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누구하나 쉽지 않네.
조회 : 981 추천 : 0 글자수 : 5,121 자 2022-12-24
아윤의 갈색 눈이 흔들렸다.
상우한테 미안한 마음은 있었지만 다른 누가 그렇게 말할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눈 앞의 호아씨는 뭐가 좋은지 해맑게 웃고 있었다.
정말 동생들이 누구 하나 쉽지 않네.
사실이긴 하니까 비꼬는 호아씨를 탓할 수도 없었다.
동생의 입장에서는 저렇게 생각하는게 당연할지도.
그럼 뭐라고 대답하는 게 좋을까.
고민 끝에 말을 고른 아윤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
“누굴 보고 이 사람이다. 했던 적 있어요? 물론 사람이 아니어도요.”
생각지 못한 아윤의 말에 호아의 푸른 눈이 살짝 커졌다.
가만히 자신을 보는 호아에게 아윤이 재차 물었다.
“아마 저보다 오래 살았겠죠? 그런 상대가 없었나요?”
“내가 왜 그런 얘기를 해줘야 하죠?”
잠시 조용해졌던 호아가 어쩐지 날이 선 목소리로 받아쳤다.
그 짧은 문장에서 아윤은 호아에게 그런 상대가 있었으리라 짐작했다.
아마도 그 상대와 잘 되지 않았으리라는 것도.
아니라면 저런 과한 반응이 나오지는 않았을 거였다.
“싫으면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돼요.”
아윤은 차분히 대답했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으니까.
“나는 이안씨가 그랬어요. 어느 순간 편했고, 설렜고, 궁금했고 그냥 좋았어요. 그런 감정을 처음 느껴봤다면 믿을래요?”
이안을 떠올리자 아윤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호아씨가 이안에게 중요한 이들 중 하나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말해주지도 않았을 거였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이해시킬 필요는 없는 거니까.
호아씨는 말이 없었다.
다른 사람이랑 연애도 해 놓고 왜 처음인 척 하냐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그런데 사실인걸.
“믿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가벼워보였대도 어쩔 수 없죠. 그냥 놓칠 수가 없었어요. 그게 다예요. 난 이안씨가 좋아요.”
아윤이 담백하게 말을 맺었다.
누구에게 무슨 소리를 듣는 대도 상관없었다.
그런 상대를 또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용기를 냈던 것 뿐이었다.
아윤의 말이 마음이 들지 않았는지 호아의 입술이 일자로 닫혔다.
아윤은 차가운 눈빛을 받고 있자니 불편했지만 곧게 눈을 맞췄다.
이내 호아가 입을 열었다.
“그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좋겠네요.”
다시 활짝 웃는 얼굴과는 다르게 호아의 목소리가 싸늘했다.
변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경고같은.
“저도요.”
아윤도 짧게 대답했다.
그렇게 애매한 대치 상황을 겪고 있을 때 맑은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뭐야, 오빠 먼저 왔으면 말을 해야지!”
고개를 돌리니 아린이 보였다.
작고 갸름한 하얀 얼굴에 커다란 눈, 살짝 내린 앞머리까지 여전히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아린이 등장하니 순식간에 공기가 따뜻해졌다.
“왔어? 미안. 아윤씨 있길래 먼저 얘기 좀 하고 있었어.”
부드럽게 대답하는 호아를 툭 치며 아린이 옆에 앉았다.
“죄송해요. 오빠가 졸라서 알려줬는데 저보다 먼저 올 줄은 몰랐어요. 미리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미안함이 가득한 아린의 얼굴에 아윤은 생긋 웃었다.
“괜찮아요. 만나서 반가워요, 아린 씨.”
“저도요. 뵙고 싶었거든요. 이안 오빠는 원래도 말이 많지 않아서요. 보여 달래도 그래. 그게 다였다구요.”
아린을 보고 있으니 왜 이안이 특별하게 생각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아린이 가진 밝고 명랑한 분위기는 주변도 그렇게 만들었다.
마지막에 이안의 말투를 따라하는 모습에 아윤은 풉 하고 웃어버렸다.
“그랬어요? 나한테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아윤씨한테도 그래요? 그런 우리 오빠가 어디가 좋으셨어요? 늘 무표정하고 말도 없는데.”
초롱초롱한 아린의 눈망울을 보고 있자니 이안을 좋아하는 이유가 수도 없이 많이 생각이 났다.
무표정하게 다정한 문장을 말할때도 좋았고.
질투하던 모습도 좋았고.
아이처럼 웃는 얼굴도 좋았고.
너무 많았지만 아윤은 그 중에 하나를 골랐다.
“그래도 이안씨는 정말 다정해요. 그쵸?”
잔잔한 아윤의 목소리에 아린은 잠깐 멈칫했다 해맑게 웃었다.
“맞아요. 그게 티가 나서 다행이에요. 보통 잘 모르거든요. 오빠가 그냥 잘생긴 게 다가 아닌데. 아윤씨는 정말 눈이 좋네요.”
“고마워요.”
오빠에 대해 재잘거리는 아린의 목소리엔 이안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그걸 보고 있자니 아윤은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고맙죠. 난 오빠 곁에 누군가 있었으면 했어요. 어딘가 쓸쓸해보였거든요. 오빠는 아니라지만. 몇 번이나 소개시켜줬는데 언제나 무심했어요. 근데 다 인연이 있었나봐요.”
“그러게요. 어쩌면 아린 씨 덕분이에요.”
“아, 그 날 마카롱이요?”
아윤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아린에게는 고마운 게 많았다.
그것도 그랬지만 아린이 아니었으면 그가 날 구해주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잘 돼서 사실 제가 정말 뿌듯해요. 전 두 분이 오래오래 행복하시길 바라요.”
아린의 진심이 담긴 목소리가 아윤에게 닿았다.
그 말에서 그저 오빠가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래 볼게요. 꼭.”
아직 용왕님이 기억을 지워버린다고 했던 일이나 이안의 저주나 남은 일들이 떠올랐지만 아윤은 다부지게 대답했다.
아린에게는 호아에게 대답할 때와는 다르게 속마음을 얘기해주고 싶었다.
아윤의 그런 마음이 느껴졌는지 아린도 미소지었다.
“호아, 넌 왜 여기있어?”
언제 왔는지 이안이 자연스럽게 아윤의 옆에 앉았다.
“미안. 나도 몰랐어.”
이안이 아윤을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안 그래도 겸이 때부터 아윤을 귀찮게 하는 것 같아 이안은 신경이 쓰였다.
아린이만 해도 강아윤이 보고 싶다고 했으니 연락했던 거였다.
근데 왜 호아까지 여기 와 있는 건지.
“괜찮아요.”
작게 웃는 아윤을 본 이안이 고개를 정면으로 돌렸다.
제멋대로인 동생들을 보는 이안의 얼굴이 무표정했다.
“호아 오빠도 아윤씨 보고 싶다고 해서.”
“미리 말해줬으면 좋았을걸.”
맑게 웃는 아린에게 이안이 조용히 대답했다.
그 뒤를 이어 호아가 말했다.
호아는 아까 아윤에게 기세등등하던 것과는 다르게 움츠러들어 있었다.
“내가 미안해. 궁금해서 그랬어.”
“그래.”
왠지 화가난 듯한 이안을 보다 아윤은 밝게 말을 꺼냈다.
사람인지라 호아씨의 기죽은 얼굴이 조금은 통쾌했지만 그래도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건 싫었다.
“왜 그래요. 내가 보고 싶었다는데. 우리 뭐라도 먹을까요? 지호씨 카페기는 하지만 그냥 앉아 있었네요.”
아윤의 말에 바로 호아가 일어섰다.
“제가 갔다 올게요. 뭐 드실래요?”
“저는 아메리카노요.”
“이안 오빠도 아메리카노지? 호아 오빠, 같이가. 나 케이크도 먹을래.”
이안이 대답하기 전에 아린도 호아의 뒤를 따라나섰다.
둘만 남자 아윤이 이안을 바라봤다.
“난 괜찮아요.”
웃음기가 담긴 아윤의 말에 이안이 대답했다.
“싫으면 말해. 애들이 왜 이러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이안이 고개를 저었다.
“다들 당신을 좋아하니까요.”
“그래도 네가 귀찮다면 싫은데. 한 둘도 아니고. 강아윤이 날 좋아한다고 해서 내 가족을 다 만나줘야되는 건 아니잖아.”
낮고 담담한 이안의 목소리가 아윤을 웃음짓게 했다.
“우리 오빠들이 당신을 보고 싶다고 하면요? 난 보여주고 싶은데.”
“난 괜찮은데? 언제가 좋은데?”
아윤의 말에 이안의 표정이 바뀌었다.
싱그럽게 웃는 입가와 휘어진 눈매엔 기대감마저 담겨 있었다.
동생들은 타박하더니 자기는 왜 이렇게 순순한거야.
아윤은 어이가 없어졌다.
“당신은 왜 괜찮은데요?”
“뭐가? 난 동생이 엄청 많아. 너랑은 다르지. 그러고보니 궁금하네.”
아까의 굳었던 얼굴은 어디가고 뭘 생각하는지 이안의 표정이 온화해졌다.
“그럼 언젠가 보여 줄게요.”
아윤은 생긋 웃었다.
“그래.”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린과 호아가 돌아왔다.
멀리서 봐도 많은 케이크 조각이 쟁반 위에 올려져 있었다.
“아린씨도 케이크를 정말 좋아하나봐요.”
“응. 단거면 다 좋아할 걸.”
이안이 대답을 마쳤을 때 아린이 트레이를 내려놓으며 활짝 웃었다.
“같이 먹을래요?”
아윤이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풀어진 분위기 속에서 아린은 아윤에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간간히 답하고 또 묻는 사이에 시간이 훅 지나갔다.
시계가 오후 6시에 가까워졌을 때에야 아린이 말했다.
“이제 가봐야겠다. 저녁은 우진씨랑 먹기로해서.”
“나도 이제 돌아가야겠어.”
“그럼 일어날까요?”
다같이 자리를 정리하고 모두가 카페 밖으로 나왔다.
아린과 호아가 인사하고 사라진 뒤에 이안과 아윤도 집으로 돌아가려던 찰나였다.
이안의 머릿속에 지호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 형, 어디야? 바로 모니터링 팀으로 와줘.
“미안. 아무래도 가봐야 할 것 같아. 일이 생겼나 봐.”
갑작스런 이안의 말에 고개를 드니 그의 표정이 심각해보였다.
아윤이 바로 대답했다.
“알겠어요. 어서 가봐요.”
“응. 이따가 연락할게.”
아윤에게 미소지은 이안이 서둘러 몸을 움직였다.
무슨 일이길래 그럴까.
별 일 아니어야 할텐데.
걱정스런 눈으로 이안의 뒷모습을 보던 아윤도 몸을 돌려 버스 정거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생각에 빠져 걷던 아윤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저기요.”
누가 자길 부른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아윤이 계속 발을 옮기자 남자가 아윤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낯선 감촉에 아윤이 반사적으로 손목을 빼려고 했다.
하지만 남자는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이십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키는 꽤 크지만 인상이 뚜렷하진 않은 순한 얼굴.
왜 이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건지 아윤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놔주세요.”
아윤이 강한 어조로 남자에게 말했다.
남자는 당황하지 않고 말을 걸었다.
“우리 어디선가 본 적 없어요?”
“아뇨. 처음 보는데요.”
“그럴리가 없어요. 이렇게 익숙한데요.”
“사람을 잘 못 보셨나봐요. 일단 이거부터 놓고 얘기해요.”
“같이 저녁 먹겠다고 약속해주면요.”
“죄송하지만 남자친구가 있어서요.”
“거짓말하지 마요.”
대체 왜 그런 확신을 하는 건지 남자가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말했다.
얼마나 손목을 세게 쥐고 있는지 아윤은 손목이 저려왔다.
앞에 있는 남자는 아무래도 정상이 아닌 것 같았다.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았다.
“경찰을 부를까요?”
“왜요?”
남자의 태도에 아윤은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말해야 될지 침착하게 생각해보려고 애쓰는데 갑자기 손이 자유로워졌다.
“뭡니까?”
남자의 쏘아보는 시선이 건율을 향했다.
“당신이야말로 뭐하는 겁니까?”
아윤의 손목을 빼낸 건율이 아윤과 남자의 사이에 섰다.
화가 난 건율의 목소리가 위협적이었다.
건율을 바라보던 남자의 눈이 갑자기 멍해졌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던 남자가 눈을 여러번 깜박이더니 물었다.
“제가 왜 여기에 있죠?”
상우한테 미안한 마음은 있었지만 다른 누가 그렇게 말할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눈 앞의 호아씨는 뭐가 좋은지 해맑게 웃고 있었다.
정말 동생들이 누구 하나 쉽지 않네.
사실이긴 하니까 비꼬는 호아씨를 탓할 수도 없었다.
동생의 입장에서는 저렇게 생각하는게 당연할지도.
그럼 뭐라고 대답하는 게 좋을까.
고민 끝에 말을 고른 아윤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
“누굴 보고 이 사람이다. 했던 적 있어요? 물론 사람이 아니어도요.”
생각지 못한 아윤의 말에 호아의 푸른 눈이 살짝 커졌다.
가만히 자신을 보는 호아에게 아윤이 재차 물었다.
“아마 저보다 오래 살았겠죠? 그런 상대가 없었나요?”
“내가 왜 그런 얘기를 해줘야 하죠?”
잠시 조용해졌던 호아가 어쩐지 날이 선 목소리로 받아쳤다.
그 짧은 문장에서 아윤은 호아에게 그런 상대가 있었으리라 짐작했다.
아마도 그 상대와 잘 되지 않았으리라는 것도.
아니라면 저런 과한 반응이 나오지는 않았을 거였다.
“싫으면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돼요.”
아윤은 차분히 대답했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으니까.
“나는 이안씨가 그랬어요. 어느 순간 편했고, 설렜고, 궁금했고 그냥 좋았어요. 그런 감정을 처음 느껴봤다면 믿을래요?”
이안을 떠올리자 아윤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호아씨가 이안에게 중요한 이들 중 하나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말해주지도 않았을 거였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이해시킬 필요는 없는 거니까.
호아씨는 말이 없었다.
다른 사람이랑 연애도 해 놓고 왜 처음인 척 하냐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그런데 사실인걸.
“믿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가벼워보였대도 어쩔 수 없죠. 그냥 놓칠 수가 없었어요. 그게 다예요. 난 이안씨가 좋아요.”
아윤이 담백하게 말을 맺었다.
누구에게 무슨 소리를 듣는 대도 상관없었다.
그런 상대를 또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용기를 냈던 것 뿐이었다.
아윤의 말이 마음이 들지 않았는지 호아의 입술이 일자로 닫혔다.
아윤은 차가운 눈빛을 받고 있자니 불편했지만 곧게 눈을 맞췄다.
이내 호아가 입을 열었다.
“그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좋겠네요.”
다시 활짝 웃는 얼굴과는 다르게 호아의 목소리가 싸늘했다.
변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경고같은.
“저도요.”
아윤도 짧게 대답했다.
그렇게 애매한 대치 상황을 겪고 있을 때 맑은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뭐야, 오빠 먼저 왔으면 말을 해야지!”
고개를 돌리니 아린이 보였다.
작고 갸름한 하얀 얼굴에 커다란 눈, 살짝 내린 앞머리까지 여전히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아린이 등장하니 순식간에 공기가 따뜻해졌다.
“왔어? 미안. 아윤씨 있길래 먼저 얘기 좀 하고 있었어.”
부드럽게 대답하는 호아를 툭 치며 아린이 옆에 앉았다.
“죄송해요. 오빠가 졸라서 알려줬는데 저보다 먼저 올 줄은 몰랐어요. 미리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미안함이 가득한 아린의 얼굴에 아윤은 생긋 웃었다.
“괜찮아요. 만나서 반가워요, 아린 씨.”
“저도요. 뵙고 싶었거든요. 이안 오빠는 원래도 말이 많지 않아서요. 보여 달래도 그래. 그게 다였다구요.”
아린을 보고 있으니 왜 이안이 특별하게 생각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아린이 가진 밝고 명랑한 분위기는 주변도 그렇게 만들었다.
마지막에 이안의 말투를 따라하는 모습에 아윤은 풉 하고 웃어버렸다.
“그랬어요? 나한테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아윤씨한테도 그래요? 그런 우리 오빠가 어디가 좋으셨어요? 늘 무표정하고 말도 없는데.”
초롱초롱한 아린의 눈망울을 보고 있자니 이안을 좋아하는 이유가 수도 없이 많이 생각이 났다.
무표정하게 다정한 문장을 말할때도 좋았고.
질투하던 모습도 좋았고.
아이처럼 웃는 얼굴도 좋았고.
너무 많았지만 아윤은 그 중에 하나를 골랐다.
“그래도 이안씨는 정말 다정해요. 그쵸?”
잔잔한 아윤의 목소리에 아린은 잠깐 멈칫했다 해맑게 웃었다.
“맞아요. 그게 티가 나서 다행이에요. 보통 잘 모르거든요. 오빠가 그냥 잘생긴 게 다가 아닌데. 아윤씨는 정말 눈이 좋네요.”
“고마워요.”
오빠에 대해 재잘거리는 아린의 목소리엔 이안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그걸 보고 있자니 아윤은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고맙죠. 난 오빠 곁에 누군가 있었으면 했어요. 어딘가 쓸쓸해보였거든요. 오빠는 아니라지만. 몇 번이나 소개시켜줬는데 언제나 무심했어요. 근데 다 인연이 있었나봐요.”
“그러게요. 어쩌면 아린 씨 덕분이에요.”
“아, 그 날 마카롱이요?”
아윤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아린에게는 고마운 게 많았다.
그것도 그랬지만 아린이 아니었으면 그가 날 구해주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잘 돼서 사실 제가 정말 뿌듯해요. 전 두 분이 오래오래 행복하시길 바라요.”
아린의 진심이 담긴 목소리가 아윤에게 닿았다.
그 말에서 그저 오빠가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래 볼게요. 꼭.”
아직 용왕님이 기억을 지워버린다고 했던 일이나 이안의 저주나 남은 일들이 떠올랐지만 아윤은 다부지게 대답했다.
아린에게는 호아에게 대답할 때와는 다르게 속마음을 얘기해주고 싶었다.
아윤의 그런 마음이 느껴졌는지 아린도 미소지었다.
“호아, 넌 왜 여기있어?”
언제 왔는지 이안이 자연스럽게 아윤의 옆에 앉았다.
“미안. 나도 몰랐어.”
이안이 아윤을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안 그래도 겸이 때부터 아윤을 귀찮게 하는 것 같아 이안은 신경이 쓰였다.
아린이만 해도 강아윤이 보고 싶다고 했으니 연락했던 거였다.
근데 왜 호아까지 여기 와 있는 건지.
“괜찮아요.”
작게 웃는 아윤을 본 이안이 고개를 정면으로 돌렸다.
제멋대로인 동생들을 보는 이안의 얼굴이 무표정했다.
“호아 오빠도 아윤씨 보고 싶다고 해서.”
“미리 말해줬으면 좋았을걸.”
맑게 웃는 아린에게 이안이 조용히 대답했다.
그 뒤를 이어 호아가 말했다.
호아는 아까 아윤에게 기세등등하던 것과는 다르게 움츠러들어 있었다.
“내가 미안해. 궁금해서 그랬어.”
“그래.”
왠지 화가난 듯한 이안을 보다 아윤은 밝게 말을 꺼냈다.
사람인지라 호아씨의 기죽은 얼굴이 조금은 통쾌했지만 그래도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건 싫었다.
“왜 그래요. 내가 보고 싶었다는데. 우리 뭐라도 먹을까요? 지호씨 카페기는 하지만 그냥 앉아 있었네요.”
아윤의 말에 바로 호아가 일어섰다.
“제가 갔다 올게요. 뭐 드실래요?”
“저는 아메리카노요.”
“이안 오빠도 아메리카노지? 호아 오빠, 같이가. 나 케이크도 먹을래.”
이안이 대답하기 전에 아린도 호아의 뒤를 따라나섰다.
둘만 남자 아윤이 이안을 바라봤다.
“난 괜찮아요.”
웃음기가 담긴 아윤의 말에 이안이 대답했다.
“싫으면 말해. 애들이 왜 이러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이안이 고개를 저었다.
“다들 당신을 좋아하니까요.”
“그래도 네가 귀찮다면 싫은데. 한 둘도 아니고. 강아윤이 날 좋아한다고 해서 내 가족을 다 만나줘야되는 건 아니잖아.”
낮고 담담한 이안의 목소리가 아윤을 웃음짓게 했다.
“우리 오빠들이 당신을 보고 싶다고 하면요? 난 보여주고 싶은데.”
“난 괜찮은데? 언제가 좋은데?”
아윤의 말에 이안의 표정이 바뀌었다.
싱그럽게 웃는 입가와 휘어진 눈매엔 기대감마저 담겨 있었다.
동생들은 타박하더니 자기는 왜 이렇게 순순한거야.
아윤은 어이가 없어졌다.
“당신은 왜 괜찮은데요?”
“뭐가? 난 동생이 엄청 많아. 너랑은 다르지. 그러고보니 궁금하네.”
아까의 굳었던 얼굴은 어디가고 뭘 생각하는지 이안의 표정이 온화해졌다.
“그럼 언젠가 보여 줄게요.”
아윤은 생긋 웃었다.
“그래.”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린과 호아가 돌아왔다.
멀리서 봐도 많은 케이크 조각이 쟁반 위에 올려져 있었다.
“아린씨도 케이크를 정말 좋아하나봐요.”
“응. 단거면 다 좋아할 걸.”
이안이 대답을 마쳤을 때 아린이 트레이를 내려놓으며 활짝 웃었다.
“같이 먹을래요?”
아윤이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풀어진 분위기 속에서 아린은 아윤에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간간히 답하고 또 묻는 사이에 시간이 훅 지나갔다.
시계가 오후 6시에 가까워졌을 때에야 아린이 말했다.
“이제 가봐야겠다. 저녁은 우진씨랑 먹기로해서.”
“나도 이제 돌아가야겠어.”
“그럼 일어날까요?”
다같이 자리를 정리하고 모두가 카페 밖으로 나왔다.
아린과 호아가 인사하고 사라진 뒤에 이안과 아윤도 집으로 돌아가려던 찰나였다.
이안의 머릿속에 지호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 형, 어디야? 바로 모니터링 팀으로 와줘.
“미안. 아무래도 가봐야 할 것 같아. 일이 생겼나 봐.”
갑작스런 이안의 말에 고개를 드니 그의 표정이 심각해보였다.
아윤이 바로 대답했다.
“알겠어요. 어서 가봐요.”
“응. 이따가 연락할게.”
아윤에게 미소지은 이안이 서둘러 몸을 움직였다.
무슨 일이길래 그럴까.
별 일 아니어야 할텐데.
걱정스런 눈으로 이안의 뒷모습을 보던 아윤도 몸을 돌려 버스 정거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생각에 빠져 걷던 아윤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저기요.”
누가 자길 부른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아윤이 계속 발을 옮기자 남자가 아윤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낯선 감촉에 아윤이 반사적으로 손목을 빼려고 했다.
하지만 남자는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이십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키는 꽤 크지만 인상이 뚜렷하진 않은 순한 얼굴.
왜 이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건지 아윤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놔주세요.”
아윤이 강한 어조로 남자에게 말했다.
남자는 당황하지 않고 말을 걸었다.
“우리 어디선가 본 적 없어요?”
“아뇨. 처음 보는데요.”
“그럴리가 없어요. 이렇게 익숙한데요.”
“사람을 잘 못 보셨나봐요. 일단 이거부터 놓고 얘기해요.”
“같이 저녁 먹겠다고 약속해주면요.”
“죄송하지만 남자친구가 있어서요.”
“거짓말하지 마요.”
대체 왜 그런 확신을 하는 건지 남자가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말했다.
얼마나 손목을 세게 쥐고 있는지 아윤은 손목이 저려왔다.
앞에 있는 남자는 아무래도 정상이 아닌 것 같았다.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았다.
“경찰을 부를까요?”
“왜요?”
남자의 태도에 아윤은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말해야 될지 침착하게 생각해보려고 애쓰는데 갑자기 손이 자유로워졌다.
“뭡니까?”
남자의 쏘아보는 시선이 건율을 향했다.
“당신이야말로 뭐하는 겁니까?”
아윤의 손목을 빼낸 건율이 아윤과 남자의 사이에 섰다.
화가 난 건율의 목소리가 위협적이었다.
건율을 바라보던 남자의 눈이 갑자기 멍해졌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던 남자가 눈을 여러번 깜박이더니 물었다.
“제가 왜 여기에 있죠?”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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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용왕의 아들과 사랑을 시작할 때
42.42. 내 생각 자주 하더라.조회 : 99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355 41.41. 사라진 구슬조회 : 88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00 40.40. 누구하나 쉽지 않네.조회 : 98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21 39.39. 이리와요.조회 : 94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16 38.38. 내가 좋았으면 됐죠.조회 : 90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301 37.37. 솔직하게 말한다며조회 : 77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69 36.36. 저도 싫어해요, 그런 거.조회 : 93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580 35.35화. 연애 중이신 거 맞죠?조회 : 91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662 34.34화. 미안해.조회 : 20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675 33.33화. 질투라는 감정조회 : 6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580 32.32화. 언제 이렇게 빠져버렸을까.조회 : 9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690 31.31. 내가 왜 싫어해요?조회 : 10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432 30.30. 힘내.조회 : 13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974 29.29. 위로는 많이 했으니까.조회 : 10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50 28.28. 왜 그랬어?조회 : 17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31 27.27. 서리나씨랑 친구였다며?조회 : 20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37 26.26. 여자친구 엄청 예뻐하네.조회 : 29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51 25.25. 형은 아니지?조회 : 9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41 24.24. 너무 귀엽잖아요.조회 : 11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36 23.23. 이안 형 어디가 좋아요?조회 : 12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09 22.22. 형수님이 궁금하네.조회 : 13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991 21.21. 싫은데. 가야돼?조회 : 9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44 20.20화. 보고싶어.조회 : 12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436 19.19화. 곁에 있어준다면 좋을텐데.조회 : 8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924 18.18화. 자꾸 이렇게 좋아지면 큰일인데.조회 : 22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357 17.17화. 혼란스러운 아침조회 : 9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05 16.16화. 욕심조회 : 18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48 15.15화.끌림의 이유조회 : 13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72 14.14화. 이유가 뭘까?조회 : 9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426 13.13화. 입맞춤조회 : 14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66 12.12화. 고백조회 : 32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05 11.11화. 놓아줄 수 있을까?조회 : 15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70 10.10. 마음을 깨달았을 때조회 : 22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69 9.9화. 왜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걸까?조회 : 20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07 8.8화. 영화관에서조회 : 18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80 7.7화. 이안과 아윤조회 : 22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786 6.6화. 그의 집에서조회 : 27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86 5.5화. 해인의 구슬이 깨졌을 때조회 : 19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386 4.4화. 각자의 묘한 기분조회 : 16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925 3.3화. 바닷가에서조회 : 22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921 2.2화. 정체가 뭔지 물어봐도 돼요?조회 : 37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91 1.1. 당신, 운이 좋네.조회 : 1,11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4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