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눈이 짓무르도록
조회 : 931 추천 : 0 글자수 : 6,385 자 2022-12-13
# 27화. 눈이 짓무르도록
도은강은 미간에 주름을 새기고 면회실 주위를 둘러봤다. 육안으로는 아무런 장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전부 기록되어 자료로 남는다.
“여기서 하는 말은 전부 녹취되고 있으니까 진지하게 대답해라.”
도은강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진지하게 경고했다.
“알아요. 그래도 괜찮아요. 왜냐면, 전 진실만 말했으니까요. 마인드 리더를 속인 적 없어요.”
“그렇다면…….”
김선위와 똑같은 능력자가 또 한 명 있거나 타인이 가진 이능을 자신의 의지대로 빼앗아 쓰는 능력자가 있다는 뜻이었다.
“제가 소속되어 있던 팸엔 이능 복사 능력자가 있었어요. 이능 증폭 능력자도 있었고요.”
도은강은 숨이 턱턱 막혔다. 이능력 범죄자와 직접 싸우는 팀은 알파 팀이지만, 델타 팀을 이끄는 그도 김선위의 이 발언이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아는 탓이었다. 특히 이능 복사 능력자는 정말 희귀했다. 희귀한 만큼 테러리스트들 손아귀에 들어가면 위험도가 몇 곱절씩 올라가곤 했다.
“예삿일로 끝나지 않겠는데……. 우리가 모든 능력자들을 관리한다는 건 사실상 역부족이지만, 우리 쪽에도 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이 어느 정도는 있다.”
도은강이 신경질적으로 손가락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위험성이 큰 이능을 가진 능력자가 각성한 경우, 이능반 각 팀에 통보가 오는 게 보통이었다. 실제로 이능각성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라 모르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이능을 복사할 수 있는 능력자가 각성했다는 건 금시초문.
“팀장님, 잠재 능력자들의 가족관계를 조사한다고 해도 놓치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잖아요.”
협회의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는 각성 능력자가 종종 생겼다. 고아라던가,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아버지를 알기 힘든 경우, 서류상의 아버지와 정자를 제공한 아버지가 다른 경우 등, 협회의 조사에서 누락되는 케이스가 가끔 있었다.
게다가 협회에 소속된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까지 하니, 중간에서 각성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해도 누구 하나의 실수 탓으로 떠넘길 수 없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건 안다. 그래도 속이 쓰리군.”
알파 팀이 바로 그 능력자들을 진압해 데려오지 못하면, 김선위가 말한 그 패밀리는 점점 규모를 늘려서 어엿한 테러 조직으로 거듭날 터다. 지금까지의 능력자 역사가 증명하듯이. 그만큼 이능조작계열 능력자는 강력한 태풍의 핵이었다.
“믿어보는 수밖에 없겠지. 혹시라도 그 능력자가 잡히지 않는다면, 각성한 그들을 협회 측으로 먼저 포섭하지 못한 건 뼈아픈 실수가 될 거다. 각성 후에 뒤늦게라도 우리 쪽 인물을 먼저 만났어야 했는데…….”
길고 긴 숨이 터졌다. 도은강은 델타 팀이 동원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알파 팀 단독으로 해결하기엔 너무 일이 커졌으므로. 할 말을 찾지 못한 백민이 입을 닫자 면회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무거워진 공기에 짓눌리던 김선위는 머뭇거리다가 말을 걸었다.
“……아저씨. 그 초능력자 말이에요. 그렇게 대단하고 그러지 않아요. 나이도 저보다 어리던데요. 능력 제어도 이리저리 튀고…….”
“그렇게 어리다고? 둘 다?”
되묻는 도은강의 목소리에 기대가 섞여들었다.
“둘 다 어려요. 거기 있는 애들 전부 제 또래였으니까요. 가장 큰 형도 저보다 두 살인가 세 살인가 많고요. 애초부터 또래 능력자들이 만든 모임이었으니까요.”
나이가 어리다는 건 긍정적인 신호였다. 나이가 어리고 이능 제어력이 형편없다는 걸 보면 각성한 지 얼마 안 됐을 가능성이 컸다.
“각성한 지 얼마 안 됐지?”
확인을 위해 던진 질문에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태어나면서부터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잠재 능력자가 각성한다 해도, 각성 초기에는 능력 운영이 서투르다. 그 상태라면 베테랑 능력자들이 요리하기 쉬운 먹이나 다름없다.
“선위야. 중요한 정보 고맙다.”
이제 막막했던 마음이 사라졌다.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뭘요. 어차피 다 말씀드릴 거 조금 앞당겼을 뿐인데요.”
“그래도 고맙다. 인마.”
도은강은 커다란 손으로 김선위의 머리를 마구 문질렀다. 머리카락이 조금 더 길었더라면 전부 엉켜서 새 둥지가 생길 판이었다.
“백민.”
도은강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이름을 불러 주의를 끌었다.
“네. 팀장님.”
백민이 냉큼 대답하는 모습을 보고, 도은강은 머릿속에 세웠던 계획을 실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도은강 안에서 백민에 대한 평가는 꽤 괜찮았다. 성실하고 꼼꼼하며 상황대처능력이 빠르며 대인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그녀에겐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어도 사람들에게서 호감을 얻는 천연스러운 아우라가 있었다. 다른 팀원들이 입사했을 때와 비교하면 만점짜리 신입사원이었다. 믿을만한 파트너였다. 이능 발현에 필수적인 그 처참한 그림 실력만 제외하면.
“나는 이번 건에서 빠진다.”
단호한 어조였다. 도은강은 더 적극적으로 이번 일에 끼어들기로 결심했다.
“백민. 이번 건은 고운비랑 같이 맡도록.”
백민은 곧바로 이해했다. 김선위와 도은강 사이에 오간 대화와 현재의 조건을 고려했을 때, 도은강이 알파 팀의 업무에 힘을 보태는 쪽이 옳다. 훨씬 능률적이기도 하다. 도은강은 김선위의 가족을 재현하는 의뢰에서 특별한 역할을 하기 힘들었으므로. 경험이 적은 백민이 걱정된다면 다른 팀원을 붙여주면 될 일이었다.
“팀장님이 무슨 계획을 세우셨는지 짐작됩니다. 파트너 교체는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고운비 선배님, 괜찮을까요?”
외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이능만 따지자면, 기억조작 능력을 가진 고운비와 짝을 이루는 편이 효율적이리라. 하지만 고운비는 히키코모리. 가끔 본가에 다녀오는 경우를 빼면 사무실에 보물이라도 숨겨둔 듯 콕 박혀있었다. 고운비를 사무실 밖으로 꺼내는 일조차 쉽지 않은데 외근을 하며 백민을 적극적으로 돕기를 바라는 건 사치였다.
“밖에 나오면 정서불안 증세를 보이긴 하겠지만, 외출은 가능하긴 하다. 어떤 수를 써서든 의뢰를 보조하도록 할 테니까 그 문제에 신경 쓰지 마라. 백민 너는 네 능력을 개발하는 데만 전력을 기울이면 된다.”
업무처리능력 면에서 고운비는 도은강 다음가는 수완을 보인다. 그래 봬도 고운비는 작은 방에 콩 벌레처럼 웅크리고 있으면서도 능수능란하게 의뢰를 완수하는 능력자였다. 문밖으로 끌어내는 일은 도은강이 적당히 협상하면 된다. 끝내 그 방 안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원격으로라도 백민을 돕게 만들면 된다. 이미 몇 번의 전적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팀장님.”
백민이 대답하는데 통화를 마친 유오연이 안으로 들어섰다.
“알파 팀이 바로 온다는군요. 제가 없는 동안 이야기는 잘 됐습니까?”
“물론입니다. 알파 팀이 오면 기겁할 화제도 생겼고요.”
무테안경을 밀어 올리던 검지가 딱 멈췄다. 유오연은 도은강에서 백민, 김선위 순으로 시선을 옮기면서 얼굴을 살폈다.
그 시선을 받은 이들은 어쩐지 거미줄에 걸린 나비가 된 압박감을 느꼈다. 감마팀 팀장 유오연은 산전수전을 겪은 도은강에게도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자세히 얘기해보죠. 알파 팀이 오기 전까지 시간은 넉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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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마팀 외부 사무실을 찾아간 날로부터 2주. 그동안 백민은 바쁘게 움직였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감마팀 팀장과 함께 능력측정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 결과 ‘이능제어력’에 있어서는 발군의 발전을 보일 수 있었다.
도은강과 파트너가 되어 의뢰를 처리하러 다닐 때는 이능과 능력자에 대해 익숙해지기 위해 집중했다. 그것은 단독으로 의뢰를 수행하기 위한 연습이기도 했지만, 관점을 바꾸는 작업이었다. 능력자들의 존재조차 모른 채로 20년 넘게 살아왔기 때문에 능력자와 이능에 대해 거부감 없이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 과제였다. 능력자들을 만날 일이 빈번한 이능반 소속 직원에게는 꼭 필요했다.
대학교 수업과 병행하느라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도 했고, 도은강이 우선순위를 실전에 뒀기 때문에 백민은 아직 체계적으로 이능 조절에 배운 적이 없었다. 팀장 도은강 말에 따르면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요령을 습득한다고 했다. 닥치면 다 배우게 되어있다고.
그렇지만 유오연과 함께 한 개인 교습은 정말로 유익했다. 무작정 돌진해서 넘어지고 실수하면서 배우는 실전형 수업보단 유오연이 손수 만든 과외(?) 형 수업이 백민에겐 익숙했다.
게다가 유오연은 가르치는 재능이 탁월한 남자였다. 학원 강사가 됐더라면 분명 유명한 스타강사가 됐을 터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설명은 물론, 어떤 부분에서 막힐지 알고 시원스레 긁어주기도 했다.
그 덕분에 이능제어력이 일취월장한 백민은 반나절 정도는 거뜬히 구현체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크나큰 발전이었다. 2주 전 테스트에서는 3시간 정도 유지하고 기진맥진했으니 두 배가량 늘어난 셈이었다.
한편, 도은강은 알파 팀이 주도하는 특별 작전에 지원하여 범죄자들을 추적하는 중이었다. 얼마나 숨바꼭질을 잘하는지 이제야 꼬리를 간신히 잡았다고 들었다. 아마도 조만간에 김선위가 활동하던 팸 일원들을 잡아 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백민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만 충실하기로 했다.
‘이번 일은 나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될 거야.’
준비는 모두 마쳤다. 이제 능력을 뽐낼 순간이었다.
백민은 유오연과 같이 김선위를 데리고 한적한 곳에 있는 펜션으로 향했다. 작은 펜션을 하루 동안 통째로 빌려서 김선위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합의를 봤기 때문이다.
김선위는 감옥이 아니라 소규모 펜션에서 가족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우선은 정황상 김선위의 죄가 크지 않다고 판단됐다. 그리고 혐의가 완전히 풀리진 않았어도 협조적인 태도를 보인 점도 정상참작되었다. 그래서 초능력자 협회 측은 김선위를 가석방해주기로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김선위는 이능이 전부 쓸 수 없는 무력한 상태긴 해도 자유롭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백민 씨, 다른 델타 팀원은 어디서 만나기로 했습니까?”
“아, 펜션에서 먼저 대기하겠다고 했습니다. 펜션에 도착하면 미리 준비하고 있을 겁니다.”
도은강과 교체된 파트너인 고운비는 삼촌의 강요에 못 이겨 외근을 받아들였다. 다행히 백민이 유오연에게 배우고 있을 땐 외출할 일이 없었다. 한 번의 모험이라면 그녀도 그럭저럭 수용할만한 수준이었다.
펜션의 모습이 보이자 뒷좌석에 앉은 김선위가 안절부절못했다. 곧 가족을 본다는 생각에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내내 담담하더니. 이제야 제 나이 같네. 녀석.”
유오연이 웃음을 흘렸다. 나이에 상관없이, 미치도록 그리워한 이들과 만나는 것은 심장에 무리가 가는 일이겠지만, 귀여워 보이는 게 사실. 백민이 김선위와 처음 만난 날만 제외하면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더 그러했다.
“심호흡해. 하고 싶은 말을 미리 생각해둬도 좋고.”
“……아저씨, 심호흡은 해보겠는데요. 내 마음이 맘대로 되면 벌써 다 잊고 잘 먹고 잘살고 있을걸요.”
뚱한 표정으로 대꾸한 김선위는 순순히 심호흡을 몇 번 하더니 안 되겠는지 다리를 떨었다. 진짜 가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아도 저절로 몸이 긴장했다.
“그래. 그건 맞는 말이다.”
운전대를 잡은 유오연은 가는 입술 사이로 웃음을 흘리더니 점점 속도를 줄였다. 목적지에 다다른 것이다.
“유오연 팀장님, 저 먼저 가서 준비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집중할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아서요.”
“그럼 우리는 이 주변 한 바퀴 돌아보고 가겠습니다. 백민 씨, 20분 정도면 되겠죠?”
백민은 충분하다고 대답한 후에 가볍게 인사를 하고 통나무로 된 작은 펜션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유오연은 김선위의 손목을 덥석 잡고서 푸릇푸릇한 나무가 우거진 산책로로 데려갔다. 이제는 손에 땀이 차는지, 녀석은 손바닥을 바지에 쓱쓱 문질렀다.
반응을 숨기지 못하는 소년을 보며 유오연도 덩달아 기대했다. 김선위가 펜션 안으로 들어가 꿈에 그리던 가족을 만나는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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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 후. 유오연은 펜션 입구부터 현관까지 이어지는 자갈길을 따라 걸었다. 김선위는 한걸음 뒤에서 그를 따라 종종거리며 따라왔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얼굴에 담고서.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머릿속에서 고민하다 뒤죽박죽이 된, 그런 얼굴이었다.
유오연은 한 점의 망설임 없이 현관문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아저씨! 아저, 아저씨! 잠깐만요! 나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요!”
“여태 뭐하고? 멍하니 있어서 마음이라도 가라앉히나 했더니. 이건 뭐 고백 직전의 사춘기 소년이 따로 없네.”
문을 반쯤 열다 멈춘 자세로 유오연이 웃음을 실실 흘렸다. 처음에는 ‘얼마나 간절했으면.’하고 생각했지만, 반응이 워낙 극적이다 보니 이제는 우습기까지 했다.
“아무리 시간을 줘도 마음의 준비 끝나기는 글렀다. 그냥 들어가자. 이 녀석아.”
유오연은 현관문을 활짝 열었다.
김선위는 앞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거실 바닥에는 그림자 세 개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눈이 짓무르도록 보고 싶었던 가족들의 그림자가 세 개가.
도은강은 미간에 주름을 새기고 면회실 주위를 둘러봤다. 육안으로는 아무런 장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전부 기록되어 자료로 남는다.
“여기서 하는 말은 전부 녹취되고 있으니까 진지하게 대답해라.”
도은강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진지하게 경고했다.
“알아요. 그래도 괜찮아요. 왜냐면, 전 진실만 말했으니까요. 마인드 리더를 속인 적 없어요.”
“그렇다면…….”
김선위와 똑같은 능력자가 또 한 명 있거나 타인이 가진 이능을 자신의 의지대로 빼앗아 쓰는 능력자가 있다는 뜻이었다.
“제가 소속되어 있던 팸엔 이능 복사 능력자가 있었어요. 이능 증폭 능력자도 있었고요.”
도은강은 숨이 턱턱 막혔다. 이능력 범죄자와 직접 싸우는 팀은 알파 팀이지만, 델타 팀을 이끄는 그도 김선위의 이 발언이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아는 탓이었다. 특히 이능 복사 능력자는 정말 희귀했다. 희귀한 만큼 테러리스트들 손아귀에 들어가면 위험도가 몇 곱절씩 올라가곤 했다.
“예삿일로 끝나지 않겠는데……. 우리가 모든 능력자들을 관리한다는 건 사실상 역부족이지만, 우리 쪽에도 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이 어느 정도는 있다.”
도은강이 신경질적으로 손가락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위험성이 큰 이능을 가진 능력자가 각성한 경우, 이능반 각 팀에 통보가 오는 게 보통이었다. 실제로 이능각성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라 모르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이능을 복사할 수 있는 능력자가 각성했다는 건 금시초문.
“팀장님, 잠재 능력자들의 가족관계를 조사한다고 해도 놓치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잖아요.”
협회의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는 각성 능력자가 종종 생겼다. 고아라던가,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아버지를 알기 힘든 경우, 서류상의 아버지와 정자를 제공한 아버지가 다른 경우 등, 협회의 조사에서 누락되는 케이스가 가끔 있었다.
게다가 협회에 소속된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까지 하니, 중간에서 각성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해도 누구 하나의 실수 탓으로 떠넘길 수 없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건 안다. 그래도 속이 쓰리군.”
알파 팀이 바로 그 능력자들을 진압해 데려오지 못하면, 김선위가 말한 그 패밀리는 점점 규모를 늘려서 어엿한 테러 조직으로 거듭날 터다. 지금까지의 능력자 역사가 증명하듯이. 그만큼 이능조작계열 능력자는 강력한 태풍의 핵이었다.
“믿어보는 수밖에 없겠지. 혹시라도 그 능력자가 잡히지 않는다면, 각성한 그들을 협회 측으로 먼저 포섭하지 못한 건 뼈아픈 실수가 될 거다. 각성 후에 뒤늦게라도 우리 쪽 인물을 먼저 만났어야 했는데…….”
길고 긴 숨이 터졌다. 도은강은 델타 팀이 동원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알파 팀 단독으로 해결하기엔 너무 일이 커졌으므로. 할 말을 찾지 못한 백민이 입을 닫자 면회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무거워진 공기에 짓눌리던 김선위는 머뭇거리다가 말을 걸었다.
“……아저씨. 그 초능력자 말이에요. 그렇게 대단하고 그러지 않아요. 나이도 저보다 어리던데요. 능력 제어도 이리저리 튀고…….”
“그렇게 어리다고? 둘 다?”
되묻는 도은강의 목소리에 기대가 섞여들었다.
“둘 다 어려요. 거기 있는 애들 전부 제 또래였으니까요. 가장 큰 형도 저보다 두 살인가 세 살인가 많고요. 애초부터 또래 능력자들이 만든 모임이었으니까요.”
나이가 어리다는 건 긍정적인 신호였다. 나이가 어리고 이능 제어력이 형편없다는 걸 보면 각성한 지 얼마 안 됐을 가능성이 컸다.
“각성한 지 얼마 안 됐지?”
확인을 위해 던진 질문에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태어나면서부터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잠재 능력자가 각성한다 해도, 각성 초기에는 능력 운영이 서투르다. 그 상태라면 베테랑 능력자들이 요리하기 쉬운 먹이나 다름없다.
“선위야. 중요한 정보 고맙다.”
이제 막막했던 마음이 사라졌다.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뭘요. 어차피 다 말씀드릴 거 조금 앞당겼을 뿐인데요.”
“그래도 고맙다. 인마.”
도은강은 커다란 손으로 김선위의 머리를 마구 문질렀다. 머리카락이 조금 더 길었더라면 전부 엉켜서 새 둥지가 생길 판이었다.
“백민.”
도은강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이름을 불러 주의를 끌었다.
“네. 팀장님.”
백민이 냉큼 대답하는 모습을 보고, 도은강은 머릿속에 세웠던 계획을 실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도은강 안에서 백민에 대한 평가는 꽤 괜찮았다. 성실하고 꼼꼼하며 상황대처능력이 빠르며 대인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그녀에겐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어도 사람들에게서 호감을 얻는 천연스러운 아우라가 있었다. 다른 팀원들이 입사했을 때와 비교하면 만점짜리 신입사원이었다. 믿을만한 파트너였다. 이능 발현에 필수적인 그 처참한 그림 실력만 제외하면.
“나는 이번 건에서 빠진다.”
단호한 어조였다. 도은강은 더 적극적으로 이번 일에 끼어들기로 결심했다.
“백민. 이번 건은 고운비랑 같이 맡도록.”
백민은 곧바로 이해했다. 김선위와 도은강 사이에 오간 대화와 현재의 조건을 고려했을 때, 도은강이 알파 팀의 업무에 힘을 보태는 쪽이 옳다. 훨씬 능률적이기도 하다. 도은강은 김선위의 가족을 재현하는 의뢰에서 특별한 역할을 하기 힘들었으므로. 경험이 적은 백민이 걱정된다면 다른 팀원을 붙여주면 될 일이었다.
“팀장님이 무슨 계획을 세우셨는지 짐작됩니다. 파트너 교체는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고운비 선배님, 괜찮을까요?”
외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이능만 따지자면, 기억조작 능력을 가진 고운비와 짝을 이루는 편이 효율적이리라. 하지만 고운비는 히키코모리. 가끔 본가에 다녀오는 경우를 빼면 사무실에 보물이라도 숨겨둔 듯 콕 박혀있었다. 고운비를 사무실 밖으로 꺼내는 일조차 쉽지 않은데 외근을 하며 백민을 적극적으로 돕기를 바라는 건 사치였다.
“밖에 나오면 정서불안 증세를 보이긴 하겠지만, 외출은 가능하긴 하다. 어떤 수를 써서든 의뢰를 보조하도록 할 테니까 그 문제에 신경 쓰지 마라. 백민 너는 네 능력을 개발하는 데만 전력을 기울이면 된다.”
업무처리능력 면에서 고운비는 도은강 다음가는 수완을 보인다. 그래 봬도 고운비는 작은 방에 콩 벌레처럼 웅크리고 있으면서도 능수능란하게 의뢰를 완수하는 능력자였다. 문밖으로 끌어내는 일은 도은강이 적당히 협상하면 된다. 끝내 그 방 안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원격으로라도 백민을 돕게 만들면 된다. 이미 몇 번의 전적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팀장님.”
백민이 대답하는데 통화를 마친 유오연이 안으로 들어섰다.
“알파 팀이 바로 온다는군요. 제가 없는 동안 이야기는 잘 됐습니까?”
“물론입니다. 알파 팀이 오면 기겁할 화제도 생겼고요.”
무테안경을 밀어 올리던 검지가 딱 멈췄다. 유오연은 도은강에서 백민, 김선위 순으로 시선을 옮기면서 얼굴을 살폈다.
그 시선을 받은 이들은 어쩐지 거미줄에 걸린 나비가 된 압박감을 느꼈다. 감마팀 팀장 유오연은 산전수전을 겪은 도은강에게도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자세히 얘기해보죠. 알파 팀이 오기 전까지 시간은 넉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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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마팀 외부 사무실을 찾아간 날로부터 2주. 그동안 백민은 바쁘게 움직였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감마팀 팀장과 함께 능력측정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 결과 ‘이능제어력’에 있어서는 발군의 발전을 보일 수 있었다.
도은강과 파트너가 되어 의뢰를 처리하러 다닐 때는 이능과 능력자에 대해 익숙해지기 위해 집중했다. 그것은 단독으로 의뢰를 수행하기 위한 연습이기도 했지만, 관점을 바꾸는 작업이었다. 능력자들의 존재조차 모른 채로 20년 넘게 살아왔기 때문에 능력자와 이능에 대해 거부감 없이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 과제였다. 능력자들을 만날 일이 빈번한 이능반 소속 직원에게는 꼭 필요했다.
대학교 수업과 병행하느라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도 했고, 도은강이 우선순위를 실전에 뒀기 때문에 백민은 아직 체계적으로 이능 조절에 배운 적이 없었다. 팀장 도은강 말에 따르면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요령을 습득한다고 했다. 닥치면 다 배우게 되어있다고.
그렇지만 유오연과 함께 한 개인 교습은 정말로 유익했다. 무작정 돌진해서 넘어지고 실수하면서 배우는 실전형 수업보단 유오연이 손수 만든 과외(?) 형 수업이 백민에겐 익숙했다.
게다가 유오연은 가르치는 재능이 탁월한 남자였다. 학원 강사가 됐더라면 분명 유명한 스타강사가 됐을 터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설명은 물론, 어떤 부분에서 막힐지 알고 시원스레 긁어주기도 했다.
그 덕분에 이능제어력이 일취월장한 백민은 반나절 정도는 거뜬히 구현체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크나큰 발전이었다. 2주 전 테스트에서는 3시간 정도 유지하고 기진맥진했으니 두 배가량 늘어난 셈이었다.
한편, 도은강은 알파 팀이 주도하는 특별 작전에 지원하여 범죄자들을 추적하는 중이었다. 얼마나 숨바꼭질을 잘하는지 이제야 꼬리를 간신히 잡았다고 들었다. 아마도 조만간에 김선위가 활동하던 팸 일원들을 잡아 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백민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만 충실하기로 했다.
‘이번 일은 나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될 거야.’
준비는 모두 마쳤다. 이제 능력을 뽐낼 순간이었다.
백민은 유오연과 같이 김선위를 데리고 한적한 곳에 있는 펜션으로 향했다. 작은 펜션을 하루 동안 통째로 빌려서 김선위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합의를 봤기 때문이다.
김선위는 감옥이 아니라 소규모 펜션에서 가족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우선은 정황상 김선위의 죄가 크지 않다고 판단됐다. 그리고 혐의가 완전히 풀리진 않았어도 협조적인 태도를 보인 점도 정상참작되었다. 그래서 초능력자 협회 측은 김선위를 가석방해주기로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김선위는 이능이 전부 쓸 수 없는 무력한 상태긴 해도 자유롭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백민 씨, 다른 델타 팀원은 어디서 만나기로 했습니까?”
“아, 펜션에서 먼저 대기하겠다고 했습니다. 펜션에 도착하면 미리 준비하고 있을 겁니다.”
도은강과 교체된 파트너인 고운비는 삼촌의 강요에 못 이겨 외근을 받아들였다. 다행히 백민이 유오연에게 배우고 있을 땐 외출할 일이 없었다. 한 번의 모험이라면 그녀도 그럭저럭 수용할만한 수준이었다.
펜션의 모습이 보이자 뒷좌석에 앉은 김선위가 안절부절못했다. 곧 가족을 본다는 생각에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내내 담담하더니. 이제야 제 나이 같네. 녀석.”
유오연이 웃음을 흘렸다. 나이에 상관없이, 미치도록 그리워한 이들과 만나는 것은 심장에 무리가 가는 일이겠지만, 귀여워 보이는 게 사실. 백민이 김선위와 처음 만난 날만 제외하면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더 그러했다.
“심호흡해. 하고 싶은 말을 미리 생각해둬도 좋고.”
“……아저씨, 심호흡은 해보겠는데요. 내 마음이 맘대로 되면 벌써 다 잊고 잘 먹고 잘살고 있을걸요.”
뚱한 표정으로 대꾸한 김선위는 순순히 심호흡을 몇 번 하더니 안 되겠는지 다리를 떨었다. 진짜 가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아도 저절로 몸이 긴장했다.
“그래. 그건 맞는 말이다.”
운전대를 잡은 유오연은 가는 입술 사이로 웃음을 흘리더니 점점 속도를 줄였다. 목적지에 다다른 것이다.
“유오연 팀장님, 저 먼저 가서 준비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집중할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아서요.”
“그럼 우리는 이 주변 한 바퀴 돌아보고 가겠습니다. 백민 씨, 20분 정도면 되겠죠?”
백민은 충분하다고 대답한 후에 가볍게 인사를 하고 통나무로 된 작은 펜션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유오연은 김선위의 손목을 덥석 잡고서 푸릇푸릇한 나무가 우거진 산책로로 데려갔다. 이제는 손에 땀이 차는지, 녀석은 손바닥을 바지에 쓱쓱 문질렀다.
반응을 숨기지 못하는 소년을 보며 유오연도 덩달아 기대했다. 김선위가 펜션 안으로 들어가 꿈에 그리던 가족을 만나는 순간을.
#
20분 후. 유오연은 펜션 입구부터 현관까지 이어지는 자갈길을 따라 걸었다. 김선위는 한걸음 뒤에서 그를 따라 종종거리며 따라왔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얼굴에 담고서.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머릿속에서 고민하다 뒤죽박죽이 된, 그런 얼굴이었다.
유오연은 한 점의 망설임 없이 현관문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아저씨! 아저, 아저씨! 잠깐만요! 나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요!”
“여태 뭐하고? 멍하니 있어서 마음이라도 가라앉히나 했더니. 이건 뭐 고백 직전의 사춘기 소년이 따로 없네.”
문을 반쯤 열다 멈춘 자세로 유오연이 웃음을 실실 흘렸다. 처음에는 ‘얼마나 간절했으면.’하고 생각했지만, 반응이 워낙 극적이다 보니 이제는 우습기까지 했다.
“아무리 시간을 줘도 마음의 준비 끝나기는 글렀다. 그냥 들어가자. 이 녀석아.”
유오연은 현관문을 활짝 열었다.
김선위는 앞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거실 바닥에는 그림자 세 개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눈이 짓무르도록 보고 싶었던 가족들의 그림자가 세 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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