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자백한다고 봐도 되겠어?
조회 : 930 추천 : 0 글자수 : 5,668 자 2022-12-12
# 26화. 자백한다고 봐도 되겠어?
김선위는 멍하니 소총을 들고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조그만 남자를 바라봤다. 군복에 베레모를 쓴 그 군인은 키가 손바닥보다 작았다. 과장하자면 엄지만 했다. 이를테면 ‘엄지’ 인간이랄까. 그 작은 사람 형상은 실제 인간과 별 차이를 못 느낄 정도로 정교했다. 팔다리를 움직이는 데에도 조금의 삐걱거림이 없었다.
“……저기, 누나. 이거, 아니 이 분 만져 봐도 돼요?”
뉘앙스가 조금 이상하게 들리긴 했지만 착각이었다.
“……얼마든지요.”
김선위는 검지를 조심스럽게 군인의 안면으로 옮겼다. 그림구현의 주체인 백민이 용인했기 때문에, 그 군인은 김선위에게 적대감을 표현하지 않고 얌전히 만지작거림을 견뎠다. 시커먼 남자애에게 만져지는 느낌이 불쾌한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고개를 뒤로 젖히긴 했어도. 만약 김선위가 아니라 그녀의 적이 건드렸다면, 군인 복장을 한 그 남자가 든 소총에서 총알이 튀어나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갓 성인이 된 소년은 엄지 인간의 머리도 쓰다듬어보고 볼도 찔러봤다. 축소된 크기이므로 확신할 순 없지만, 피부의 감촉은 비슷했다. 다만.
“……따듯하진 않네요.”
“죄송합니다. 거기까진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백민은 그림 구현된 군인을 사라지게 하며 정중하게 사과했다. 각성한 지 얼마 안 된 초보 능력자인 그녀는 어디까지가 자신의 능력으로 가능한 범위인지 가늠하지도 못했다. 기대에 부풀었던 김선위는 낙담했으나 표시를 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래 봤자 사회생활도 못 해본 애송이. 여기 있는 어른들은 소년의 심정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유오연이 중재하듯이 끼어들었다.
“김선위, 바로 실망하기엔 이르지 않니? 아저씨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했잖아. 시간만 주면 이 아가씨 실력을 일취월장으로 늘려줄 수 있어. 그게 아니라도 걱정은 붙들어 매. 사람 체온과 비슷한 소재를 쓰거나 혹은 현대 기술력으로 커버 가능한 수준이니까.”
“아저씨…….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금세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더니 기어이 흘러내렸다. 외로이 남은 소년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유오연 팀장과 입을 닫아버린 백민 대신 도은강이 대표로 감사를 받았다.
“감사는 넣어둬. 우리 업무니까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의뢰를 마주하는 열성적인 태도는 당연하지 않았다. 그러나 보통의 공감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마음이었다. 과한 인사치레는 오히려 호의를 민망하게 했다.
“김선위. ‘진짜’와 다름없는 가족들을 만나고 싶지? 그러려면 정보가 중요해. 우선은 가족들이 나온 사진. 일치율이 올라갈 테니까 크기가 크고 화질이 선명할수록 좋아. 동영상이 있다면 더더욱 좋고.”
“사진은 아직, 거실에 걸려있어요. 동생이 어렸을 때 찍은 동영상도 있긴 해요. 집에…….”
어떤 서랍에 들어있는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감옥에 갇혀있는 신세라 직접 집에 가서 가져올 방법이 없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건 우리가 가서 찾아보도록 하지. 그 외에 사소한 거라도 떠오르는 대로 말해봐. 걸음걸이는 어떤지, 목소리는 어떤지, 말투는 어떤지. 특이한 습관이나 좋아하는 색, 취미……. 뭐라도 좋아.”
“전부, 전부 말씀드릴게요! 그럼 하루 동안 우리 아빠, 엄마, 윤위 얼굴 보면서 지낼 수 있는 거죠? 그런 거죠!”
가능성을 본 김선위는 적극적으로 매달렸다.
“……사실, 문제가 하나 있어. 아무리 훈련을 해도, 온종일 능력을 유지하긴 벅차다는 거. 너도 능력자니까 잘 알 거야.”
“……네.”
능력자들의 이능 사용시간은 제한되어 있었다. 그 시간은 타고난 이능의 크기에 좌우되는 경향이 있었다. 제어력을 높여 낭비되는 이능을 갈무리하면 사용시간이 늘기도 한다. 그래도 획기적으로 시간을 늘리진 못했다. 이능 크기가 작든 크든 한계는 누구에게나 있었다.
백민도 이미 배운 내용이지만, 최대한 긴 시간 동안 가족과 함께할 수 있게 돕고 싶었다. 이번 기회에 이능 훈련을 받고 제어력을 높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능사건전담반 델타 팀원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무엇보다 낮은 확률을 이겨내고 각성 능력자가 된 이유를 드디어 발견한 것 같았다. 사명감이 샘솟았다.
“약속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누나……. 고맙습니다. 무리는 하지 마세요. 저 마지막으로 인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꽉 껴안은 채 온기를 나누고 싶다. 목소리를 듣고 싶고, 마주 보며 따뜻한 밥 한 끼 먹고 싶다. 하지만 그냥 얼굴을 맞대고 미소 짓는 것만으로도,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을 기회를 얻은 것만으로도 설렜다. 기뻤다. 영혼이 없는 인형이라 해도, 그 시간이 짧더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능반 소속 능력자들은 할 만큼 했다. 모두가 코웃음 치며 넘겼던 소원을 이루어주려는 시도라도 해주지 않았던가.
그리고 아무리 긴 시간이 주어진다 해도 ‘영원’이 아니라면 어차피 만족할 수는 없었다. 헤어짐은 아쉬움을 남길 수밖에 없으니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백민은 자신을 걱정해주는 소년에게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겨우 두 살 차이지만 동생들을 떠올리게 하는 기특한 녀석이었다.
촉촉해진 눈동자를 한 김선위는 가족들의 여러 가지 신체적 특징이나 습관, 특이사항 등을 하나하나 꺼내놓기 시작했다. 유오연은 의자에 앉아 소년이 말하는 내용을 꼼꼼하게 받아 적었다. 김선위는 목소리를 오래 이어나가지 못했다. 평범한 남자 중학생이라면 가족들 취향이나 버릇을 자세히 모르는 게 일반적이고, 그 사고로부터 5년이 흘렀다. 기억은 이미 흐려질 대로 흐려져 있었다.
“……기억이 잘 안 나요.”
소년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김선위는 그토록 그리워한 가족들의 기억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말았다.
유오연은 김선위의 옆으로 다가가 위로하듯 어깨를 꽉 잡았다. 그의 존재감이 느껴지도록, 슬픔에 빠지지 않도록 온기를 전했다. 소년은 울음을 목 안쪽으로 삼켰다. 눈으로 열기가 울컥 올라왔지만 덤덤한 척 가장했다.
“……괜찮아요. 예상은 했어요. 점점 잊을 거라고……. 생각보다 빠르긴 했지만요.”
조용히 앉아있던 도은강은 묘한 감상에 빠져있었다. 면회실에 들어오기 전부터 기시감을 느낀 이유가 있었다. 김선위는 동생 도희강을 잃었던 자신과 비슷한 입장이었다. 가족을 잃은 상황은 달랐지만 둘 다 마음속 상처를 내버려 뒀다. 방치했다. 김선위는 이룰 수 없는 꿈에 집착하는 쪽으로. 자신은 일로 도피하는 쪽으로.
‘이 녀석은 이번 의뢰가 끝나면 과거를 이겨낼 수 있겠지. 심지가 단단해 보이니…….’
반면에 자신은 과거의 사건을 언제쯤 이겨낼 수 있을지 모른다. 그건 아마도 범인을 잡은 후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도은강은 스스로가 한심했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10살이나 어린 녀석도 극복하는데 그보다도 못하다니. 한편으론 조급함도 들었다. 그자를 하루빨리 찾아서 10년 넘게 끌어온 그 복수에 종지부를 찍고 싶었다.
‘그게 맘대로 됐다면 지금 이러고 있지도 않겠지만 말이지…….’
도은강이 씁쓸함을 삼키든 말든, 이야기는 계속 진행됐다. 백민은 조용히 경청하고 있었고 유오연은 김선위와 유대를 쌓아갔다. 친분을 다져서 나쁠 일은 없었다. 김선위가 설사 진범으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가족들을 만나는 날은 일주일 후야.”
유오연은 디데이를 정했다. 예상보다 이른 날짜에 김선위가 의아해했다.
“일주일이면 돼요?”
“시간이 촉박하겠지. 이능 실력도 턱없이 모자랄 테고. 더 기다려주고 싶지만, 방법이 없다. 우리도 다른 의뢰를 수행해야 하고, 알파 팀에서도 일주일 이상 지체할 순 없다고 하니까. 진범이 다른 공모자가 도주할 위험이 있어서 사실은 일주일도 길다고 하던데…….”
일주일도 감마팀 팀장인 유오연이 한 시간여의 실랑이 끝에 얻어낸 성과였다.
“아. 제가 진술해야 하는 거였죠. 지금이라도 당장 할게요.”
하늘나라에 있을 가족을 만나고 싶다고 요구할 수 있었던 이유. 그건 능력자 범죄를 자발적으로 진술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요구조건은 이행될 가능성이 높았다. 희망을 맛본 김선위는 이제 진술할 의지가 있었다.
“그래 준다면 조금 여유가 생기지.”
유오연은 김선위의 짧은 머리를 헝클이더니 휴대폰을 들고 복도로 나갔다. 바로 알파 팀 측에 연락을 취하기 위해서였다. 정식으로 조사를 하려면 알파 팀원들이 와야 했으므로.
셋만 남은 면회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김선위는 백민과 도은강의 눈치를 보느라 쭈뼛거렸다.
“김선위. 편하게 선위라고 불러도 되겠지. 앞으로 매일같이 볼 사이라는데.”
정적을 흩트린 사람은 도은강이었다. 그는 이번 의뢰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맡지 않았다. 이능 종류의 문제라서 백민이 어엿한 한 사람의 몫을 할 수 있다면 뒤로 빠져서 지켜보기만 해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백민은 신입. 자율적으로 일을 진행하기엔 경험이 일천했다. 그는 백민이 주도적으로 협업을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보조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네. 아저씨.”
김선위가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 도은강은 아저씨라는 호칭을 듣고 휘청거릴 뻔했다.
‘10살 차이면 형이라고 불리기도 민망하지.’
‘아저씨’라는 단어에 민감해지는 걸 보면 나이가 들긴 한 모양이었다. 김선위와 백민이 두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는 점은 애써 머리에서 지워버렸다.
“협조적인 태도는 바람직하다고 본다. 우리에게나 너에게나.”
김선위의 협조는 알파, 감마, 델타 팀의 협업을 순조롭게 풀어나가는 열쇠였다. 김선위 본인에게도 초능력자들의 좁은 커뮤니티에서 우호적인 평판을 다질 토대가 될 터였다.
능력자들이 소수인 만큼 소문도 빠르다는 걸, 범죄 팸에 엮였던 김선위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파 팀에게 떼를 쓴 건 자포자기했기 때문이었다. 삶에 대한 의욕을 잃고 모두 놓아버리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부린 억지가 이루어질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알아요. 제가 아는 모든 정보를 제공할게요. 제가 도움을 받은 값은 확실히 갚을게요.”
첫인상과 달리 김선위는 바른 성정을 지닌 녀석이었다. 가족들의 사고 이후 5년이나 지나서 방황한 데에는 그의 인내심과 올곧음이 반영된 덕분일 것이다. 다른 아이들이었다면 바로 불량청소년이 되어 탈선하고도 남았을 테니까.
“어쩐지 도움을 준 사람이랑 그 감사를 듣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되는 기분인데. 뭐 상관없나.”
도은강이 구시렁거리다가 의자에 등을 기대면서 계획을 세웠다. 꼼짝없이 백민의 이능을 개발해야만 하는 처지니 무엇이라도 시도해봐야 했다. 전대 환상구현 능력자인 연금술사에 대한 기록도 다시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는데 김선위가 조심스럽게 의중을 물었다.
“……아저씨, 좋은 꿈이라도 꾸게 해드릴까요?”
농담 섞인 투정이었다 해도, 보상을 엉뚱한 사람이 받는다는 소리가 영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좋은 꿈이라니?
“뭐?”
“이능 써드린다고요. 밖으로 나간 아저씨한테 듣지 않았어요? 제가 꿈에 간섭하는 이능을 가졌다고.”
도은강도, 조용히 듣기만 하고 있던 백민도 김선위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아채고 표정이 심각해졌다. 꿈에 간섭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김선위가 범죄와 연관됐다는 뜻. 그리고 마인드 리더의 이능을 교란하는 건 다른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마인드 리더를 속였다고, 자백한다고 봐도 되겠어? 김선위.”
도은강이 소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김선위는 멍하니 소총을 들고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조그만 남자를 바라봤다. 군복에 베레모를 쓴 그 군인은 키가 손바닥보다 작았다. 과장하자면 엄지만 했다. 이를테면 ‘엄지’ 인간이랄까. 그 작은 사람 형상은 실제 인간과 별 차이를 못 느낄 정도로 정교했다. 팔다리를 움직이는 데에도 조금의 삐걱거림이 없었다.
“……저기, 누나. 이거, 아니 이 분 만져 봐도 돼요?”
뉘앙스가 조금 이상하게 들리긴 했지만 착각이었다.
“……얼마든지요.”
김선위는 검지를 조심스럽게 군인의 안면으로 옮겼다. 그림구현의 주체인 백민이 용인했기 때문에, 그 군인은 김선위에게 적대감을 표현하지 않고 얌전히 만지작거림을 견뎠다. 시커먼 남자애에게 만져지는 느낌이 불쾌한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고개를 뒤로 젖히긴 했어도. 만약 김선위가 아니라 그녀의 적이 건드렸다면, 군인 복장을 한 그 남자가 든 소총에서 총알이 튀어나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갓 성인이 된 소년은 엄지 인간의 머리도 쓰다듬어보고 볼도 찔러봤다. 축소된 크기이므로 확신할 순 없지만, 피부의 감촉은 비슷했다. 다만.
“……따듯하진 않네요.”
“죄송합니다. 거기까진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백민은 그림 구현된 군인을 사라지게 하며 정중하게 사과했다. 각성한 지 얼마 안 된 초보 능력자인 그녀는 어디까지가 자신의 능력으로 가능한 범위인지 가늠하지도 못했다. 기대에 부풀었던 김선위는 낙담했으나 표시를 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래 봤자 사회생활도 못 해본 애송이. 여기 있는 어른들은 소년의 심정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유오연이 중재하듯이 끼어들었다.
“김선위, 바로 실망하기엔 이르지 않니? 아저씨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했잖아. 시간만 주면 이 아가씨 실력을 일취월장으로 늘려줄 수 있어. 그게 아니라도 걱정은 붙들어 매. 사람 체온과 비슷한 소재를 쓰거나 혹은 현대 기술력으로 커버 가능한 수준이니까.”
“아저씨…….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금세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더니 기어이 흘러내렸다. 외로이 남은 소년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유오연 팀장과 입을 닫아버린 백민 대신 도은강이 대표로 감사를 받았다.
“감사는 넣어둬. 우리 업무니까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의뢰를 마주하는 열성적인 태도는 당연하지 않았다. 그러나 보통의 공감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마음이었다. 과한 인사치레는 오히려 호의를 민망하게 했다.
“김선위. ‘진짜’와 다름없는 가족들을 만나고 싶지? 그러려면 정보가 중요해. 우선은 가족들이 나온 사진. 일치율이 올라갈 테니까 크기가 크고 화질이 선명할수록 좋아. 동영상이 있다면 더더욱 좋고.”
“사진은 아직, 거실에 걸려있어요. 동생이 어렸을 때 찍은 동영상도 있긴 해요. 집에…….”
어떤 서랍에 들어있는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감옥에 갇혀있는 신세라 직접 집에 가서 가져올 방법이 없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건 우리가 가서 찾아보도록 하지. 그 외에 사소한 거라도 떠오르는 대로 말해봐. 걸음걸이는 어떤지, 목소리는 어떤지, 말투는 어떤지. 특이한 습관이나 좋아하는 색, 취미……. 뭐라도 좋아.”
“전부, 전부 말씀드릴게요! 그럼 하루 동안 우리 아빠, 엄마, 윤위 얼굴 보면서 지낼 수 있는 거죠? 그런 거죠!”
가능성을 본 김선위는 적극적으로 매달렸다.
“……사실, 문제가 하나 있어. 아무리 훈련을 해도, 온종일 능력을 유지하긴 벅차다는 거. 너도 능력자니까 잘 알 거야.”
“……네.”
능력자들의 이능 사용시간은 제한되어 있었다. 그 시간은 타고난 이능의 크기에 좌우되는 경향이 있었다. 제어력을 높여 낭비되는 이능을 갈무리하면 사용시간이 늘기도 한다. 그래도 획기적으로 시간을 늘리진 못했다. 이능 크기가 작든 크든 한계는 누구에게나 있었다.
백민도 이미 배운 내용이지만, 최대한 긴 시간 동안 가족과 함께할 수 있게 돕고 싶었다. 이번 기회에 이능 훈련을 받고 제어력을 높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능사건전담반 델타 팀원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무엇보다 낮은 확률을 이겨내고 각성 능력자가 된 이유를 드디어 발견한 것 같았다. 사명감이 샘솟았다.
“약속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누나……. 고맙습니다. 무리는 하지 마세요. 저 마지막으로 인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꽉 껴안은 채 온기를 나누고 싶다. 목소리를 듣고 싶고, 마주 보며 따뜻한 밥 한 끼 먹고 싶다. 하지만 그냥 얼굴을 맞대고 미소 짓는 것만으로도,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을 기회를 얻은 것만으로도 설렜다. 기뻤다. 영혼이 없는 인형이라 해도, 그 시간이 짧더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능반 소속 능력자들은 할 만큼 했다. 모두가 코웃음 치며 넘겼던 소원을 이루어주려는 시도라도 해주지 않았던가.
그리고 아무리 긴 시간이 주어진다 해도 ‘영원’이 아니라면 어차피 만족할 수는 없었다. 헤어짐은 아쉬움을 남길 수밖에 없으니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백민은 자신을 걱정해주는 소년에게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겨우 두 살 차이지만 동생들을 떠올리게 하는 기특한 녀석이었다.
촉촉해진 눈동자를 한 김선위는 가족들의 여러 가지 신체적 특징이나 습관, 특이사항 등을 하나하나 꺼내놓기 시작했다. 유오연은 의자에 앉아 소년이 말하는 내용을 꼼꼼하게 받아 적었다. 김선위는 목소리를 오래 이어나가지 못했다. 평범한 남자 중학생이라면 가족들 취향이나 버릇을 자세히 모르는 게 일반적이고, 그 사고로부터 5년이 흘렀다. 기억은 이미 흐려질 대로 흐려져 있었다.
“……기억이 잘 안 나요.”
소년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김선위는 그토록 그리워한 가족들의 기억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말았다.
유오연은 김선위의 옆으로 다가가 위로하듯 어깨를 꽉 잡았다. 그의 존재감이 느껴지도록, 슬픔에 빠지지 않도록 온기를 전했다. 소년은 울음을 목 안쪽으로 삼켰다. 눈으로 열기가 울컥 올라왔지만 덤덤한 척 가장했다.
“……괜찮아요. 예상은 했어요. 점점 잊을 거라고……. 생각보다 빠르긴 했지만요.”
조용히 앉아있던 도은강은 묘한 감상에 빠져있었다. 면회실에 들어오기 전부터 기시감을 느낀 이유가 있었다. 김선위는 동생 도희강을 잃었던 자신과 비슷한 입장이었다. 가족을 잃은 상황은 달랐지만 둘 다 마음속 상처를 내버려 뒀다. 방치했다. 김선위는 이룰 수 없는 꿈에 집착하는 쪽으로. 자신은 일로 도피하는 쪽으로.
‘이 녀석은 이번 의뢰가 끝나면 과거를 이겨낼 수 있겠지. 심지가 단단해 보이니…….’
반면에 자신은 과거의 사건을 언제쯤 이겨낼 수 있을지 모른다. 그건 아마도 범인을 잡은 후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도은강은 스스로가 한심했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10살이나 어린 녀석도 극복하는데 그보다도 못하다니. 한편으론 조급함도 들었다. 그자를 하루빨리 찾아서 10년 넘게 끌어온 그 복수에 종지부를 찍고 싶었다.
‘그게 맘대로 됐다면 지금 이러고 있지도 않겠지만 말이지…….’
도은강이 씁쓸함을 삼키든 말든, 이야기는 계속 진행됐다. 백민은 조용히 경청하고 있었고 유오연은 김선위와 유대를 쌓아갔다. 친분을 다져서 나쁠 일은 없었다. 김선위가 설사 진범으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가족들을 만나는 날은 일주일 후야.”
유오연은 디데이를 정했다. 예상보다 이른 날짜에 김선위가 의아해했다.
“일주일이면 돼요?”
“시간이 촉박하겠지. 이능 실력도 턱없이 모자랄 테고. 더 기다려주고 싶지만, 방법이 없다. 우리도 다른 의뢰를 수행해야 하고, 알파 팀에서도 일주일 이상 지체할 순 없다고 하니까. 진범이 다른 공모자가 도주할 위험이 있어서 사실은 일주일도 길다고 하던데…….”
일주일도 감마팀 팀장인 유오연이 한 시간여의 실랑이 끝에 얻어낸 성과였다.
“아. 제가 진술해야 하는 거였죠. 지금이라도 당장 할게요.”
하늘나라에 있을 가족을 만나고 싶다고 요구할 수 있었던 이유. 그건 능력자 범죄를 자발적으로 진술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요구조건은 이행될 가능성이 높았다. 희망을 맛본 김선위는 이제 진술할 의지가 있었다.
“그래 준다면 조금 여유가 생기지.”
유오연은 김선위의 짧은 머리를 헝클이더니 휴대폰을 들고 복도로 나갔다. 바로 알파 팀 측에 연락을 취하기 위해서였다. 정식으로 조사를 하려면 알파 팀원들이 와야 했으므로.
셋만 남은 면회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김선위는 백민과 도은강의 눈치를 보느라 쭈뼛거렸다.
“김선위. 편하게 선위라고 불러도 되겠지. 앞으로 매일같이 볼 사이라는데.”
정적을 흩트린 사람은 도은강이었다. 그는 이번 의뢰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맡지 않았다. 이능 종류의 문제라서 백민이 어엿한 한 사람의 몫을 할 수 있다면 뒤로 빠져서 지켜보기만 해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백민은 신입. 자율적으로 일을 진행하기엔 경험이 일천했다. 그는 백민이 주도적으로 협업을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보조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네. 아저씨.”
김선위가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 도은강은 아저씨라는 호칭을 듣고 휘청거릴 뻔했다.
‘10살 차이면 형이라고 불리기도 민망하지.’
‘아저씨’라는 단어에 민감해지는 걸 보면 나이가 들긴 한 모양이었다. 김선위와 백민이 두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는 점은 애써 머리에서 지워버렸다.
“협조적인 태도는 바람직하다고 본다. 우리에게나 너에게나.”
김선위의 협조는 알파, 감마, 델타 팀의 협업을 순조롭게 풀어나가는 열쇠였다. 김선위 본인에게도 초능력자들의 좁은 커뮤니티에서 우호적인 평판을 다질 토대가 될 터였다.
능력자들이 소수인 만큼 소문도 빠르다는 걸, 범죄 팸에 엮였던 김선위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파 팀에게 떼를 쓴 건 자포자기했기 때문이었다. 삶에 대한 의욕을 잃고 모두 놓아버리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부린 억지가 이루어질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알아요. 제가 아는 모든 정보를 제공할게요. 제가 도움을 받은 값은 확실히 갚을게요.”
첫인상과 달리 김선위는 바른 성정을 지닌 녀석이었다. 가족들의 사고 이후 5년이나 지나서 방황한 데에는 그의 인내심과 올곧음이 반영된 덕분일 것이다. 다른 아이들이었다면 바로 불량청소년이 되어 탈선하고도 남았을 테니까.
“어쩐지 도움을 준 사람이랑 그 감사를 듣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되는 기분인데. 뭐 상관없나.”
도은강이 구시렁거리다가 의자에 등을 기대면서 계획을 세웠다. 꼼짝없이 백민의 이능을 개발해야만 하는 처지니 무엇이라도 시도해봐야 했다. 전대 환상구현 능력자인 연금술사에 대한 기록도 다시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는데 김선위가 조심스럽게 의중을 물었다.
“……아저씨, 좋은 꿈이라도 꾸게 해드릴까요?”
농담 섞인 투정이었다 해도, 보상을 엉뚱한 사람이 받는다는 소리가 영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좋은 꿈이라니?
“뭐?”
“이능 써드린다고요. 밖으로 나간 아저씨한테 듣지 않았어요? 제가 꿈에 간섭하는 이능을 가졌다고.”
도은강도, 조용히 듣기만 하고 있던 백민도 김선위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아채고 표정이 심각해졌다. 꿈에 간섭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김선위가 범죄와 연관됐다는 뜻. 그리고 마인드 리더의 이능을 교란하는 건 다른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마인드 리더를 속였다고, 자백한다고 봐도 되겠어? 김선위.”
도은강이 소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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