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내가 좋았으면 됐죠.
조회 : 920 추천 : 0 글자수 : 5,301 자 2022-12-24
한참 달아올랐던 공기가 가라앉은 뒤에 아윤은 이안의 품 속에 있었다.
나른함과 보드라운 침구,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만지는 이안의 손길에 아윤은 졸음이 몰려왔다.
“미안.”
이안의 낮은 목소리에 아윤이 감겨오던 눈을 떴다.
자신을 보는 까만 눈동자에 걱정이 담겨 있었다.
“뭐가요?”
“이렇게 멍투성이 일줄은 몰랐어.”
이안은 후회하고 있었다.
좀 전에 본 아윤의 허리 근처와 허벅지에 있던 멍들이 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주변의 누구도 이렇게 다친 적이 없어서 강아윤이 진짜 괜찮은 줄 알았다.
멀쩡해보였으니까.
이런 줄 알았다면 참았을텐데.
그런 이안을 바라보던 아윤이 중얼거리며 품을 파고들었다.
“어때요. 내가 좋았으면 됐죠.”
“뭐?”
“내가 원해서 그런 거예요. 원하지 않았다면 일부러 안 아픈 척 하진 않았겠죠.”
아윤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
물끄러미 아윤을 바라보던 이안이 물었다.
“어떻게 해야 나아? 이럴 땐?”
“잘먹고 잘자고 잘쉬고. 그러다보면 나을거예요. 크게 안 다친 게 다행이죠.”
“그게 다야?”
“음. 필요하면 찜질을 좀 하는 정도?”
이제 대답을 하는 아윤의 목소리가 웅얼거리고 있었다.
이안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윤이 깊게 잠이 들었다.
한동안 절대 깰 것 같지 않은 아윤에게 이불을 싸매듯 덮어준 이안이 방에서 사라졌다.
“서지호. 찜질팩 있어?”
대뜸 다시 나타난 이안의 말에 지호가 되물었다.
다시 본업으로 돌아온 지호는 집에 돌아와 있었다.
“갑자기? 왜?”
이안이 소파에 앉으며 대답했다.
“어제 강아윤이 산에서 미끄러졌었어. 좀 멍들었는데 아픈 것 같거든.”
“아윤씨가? 아까 멀쩡해보이던데?”
“그래.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야.”
“미끄러졌다고? 그럼 멍만 든 게 아닐텐데. 아마 온몸이 아플 걸. 내가 옛날에 처음 스키 배울 때 그랬거든.”
문득 이안의 머릿속에 어제의 아윤이 스쳤다.
그러고보니 강아윤이 산에서 그런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했다.
두드려 맞은 것 같다고.
이안이 다시 짧게 물었다.
“있어?”
“찜질팩은 없는데. 근데 그거 그냥 뜨끈한거 몸에 대는 거야. 형이 해주면 되지.”
그 말에 이안은 뭘 생각했나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뭔가를 찾아보는 진지한 얼굴에 웃으며 지호가 말했다.
“괜찮아. 시간 지나면 나을 거야.”
이안은 대답없이 빠르게 몇 가지를 검색하고 읽었다.
강아윤이 말했듯 정말 특별한 방법은 없어보였다.
“아윤씨는 어쩌고 여기 와 있어?”
“잠들었어.”
“하긴 피곤하겠네. 단합대회면 어제 늦게까지 술도 먹지 않았을까. 보통 그러니까.”
“그럴지도.”
“그럼 아윤씨 자는 동안 일이나 좀 하자. 깨면 다시 갈 거 아니야? 아까 용궁 갔었지?”
지호의 말에 이안이 핸드폰에서 시선을 뗐다.
“그래. 오전 내내 그런 주술 쪽 책을 찾아봤어. 호아한테도 꿈 얘긴 안 했고. 근데 읽은 해인이 너무 많아. 몇 가지 방법들은 굳이 특별한 능력이 없어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긴 했다. 다들 뭘 읽는 걸 좋아하니까.”
“그래. 너는?”
“과거를 조사 중이야. 아직 지상에 오지 않았던 해인들을 제외하면 대개 하나씩은 이별의 아픔이 있네. 이게 동기라면 누가 그랬대도 이상하진 않겠는데?”
“그래.”
“일단은 어제 이후로 아직까지 일이 생기진 않았어. 보통 사건이 저녁에 있으니까 속단하긴 이르지만.”
담담히 말한 지호가 하품을 했다.
지호도 케이크를 만들고 잠깐 가게에 다녀 온 시간 빼고는 내내 노트북 앞에 있었더니 피곤했다.
아직은 용의자가 너무 많았다.
그런 지호를 보다 이안이 말했다.
“이제 그 쪽에서 어떻게 나오나 기다려야지. 좀 자둬. 오늘은 괜찮을지도 모르지.”
“아무래도 그래야겠다. 혹시 일 생기면 연락할게.”
“그래.”
지호가 노트북을 챙겨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던 이안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윤이 잠에서 깼을 때는 온 세상이 깜깜했다.
대체 몇 시간을 잔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이대로 다시 그냥 잘까 고민하다가 몸을 일으켰다.
이안은 어디 있는지 궁금했다.
방문을 열자 환한 빛이 아윤을 반겼다.
“일어났어?”
“몇 시예요?”
“9시.”
“엄청 잤네요.”
아윤이 멍한 얼굴로 대답하고는 이안의 옆에 앉았다.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은 이안이 아윤에게 물었다.
“몸은 어때?”
“괜찮아요.”
“배는 안 고파?”
그러고보니 배가 고팠다.
뭐 먹지.
“고파요. 우리 뭐 먹으러 갈래요?”
“사 올게. 뭐 먹고 싶은데?”
“음.”
또 그렇게 물으니까 딱히 먹고 싶은 건 없었다.
그냥 배부를만 한 거면 괜찮을 것 같은데.
“저번에 사 왔던 카레는 어때요? 거기에 돈까스?”
“그거면 되겠어?”
“네.”
“금방 다녀올게.”
그 말을 끝으로 바로 이안의 몸이 없어졌다.
혼자 남은 아윤은 슬그머니 소파에 다시 누웠다.
몸이 생각보다 온전하지 않다는 게 느껴졌다.
많이 잔 것 같은데 아침보다 몸이 무거웠다.
텔레비전을 켤까 하다가 그것도 귀찮아져서 눈을 감았다.
어디 찜질방 가서 몸이나 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밥먹고 나면 다녀오자고 할까.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은데 다시 잠이 들었나보다.
“아윤아. 밥 먹고 자.”
부드러운 목소리에 눈을 뜨니 이안이 다시 앞에 보였다.
“깜박 잠들었나봐요.”
일어난 아윤에게 이안은 숟가락을 쥐어 주었다.
그의 안쓰러워하는 눈빛을 받고 있자니 갑자기 환자가 된 것 같았다.
아윤은 피식 웃음이 났다.
“몸이 그런 상태인데 웃음이 나?”
아윤을 보던 이안이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그냥 근육통일 뿐인데. 엄청 아픈 사람이 된 것 같아서요.”
“서지호말로는 온몸이 아플 수도 있다던데. 그래?”
“근육이 놀라서 그런가봐요. 원래 다 그렇죠, 뭐.”
당연하다는 듯 대답한 아윤이 카레를 입에 넣었다.
매콤하니 소고기와 야채가 가득 들어간 카레가 입안에 가득찼다.
“맛있다.”
“그래. 많이 먹어. 내 것도 더 줄까?”
이안이 아윤의 그릇에 자신의 음식을 옮기려고 했다.
“아니에요. 돈까스도 먹어야 해서요.”
아윤이 생긋 웃고는 젓가락을 손에 들었다.
한참을 먹는 데 집중하던 아윤은 그릇을 싹 비웠다.
배가 많이 고팠었나보다.
다 먹고 나서야 아윤은 말을 꺼냈다.
“우리 찜질방 갈래요? 가봤어요?”
“찜질방? 아니. 안 가봤는데.”
이안의 대답에 아윤이 웃었다.
“정말 안 해 본 게 많네요.”
“관심이 없었으니까. 갈 이유도 없었고.”
담백하게 말하며 이안이 그릇을 정리했다.
같이 움직이려던 아윤은 이안에게 제지당했다.
“가만히 앉아 있어. 눕던가.”
“괜찮은데요.”
이안은 그런 아윤이 못마땅했다.
자꾸 괜찮다고만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낮잠을 그렇게 자고도 까무룩 잠들어 놓고 뭐가 그렇게 괜찮다는 건지.
안 괜찮다고 하려면 얼마나 아파야 되는거야?
심상치않은 이안의 표정에 아윤이 가만히 소파에 기댔다.
금방 정리를 마친 이안이 다시 곁으로 돌아왔다.
“찜질방은 왜 가고 싶은데?”
“그냥 따뜻하고 좋잖아요. 오히려 안 좋을 때도 있다고는 하는데 욱신거릴 때 가면 전 좋더라고요. 그리고 그런 분위기 있거든요. 찜질방 특유의.”
자주 가는 건 아니지만 아윤은 그 분위기를 꽤 좋아하기도 했다.
“그럼 가자. 이 근처에도 있을 걸.”
“좋아요.”
말을 마친 아윤이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근처의 찜질방을 찾아낸 이안이 아윤을 데리고 이동했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와 찜질방에 들어가자 넓고 한적한 공간이 나왔다.
변두리에 있어서인지 소금방, 황토방 기타 등등 이름표를 매단 문들이 꽤 많은데도 사람은 많지 않았다.
두리번 거리던 아윤은 이안을 찾았다.
헐렁한 황토색 반팔 옷을 입은 이안이 아윤에게로 다가왔다.
“뭘 하면 되는 거야?”
“저기 부터 가볼까요?”
아윤이 웃으며 40도가 적힌 황토방을 가리켰다.
이안도 아윤을 따라 발을 옮겼다.
안에 들어간 아윤은 바닥에 깔린 멍석 위에 누웠다.
몸 전체에 따뜻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좋네요.”
아윤의 만족스런 얼굴에 이안도 어색하게 옆에 누웠다.
따끈한 느낌이 들었다.
공기가 좀 답답한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왜 좋은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낮게 이안이 물었다.
“뭐가 좋은 거야?”
“그냥 따뜻하잖아요. 소리가 울리는 것도 흙냄새 나는 기분도 왠지 좋지 않아요?”
아윤이 아이처럼 웃었다.
맑은 눈동자와 해맑은 웃음이 이안의 시야에 가득 찼다.
그런 감정은 잘 모르겠는데 여기가 좋아질 것 같긴 했다.
강아윤이 좋아하니까.
그렇게 한참을 아윤은 찜질을 하고 이안은 그런 아윤을 구경했다.
어느 순간부터 아윤의 몸에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몸이 좀 개운해지면서 숨쉬기가 불편해지는 기분에 결국 아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매점으로 걸어간 아윤은 식혜와 감식초, 계란을 사서 자리에 앉았다.
“먹어봐요. 이게 여기서 먹는 건 맛이 다르다니까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즐거워보이는 아윤을 보며 이안도 계란을 까서 입에 넣었다.
“맛있죠?”
“응. 그러네.”
이안이 담백하게 대답했다.
이안에게 계란은 그냥 계란이었다.
식혜는 식혜였고.
하지만 자신의 대답에 왜인지 뿌듯해하는 강아윤이 귀여워서 이안은 웃었다.
무슨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뭐가 중요하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을 그렇게 들락날락 하다보니 시간이 거의 자정이었다.
“이제 갈까요?”
“그래.”
아윤의 말에 다시 각자 헤어져 씻고 나온 둘은 집으로 돌아왔다.
침대 위에 누워 아윤이 이안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어쩐지 눈 감았다 뜨면 아침 일 것 같아요.”
아윤의 말 속엔 졸음이 섞여있었다.
“아마 그럴 것 같네.”
“그쵸?”
작게 웃는 아윤의 목소리를 듣다 조용히 이안이 물었다.
“근데 왜 아픈 걸 티내지 않는 거야?”
“그냥요. 그런다고 달라질 것도 없으니까요.”
“원래 그랬어?”
이안의 물음에 아윤은 어린시절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즈음에는 그랬던 것 같다.
그 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언제부터 였는지 모르겠어요. 오빠가 둘이라 그런가 좀 다친 정도는 신경쓰지 않게 되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워낙 장난꾸러기들이었거든요. 둘 다.”
“나한테는 티 내줬으면 좋겠는데.”
“그랬으면 오늘 나한테 손도 대지 않았을 거잖아요.”
“당연하잖아.”
하루 종일 아윤을 지켜 본 이안은 안 그래도 당분간 그럴 예정이었다.
말만 괜찮지 몸은 전혀 괜찮아보이지 않았다.
진작 눈치채지 못했던 게 한심했다.
괜히 자신 때문에 더 안 좋은 건 아닌지 죄책감도 들었다.
“그래서 그랬어요. 안 그랬음 좋겠어서. 난 당신이랑 몸으로 나누는 대화도 좋아하거든요.”
목 근처에 닿아오는 아윤의 숨이 느껴진 이안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자신을 바라보는 강아윤의 눈이 예뻤다.
이마도 코도 입술도.
살짝 잠겨 든 목소리까지도.
이안이 거리를 살짝 벌리며 눈을 돌렸다.
생각과는 다르게 몸은 솔직했다.
“이제 그만 자.”
그런 이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윤은 작게 웃더니 팔을 두른 채로 잠이 들었다.
나른함과 보드라운 침구,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만지는 이안의 손길에 아윤은 졸음이 몰려왔다.
“미안.”
이안의 낮은 목소리에 아윤이 감겨오던 눈을 떴다.
자신을 보는 까만 눈동자에 걱정이 담겨 있었다.
“뭐가요?”
“이렇게 멍투성이 일줄은 몰랐어.”
이안은 후회하고 있었다.
좀 전에 본 아윤의 허리 근처와 허벅지에 있던 멍들이 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주변의 누구도 이렇게 다친 적이 없어서 강아윤이 진짜 괜찮은 줄 알았다.
멀쩡해보였으니까.
이런 줄 알았다면 참았을텐데.
그런 이안을 바라보던 아윤이 중얼거리며 품을 파고들었다.
“어때요. 내가 좋았으면 됐죠.”
“뭐?”
“내가 원해서 그런 거예요. 원하지 않았다면 일부러 안 아픈 척 하진 않았겠죠.”
아윤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
물끄러미 아윤을 바라보던 이안이 물었다.
“어떻게 해야 나아? 이럴 땐?”
“잘먹고 잘자고 잘쉬고. 그러다보면 나을거예요. 크게 안 다친 게 다행이죠.”
“그게 다야?”
“음. 필요하면 찜질을 좀 하는 정도?”
이제 대답을 하는 아윤의 목소리가 웅얼거리고 있었다.
이안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윤이 깊게 잠이 들었다.
한동안 절대 깰 것 같지 않은 아윤에게 이불을 싸매듯 덮어준 이안이 방에서 사라졌다.
“서지호. 찜질팩 있어?”
대뜸 다시 나타난 이안의 말에 지호가 되물었다.
다시 본업으로 돌아온 지호는 집에 돌아와 있었다.
“갑자기? 왜?”
이안이 소파에 앉으며 대답했다.
“어제 강아윤이 산에서 미끄러졌었어. 좀 멍들었는데 아픈 것 같거든.”
“아윤씨가? 아까 멀쩡해보이던데?”
“그래.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야.”
“미끄러졌다고? 그럼 멍만 든 게 아닐텐데. 아마 온몸이 아플 걸. 내가 옛날에 처음 스키 배울 때 그랬거든.”
문득 이안의 머릿속에 어제의 아윤이 스쳤다.
그러고보니 강아윤이 산에서 그런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했다.
두드려 맞은 것 같다고.
이안이 다시 짧게 물었다.
“있어?”
“찜질팩은 없는데. 근데 그거 그냥 뜨끈한거 몸에 대는 거야. 형이 해주면 되지.”
그 말에 이안은 뭘 생각했나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뭔가를 찾아보는 진지한 얼굴에 웃으며 지호가 말했다.
“괜찮아. 시간 지나면 나을 거야.”
이안은 대답없이 빠르게 몇 가지를 검색하고 읽었다.
강아윤이 말했듯 정말 특별한 방법은 없어보였다.
“아윤씨는 어쩌고 여기 와 있어?”
“잠들었어.”
“하긴 피곤하겠네. 단합대회면 어제 늦게까지 술도 먹지 않았을까. 보통 그러니까.”
“그럴지도.”
“그럼 아윤씨 자는 동안 일이나 좀 하자. 깨면 다시 갈 거 아니야? 아까 용궁 갔었지?”
지호의 말에 이안이 핸드폰에서 시선을 뗐다.
“그래. 오전 내내 그런 주술 쪽 책을 찾아봤어. 호아한테도 꿈 얘긴 안 했고. 근데 읽은 해인이 너무 많아. 몇 가지 방법들은 굳이 특별한 능력이 없어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긴 했다. 다들 뭘 읽는 걸 좋아하니까.”
“그래. 너는?”
“과거를 조사 중이야. 아직 지상에 오지 않았던 해인들을 제외하면 대개 하나씩은 이별의 아픔이 있네. 이게 동기라면 누가 그랬대도 이상하진 않겠는데?”
“그래.”
“일단은 어제 이후로 아직까지 일이 생기진 않았어. 보통 사건이 저녁에 있으니까 속단하긴 이르지만.”
담담히 말한 지호가 하품을 했다.
지호도 케이크를 만들고 잠깐 가게에 다녀 온 시간 빼고는 내내 노트북 앞에 있었더니 피곤했다.
아직은 용의자가 너무 많았다.
그런 지호를 보다 이안이 말했다.
“이제 그 쪽에서 어떻게 나오나 기다려야지. 좀 자둬. 오늘은 괜찮을지도 모르지.”
“아무래도 그래야겠다. 혹시 일 생기면 연락할게.”
“그래.”
지호가 노트북을 챙겨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던 이안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윤이 잠에서 깼을 때는 온 세상이 깜깜했다.
대체 몇 시간을 잔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이대로 다시 그냥 잘까 고민하다가 몸을 일으켰다.
이안은 어디 있는지 궁금했다.
방문을 열자 환한 빛이 아윤을 반겼다.
“일어났어?”
“몇 시예요?”
“9시.”
“엄청 잤네요.”
아윤이 멍한 얼굴로 대답하고는 이안의 옆에 앉았다.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은 이안이 아윤에게 물었다.
“몸은 어때?”
“괜찮아요.”
“배는 안 고파?”
그러고보니 배가 고팠다.
뭐 먹지.
“고파요. 우리 뭐 먹으러 갈래요?”
“사 올게. 뭐 먹고 싶은데?”
“음.”
또 그렇게 물으니까 딱히 먹고 싶은 건 없었다.
그냥 배부를만 한 거면 괜찮을 것 같은데.
“저번에 사 왔던 카레는 어때요? 거기에 돈까스?”
“그거면 되겠어?”
“네.”
“금방 다녀올게.”
그 말을 끝으로 바로 이안의 몸이 없어졌다.
혼자 남은 아윤은 슬그머니 소파에 다시 누웠다.
몸이 생각보다 온전하지 않다는 게 느껴졌다.
많이 잔 것 같은데 아침보다 몸이 무거웠다.
텔레비전을 켤까 하다가 그것도 귀찮아져서 눈을 감았다.
어디 찜질방 가서 몸이나 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밥먹고 나면 다녀오자고 할까.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은데 다시 잠이 들었나보다.
“아윤아. 밥 먹고 자.”
부드러운 목소리에 눈을 뜨니 이안이 다시 앞에 보였다.
“깜박 잠들었나봐요.”
일어난 아윤에게 이안은 숟가락을 쥐어 주었다.
그의 안쓰러워하는 눈빛을 받고 있자니 갑자기 환자가 된 것 같았다.
아윤은 피식 웃음이 났다.
“몸이 그런 상태인데 웃음이 나?”
아윤을 보던 이안이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그냥 근육통일 뿐인데. 엄청 아픈 사람이 된 것 같아서요.”
“서지호말로는 온몸이 아플 수도 있다던데. 그래?”
“근육이 놀라서 그런가봐요. 원래 다 그렇죠, 뭐.”
당연하다는 듯 대답한 아윤이 카레를 입에 넣었다.
매콤하니 소고기와 야채가 가득 들어간 카레가 입안에 가득찼다.
“맛있다.”
“그래. 많이 먹어. 내 것도 더 줄까?”
이안이 아윤의 그릇에 자신의 음식을 옮기려고 했다.
“아니에요. 돈까스도 먹어야 해서요.”
아윤이 생긋 웃고는 젓가락을 손에 들었다.
한참을 먹는 데 집중하던 아윤은 그릇을 싹 비웠다.
배가 많이 고팠었나보다.
다 먹고 나서야 아윤은 말을 꺼냈다.
“우리 찜질방 갈래요? 가봤어요?”
“찜질방? 아니. 안 가봤는데.”
이안의 대답에 아윤이 웃었다.
“정말 안 해 본 게 많네요.”
“관심이 없었으니까. 갈 이유도 없었고.”
담백하게 말하며 이안이 그릇을 정리했다.
같이 움직이려던 아윤은 이안에게 제지당했다.
“가만히 앉아 있어. 눕던가.”
“괜찮은데요.”
이안은 그런 아윤이 못마땅했다.
자꾸 괜찮다고만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낮잠을 그렇게 자고도 까무룩 잠들어 놓고 뭐가 그렇게 괜찮다는 건지.
안 괜찮다고 하려면 얼마나 아파야 되는거야?
심상치않은 이안의 표정에 아윤이 가만히 소파에 기댔다.
금방 정리를 마친 이안이 다시 곁으로 돌아왔다.
“찜질방은 왜 가고 싶은데?”
“그냥 따뜻하고 좋잖아요. 오히려 안 좋을 때도 있다고는 하는데 욱신거릴 때 가면 전 좋더라고요. 그리고 그런 분위기 있거든요. 찜질방 특유의.”
자주 가는 건 아니지만 아윤은 그 분위기를 꽤 좋아하기도 했다.
“그럼 가자. 이 근처에도 있을 걸.”
“좋아요.”
말을 마친 아윤이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근처의 찜질방을 찾아낸 이안이 아윤을 데리고 이동했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와 찜질방에 들어가자 넓고 한적한 공간이 나왔다.
변두리에 있어서인지 소금방, 황토방 기타 등등 이름표를 매단 문들이 꽤 많은데도 사람은 많지 않았다.
두리번 거리던 아윤은 이안을 찾았다.
헐렁한 황토색 반팔 옷을 입은 이안이 아윤에게로 다가왔다.
“뭘 하면 되는 거야?”
“저기 부터 가볼까요?”
아윤이 웃으며 40도가 적힌 황토방을 가리켰다.
이안도 아윤을 따라 발을 옮겼다.
안에 들어간 아윤은 바닥에 깔린 멍석 위에 누웠다.
몸 전체에 따뜻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좋네요.”
아윤의 만족스런 얼굴에 이안도 어색하게 옆에 누웠다.
따끈한 느낌이 들었다.
공기가 좀 답답한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왜 좋은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낮게 이안이 물었다.
“뭐가 좋은 거야?”
“그냥 따뜻하잖아요. 소리가 울리는 것도 흙냄새 나는 기분도 왠지 좋지 않아요?”
아윤이 아이처럼 웃었다.
맑은 눈동자와 해맑은 웃음이 이안의 시야에 가득 찼다.
그런 감정은 잘 모르겠는데 여기가 좋아질 것 같긴 했다.
강아윤이 좋아하니까.
그렇게 한참을 아윤은 찜질을 하고 이안은 그런 아윤을 구경했다.
어느 순간부터 아윤의 몸에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몸이 좀 개운해지면서 숨쉬기가 불편해지는 기분에 결국 아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매점으로 걸어간 아윤은 식혜와 감식초, 계란을 사서 자리에 앉았다.
“먹어봐요. 이게 여기서 먹는 건 맛이 다르다니까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즐거워보이는 아윤을 보며 이안도 계란을 까서 입에 넣었다.
“맛있죠?”
“응. 그러네.”
이안이 담백하게 대답했다.
이안에게 계란은 그냥 계란이었다.
식혜는 식혜였고.
하지만 자신의 대답에 왜인지 뿌듯해하는 강아윤이 귀여워서 이안은 웃었다.
무슨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뭐가 중요하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을 그렇게 들락날락 하다보니 시간이 거의 자정이었다.
“이제 갈까요?”
“그래.”
아윤의 말에 다시 각자 헤어져 씻고 나온 둘은 집으로 돌아왔다.
침대 위에 누워 아윤이 이안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어쩐지 눈 감았다 뜨면 아침 일 것 같아요.”
아윤의 말 속엔 졸음이 섞여있었다.
“아마 그럴 것 같네.”
“그쵸?”
작게 웃는 아윤의 목소리를 듣다 조용히 이안이 물었다.
“근데 왜 아픈 걸 티내지 않는 거야?”
“그냥요. 그런다고 달라질 것도 없으니까요.”
“원래 그랬어?”
이안의 물음에 아윤은 어린시절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즈음에는 그랬던 것 같다.
그 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언제부터 였는지 모르겠어요. 오빠가 둘이라 그런가 좀 다친 정도는 신경쓰지 않게 되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워낙 장난꾸러기들이었거든요. 둘 다.”
“나한테는 티 내줬으면 좋겠는데.”
“그랬으면 오늘 나한테 손도 대지 않았을 거잖아요.”
“당연하잖아.”
하루 종일 아윤을 지켜 본 이안은 안 그래도 당분간 그럴 예정이었다.
말만 괜찮지 몸은 전혀 괜찮아보이지 않았다.
진작 눈치채지 못했던 게 한심했다.
괜히 자신 때문에 더 안 좋은 건 아닌지 죄책감도 들었다.
“그래서 그랬어요. 안 그랬음 좋겠어서. 난 당신이랑 몸으로 나누는 대화도 좋아하거든요.”
목 근처에 닿아오는 아윤의 숨이 느껴진 이안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자신을 바라보는 강아윤의 눈이 예뻤다.
이마도 코도 입술도.
살짝 잠겨 든 목소리까지도.
이안이 거리를 살짝 벌리며 눈을 돌렸다.
생각과는 다르게 몸은 솔직했다.
“이제 그만 자.”
그런 이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윤은 작게 웃더니 팔을 두른 채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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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용왕의 아들과 사랑을 시작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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