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솔직하게 말한다며
조회 : 780 추천 : 0 글자수 : 5,069 자 2022-12-24
이안이 나타난 곳은 캄캄한 방이었다.
이안은 침대 위에서 자고 있는 한 남자를 확인하고 주변을 둘러 보았다.
분명 누가 저 해인에게 접촉했는데 아무도 없었다.
바로 왔는데도.
다른 누군가가 있었던 흔적 조차도 남아있지 않았다.
더 있을 이유가 없었던 이안이 지호의 집으로 돌아왔다.
“뭐야, 어디 갔다 와?”
지호의 말에 대답없이 이안은 소파에 앉았다.
잠깐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잠시 뒤 이안이 말을 꺼냈다.
“해인들이 누굴 만났거나 뭔가를 만진 게 아니었어. 적어도 깨어 있는 동안에는.”
갑작스러운 이안의 말에 다른 일을 하던 지호가 고개를 들었다.
“꿈이야. 자는 동안 무의식을 건드렸던 거야. 암시를 걸어뒀거나.”
“어떻게 알아 낸 거야?”
“해인들에게 몰래 내 기운을 흘려 뒀었어. 그리고 누가 그걸 건드렸고. 근데 방 안엔 자고 있는 해인만 있었지.”
“그 많은 애들을 다 만났다고? 한 두명이 아니잖아.”
“응. 그래서 일부 지역만. 운이 좋게도 그 중 한 명을 건드려줬어.”
“누구야, 범인은?”
기대감에 지호의 목소리가 커졌다.
“몰라. 몸이 직접 온 게 아니야. 뭔가 주술적인 방법을 쓴 것 같아.”
“범인을 알아낸 줄 알았는데.”
이안도 사실 그럴 수 있을 줄 알았다.
정말 잘 풀려야 그럴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범인은 네 말대로 용궁 내부 사람이 맞아. 아니라면 해인의 집을 정확히 알아낼 수는 없었을 거야.”
“누굴까. 적이 정말 가까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를 생각한 지호가 뒷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이안을 봤다.
뭘 말하고 싶은지 눈치 챈 이안이 차분히 말을 대신했다.
“그래. 아무래도 관리국 내의 직원이나 내 형제들 중 하나 같아.”
“일반 해인도 가능했을까?”
“모르지. 주술을 사용하는 조건이 뭔지에 따라 다를 테니까. 일단 알아봐야지.”
“최악이네. 모두를 의심해야 되다니.”
“그래. 당분간 너만 알고 있어. 누구일지 확실치 않으니까.”
담담한 이안의 말에 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외부의 누군가였길 바랐는데.
실마리가 생겼지만 오히려 답답해진 기분이었다.
다음날.
아윤은 회사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 앉아있었다.
거의 대부분이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잠이 들었다.
수빈도 옆에서 잠이 들어 아윤은 창 밖을 보며 가고 있었다.
아침에 다시 만난 건율씨는 다행히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그 스스럼없이 웃는 얼굴에 아윤은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바로 옆 자리 동료가 불편해질까 걱정했는데.
그냥 고민 상담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때 손에 진동이 느껴졌다.
- 언제 도착해?
액정 위의 짧은 문장을 본 아윤이 미소지었다.
이안의 문자는 이안을 닮았다.
간결하고 다정한 느낌.
그래서 항상 문자인데도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 좀 있으면요. 나 기다리고 있어요?
- 응.
- 내리면 전화할게요.
- 그래.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건물들 사이로 버스가 멈췄다.
“도착했습니다. 내리셔도 됩니다.”
건율의 큰 목소리에 하나, 둘 일어난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윤도 수빈을 깨웠다.
차에서 내려 전화를 하려는데 옆에서 윤아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사람. 그 사람 아니야? 그 카페에 매일 앉아있던 그 남자.”
윤아씨는 길 건너편을 보고 있는 듯 했다.
무심코 아윤도 그 쪽을 바라봤다.
한 건물 앞에서 훤칠한 키에 어두운 색 니트, 회색 코트를 걸친 남자와 짧은 단발의 여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모자 벗은 건 처음보네. 근데 이 쪽을 보는 것 같지 않아?”
윤아씨의 말에 곁에 서 있던 타 부서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로 멈춰버린 아윤은 멍하니 둘을 보았다.
누구지?
저 남잔 나를 기다리느라 저기 서 있는 걸텐데.
저 여자는 누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아윤이 누르려던 통화버튼을 눌러 휴대폰을 귀에 댔다.
길 건너편의 남자가 전화를 받는 모습이 보였다.
“지금 뭐해요?”
“강아윤 기다리던 중인데. 내가 갈까?”
부드러운 목소리가 멀리서 아윤을 보며 물었다.
“나 보여요?”
“응. 차에 있을 때부터 보고 있었는데.”
“앞에 그 여자 분은 어쩌고 이 쪽으로 와요?”
생각보다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나와서 아윤은 스스로 놀랐다.
“잠깐 나한테 볼 일이 있었거든. 이제 끝났고.”
이안의 말이 끝나자 여자가 자리를 뜨는 게 보였다.
이안이 횡단보도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차츰 이안이 가까워졌다.
“가도 돼?”
“왜 물어보는 거예요?”
“강아윤 그런 거 싫어하잖아. 주목받는 거.”
이안의 말에 주변을 보니 윤아씨와 수빈, 몇 명의 직원이 이안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연예인을 구경하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이안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나보다.
개중에는 김과장님도 보였다.
“이미 다들 보고 있는데요. 그런 이유면 왜 거기 있었던건데요?”
“그냥. 빨리 보고 싶어서?”
훅 들어온 낮은 음성에 아윤의 사고가 정지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삐뚤어졌던 마음이 괜찮아졌다.
다른 생각들이 더 이상 나지 않았다.
이젠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이안이 서 있었다.
잘 보이지 않던 얼굴도 또렷하게 보였다.
“맞네. 누구랑 전화하는 데 저렇게 웃는거지? 진짜 잘생겼다. 왜 요새는 안 오는 걸까.”
감탄하는 윤아씨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아윤이 수빈에게 말했다.
“수빈 씨, 나 먼저 가 볼게요. 누가 데리러 와서요.”
“남자친구가요? 좋겠다.”
“네. 그럼 월요일에 봐요.”
횡단보도에 불이 켜졌다.
아윤이 그 쪽으로 서둘러 발을 옮겼다.
아마 월요일에 좀 시끄러워질지도 몰랐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횡단보도를 건너자 기다렸다는 듯 이안이 아윤을 품에 안고는 속삭였다.
“천천히 와도 되는데.”
“안돼요. 여기선.”
“응.”
순순히 놓아준 이안은 아윤의 손을 잡았다.
“차 가져왔어. 춥진 않아?”
“괜찮아요.”
“그래.”
이안은 옆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걷는 아윤을 보았다.
강아윤은 빨리 이 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 같았다.
사실 괜히 거기 서 있었던 건 아니었다.
빨리 보고 싶은 건 맞았다.
그냥 가서 데려올까 생각도 했으니까.
하지만 이안에게는 다른 목적이 있었다.
그 후배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에 안 들었다.
산에서 자꾸 데리러 온다고 하던 그 남자가 신경이 쓰였다.
이제 강아윤을 넘보진 않겠지.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며 이안이 웃고는 아윤의 손을 꼭 잡았다.
아윤을 태운 이안의 차는 지호의 집에 멈춰섰다.
“왜 여기로 왔어요?”
“내 집은 멀어. 이 동네가 아니거든. 늘 차를 쓰지도 않으니까 서지호랑 같이쓰고.”
“아. 그러고보니 차 타고는 한 번도 간 적이 없네요.”
“응. 점심은 뭐 먹을래?”
“차 타기 전에 조식먹었더니 괜찮아요. 디저트나 사 갈까요?”
“그래.”
차에서 내린 아윤과 이안은 지호의 카페로 향했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진 않았다.
“안녕하세요.”
“아윤씨, 잘 지냈어요? 어디 갔다왔나봐요.”
지호가 서글서글한 얼굴로 아윤을 반겼다.
지호도 본업에 집중하느라 오랜만에 가게에 있던 참이었다.
“네. 회사 단합대회 했거든요.”
“그랬군요. 내가 요새 형 보면서 많이 놀라요. 아윤씨 덕분에요.”
지호의 장난스런 눈빛에 이안이 끼어들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마.”
“뭘. 없는 말 하는 것도 아닌데. 맞다. 아윤씨 언제 아린이도 한 번 만나줘요. 엄청 궁금해하거든요.”
“아린씨요? 저도 좋아요. 그러고보니 이안씨 동생이 몇 명이에요? 겸이씨랑 아린씨 둘이에요?”
“아뇨. 많아요, 아주.”
“아.”
지호의 대답에 아윤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안이 오래 살아왔으니 계속 태어났다면 엄청 많을지도 몰랐다.
“다른 애들은 몰라도 돼. 나도 어딨는지 모르는 애들 많아서. 아린이는 물어볼게.”
소중한 동생이라더니 다르긴 한가 보다.
아윤은 아린이 궁금해졌다.
스치듯 봤던 인형같은 외모와 밝은 분위기가 떠올랐다.
못마땅해 하면서도 마카롱을 만들던 이안의 모습도.
“네. 조만간에요.”
아윤이 다짐을 받듯 이안을 보았다.
“그래.”
그 뒤로 케이크 몇 개와 커피를 산 둘은 이안의 집으로 돌아왔다.
익숙한 거실이 아윤을 반겼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케이크 상자를 열며 아윤이 말했다.
“이제 여기가 익숙해 지는 것 같아요.”
“좋은 일이네.”
“그런가요?”
“그냥. 나한텐 그래. 나도 네가 여기 있는 게 익숙해지고 있거든. 조금 무섭기도 하고.”
담백한 이안의 말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곁에 있는 게 당연해지는 느낌이 든다는 게 좋으면서도 혹시나 사라질까봐 문득 드는 걱정.
“뭐가 무서워요. 나 어디 안 갈 거니까 걱정 말아요.”
아윤이 살포시 웃으며 이안에게도 포크를 내밀었다.
“그래.”
“역시 지호 씨 케이크는 맛있어요.”
“서지호가 그거에 진심이거든. 처음엔 정말 괴상했는데.”
“정말요? 처음부터 잘 만들었을 것 같은데요.”
“아냐. 갑자기 빵을 만든다더니 이상한 걸 가져왔었어. 시간은 많은 걸 해결해주나봐.”
“그래요?”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커피를 손에 들었다.
케이크는 별로 좋아하진 않았다.
근데 그걸 먹는 강아윤을 보는 건 좋았다.
행복해보였으니까.
가만히 커피를 마시며 이안은 생각했다.
케이크 만드는 걸 배워볼까.
서지호도 해냈으니까 나도.
그런 이안의 생각은 갑작스런 아윤의 물음에 멈췄다.
케이크를 향한 손을 멈추지 않은 채로 아윤이 물었다.
“근데 아까 그 여자는 누구예요?”
“누구?”
“같이 있던 여자요.”
“고 팀장? 부하직원이야. 왜?”
“그렇구나.”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하며 아윤은 계속 먹었다.
사실 아윤은 내내 마음에 걸렸다.
번호를 물어본 건지, 원래 아는 사이 인지, 그냥 누군지.
예전에는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 얘기를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이안이 여자랑 있는 건 처음 봤는데 기분이 별로였다.
조용히 그런 아윤을 보던 이안이 포크를 쥔 손목을 잡아 자신쪽으로 슬쩍 당겼다.
아윤의 몸이 이안 쪽으로 기울어졌다.
이안의 눈동자에 동그란 아윤의 눈과 오물거리는 작은 입이 담겼다.
“왜? 질투 나? 그랬어?”
이안의 표정이 짖궂었다.
“아닌데요.”
“솔직하게 말한다며.”
잠시 말이 없던 아윤이 이안을 똑바로 봤다.
“그래요. 그랬나봐요. 왜 그랬는지는 정말 모르겠지만요.”
고백하는 아윤의 작은 목소리에 이안이 웃었다.
다 먹을 때까지는 참으려고 했는데.
“이제 이따가 먹어. 나도 오래 기다렸거든.”
이안이 아윤의 손에 든 포크를 빼앗고는 달콤함이 남아있는 입술에 입을 맞췄다.
이안은 침대 위에서 자고 있는 한 남자를 확인하고 주변을 둘러 보았다.
분명 누가 저 해인에게 접촉했는데 아무도 없었다.
바로 왔는데도.
다른 누군가가 있었던 흔적 조차도 남아있지 않았다.
더 있을 이유가 없었던 이안이 지호의 집으로 돌아왔다.
“뭐야, 어디 갔다 와?”
지호의 말에 대답없이 이안은 소파에 앉았다.
잠깐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잠시 뒤 이안이 말을 꺼냈다.
“해인들이 누굴 만났거나 뭔가를 만진 게 아니었어. 적어도 깨어 있는 동안에는.”
갑작스러운 이안의 말에 다른 일을 하던 지호가 고개를 들었다.
“꿈이야. 자는 동안 무의식을 건드렸던 거야. 암시를 걸어뒀거나.”
“어떻게 알아 낸 거야?”
“해인들에게 몰래 내 기운을 흘려 뒀었어. 그리고 누가 그걸 건드렸고. 근데 방 안엔 자고 있는 해인만 있었지.”
“그 많은 애들을 다 만났다고? 한 두명이 아니잖아.”
“응. 그래서 일부 지역만. 운이 좋게도 그 중 한 명을 건드려줬어.”
“누구야, 범인은?”
기대감에 지호의 목소리가 커졌다.
“몰라. 몸이 직접 온 게 아니야. 뭔가 주술적인 방법을 쓴 것 같아.”
“범인을 알아낸 줄 알았는데.”
이안도 사실 그럴 수 있을 줄 알았다.
정말 잘 풀려야 그럴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범인은 네 말대로 용궁 내부 사람이 맞아. 아니라면 해인의 집을 정확히 알아낼 수는 없었을 거야.”
“누굴까. 적이 정말 가까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를 생각한 지호가 뒷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이안을 봤다.
뭘 말하고 싶은지 눈치 챈 이안이 차분히 말을 대신했다.
“그래. 아무래도 관리국 내의 직원이나 내 형제들 중 하나 같아.”
“일반 해인도 가능했을까?”
“모르지. 주술을 사용하는 조건이 뭔지에 따라 다를 테니까. 일단 알아봐야지.”
“최악이네. 모두를 의심해야 되다니.”
“그래. 당분간 너만 알고 있어. 누구일지 확실치 않으니까.”
담담한 이안의 말에 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외부의 누군가였길 바랐는데.
실마리가 생겼지만 오히려 답답해진 기분이었다.
다음날.
아윤은 회사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 앉아있었다.
거의 대부분이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잠이 들었다.
수빈도 옆에서 잠이 들어 아윤은 창 밖을 보며 가고 있었다.
아침에 다시 만난 건율씨는 다행히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그 스스럼없이 웃는 얼굴에 아윤은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바로 옆 자리 동료가 불편해질까 걱정했는데.
그냥 고민 상담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때 손에 진동이 느껴졌다.
- 언제 도착해?
액정 위의 짧은 문장을 본 아윤이 미소지었다.
이안의 문자는 이안을 닮았다.
간결하고 다정한 느낌.
그래서 항상 문자인데도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 좀 있으면요. 나 기다리고 있어요?
- 응.
- 내리면 전화할게요.
- 그래.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건물들 사이로 버스가 멈췄다.
“도착했습니다. 내리셔도 됩니다.”
건율의 큰 목소리에 하나, 둘 일어난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윤도 수빈을 깨웠다.
차에서 내려 전화를 하려는데 옆에서 윤아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사람. 그 사람 아니야? 그 카페에 매일 앉아있던 그 남자.”
윤아씨는 길 건너편을 보고 있는 듯 했다.
무심코 아윤도 그 쪽을 바라봤다.
한 건물 앞에서 훤칠한 키에 어두운 색 니트, 회색 코트를 걸친 남자와 짧은 단발의 여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모자 벗은 건 처음보네. 근데 이 쪽을 보는 것 같지 않아?”
윤아씨의 말에 곁에 서 있던 타 부서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로 멈춰버린 아윤은 멍하니 둘을 보았다.
누구지?
저 남잔 나를 기다리느라 저기 서 있는 걸텐데.
저 여자는 누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아윤이 누르려던 통화버튼을 눌러 휴대폰을 귀에 댔다.
길 건너편의 남자가 전화를 받는 모습이 보였다.
“지금 뭐해요?”
“강아윤 기다리던 중인데. 내가 갈까?”
부드러운 목소리가 멀리서 아윤을 보며 물었다.
“나 보여요?”
“응. 차에 있을 때부터 보고 있었는데.”
“앞에 그 여자 분은 어쩌고 이 쪽으로 와요?”
생각보다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나와서 아윤은 스스로 놀랐다.
“잠깐 나한테 볼 일이 있었거든. 이제 끝났고.”
이안의 말이 끝나자 여자가 자리를 뜨는 게 보였다.
이안이 횡단보도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차츰 이안이 가까워졌다.
“가도 돼?”
“왜 물어보는 거예요?”
“강아윤 그런 거 싫어하잖아. 주목받는 거.”
이안의 말에 주변을 보니 윤아씨와 수빈, 몇 명의 직원이 이안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연예인을 구경하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이안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나보다.
개중에는 김과장님도 보였다.
“이미 다들 보고 있는데요. 그런 이유면 왜 거기 있었던건데요?”
“그냥. 빨리 보고 싶어서?”
훅 들어온 낮은 음성에 아윤의 사고가 정지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삐뚤어졌던 마음이 괜찮아졌다.
다른 생각들이 더 이상 나지 않았다.
이젠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이안이 서 있었다.
잘 보이지 않던 얼굴도 또렷하게 보였다.
“맞네. 누구랑 전화하는 데 저렇게 웃는거지? 진짜 잘생겼다. 왜 요새는 안 오는 걸까.”
감탄하는 윤아씨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아윤이 수빈에게 말했다.
“수빈 씨, 나 먼저 가 볼게요. 누가 데리러 와서요.”
“남자친구가요? 좋겠다.”
“네. 그럼 월요일에 봐요.”
횡단보도에 불이 켜졌다.
아윤이 그 쪽으로 서둘러 발을 옮겼다.
아마 월요일에 좀 시끄러워질지도 몰랐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횡단보도를 건너자 기다렸다는 듯 이안이 아윤을 품에 안고는 속삭였다.
“천천히 와도 되는데.”
“안돼요. 여기선.”
“응.”
순순히 놓아준 이안은 아윤의 손을 잡았다.
“차 가져왔어. 춥진 않아?”
“괜찮아요.”
“그래.”
이안은 옆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걷는 아윤을 보았다.
강아윤은 빨리 이 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 같았다.
사실 괜히 거기 서 있었던 건 아니었다.
빨리 보고 싶은 건 맞았다.
그냥 가서 데려올까 생각도 했으니까.
하지만 이안에게는 다른 목적이 있었다.
그 후배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에 안 들었다.
산에서 자꾸 데리러 온다고 하던 그 남자가 신경이 쓰였다.
이제 강아윤을 넘보진 않겠지.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며 이안이 웃고는 아윤의 손을 꼭 잡았다.
아윤을 태운 이안의 차는 지호의 집에 멈춰섰다.
“왜 여기로 왔어요?”
“내 집은 멀어. 이 동네가 아니거든. 늘 차를 쓰지도 않으니까 서지호랑 같이쓰고.”
“아. 그러고보니 차 타고는 한 번도 간 적이 없네요.”
“응. 점심은 뭐 먹을래?”
“차 타기 전에 조식먹었더니 괜찮아요. 디저트나 사 갈까요?”
“그래.”
차에서 내린 아윤과 이안은 지호의 카페로 향했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진 않았다.
“안녕하세요.”
“아윤씨, 잘 지냈어요? 어디 갔다왔나봐요.”
지호가 서글서글한 얼굴로 아윤을 반겼다.
지호도 본업에 집중하느라 오랜만에 가게에 있던 참이었다.
“네. 회사 단합대회 했거든요.”
“그랬군요. 내가 요새 형 보면서 많이 놀라요. 아윤씨 덕분에요.”
지호의 장난스런 눈빛에 이안이 끼어들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마.”
“뭘. 없는 말 하는 것도 아닌데. 맞다. 아윤씨 언제 아린이도 한 번 만나줘요. 엄청 궁금해하거든요.”
“아린씨요? 저도 좋아요. 그러고보니 이안씨 동생이 몇 명이에요? 겸이씨랑 아린씨 둘이에요?”
“아뇨. 많아요, 아주.”
“아.”
지호의 대답에 아윤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안이 오래 살아왔으니 계속 태어났다면 엄청 많을지도 몰랐다.
“다른 애들은 몰라도 돼. 나도 어딨는지 모르는 애들 많아서. 아린이는 물어볼게.”
소중한 동생이라더니 다르긴 한가 보다.
아윤은 아린이 궁금해졌다.
스치듯 봤던 인형같은 외모와 밝은 분위기가 떠올랐다.
못마땅해 하면서도 마카롱을 만들던 이안의 모습도.
“네. 조만간에요.”
아윤이 다짐을 받듯 이안을 보았다.
“그래.”
그 뒤로 케이크 몇 개와 커피를 산 둘은 이안의 집으로 돌아왔다.
익숙한 거실이 아윤을 반겼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케이크 상자를 열며 아윤이 말했다.
“이제 여기가 익숙해 지는 것 같아요.”
“좋은 일이네.”
“그런가요?”
“그냥. 나한텐 그래. 나도 네가 여기 있는 게 익숙해지고 있거든. 조금 무섭기도 하고.”
담백한 이안의 말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곁에 있는 게 당연해지는 느낌이 든다는 게 좋으면서도 혹시나 사라질까봐 문득 드는 걱정.
“뭐가 무서워요. 나 어디 안 갈 거니까 걱정 말아요.”
아윤이 살포시 웃으며 이안에게도 포크를 내밀었다.
“그래.”
“역시 지호 씨 케이크는 맛있어요.”
“서지호가 그거에 진심이거든. 처음엔 정말 괴상했는데.”
“정말요? 처음부터 잘 만들었을 것 같은데요.”
“아냐. 갑자기 빵을 만든다더니 이상한 걸 가져왔었어. 시간은 많은 걸 해결해주나봐.”
“그래요?”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커피를 손에 들었다.
케이크는 별로 좋아하진 않았다.
근데 그걸 먹는 강아윤을 보는 건 좋았다.
행복해보였으니까.
가만히 커피를 마시며 이안은 생각했다.
케이크 만드는 걸 배워볼까.
서지호도 해냈으니까 나도.
그런 이안의 생각은 갑작스런 아윤의 물음에 멈췄다.
케이크를 향한 손을 멈추지 않은 채로 아윤이 물었다.
“근데 아까 그 여자는 누구예요?”
“누구?”
“같이 있던 여자요.”
“고 팀장? 부하직원이야. 왜?”
“그렇구나.”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하며 아윤은 계속 먹었다.
사실 아윤은 내내 마음에 걸렸다.
번호를 물어본 건지, 원래 아는 사이 인지, 그냥 누군지.
예전에는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 얘기를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이안이 여자랑 있는 건 처음 봤는데 기분이 별로였다.
조용히 그런 아윤을 보던 이안이 포크를 쥔 손목을 잡아 자신쪽으로 슬쩍 당겼다.
아윤의 몸이 이안 쪽으로 기울어졌다.
이안의 눈동자에 동그란 아윤의 눈과 오물거리는 작은 입이 담겼다.
“왜? 질투 나? 그랬어?”
이안의 표정이 짖궂었다.
“아닌데요.”
“솔직하게 말한다며.”
잠시 말이 없던 아윤이 이안을 똑바로 봤다.
“그래요. 그랬나봐요. 왜 그랬는지는 정말 모르겠지만요.”
고백하는 아윤의 작은 목소리에 이안이 웃었다.
다 먹을 때까지는 참으려고 했는데.
“이제 이따가 먹어. 나도 오래 기다렸거든.”
이안이 아윤의 손에 든 포크를 빼앗고는 달콤함이 남아있는 입술에 입을 맞췄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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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2. 내 생각 자주 하더라.조회 : 1,01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355 41.41. 사라진 구슬조회 : 90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00 40.40. 누구하나 쉽지 않네.조회 : 99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21 39.39. 이리와요.조회 : 95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16 38.38. 내가 좋았으면 됐죠.조회 : 91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301 37.37. 솔직하게 말한다며조회 : 78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69 36.36. 저도 싫어해요, 그런 거.조회 : 94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580 35.35화. 연애 중이신 거 맞죠?조회 : 92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662 34.34화. 미안해.조회 : 20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675 33.33화. 질투라는 감정조회 : 6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580 32.32화. 언제 이렇게 빠져버렸을까.조회 : 9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690 31.31. 내가 왜 싫어해요?조회 : 10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432 30.30. 힘내.조회 : 13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974 29.29. 위로는 많이 했으니까.조회 : 10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50 28.28. 왜 그랬어?조회 : 17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31 27.27. 서리나씨랑 친구였다며?조회 : 20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37 26.26. 여자친구 엄청 예뻐하네.조회 : 29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51 25.25. 형은 아니지?조회 : 9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41 24.24. 너무 귀엽잖아요.조회 : 11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36 23.23. 이안 형 어디가 좋아요?조회 : 12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09 22.22. 형수님이 궁금하네.조회 : 13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991 21.21. 싫은데. 가야돼?조회 : 9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44 20.20화. 보고싶어.조회 : 12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436 19.19화. 곁에 있어준다면 좋을텐데.조회 : 8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924 18.18화. 자꾸 이렇게 좋아지면 큰일인데.조회 : 22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357 17.17화. 혼란스러운 아침조회 : 9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05 16.16화. 욕심조회 : 18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48 15.15화.끌림의 이유조회 : 13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72 14.14화. 이유가 뭘까?조회 : 9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426 13.13화. 입맞춤조회 : 148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866 12.12화. 고백조회 : 32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05 11.11화. 놓아줄 수 있을까?조회 : 15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70 10.10. 마음을 깨달았을 때조회 : 22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69 9.9화. 왜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걸까?조회 : 20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207 8.8화. 영화관에서조회 : 181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80 7.7화. 이안과 아윤조회 : 222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786 6.6화. 그의 집에서조회 : 279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086 5.5화. 해인의 구슬이 깨졌을 때조회 : 19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386 4.4화. 각자의 묘한 기분조회 : 16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925 3.3화. 바닷가에서조회 : 225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921 2.2화. 정체가 뭔지 물어봐도 돼요?조회 : 37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191 1.1. 당신, 운이 좋네.조회 : 1,12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5,4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