸리려나?”
자신의 말에 구겨지는 이안의 얼굴이 아윤은 꽤 마음에 들었다.
이건 작은 복수였다.
사실 아윤도 몰랐다.
언제 멍이 낫는 건지 날짜까지 세면서 확인해 본 적은 없었다.
그냥 어느 순간 보면 없어지는 게 멍이라는 거였지.
달아오르게 만들어놓고 내뺀 이안이 나빴다.
“정말 그 때까지 기다리려고요?”
놀리는 듯한 아윤을 이안은 복잡하게 바라보았다.
아윤의 양 손이 올려다보던 이안의 얼굴을 살짝 잡아 자신과 눈높이를 맞췄다.
아윤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어두운 까만 눈동자에 웃음이 났다.
이안이 무슨 생각을 했건, 하고 있건 자신은 동의한 적이 없었다.
“어쩌죠? 나는 그럴 생각이 없는데요.”
짧게 말을 던진 아윤은 그대로 입을 맞췄다.
잠깐 얼어 붙었던 이안의 몸이 녹아내렸다.
이성의 끈은 얇았고 고민은 짧았다.
망설이던 이안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에 이안과 아윤은 아침을 먹었다.
노릇하게 구워진 토스트의 고소한 냄새와 향긋한 커피향이 거실을 채웠다.
“오늘은 예식이 두 건 있어서. 여기 있을래? 집에 다녀올래?”
머그컵을 손에 들고 이안이 물었다.
“집에 다녀올게요. 몇 시 예식인데요?”
“12시. 2시.”
“그렇군요.”
아윤은 대답하며 토스트를 한 입 베어 물었다.
흐음, 그럼 집에 가서 정리 좀 하고.
뭘 하면 좋을까.
그러고보니 자신을 보고 싶어 한다던 누군가가 떠올랐다.
“아. 아린 씨는 오늘 바쁠까요?”
“아린이?”
“네. 괜찮은지 물어봐줄래요?”
“둘이 만나게?”
“아린씨는 괜찮을 거 같은데요. 나도 궁금해요, 아린씨. 아린씨는 어떤 분이에요?”
“막내야. 밝고 솔직한 애지.”
“그래서 당신에게 소중한 거예요? 그냥 궁금했었거든요.”
겸사 겸사 아윤은 궁금해왔던 걸 물었다.
아윤의 물음에 이안이 조용해졌다.
말이 없어진 이안을 보다 아윤은 다시 조용히 먹었다.
뭔가 사연이 있는 건가 싶었다.
경계하는 동생 하나.
사랑스러운 동생 하나.
형제가 많으니까 관계가 다양하긴 하겠지.
“내가 용궁에 다시 돌아왔을 때 난 쭉 혼자 살 생각이었어. 아무도 곁에 둘 생각이 없었어. 잃는 게 무서웠거든.”
갑자기 시작한 이안의 이야기에 아윤은 토스트를 내려놓았다.
“어쩌다보니 호아랑도 겸이랑도 나름 친해졌고 서지호랑도 친해졌지만. 아린이는 백년 전쯤에 태어났어.”
“그럼 아린씨 아기때부터 본 거예요?”
“응. 근데 묘한 기분이었어. 그런 거 알아? 하지 않는 것과 못 하는 것의 차이.”
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절대 내 아이를 낳을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누굴 사랑할 수 없으니까. 그런 생각이 든 이후로 처음 본 아기 였어. 원래 아기한테는 관심이 없었는데 무심하게 대하면서도 속으로는 예뻤던 것 같아. 계속 밀어내도 아린이는 내가 좋다고 달려들었고.”
아린씨는 지금도 그렇게 인형같은데 아기 때는 얼마나 사랑스러웠을까.
그 앞에 무표정으로 서 있던 이안은 어땠을까.
아윤은 혼자 둘의 모습을 상상해 보다 아기를 안고 있는 이안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우리 아기는 누굴 닮았을까.
순식간에 그런 생각까지 갔던 아윤이 현실로 돌아왔다.
아기라니.
아직은 먼 이야기였다.
“정말 귀여웠을 것 같아요.”
“응. 그랬지.”
아린을 떠올리며 이안이 부드럽게 웃었다.
“그래서 딸 같다고 했나봐요. 겸이씨가.”
“맞아. 그런 느낌이야.”
말을 마친 이안이 핸드폰을 꺼냈다.
“물어볼게.”
메시지를 보내자 바로 답장이 왔다.
“오늘 괜찮대. 몇 시가 좋을까? 어디서?”
“난 아무 때나 괜찮아요. 장소는 지호씨 카페는 어때요?”
“그래. 그럼 2시 괜찮아?”
“네. 집에가서 단장 좀 하고 가야겠어요. 저번엔 갑작스러웠지만 이번엔 약속이니까.”
컵을 기울이며 아윤이 웃었다.
아윤의 말에서 겸이를 떠올린 이안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가는 돌아왔다.
“그래. 나도 예식 끝나면 갈게.”
“그래요.”
대답하는 아윤의 눈이 얇게 휘어졌다.
오후 한시 반.
아윤은 살짝 설레는 기분으로 아린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말이라 혹시 늦을지도 몰라 서둘렀더니 빨리 도착했다.
먼저 자리를 잡고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강아윤씨?”
아윤이 고개를 들자 이안을 닮은 또 다른 남자가 보였다.
이안의 동생들은 정말 깜짝 만남을 좋아하는 듯 했다.
“네. 누구세요?”
“저는 호아라고 해요. 오늘 아린이 만난다고해서 졸랐어요. 나도 보고 싶다고. 앉아도 될까요?”
호아가 웃으며 물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아윤도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럼요.”
자리에 앉은 호아는 물끄러미 아윤을 바라보았다.
아윤은 이상하게 긴장이 되었다.
겸이를 만났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운이 좋으신 분을 이제야 보네요.”
생글생글 웃던 호아가 입을 열었다.
“네?”
“고상우씨 여자친구셨다면서요? 위험했을 뻔 했는데. 다행이네요.”
갑자기 나온 상우의 이야기에 아윤의 얼굴이 굳었다.
전남친 얘기가 현남친 동생 입에서 나올 줄은 몰랐다.
저런 말을 하는 의도가 뭘까.
뭐라고 하는 게 맞을까.
아윤이 고민하던 때 여전히 웃는 얼굴로 호아가 말했다.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참 인간은 쉬워요. 그쵸?”
어제 너무 많이 잤던 걸까.
아윤은 그냥 눈이 떠졌다.
밤새 안고 있었던 건지 앞에는 이안의 티셔츠가 보이고 등에는 감싸고 있는 그의 팔이 느껴졌다.
느릿하고 규칙적인 숨소리가 음악처럼 귀에 들려왔다.
혹시 자는 거라면 깨울까봐 아윤은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이안이 고개를 살짝 내 쪽으로 숙이고 잠들어 준 덕에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단정하게 감겨 있는 두 눈과 입술이 보였다.
어둠이 주는 고요함과 포근함 속에서 이안은 정말 깊게 잠이 든 듯했다.
그림같은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보니 문득 이안의 팔이 저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밤새 자신의 머리가 팔을 누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지금도 그러고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팔을 빼줘야겠다고 생각한 아윤이 머리를 옮기려고 슬금슬금 몸을 움직일 때였다.
“뭐해?”
나지막한 이안의 목소리에 아윤은 몸을 멈췄다.
조심한다고 했는데.
“어. 깼어요? 팔 아플까봐서요.”
“팔?”
살짝 멍한 눈빛으로 이안이 팔을 내려다보고는 아윤을 끌어당겨 원래 자리에 돌려 놓았다.
“안 아픈데.”
아윤을 다시 품에 넣은 이안이 등 뒤에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귓가에 이안의 숨결이 닿자 본능적으로 아윤의 몸이 살짝 떨렸다.
“왜 이렇게 일찍 깼어?”
“어제 너무 많이 잤나봐요. 내가 깨웠어요?”
“응.”
숨이 닿는 위치가 좋지 않았다.
이안이 내는 낮은 소리가 목 근처를 자꾸 간질였다.
체온이 올라가는 기분에 아윤은 슬쩍 몸을 띄우려고 했다.
그게 싫었는지 이안이 아윤을 끌어 안았다.
“자꾸 어디가.”
나직한 말에는 불만이 묻어있었다.
아윤이 작게 대답했다.
아침부터 말하기는 좀 민망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게 간지러워서요.”
“뭐가?”
“목 근처가요? 숨이 자꾸 목에 닿아서 기분이 이상해요. 자세를 바꿀까요? 내가 안아주는 건 어때요?”
그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늘 내가 안겨 있으니 이런 기분을 이안은 모를 것 같았다.
그 말에 잠깐 이안이 조용해졌다가는 웃었다.
소리가 아까보다 좀 멀리 들렸다.
“좋은 제안이긴한데 팔이 아플걸.”
“괜찮아요.”
“강아윤은 늘 괜찮지.”
이안의 팔이 풀어졌다.
몸을 돌리자 옅은 미소가 맺힌 이안의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까맣고 장난기가 담긴 눈빛이 물었다.
“기분이 어떻게 이상한데?”
“몰라서 물어요?”
“아니. 알 것 같긴 한데 겪어 본 적은 없어서.”
“그럼 겪어 보면 되겠네요.”
아윤이 화사하게 웃고는 옆으로 움직여 한 쪽 팔을 뻗었다.
“이리와요.”
갑작스러운 아윤의 행동에 이안의 얼굴이 당황스러움으로 물들었다.
고민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 이안의 팔을 아윤이 잡아당겼다.
“왜요? 잠깐은 정말 괜찮아요. 밤새 하는 것도 아닌데요.”
그 말에 이안은 못 이기는 척 아윤의 팔 위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저 쪽 보고 누워볼래요? 아까 나처럼요.”
아윤의 말을 따라 이안은 옆으로 돌아누웠다.
그러자 기다렸던 아윤이 등 뒤에서 이안을 꼭 안았다.
그 움직임에 이안의 몸이 흠칫했다.
이건 생각보다 더 이상한 기분이었다.
자신보다 훨씬 작은 강아윤이 팔베개를 해주고 뒤에서 끌어안고 있다는 건.
그와 동시에 방의 온도보다 따뜻한 공기가 귀 언저리와 목 근처에서 느껴졌다.
어쩌지.
벌써 곤란해졌는데.
“생각보다 이상하지 않아요?”
이미 곤란한 이안에게 아윤은 쐐기를 박았다.
귀 바로 옆에서 들려 오는 목소리가 매혹적이었다.
그런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간지럽다는 말로 이게 설명이 되나?
이안이 몸을 돌려 아윤을 바라보았다.
“기분이 이상하다고?”
“아니에요? 내가 이상한 건가?”
이안의 낮게 깔린 음성에 이번엔 아윤이 당황해 반문했다.
맑고 커다란 갈색 눈이 흔들리는 걸 보며 이안이 중얼거렸다.
“난 몸이 이상한데?”
작은 소리였지만 아윤에게는 아주 크게 들렸다.
겨울인데 방안이 자꾸만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아윤이 어색하게 웃으며 팔을 뺐다.
“그렇죠? 기분이 이상해지다보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어느새 이안은 아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안의 긴 손가락이 아윤의 손가락 사이 사이를 파고들었다.
“몸이 아픈 거지 입술이 아픈 건 아니잖아?”
중얼거리며 이안은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손만 안 대면 되지.
혼자 생각하고 나름 타당한 변명까지 마친 이안이 매력적이게 미소지었다.
그러자 뭔가 말하려는 듯 아윤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이안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뒤이어 아주 오랫동안 이어진 깊고 다정한 입맞춤 속에서 아윤은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리고 당연히 다음을 기대하던 중에 이안의 입술이 떨어졌다.
얽혀있던 손가락들도 자유로워졌다.
순식간에 아윤의 몸 위쪽에 자리하고 있던 이안이 사라졌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아윤이 몸을 일으켰다.
둘러보니 침대 끝에 서 있는 이안이 보였다.
“왜 거기 가있는 거예요?”
“나름 자제력을 발휘하는 중이야.”
“네?”
“너 괜찮아질 때까지는 참으려고.”
그렇게 내뱉듯 말하며 이안은 또 후회했다.
키스만 하는 건 괜찮겠다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욕심은 끝이 없었다.
손을 잡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정말.
그런 이안을 어이없이 바라보던 아윤이 일어났다.
천천히 걸어와 이안의 앞에 선 아윤이 살포시 웃었다.
“멍은 없어지려면 아주아주 오래 걸려요. 알아요?”
“얼마나?”
“모르죠. 오늘 내일은 아닐거고, 열흘이면 괜찮아질까요? 한 달은 걸리려나?”
자신의 말에 구겨지는 이안의 얼굴이 아윤은 꽤 마음에 들었다.
이건 작은 복수였다.
사실 아윤도 몰랐다.
언제 멍이 낫는 건지 날짜까지 세면서 확인해 본 적은 없었다.
그냥 어느 순간 보면 없어지는 게 멍이라는 거였지.
달아오르게 만들어놓고 내뺀 이안이 나빴다.
“정말 그 때까지 기다리려고요?”
놀리는 듯한 아윤을 이안은 복잡하게 바라보았다.
아윤의 양 손이 올려다보던 이안의 얼굴을 살짝 잡아 자신과 눈높이를 맞췄다.
아윤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어두운 까만 눈동자에 웃음이 났다.
이안이 무슨 생각을 했건, 하고 있건 자신은 동의한 적이 없었다.
“어쩌죠? 나는 그럴 생각이 없는데요.”
짧게 말을 던진 아윤은 그대로 입을 맞췄다.
잠깐 얼어 붙었던 이안의 몸이 녹아내렸다.
이성의 끈은 얇았고 고민은 짧았다.
망설이던 이안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에 이안과 아윤은 아침을 먹었다.
노릇하게 구워진 토스트의 고소한 냄새와 향긋한 커피향이 거실을 채웠다.
“오늘은 예식이 두 건 있어서. 여기 있을래? 집에 다녀올래?”
머그컵을 손에 들고 이안이 물었다.
“집에 다녀올게요. 몇 시 예식인데요?”
“12시. 2시.”
“그렇군요.”
아윤은 대답하며 토스트를 한 입 베어 물었다.
흐음, 그럼 집에 가서 정리 좀 하고.
뭘 하면 좋을까.
그러고보니 자신을 보고 싶어 한다던 누군가가 떠올랐다.
“아. 아린 씨는 오늘 바쁠까요?”
“아린이?”
“네. 괜찮은지 물어봐줄래요?”
“둘이 만나게?”
“아린씨는 괜찮을 거 같은데요. 나도 궁금해요, 아린씨. 아린씨는 어떤 분이에요?”
“막내야. 밝고 솔직한 애지.”
“그래서 당신에게 소중한 거예요? 그냥 궁금했었거든요.”
겸사 겸사 아윤은 궁금해왔던 걸 물었다.
아윤의 물음에 이안이 조용해졌다.
말이 없어진 이안을 보다 아윤은 다시 조용히 먹었다.
뭔가 사연이 있는 건가 싶었다.
경계하는 동생 하나.
사랑스러운 동생 하나.
형제가 많으니까 관계가 다양하긴 하겠지.
“내가 용궁에 다시 돌아왔을 때 난 쭉 혼자 살 생각이었어. 아무도 곁에 둘 생각이 없었어. 잃는 게 무서웠거든.”
갑자기 시작한 이안의 이야기에 아윤은 토스트를 내려놓았다.
“어쩌다보니 호아랑도 겸이랑도 나름 친해졌고 서지호랑도 친해졌지만. 아린이는 백년 전쯤에 태어났어.”
“그럼 아린씨 아기때부터 본 거예요?”
“응. 근데 묘한 기분이었어. 그런 거 알아? 하지 않는 것과 못 하는 것의 차이.”
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절대 내 아이를 낳을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누굴 사랑할 수 없으니까. 그런 생각이 든 이후로 처음 본 아기 였어. 원래 아기한테는 관심이 없었는데 무심하게 대하면서도 속으로는 예뻤던 것 같아. 계속 밀어내도 아린이는 내가 좋다고 달려들었고.”
아린씨는 지금도 그렇게 인형같은데 아기 때는 얼마나 사랑스러웠을까.
그 앞에 무표정으로 서 있던 이안은 어땠을까.
아윤은 혼자 둘의 모습을 상상해 보다 아기를 안고 있는 이안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우리 아기는 누굴 닮았을까.
순식간에 그런 생각까지 갔던 아윤이 현실로 돌아왔다.
아기라니.
아직은 먼 이야기였다.
“정말 귀여웠을 것 같아요.”
“응. 그랬지.”
아린을 떠올리며 이안이 부드럽게 웃었다.
“그래서 딸 같다고 했나봐요. 겸이씨가.”
“맞아. 그런 느낌이야.”
말을 마친 이안이 핸드폰을 꺼냈다.
“물어볼게.”
메시지를 보내자 바로 답장이 왔다.
“오늘 괜찮대. 몇 시가 좋을까? 어디서?”
“난 아무 때나 괜찮아요. 장소는 지호씨 카페는 어때요?”
“그래. 그럼 2시 괜찮아?”
“네. 집에가서 단장 좀 하고 가야겠어요. 저번엔 갑작스러웠지만 이번엔 약속이니까.”
컵을 기울이며 아윤이 웃었다.
아윤의 말에서 겸이를 떠올린 이안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가는 돌아왔다.
“그래. 나도 예식 끝나면 갈게.”
“그래요.”
대답하는 아윤의 눈이 얇게 휘어졌다.
오후 한시 반.
아윤은 살짝 설레는 기분으로 아린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말이라 혹시 늦을지도 몰라 서둘렀더니 빨리 도착했다.
먼저 자리를 잡고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강아윤씨?”
아윤이 고개를 들자 이안을 닮은 또 다른 남자가 보였다.
이안의 동생들은 정말 깜짝 만남을 좋아하는 듯 했다.
“네. 누구세요?”
“저는 호아라고 해요. 오늘 아린이 만난다고해서 졸랐어요. 나도 보고 싶다고. 앉아도 될까요?”
호아가 웃으며 물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아윤도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럼요.”
자리에 앉은 호아는 물끄러미 아윤을 바라보았다.
아윤은 이상하게 긴장이 되었다.
겸이를 만났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운이 좋으신 분을 이제야 보네요.”
생글생글 웃던 호아가 입을 열었다.
“네?”
“고상우씨 여자친구셨다면서요? 위험했을 뻔 했는데. 다행이네요.”
갑자기 나온 상우의 이야기에 아윤의 얼굴이 굳었다.
전남친 얘기가 현남친 동생 입에서 나올 줄은 몰랐다.
저런 말을 하는 의도가 뭘까.
뭐라고 하는 게 맞을까.
아윤이 고민하던 때 여전히 웃는 얼굴로 호아가 말했다.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참 인간은 쉬워요. 그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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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용왕의 아들과 사랑을 시작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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