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연약한 소년
조회 : 916 추천 : 0 글자수 : 6,528 자 2022-12-14
# 28화. 연약한 소년
“똑같아…….”
머리로는 눈앞에 보이는 가족들이 복제품이나 다름없다는 걸 인지하고 있지만,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시간이 5년 전으로 고정되어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진짜와 다를 바가 없었다. 머리 스타일도 ‘그날’의 것과 동일했고 표정과 자세도 똑같았다. 그리고 그들이 입은 옷은 차마 버리지 못해서 집 옷장 어딘가에 있을, 부모님과 여동생이 즐겨 입었던 옷이었다.
유오연은 한쪽에 기대어 있는 백민에게 수고했다는 의미로 눈인사를 건넸다. 그 인사를 받은 백민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더니 금세 집중 상태에 들어갔다. 형태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선 이능을 정교하게 조절해야 했다.
“멀뚱멀뚱 서 있지만 말고 안아드리기라도 해라. 인마.”
유오연은 현관문을 한 발 내디딘 채, 장승처럼 굳어버린 김선위의 등을 떠밀었다. 그리고 한쪽 벽에 서서 눈을 감고 이능으로 연결된 선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선은 펜션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유오연을 빼곤 아무도 볼 수 없었다.
“엄마, 아빠……. 윤위야…….”
김선위는 몇 발자국 움직여 세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당장이라도 체온이 닿을 거리, 김선위는 손을 멈추고 말았다. 떨리는 손가락에는 소년의 망설임을 담겨있었다. 그 상태로 머뭇거리는 김선위를 먼저 껴안은 사람은 그 소년의 어머니, 아니 소년의 어머니 형상을 한 인형이었다.
“엄마…….”
그토록 원했던 엄마 품이었다. 이미 엄마보다 더 커져 버린 소년이었지만 엄마 품은 포근하고 안락했다. 애틋하게 그리운 그 체온을, 체향을 무슨 수로 구현했는지 궁금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둥지에 날개깃을 비비는 아기 새처럼 파묻혀서 나른하게 잠들고 싶었다.
“선위야. 아빠도 안아드려야지.”
소년은 무작정 엄마의 온기에 매달리느라 아빠가 옆에 있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평소의 아빠였다면 아기로 돌아가기라도 한 거냐고 짓궂게 놀렸을 일이었다. 그럼 저는 발끈해서 대들었겠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엄마 목소리에 김선위는 자연스럽게 아빠를 돌아보았다. 엄마의 얼굴, 엄마의 목소리를 한 인형에게 부자연스러움을 감지하지 못하고 엄마의 말로 받아들인 것이다.
“아빠.”
김선위가 물기 어린 목소리로 중년 남성의 등에 팔을 감으며 포옹했다. 그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등을 토닥거렸다.
“이렇게 마음이 여려서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려고 그러냐. 아들.”
그는 팔에 힘을 주어 힘껏 아들을 껴안았다.
“엄마! 나도, 나도!”
옆에서 깡충깡충 뛰면서 소년의 팔을 흔드는 존재는 나이 터울이 많이 나는 여동생이었다. 머리카락을 높이 하나로 묶은 여자아이는 예전처럼 일곱 살 꼬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5년이 지나서 훌쩍 큰 성인이 된 자신과는 다르게.
“윤위도 오빠 보고 싶었다는데?”
엄마의 상냥한 목소리에 아빠는 김선위를 껴안았던 팔을 풀었다. 그리고 동생에게 가보라고 허리께를 손으로 툭 치고는 모른 척했다. 쑥스러움 때문에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아빠의 모습 그대로였다.
“……윤위야. 그동안, 잘 지냈어?”
김선위는 동생의 보드레한 볼을 쓰다듬었다. 그 익숙한 감촉에 서러움이 울컥 올라왔다.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다. 뿌옇게 시야를 가린 눈물은 소매로 아무리 닦아대도 마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난 잘 지냈어. 오빠는? 밥은 잘 먹고 다녀? 어디 아프진 않아?”
7살의 어린 나이를 고려하면 참 어른스러운 태도였다. 그러나 이런 애늙은이가 진짜 자신의 동생이었다. 철없는 오빠와 애늙은이 동생이어서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동생인데도 친구처럼 지낼 수 있었다.
“난 건강해…….”
혼자 남겨지고도 밥도 잘 먹고, 잘살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야 하는데, 솟구치는 슬픔이 말문을 막았다. 묻고 싶은 말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왜 입은 하나밖에 없을까. 그저 애통하기만 했다.
“……아프진 않았어?”
마지막 순간, 고통스럽지는 않았는지, 오빠가 같이 가주지 못해서 외롭지는 않았는지 묻고 싶었다. 진짜 같은 ‘가짜’를 만나게 되어서 더 좋을지도 모른다. ‘진짜’였다면 묻지 못했을, 심장이 찢기듯 아픈 질문이었으니.
가짜라는 사실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질문을 한 것만으로도 다리에 힘이 풀렸다. 김선위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은 채 주저앉았다. 동생은 단풍잎같이 작은 손으로 오빠가 쏟아내는 눈물을 연신 닦았다.
“하나도 안 아팠어, 오빠. 그리고 엄마랑 아빠도 함께였는걸?”
소년은 바닥에 주저앉아서 동생의 배에 머리를 묻었다. 뒤에 소파가 있었지만, 소파에 앉을 정신도 없었다. 긴 생머리에 하늘하늘한 홈드레스를 입은 김선위의 엄마는 두 아이 곁으로 다가와 둘을 감싸 안았다. 아빠는 경련이 이는 입가를 숨기며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빠 혼자 남겨둬서 미안. 힘들었지. 외로웠지.”
“글쎄……. 외로운 건지, 아픈 건지, 아니면 아무렇지도 않은 건지……. 모르겠더라. 정신이 마비된 것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서…….”
읊조리며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텅 빈 소년의 내면이 비쳤다.
가족을 잃은 사고 후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소년은 빈 병실에서 멍하니 천장만 바라봤다. 아무 소식을 듣지 못했음에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직감했다. 김선위는 넋이 나간 상태로 장례를 치렀고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았다. 그 후엔 평소처럼 등교하고 공부했다. 친구들과 떠들고 놀러 다니기도 했다.
그의 사정을 아는 친구들이 때때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게 어색하기만 했다. 이상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걱정은 옳았다. 아파해야 할 때, 아파하지 못한다는 것도 문제였다. 현실에 괴리를 느끼고 붕 떠 있는 감각을 경험하는 것도 뭔가 이상이 생겼다는 징조였다.
삶이 지루했다. 단조롭고 무미건조했다. 무언가 부족하다고 자꾸만 머리에서 신호를 보내오는데, 그 허전함을 채울 방법을 찾지 못했다.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건 예전과 다르지 않은데 그 반복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참았다. 걱정하는 친구들이 있으니까. 종종 집에 방문해 챙겨주는 친척들이 있었으니까. 자신을 떠난 가족들이 원하지 않을 테니까. 참고 또 참았다.
그렇게 5년.
겉으론 멀쩡해 보였지만 그는 조용히 망가져 버렸다. 더는 버틸 수 없었다. 그래서 학교에도 가지 않고 거리를 헤맸다. 그러다가 아는 얼굴을 만났고 그들 무리에 끼어들어서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우리 선위, 많이 힘들었구나.”
힘들었다. 소년은 진심으로 괴로웠다. 그 마음을 이해해주는, 감싸주는 엄마의 목소리는 온몸의 긴장감을 무너뜨렸다. 김선위의 고개가 점점 밑으로 떨어졌다.
“오빠. 나만 엄마랑 아빠 곁에 있어서 미안. 그래도 나는 오빠가 남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착하고 어른스러운 윤위가 오빠 혼자 살아남았다고 원망할 리 없다. 걱정하며 안쓰러운 미소를 보내면 모를까.
하지만 김선위는 피투성이가 된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 윤위의 증오 어린 눈초리를 받는 꿈을 매일 꿔야 했다. 꿈을 다루는 이능을 지녔음에도 자신에게는 그 이능이 적용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하루를 행복하게 시작하도록 도와줄 수 있지만, 그는 하룻밤 내내 피눈물을 흘리는 가족들에게 쫓겨 다녀야만 했다. 울분에 찬 시선을 받다가 깨어나면 아무도 없는 썰렁한 집을 마주해야 했다.
“사내자식이 질질 짜는 걸 보니까 어른 되려면 한참 멀었네. 어이구, 우리 아들 자장자장이라도 해주랴? 윤위야, 오빠 맘마 먹여주고 자장자장 해줘야 하나보다. 우리 딸도 진작 졸업했는데, 그치?”
작은 체구의 윤위는 오빠의 무게를 감당하며 아빠에게 찡긋거리는 코를 보여줬다. 아빠의 장난스러운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시였다.
“윤위야 아빠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코는 가만히 놔두지 않을래? 응?”
눈가에 장난기가 대롱대롱 매달린 중년의 사내는 딸의 눈치를 보며 입에 지퍼 채우는 시늉을 했다. 그제야 윤위는 ‘그럼 그래야지.’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신연령이 역전된 듯한 상황이었다.
김선위는 이런 실없는 대화가 눈물 나게 반가웠다.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냥’ 만나고 싶었던 거다. 미치도록 보고 싶었던 거다.
장난기 넘치는 친구 같은 아빠, 다정한 소녀 같은 엄마, 어른보다 어른 같아서 깨물어주고 싶게 귀여운 동생……. 그들이 살아있을 당시엔 너무도 당연해서 알아채지 못했다. 안온한 바다 한가운데 유영하는 그 행복을.
“엄마한테 맘껏 어리광부려도 돼. 선위가 어른이 되어도 엄마에겐 언제나 어린아이니까.”
주먹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이 시간이 유한하다는 사실에 김선위는 이를 악물었다. 단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서 돌아버릴 것 같았는데 보고 있는데도 똑같다니.
“그만 울어. 눈 퉁퉁 붓겠어. 오빠.”
작은 손이 소년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흐느낌이 이 사이로 새어나갔다. 이 위로도 거짓이지만 김선위는 상관없었다. 누군가 자신을 농락하려고 짠 계략이더라도, 하룻밤 꿈에 불과하더라도 좋았다. 이 기억을 보물로 여기고 살아갈 수 있게 될 테니까.
“아직 시간은 넉넉해. 여보, 밥이라도 먹으면서 얘기하자. 우리 딸이랑 아들 배고플 텐데.”
아빠가 꺼낸 말에 엄마가 아이들을 감쌌던 팔을 풀었다. 그리고 두어 번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일어났다. 김선위의 집과 펜션의 구조는 다를 수밖에 없었지만, 안에 준비된 요리도구와 그릇은 소년의 집에 있던 것들이었다. 냄비, 프라이팬, 밥그릇과 수저까지 전부 낯익은 디자인이었다.
엄마의 인형(人形)은 부엌에 가서 냉장고 문을 열어보더니 요리를 시작했다. 아빠는 김선위의 몸을 부축해 소파에 앉혔다. 윤위는 쪼르르 옆에 가서 오빠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김선위가 넋을 놓은 상태로 삼십 분쯤 지났을까. 엄마는 식탁에 밥을 차려놓고 가족들을 불렀다. 인형이 섬세한 행동을 하게 되면 유오연에게 걸리는 과부하가 심해진다. 이 때문에 밥과 국은 요리되어 준비되어 있었고 반찬도 반조리 상태여서 빠르게 식사 준비할 수 있었다.
“선위야. 먹어봐. 앞에 두고 감상만 할 거야? 엄마가 열심히 차렸는데.”
엄마는 수저를 들다 말고 선위에게 말을 걸었다. 아빠는 국을 한 수저 떠먹은 후였고, 윤위는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선위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중이었다.
김선위는 무언의 강요에 이기지 못하고 젓가락을 들었다. 그리곤 엄마가 자주 해주시던 계란말이를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
“왜 또 울어? 그렇게 맛있어?”
식탁 의자에 앉아 발을 동당거리던 윤위가 한마디 하더니 계란말이 하나를 입에 쏙 넣었다.
“응? 그냥 우리 엄마 계란말이 맛인데.”
윤위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위는 목이 메어서 입에 든 계란말이를 삼키지 못했다.
계란말이 맛이 엄마의 맛이었다. 남아있는 기억이 없어서 두루뭉술하게 묘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무슨 수로 이 맛을 만들어냈을까. 혀 위에서 느껴지는 맛을 통해 과거가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흐릿해졌던 기억들이 다시 선명해지고 있었다.
“선위야.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
“……흡.”
소년은 대답도 제대로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김선위의 가족은 느긋하게 식사를 했다.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그사이에 흐르는 공기가 따스했다.
김선위는 겨우겨우 식사를 마치고 식탁 위를 치웠다. 설거지는 아빠와 선위가 나눠서 하곤 했는데 오늘은 둘이 오붓하게 나눠서 했다. 백민과 유오연이 소소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덕에 김선위는 위화감을 느낄 틈도 없었다.
후식은 껍질을 벗길 필요 없는 방울토마토와 청포도였다. 네 명은 과일에 손을 댈 생각도 못 하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었다. 예전이었다면 징그럽다며 저리 가라고 할 김선위가 가만히 있어서 조금 낯간지럽지만, 바짝 붙어서 체온을 나눌 수 있었다.
“아들. 하고 싶었던 말 있으면 해라. 차분하게 들어줄 테니까.”
아빠가 말문을 열었다. 진지한 얼굴을 한 그는 폭풍에도 끄떡없는 아름드리나무처럼 든든했다.
“우리 신경 쓰느라 마음 졸일 필요도 없고 서두를 필요도 없어. 그동안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털어놔도 좋다. 우스갯소리라도 괜찮아. 후회나 슬픔이라도, 혹여 우리를 향한 미움이라도 모두 받아주마.”
“……아빠.”
어떻게 이렇게 진짜 같지. 김선위는 아빠의 손을 멍하니 응시했다. 거칠고 손가락 마디가 굵은 아빠의 손과 같았다. 자신의 발바닥을 간질이기도 하고 머리를 투박하게 쓰다듬기도 했던 그 손과.
아빠, 엄마, 동생 윤위를 두 눈으로 보니 마음이 울렁거렸다. 실제로 보니 자신이 가진 그리움의 크기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었다.
누군가는 기억을 하나둘 잊으면서 상처도 잊힌다고 했다. 그러나 소년은 아니었다. 소년의 상처는 망각을 양분 삼아 썩어들어 갔다. 그 상처는 차츰 그의 영혼까지 침범했다. 그는 썩어버린 갈대처럼 영혼을 가누지도 못했고 매 순간 미래를 잃어갈 수밖에 없었다. 산들바람을 이겨낼 힘조차 없었다.
원래부터 소년이 연약했던 탓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늘 이후로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벗고 새로운 싹을 틔울 수 있으리라. 아무런 말도 털어놓지 않았음에도 가벼워진 마음에서 소년은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가족들이 자신의 행복을 바란다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느껴서 확신할 수 있으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똑같아…….”
머리로는 눈앞에 보이는 가족들이 복제품이나 다름없다는 걸 인지하고 있지만,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시간이 5년 전으로 고정되어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진짜와 다를 바가 없었다. 머리 스타일도 ‘그날’의 것과 동일했고 표정과 자세도 똑같았다. 그리고 그들이 입은 옷은 차마 버리지 못해서 집 옷장 어딘가에 있을, 부모님과 여동생이 즐겨 입었던 옷이었다.
유오연은 한쪽에 기대어 있는 백민에게 수고했다는 의미로 눈인사를 건넸다. 그 인사를 받은 백민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더니 금세 집중 상태에 들어갔다. 형태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선 이능을 정교하게 조절해야 했다.
“멀뚱멀뚱 서 있지만 말고 안아드리기라도 해라. 인마.”
유오연은 현관문을 한 발 내디딘 채, 장승처럼 굳어버린 김선위의 등을 떠밀었다. 그리고 한쪽 벽에 서서 눈을 감고 이능으로 연결된 선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선은 펜션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유오연을 빼곤 아무도 볼 수 없었다.
“엄마, 아빠……. 윤위야…….”
김선위는 몇 발자국 움직여 세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당장이라도 체온이 닿을 거리, 김선위는 손을 멈추고 말았다. 떨리는 손가락에는 소년의 망설임을 담겨있었다. 그 상태로 머뭇거리는 김선위를 먼저 껴안은 사람은 그 소년의 어머니, 아니 소년의 어머니 형상을 한 인형이었다.
“엄마…….”
그토록 원했던 엄마 품이었다. 이미 엄마보다 더 커져 버린 소년이었지만 엄마 품은 포근하고 안락했다. 애틋하게 그리운 그 체온을, 체향을 무슨 수로 구현했는지 궁금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둥지에 날개깃을 비비는 아기 새처럼 파묻혀서 나른하게 잠들고 싶었다.
“선위야. 아빠도 안아드려야지.”
소년은 무작정 엄마의 온기에 매달리느라 아빠가 옆에 있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평소의 아빠였다면 아기로 돌아가기라도 한 거냐고 짓궂게 놀렸을 일이었다. 그럼 저는 발끈해서 대들었겠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엄마 목소리에 김선위는 자연스럽게 아빠를 돌아보았다. 엄마의 얼굴, 엄마의 목소리를 한 인형에게 부자연스러움을 감지하지 못하고 엄마의 말로 받아들인 것이다.
“아빠.”
김선위가 물기 어린 목소리로 중년 남성의 등에 팔을 감으며 포옹했다. 그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등을 토닥거렸다.
“이렇게 마음이 여려서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려고 그러냐. 아들.”
그는 팔에 힘을 주어 힘껏 아들을 껴안았다.
“엄마! 나도, 나도!”
옆에서 깡충깡충 뛰면서 소년의 팔을 흔드는 존재는 나이 터울이 많이 나는 여동생이었다. 머리카락을 높이 하나로 묶은 여자아이는 예전처럼 일곱 살 꼬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5년이 지나서 훌쩍 큰 성인이 된 자신과는 다르게.
“윤위도 오빠 보고 싶었다는데?”
엄마의 상냥한 목소리에 아빠는 김선위를 껴안았던 팔을 풀었다. 그리고 동생에게 가보라고 허리께를 손으로 툭 치고는 모른 척했다. 쑥스러움 때문에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아빠의 모습 그대로였다.
“……윤위야. 그동안, 잘 지냈어?”
김선위는 동생의 보드레한 볼을 쓰다듬었다. 그 익숙한 감촉에 서러움이 울컥 올라왔다.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다. 뿌옇게 시야를 가린 눈물은 소매로 아무리 닦아대도 마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난 잘 지냈어. 오빠는? 밥은 잘 먹고 다녀? 어디 아프진 않아?”
7살의 어린 나이를 고려하면 참 어른스러운 태도였다. 그러나 이런 애늙은이가 진짜 자신의 동생이었다. 철없는 오빠와 애늙은이 동생이어서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동생인데도 친구처럼 지낼 수 있었다.
“난 건강해…….”
혼자 남겨지고도 밥도 잘 먹고, 잘살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야 하는데, 솟구치는 슬픔이 말문을 막았다. 묻고 싶은 말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왜 입은 하나밖에 없을까. 그저 애통하기만 했다.
“……아프진 않았어?”
마지막 순간, 고통스럽지는 않았는지, 오빠가 같이 가주지 못해서 외롭지는 않았는지 묻고 싶었다. 진짜 같은 ‘가짜’를 만나게 되어서 더 좋을지도 모른다. ‘진짜’였다면 묻지 못했을, 심장이 찢기듯 아픈 질문이었으니.
가짜라는 사실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질문을 한 것만으로도 다리에 힘이 풀렸다. 김선위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은 채 주저앉았다. 동생은 단풍잎같이 작은 손으로 오빠가 쏟아내는 눈물을 연신 닦았다.
“하나도 안 아팠어, 오빠. 그리고 엄마랑 아빠도 함께였는걸?”
소년은 바닥에 주저앉아서 동생의 배에 머리를 묻었다. 뒤에 소파가 있었지만, 소파에 앉을 정신도 없었다. 긴 생머리에 하늘하늘한 홈드레스를 입은 김선위의 엄마는 두 아이 곁으로 다가와 둘을 감싸 안았다. 아빠는 경련이 이는 입가를 숨기며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빠 혼자 남겨둬서 미안. 힘들었지. 외로웠지.”
“글쎄……. 외로운 건지, 아픈 건지, 아니면 아무렇지도 않은 건지……. 모르겠더라. 정신이 마비된 것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서…….”
읊조리며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텅 빈 소년의 내면이 비쳤다.
가족을 잃은 사고 후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소년은 빈 병실에서 멍하니 천장만 바라봤다. 아무 소식을 듣지 못했음에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직감했다. 김선위는 넋이 나간 상태로 장례를 치렀고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았다. 그 후엔 평소처럼 등교하고 공부했다. 친구들과 떠들고 놀러 다니기도 했다.
그의 사정을 아는 친구들이 때때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게 어색하기만 했다. 이상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걱정은 옳았다. 아파해야 할 때, 아파하지 못한다는 것도 문제였다. 현실에 괴리를 느끼고 붕 떠 있는 감각을 경험하는 것도 뭔가 이상이 생겼다는 징조였다.
삶이 지루했다. 단조롭고 무미건조했다. 무언가 부족하다고 자꾸만 머리에서 신호를 보내오는데, 그 허전함을 채울 방법을 찾지 못했다.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건 예전과 다르지 않은데 그 반복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참았다. 걱정하는 친구들이 있으니까. 종종 집에 방문해 챙겨주는 친척들이 있었으니까. 자신을 떠난 가족들이 원하지 않을 테니까. 참고 또 참았다.
그렇게 5년.
겉으론 멀쩡해 보였지만 그는 조용히 망가져 버렸다. 더는 버틸 수 없었다. 그래서 학교에도 가지 않고 거리를 헤맸다. 그러다가 아는 얼굴을 만났고 그들 무리에 끼어들어서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우리 선위, 많이 힘들었구나.”
힘들었다. 소년은 진심으로 괴로웠다. 그 마음을 이해해주는, 감싸주는 엄마의 목소리는 온몸의 긴장감을 무너뜨렸다. 김선위의 고개가 점점 밑으로 떨어졌다.
“오빠. 나만 엄마랑 아빠 곁에 있어서 미안. 그래도 나는 오빠가 남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착하고 어른스러운 윤위가 오빠 혼자 살아남았다고 원망할 리 없다. 걱정하며 안쓰러운 미소를 보내면 모를까.
하지만 김선위는 피투성이가 된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 윤위의 증오 어린 눈초리를 받는 꿈을 매일 꿔야 했다. 꿈을 다루는 이능을 지녔음에도 자신에게는 그 이능이 적용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하루를 행복하게 시작하도록 도와줄 수 있지만, 그는 하룻밤 내내 피눈물을 흘리는 가족들에게 쫓겨 다녀야만 했다. 울분에 찬 시선을 받다가 깨어나면 아무도 없는 썰렁한 집을 마주해야 했다.
“사내자식이 질질 짜는 걸 보니까 어른 되려면 한참 멀었네. 어이구, 우리 아들 자장자장이라도 해주랴? 윤위야, 오빠 맘마 먹여주고 자장자장 해줘야 하나보다. 우리 딸도 진작 졸업했는데, 그치?”
작은 체구의 윤위는 오빠의 무게를 감당하며 아빠에게 찡긋거리는 코를 보여줬다. 아빠의 장난스러운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시였다.
“윤위야 아빠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코는 가만히 놔두지 않을래? 응?”
눈가에 장난기가 대롱대롱 매달린 중년의 사내는 딸의 눈치를 보며 입에 지퍼 채우는 시늉을 했다. 그제야 윤위는 ‘그럼 그래야지.’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신연령이 역전된 듯한 상황이었다.
김선위는 이런 실없는 대화가 눈물 나게 반가웠다.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냥’ 만나고 싶었던 거다. 미치도록 보고 싶었던 거다.
장난기 넘치는 친구 같은 아빠, 다정한 소녀 같은 엄마, 어른보다 어른 같아서 깨물어주고 싶게 귀여운 동생……. 그들이 살아있을 당시엔 너무도 당연해서 알아채지 못했다. 안온한 바다 한가운데 유영하는 그 행복을.
“엄마한테 맘껏 어리광부려도 돼. 선위가 어른이 되어도 엄마에겐 언제나 어린아이니까.”
주먹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이 시간이 유한하다는 사실에 김선위는 이를 악물었다. 단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서 돌아버릴 것 같았는데 보고 있는데도 똑같다니.
“그만 울어. 눈 퉁퉁 붓겠어. 오빠.”
작은 손이 소년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흐느낌이 이 사이로 새어나갔다. 이 위로도 거짓이지만 김선위는 상관없었다. 누군가 자신을 농락하려고 짠 계략이더라도, 하룻밤 꿈에 불과하더라도 좋았다. 이 기억을 보물로 여기고 살아갈 수 있게 될 테니까.
“아직 시간은 넉넉해. 여보, 밥이라도 먹으면서 얘기하자. 우리 딸이랑 아들 배고플 텐데.”
아빠가 꺼낸 말에 엄마가 아이들을 감쌌던 팔을 풀었다. 그리고 두어 번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일어났다. 김선위의 집과 펜션의 구조는 다를 수밖에 없었지만, 안에 준비된 요리도구와 그릇은 소년의 집에 있던 것들이었다. 냄비, 프라이팬, 밥그릇과 수저까지 전부 낯익은 디자인이었다.
엄마의 인형(人形)은 부엌에 가서 냉장고 문을 열어보더니 요리를 시작했다. 아빠는 김선위의 몸을 부축해 소파에 앉혔다. 윤위는 쪼르르 옆에 가서 오빠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김선위가 넋을 놓은 상태로 삼십 분쯤 지났을까. 엄마는 식탁에 밥을 차려놓고 가족들을 불렀다. 인형이 섬세한 행동을 하게 되면 유오연에게 걸리는 과부하가 심해진다. 이 때문에 밥과 국은 요리되어 준비되어 있었고 반찬도 반조리 상태여서 빠르게 식사 준비할 수 있었다.
“선위야. 먹어봐. 앞에 두고 감상만 할 거야? 엄마가 열심히 차렸는데.”
엄마는 수저를 들다 말고 선위에게 말을 걸었다. 아빠는 국을 한 수저 떠먹은 후였고, 윤위는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선위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중이었다.
김선위는 무언의 강요에 이기지 못하고 젓가락을 들었다. 그리곤 엄마가 자주 해주시던 계란말이를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
“왜 또 울어? 그렇게 맛있어?”
식탁 의자에 앉아 발을 동당거리던 윤위가 한마디 하더니 계란말이 하나를 입에 쏙 넣었다.
“응? 그냥 우리 엄마 계란말이 맛인데.”
윤위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위는 목이 메어서 입에 든 계란말이를 삼키지 못했다.
계란말이 맛이 엄마의 맛이었다. 남아있는 기억이 없어서 두루뭉술하게 묘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무슨 수로 이 맛을 만들어냈을까. 혀 위에서 느껴지는 맛을 통해 과거가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흐릿해졌던 기억들이 다시 선명해지고 있었다.
“선위야.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
“……흡.”
소년은 대답도 제대로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김선위의 가족은 느긋하게 식사를 했다.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그사이에 흐르는 공기가 따스했다.
김선위는 겨우겨우 식사를 마치고 식탁 위를 치웠다. 설거지는 아빠와 선위가 나눠서 하곤 했는데 오늘은 둘이 오붓하게 나눠서 했다. 백민과 유오연이 소소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덕에 김선위는 위화감을 느낄 틈도 없었다.
후식은 껍질을 벗길 필요 없는 방울토마토와 청포도였다. 네 명은 과일에 손을 댈 생각도 못 하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었다. 예전이었다면 징그럽다며 저리 가라고 할 김선위가 가만히 있어서 조금 낯간지럽지만, 바짝 붙어서 체온을 나눌 수 있었다.
“아들. 하고 싶었던 말 있으면 해라. 차분하게 들어줄 테니까.”
아빠가 말문을 열었다. 진지한 얼굴을 한 그는 폭풍에도 끄떡없는 아름드리나무처럼 든든했다.
“우리 신경 쓰느라 마음 졸일 필요도 없고 서두를 필요도 없어. 그동안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털어놔도 좋다. 우스갯소리라도 괜찮아. 후회나 슬픔이라도, 혹여 우리를 향한 미움이라도 모두 받아주마.”
“……아빠.”
어떻게 이렇게 진짜 같지. 김선위는 아빠의 손을 멍하니 응시했다. 거칠고 손가락 마디가 굵은 아빠의 손과 같았다. 자신의 발바닥을 간질이기도 하고 머리를 투박하게 쓰다듬기도 했던 그 손과.
아빠, 엄마, 동생 윤위를 두 눈으로 보니 마음이 울렁거렸다. 실제로 보니 자신이 가진 그리움의 크기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었다.
누군가는 기억을 하나둘 잊으면서 상처도 잊힌다고 했다. 그러나 소년은 아니었다. 소년의 상처는 망각을 양분 삼아 썩어들어 갔다. 그 상처는 차츰 그의 영혼까지 침범했다. 그는 썩어버린 갈대처럼 영혼을 가누지도 못했고 매 순간 미래를 잃어갈 수밖에 없었다. 산들바람을 이겨낼 힘조차 없었다.
원래부터 소년이 연약했던 탓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늘 이후로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벗고 새로운 싹을 틔울 수 있으리라. 아무런 말도 털어놓지 않았음에도 가벼워진 마음에서 소년은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가족들이 자신의 행복을 바란다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느껴서 확신할 수 있으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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