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억, 허억. 이런, 젠장!"
오늘도 패배했다.
빌어먹을 개자식, 즉 형과의 대련에서 또 패배하고 만 것이었다.
수 없이 반복된 대련, 같은 결과.
대련은, 내가 형보다 나이가 많았다던가, 혹은 더 좋은 장비를 착용했다던가 같은 차이로는 절대 좁힐 수 없었다.
재능.
그놈에겐, 압도적인 재능이 있었다.
마치 하늘이 내린 것 같은 재능.
나 또한 한때는 천재라고 불렸지만, 진짜 천재 앞에서는 한없이 약한 피식자, 혹은 범재에 불과했으니.
나는 그 개자식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
"하지만, 하지만!!!"
그 개자식의 얼굴이 너무나도 역겹다.
마치 모든 걸 안다는 듯한 그 표정, 그 말투.
세계가, 신이 편애하는 듯한 재능을 가졌으면서, 그런 반응을 보인다.
다름 아닌, 동생인 내게.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동생인 네가 뼈가 깎일 정도로 노력하는 모습을 봤잖아. 안쓰러워서 그런 건데, 넌 왜 그렇게 삐뚤어진 거니?
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이하진. 요즘 수련을 게을리하는 것 같구나. 예전만 못해졌어. 조금 더 정진하도록.
어머니가, 내게 말했다.
-하진아. 너무 미워하지 마. 형이잖아. 응?
그 개자식이, 내게 말했다.
-······이하진. 미안하다.
삐뚤어졌다고?
노력을, 안 한다고?
미워하지 말라고?
고작 한다는 말이, 밤새 수련하고, 쉬는 시간마저 줄여가면서 뼈를 깎는 노력을 한 내게 한다는 말이, 이따위 말이다.
'미안하다.'
무엇이 미안한 걸까?
그 개자식은, 그 말이 내 자존심을 짓밟고, 깨뜨리고, 가루로 만들어버린다는 걸, 알까?
알면 최소한 그러진 않겠지.
"끄으윽, 끅, 끄윽!!"
싫다.
그가 너무나도 싫다.
가족이, 그 개자식이, 그리고 그놈에게만 재능을 몰아준, 신이 너무나도 밉다..
정녕 같은 제자가, 아들이, 맞는 건가?
증오에 사로잡혀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달콤한 목소리가, 내게 속삭여왔다.
-증오스럽지?
달콤한 사탕이 코팅된 듯한 말.
나는 내게 들려오는 말에, 저도 모르게 답하고 있었다.
"그래. 맞아. 너무나도 증오스러워."
-세상이 너무나도 밉지?
"세상이, 신이, 가족이 너무나도 밉다".
-화가 나지? 그 개자식에게 비하면 초라한 재능을 가진 너 자신이, 너무나도 화가 나지?
너무나도 화가 난다.
내가, 너무나도 밉다.
알량한 재능이, 힘이, 능력이.
"너무나도, 밉단 말이다······."
그 말에 목소리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도와줄게.
-그 개자식을 이길 수 있게, 도와줄게.
-그러니, 자······.
내 손을, 잡아.
그런 달콤한 말을, 어찌 거절할 수 있을까.
평소였다면 절대로 넘어가지 않았을, 달콤한 말.
하지만 대련에 패배하고, 열등감에 뇌가, 심장이, 그에게 털끝조차 닿을 수 없는 내 사지가······.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던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상상도 못 한 채로.
***
나는 여느 때와 같이 길을 걸으면서 한 소설을 보고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소설이 그렇듯, 망한 세계에서 회귀한 끝에 세계를 지켜낸다는, 흔하디흔한 소설.
"하지만 이런 소설만큼 요즘 재밌는 게 별로 없단 말이지."
회귀로 아티팩트, 기연, 영약 등을 선점하고, 가로챈다.
재능을 바탕으로 주인공이 성장하고, 악역들을 때려잡으며, 최후에는 최종 흑막을 죽이고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되찾는다.
"그런데 난······ 주인공 얘, 싫단 말이지."
선한 주인공.
그 누가 싫어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막 선하기만 한 것이 아닌, 실리를 추구하는 선함이다.
이성적이고, 냉철하다.
회귀했다는 이점을 살려 어떤 변수가 생겨도 당황하는 것은 잠시일 뿐.
이 작품의 주인공은, 기지를 살려 어떻게든 이득을 챙기면서도 사람을 생각하는 선함을 가졌다.
그렇기에 다른 독자들도 주인공에 대한 칭찬이 끊이질 않았다.
시원시원한 성격, 냉철하고, 이성적이며, 모든 행동에 근거가 있다.
다만, 나는 이 주인공이 싫었다.
이유는 뭐······ 그리 거창하진 않다.
주인공의 동생에게, 몰입했기 때문이었다.
범재.
그 말로 주인공의 동생을 표현할 수 있었다.
뛰어나긴 하지만, 특출나지 않다.
엄청난 노력가에, 호승심이 대단하지만, 그뿐이다.
주인공의 각성을 위한 촉진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 동생을, 주인공은 가차 없이 죽여버린다.
······악마와 계약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물론 악마와 계약한 인간은 무조건적인 절대악.
그 어떤 서사가, 사정이 있다고 해도 이 세계관에서는 무조건적인 제압, 살해까지 가능했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주인공을 싫어하는 이유는.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음에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음에도 그를 죽인 것.
걸림돌이라 판단한 즉시, 동생을 죽이기 위해 계획을 짜고, 실행하는 미친놈이다.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천사 같은 모습을 보였으면서.
정작 그의 동생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모습을 보였다.
너무나 가혹하게 살해했다.
나 또한 동생이 있었기 때문일까.
나는 그런 그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오늘도 조용히, 이젠 완결이 나버린 그 소설을 보면서 길을 걷다가.
-빠아앙!
소설에 너무 집중한 탓일까, 나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승용차를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퍼억!
그대로 차에 치여, 사망했다.
······아직 어머니한테 사랑한다는 말도 못 했는데.
그렇게 몸이 부유하는 감각과 함께, 눈이 감기는데.
그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너의 ■원은, 이■어졌■.
그게, 무슨······.
-오, ■써 ■착■ ■■.
안 들려.
-아. 미안하군, 이제 들리겠지. 어차피 시간도 별로 없으니, 빨리 말하지.
무슨, 말을.
-잘 살아남아 보라고. 적합자.
그 말과 함께, 끈적한 어둠이 내 몸을 덮쳤다.
***
"······."
익숙하지 않은 천장.
침대에서 눈을 뜬 순간 보인 풍경이었다.
"여긴······."
어디지?
나는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돈되지 않은 방.
내가 있던 방은 난장판이었고, 거울은 깨져있었으며, 곳곳에 피가 묻어있었다.
그러고 보니, 손이 꽤 아픈 것 같은데······.
"아."
아픈 게 맞구나.
멀뚱멀뚱 쳐다본 내 손가락은, 피로 범벅이 되어있었고, 말라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네.
난 뭔가를 안치는데······?
멍하니 손을 바라보다,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엄청나게 박혀 있던 것.
원래 내 손은, 이러지 않았는데?
평범한 회사원에 불과했던 내 손이 이렇게 굳은살이 생길 리가 없지 않은가.
딱히 운동을 한 것도 아닌데.
"······잠깐. 손이, 뭔가 작지 않아?"
원래 내 손보다, 작은 듯한 손.
굳은살이 박혀있는 손.
최소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은 바로 눈치챘다.
나는 불안함에, 깨져있는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바닥에는 깨진 거울의 파편이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혹시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거울을 들여다봤다.
"······이게 뭐야."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은, 내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아닌······ 이곳에서 눈을 뜨기 전 읽었던 소설.
그러니까, 곧 단명할 운명인 주인공의 동생이 되었다.
"······젠장."
담배를 피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안타깝게도, 담배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