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주식회사 알리우스의 송별회란?
조회 : 998 추천 : 0 글자수 : 5,699 자 2022-12-17
# 31화. 주식회사 알리우스의 송별회란?
빌딩 안의 불빛이 하나둘씩 꺼지고, 눈이 시리게 빛을 밝힌 연회장에는 능력자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천장 위의 샹들리에가 반짝반짝 빛무리를 퍼뜨리고, 훈훈한 공기가 내부를 가득 채웠다. 탑처럼 쌓인 샴페인 잔에는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오고 있었다.
백민과 한쪽 구석에 멀뚱히 서 있었다. 사권일은 옆에서 헤드폰을 끼고 흥얼거리는 중이었다. 간간이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로 추측할 때 독특한 비트를 가진 랩 발라드 같았다. 백민은 문 쪽을 응시하다가 한 무리가 우르르 들어오는 모습을 발견했다.
“선배님, 팀장님 오십니다.”
“그래?”
사권일은 머리에 쓴 헤드폰을 목에 걸더니 백민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그녀는 잠깐 휘청하고는 무작정 다리를 움직여서 사권일을 쫓았다.
“기다리던 주인공 등장이다. 백민 저기 보여? 팀장님 오른쪽에 보이는 아줌마가 연구반 이거야.”
‘이거야.’ 하면서 사권일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 모양으로 보아, 저 중년의 여성은 연구반 팀장이자 이 송별회의 주연이었다. 백민은 무빙워크 위에 올라탄 것처럼 엉겁결에 팀원들 옆으로 배달되었다.
사권일은 먼저 연구반 팀장인 여성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그리곤 도은강을 보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왔어, 은강 형? 고운비 그 꼬맹이는 오긴 온대?”
도은강과 이수철, 홍미지까지 전부 올라왔는데 고운비의 자그마한 얼굴은 온데간데없었다. 델타 팀원 중에 그녀만 쏙 빠진 상태였다.
“이따 중간에 얼굴은 비친다는데. 안 올 가능성이 더 크지.”
사권일은 ‘그러면 그렇지.’하고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잠깐 아래층에 두고 온 물건이 있다며 쏜살같이 사라졌다. 둘러대는 게 뻔히 보였다. 미운 정이라고 해도 고운비를 가장 챙기는 사람은 사권일이었다.
연구반 팀장을 에스코트하던 도은강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아, 죄송합니다. 조 팀장님. 저희 팀원들이 어수선했습니다.”
옆에 있던 중년의 여성은 푸근하게 웃었다. 나이는 40대 후반으로 보였고, 살이 보기 좋게 올라 후덕하게 보이는 인상이었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친근함을 가진 아줌마였다. 확실히 백민이 가진 선입관에 맞지 않는 스타일의 연구원이었다.
“그 정돈 약과야. 우리 팀 애들은 한번 연구 시작하면 땅굴에 처박힌 두더지가 되는데 뭐. 근데, 여기 이 아가는 누구?”
“처음 보시겠네요. 여기는 우리 팀 신입인 백민입니다.”
백민은 도은강의 인사가 끝나자마자 허리를 숙여 공손하게 인사했다. 팀장인 그도 깍듯하게 예우하는, 허투루 대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이능반 델타 팀 백민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은강 씨! 이런 아가가 있으면 진즉 소개해 줬어야지!”
델타 팀에서 그나마 아가로 불릴만한 사람은 고운비이지만, 그녀가 약한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다는 건 유명했다. 그런 사람에게 함부로 접근할 사람은 없었다.
“아줌마 이름은 조영자야. 우리 아가는 몇 살이니? 딱 봐도 우리 딸뻘이긴 한데.”
조영자는 요란을 떨면서 백민의 볼을 만지작거리고 머리를 꼬옥 껴안아서 품에 가뒀다.
그녀는 눈치를 태어나면서부터 장착하고 나온 사람. 누가 자신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곤란해하는 사람을 모른척하며 괴롭히는 질 나쁜 취미가 있다는 건 극소수의 지인들만 알고 있었다.
백민은 풍만한 가슴에 파묻힌 채로 스물두 살이라고 웅얼거렸다. 영자 아줌마는 그 뭉개진 발음에도 별 불편한 없이 알아들었다.
“스물둘? 진짜 아가네. 다른 애들은 이 아줌마가 껴안아 보겠다고 하면 줄행랑을 치는데! 아구, 이 순한 거 봐!”
그녀가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모든 시선이 집중됐다. 백민은 아직 물컹물컹함에 둘러싸여 있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수많은 시선을.
아무 짓 하지 않아도 화제의 중심이 될 주인공이었다. 그런 그녀가 누군가를 껴안고 흔들거리며 함박웃음을 짓기까지 하니, 호기심 어린 시선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저기, 저기 조 팀장님…….”
백민은 칡넝쿨 같은 팔에서 벗어날 방도가 없었다. 호의는 좋지만, 너무 과했다. 숨 막힐 정도의 과도한 스킨십이었다. 그러나 쪼렙이 만렙을 지적할 수는 없었다. 백민은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며 순순히 몸을 맡겼다.
‘사권일 선배님이 이래서 자리를 피했구나…….’
곤란함에 눈동자를 굴렸다. 정 많고 손 큰 아줌마 대신 백민이 주인공이 될 위기의 순간이었다.
마왕을 무찌르는 용사처럼 용감하게 백민을 구출한 사람은 이수철이었다.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 데 신중한 그에겐 의외의 행동이었다. 사실 그는 당혹스러워하는 막내 직원을 보다 못해 나선 것이다. 도은강은 먼 산 구경하듯 느긋하기만 했고, 홍미지도 묘한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있었으니까.
“조 팀장님. 그만 놔주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다들 요번 희생양은 누군가하고 궁금해서 쳐다보는데요…….쉬쉿.”
“어머! 누가 감히 이 조영자 취미 생활에 태클을 걸어?”
말꼬리를 올리며 주위를 둘러보자, 이곳으로 쏠렸던 시선들이 한순간에 달아났다. 조영자 팀장은 그만큼 영향력 있는 인사였다. 그만큼 막무가내이기도 했다.
“수철 씨, 내가 그렇게 나빠?”
조영자 팀장, 아니 영자 아줌마는 백민을 풀어주더니 눈물을 글썽거렸다. 눈가를 촉촉이 적신 눈물은 아무리 봐도 악어눈물이었다.
“우리 귀여운 아가도 그렇게 생각하니?”
“……아닙니다. 이런 스킨십이 낯설어서 당황하긴 했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습니다.”
“아구구. 어쩜 이렇게 내 취향에 꼭 맞는 병아리가 들어왔지? 미리 알았으면 퇴임 미루는 건데 그랬어!”
오금을 시리게 하는 발언이었다. 사실, 반쯤은 농담이니 나머지 반은 진담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주변에서 과도한 친밀함의 피해를 맛본 사람들이 동정 섞인 시선을 보내왔다. 백민은 멀뚱히 말랑말랑한 살 사이에 파묻혀 있다가 몸에 힘을 뺐다.
나쁘지 않았다.
줄곧 부러워했던 ‘상상 속의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체온이니까. 학교에 다녀오는 아이를 두 팔 벌려 맞이하는 엄마에게 안기면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이런 마음이 편안해지는 내음이 나지 않을까? 그래서 기쁘거나 슬프거나 괴로울 때도 엄마를 먼저 부르게 되는 게 아닐까?
백민은 두 눈을 지르감았다.
그녀에겐 두 명의 엄마가 있었다. 그녀를 낳은 무관심한 친엄마와 진이와 영이를 낳아준 연약한 새엄마.
친엄마는 그녀가 안아달라고 팔을 뻗으면 매몰차게 그 팔을 뿌리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새엄마가 있을 땐 거절당한 기억에 지레 겁먹고 다가서지 못했다. 원래부터 연약했던 새엄마는 두 아이를 낳고 나서 몸져눕는 시간이 길었다. 일찍 철 든 백민이 안아달라고 조를 수 있을 리 없었다.
백민은 과거의 기억을 떨쳐내고 아줌마의 팔을 밀어냈다. 이번에는 저항감 없이 아줌마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는 조영자의 눈빛에서 안쓰러움이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졌다. 본인은 모르지만, 백민의 무의식은 스킨십이 부족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애정결핍의 증거였다.
“팔이 허전한걸? 누구든지 와도 좋아요~. 앞으론 내 넓은 품에 안길 일도 없다고요. 그립다고 뒤늦게 울지 말고 얼른 오라니까~. 에이, 사양하지 말고~.”
팔을 활짝 펼치고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큰소리로 외치지 않았는데도 워낙 성량이 좋아서 목소리가 홀 전체에 울렸다.
조영자 팀장의 눈가에는 웃음 주름이 진하게 그어져 있었다. 나이가 들면 얼굴에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 보인다는데, 그녀는 절로 호감이 가는 웃는 상이었다. 얼마나 긍정적인 정신을 가지고 살았는지, 얼마나 감정에 솔직했는지 나타내는 척도였다.
“……최후의 보루를 쓰는 수밖에 없겠네요.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 알고 미리 부탁해뒀죠……. 부엉.”
이수철의 중얼거림을 그 옆에 가까이 서 있던 백민은 똑똑히 들었다. 그러나 그 방법이 뭔지 짐작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조영자 팀장에 대한 최후의 대응책으로 쓰였던 모양인데, 그녀를 처음 만나는 백민은 귀를 쫑긋 세우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소형견의 날카로운 울음이 아니라 대형견이 짖는 소리에 가까웠다.
물 위에 떠가는 나뭇잎처럼 연회장 문으로 향하더니 누군가가 입장하길 기다리며 문을 밀어 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 봐 마음 졸이며 기다리던 백민은 이산가족 상봉과 맞먹는 극적인 만남을 목격할 수 있었다.
황갈색과 흰색의 털을 휘날리며 달려온 커다란 세인트버나드 ‘헤이즐넛’이 아직도 팔을 벌리고 있던 조영자 팀장의 품에 골인한 것이다.
“수고해줘. 캐럿, 이 착한 녀석. 끼인.”
이수철은 입안에 99% 카카오를 머금은 얼굴로 읊조렸다. 그녀에게 마구 귀여움을 받는 헤이즐넛의 표정으로 봤을 때, 딱히 헤이즐넛도 좋아하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당해준다.’ 하는 권태로움에 가까운 감정이 엿보였다.
“아구! 우리 멍멍이 왔써요? 어디서 이런 착하고 예쁜 녀석이 나왔나 몰라! 이제 우리 헤이즐넛도 자주 못 보겠네. 아쉬워서 어쩌지?”
이수철은 차마 못 보겠다는 듯이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백민인 뇌리에 순간 ‘동물 학대’라는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동물들과 말이 통하는 이수철이 존재하는 한, 그럴 리는 없었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이수철은 인간과 동물을 동등하게 보는, 아니 오히려 동물 쪽에 우선으로 생각하는 유일한 인간이니까.
“헤이즐넛 정말 관대하네요. 수철 선배님.”
“우리 헤럿이 좀 그렇지? 다른 녀석들은 덩치가 작아서 조 팀장님 힘을 감당할 수가 없기도 하고, 조 팀장님이 헤럿을 워낙 좋아해서……. 내가 부탁하면 엄청 성가셔하면서도 재깍 와주더라고. 미안하게. 찍찍.”
친구인 세인트버나드와 교감하는 이수철에게 향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 시선에서 감지되는 감정은 감탄, 혹은 흠모에 가까웠다. 백민은 새삼스러웠다.
이수철은 델타 팀 사무실에 있을 때는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적었다. 시끌벅적한 사권일과 자기주장이 강한 도은강, 홍미지 사이에서 항상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하지만 그는 개성이 강한 델타 팀에게 끈끈한 접착제였고, 여차할 때 의지할 수 있는 듬직한 맏형이었다.
‘너무 과대해석한 걸지도 모르지만, 억측 같지는 않아.’
백민은 델타 팀원들에 대해 하나하나 배워가고 있었다. 배우면 배울수록 그녀는 델타 팀에 애착이 생겼다. 이렇게 좋은 동료들을 만나기는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일. 그토록 귀한 행운을 얻은 백민은 어깨를 펴며 작게 미소 지었다.
어느새 단상에 올라간 조영자 팀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위에는 커다란 플래카드가 붙어있었고 그녀의 옆에는 세인트버나드 헤이즐넛이 꼼짝없이 붙들려 있었다.
“오늘 송별회에 참석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누구 송별회인지는 말 안 해도 아시죠? 바로 저 조영자예요. 협회의 큰 언니, 빅 마마, 절망의 야차, 연구반의 악마……. 여러 별명으로 불리면서 알리우스 협회에서 일한 지도 어언 30년이 됐네요. 알파 팀에서 일했던 시기도, 연구반으로 부서 이동을 하고 나서도 항상 초능력자들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이 있었어요. 여러분도 이곳에서 오래 일하다가 명예롭게 퇴임하기를 바랄게요. 송별사를 길게 하면 재미없겠죠? 지난 추억은 한잔하면서 차차 풀기로 해요.”
의아해하는 사람은 이 공간에 한 명뿐이었다. 가장 최근에 입사한 백민만이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붕 떠 있었다.
예식장으로 쓰일만한 장소이니만큼 엄숙한 송별회를 상상했는데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은 조영자 팀장의 입술에 시선을 고정했다.
‘뭐지?’
“그럼 시작해볼까요?”
빌딩 안의 불빛이 하나둘씩 꺼지고, 눈이 시리게 빛을 밝힌 연회장에는 능력자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천장 위의 샹들리에가 반짝반짝 빛무리를 퍼뜨리고, 훈훈한 공기가 내부를 가득 채웠다. 탑처럼 쌓인 샴페인 잔에는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오고 있었다.
백민과 한쪽 구석에 멀뚱히 서 있었다. 사권일은 옆에서 헤드폰을 끼고 흥얼거리는 중이었다. 간간이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로 추측할 때 독특한 비트를 가진 랩 발라드 같았다. 백민은 문 쪽을 응시하다가 한 무리가 우르르 들어오는 모습을 발견했다.
“선배님, 팀장님 오십니다.”
“그래?”
사권일은 머리에 쓴 헤드폰을 목에 걸더니 백민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그녀는 잠깐 휘청하고는 무작정 다리를 움직여서 사권일을 쫓았다.
“기다리던 주인공 등장이다. 백민 저기 보여? 팀장님 오른쪽에 보이는 아줌마가 연구반 이거야.”
‘이거야.’ 하면서 사권일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 모양으로 보아, 저 중년의 여성은 연구반 팀장이자 이 송별회의 주연이었다. 백민은 무빙워크 위에 올라탄 것처럼 엉겁결에 팀원들 옆으로 배달되었다.
사권일은 먼저 연구반 팀장인 여성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그리곤 도은강을 보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왔어, 은강 형? 고운비 그 꼬맹이는 오긴 온대?”
도은강과 이수철, 홍미지까지 전부 올라왔는데 고운비의 자그마한 얼굴은 온데간데없었다. 델타 팀원 중에 그녀만 쏙 빠진 상태였다.
“이따 중간에 얼굴은 비친다는데. 안 올 가능성이 더 크지.”
사권일은 ‘그러면 그렇지.’하고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잠깐 아래층에 두고 온 물건이 있다며 쏜살같이 사라졌다. 둘러대는 게 뻔히 보였다. 미운 정이라고 해도 고운비를 가장 챙기는 사람은 사권일이었다.
연구반 팀장을 에스코트하던 도은강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아, 죄송합니다. 조 팀장님. 저희 팀원들이 어수선했습니다.”
옆에 있던 중년의 여성은 푸근하게 웃었다. 나이는 40대 후반으로 보였고, 살이 보기 좋게 올라 후덕하게 보이는 인상이었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친근함을 가진 아줌마였다. 확실히 백민이 가진 선입관에 맞지 않는 스타일의 연구원이었다.
“그 정돈 약과야. 우리 팀 애들은 한번 연구 시작하면 땅굴에 처박힌 두더지가 되는데 뭐. 근데, 여기 이 아가는 누구?”
“처음 보시겠네요. 여기는 우리 팀 신입인 백민입니다.”
백민은 도은강의 인사가 끝나자마자 허리를 숙여 공손하게 인사했다. 팀장인 그도 깍듯하게 예우하는, 허투루 대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이능반 델타 팀 백민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은강 씨! 이런 아가가 있으면 진즉 소개해 줬어야지!”
델타 팀에서 그나마 아가로 불릴만한 사람은 고운비이지만, 그녀가 약한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다는 건 유명했다. 그런 사람에게 함부로 접근할 사람은 없었다.
“아줌마 이름은 조영자야. 우리 아가는 몇 살이니? 딱 봐도 우리 딸뻘이긴 한데.”
조영자는 요란을 떨면서 백민의 볼을 만지작거리고 머리를 꼬옥 껴안아서 품에 가뒀다.
그녀는 눈치를 태어나면서부터 장착하고 나온 사람. 누가 자신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곤란해하는 사람을 모른척하며 괴롭히는 질 나쁜 취미가 있다는 건 극소수의 지인들만 알고 있었다.
백민은 풍만한 가슴에 파묻힌 채로 스물두 살이라고 웅얼거렸다. 영자 아줌마는 그 뭉개진 발음에도 별 불편한 없이 알아들었다.
“스물둘? 진짜 아가네. 다른 애들은 이 아줌마가 껴안아 보겠다고 하면 줄행랑을 치는데! 아구, 이 순한 거 봐!”
그녀가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모든 시선이 집중됐다. 백민은 아직 물컹물컹함에 둘러싸여 있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수많은 시선을.
아무 짓 하지 않아도 화제의 중심이 될 주인공이었다. 그런 그녀가 누군가를 껴안고 흔들거리며 함박웃음을 짓기까지 하니, 호기심 어린 시선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저기, 저기 조 팀장님…….”
백민은 칡넝쿨 같은 팔에서 벗어날 방도가 없었다. 호의는 좋지만, 너무 과했다. 숨 막힐 정도의 과도한 스킨십이었다. 그러나 쪼렙이 만렙을 지적할 수는 없었다. 백민은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며 순순히 몸을 맡겼다.
‘사권일 선배님이 이래서 자리를 피했구나…….’
곤란함에 눈동자를 굴렸다. 정 많고 손 큰 아줌마 대신 백민이 주인공이 될 위기의 순간이었다.
마왕을 무찌르는 용사처럼 용감하게 백민을 구출한 사람은 이수철이었다.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 데 신중한 그에겐 의외의 행동이었다. 사실 그는 당혹스러워하는 막내 직원을 보다 못해 나선 것이다. 도은강은 먼 산 구경하듯 느긋하기만 했고, 홍미지도 묘한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있었으니까.
“조 팀장님. 그만 놔주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다들 요번 희생양은 누군가하고 궁금해서 쳐다보는데요…….쉬쉿.”
“어머! 누가 감히 이 조영자 취미 생활에 태클을 걸어?”
말꼬리를 올리며 주위를 둘러보자, 이곳으로 쏠렸던 시선들이 한순간에 달아났다. 조영자 팀장은 그만큼 영향력 있는 인사였다. 그만큼 막무가내이기도 했다.
“수철 씨, 내가 그렇게 나빠?”
조영자 팀장, 아니 영자 아줌마는 백민을 풀어주더니 눈물을 글썽거렸다. 눈가를 촉촉이 적신 눈물은 아무리 봐도 악어눈물이었다.
“우리 귀여운 아가도 그렇게 생각하니?”
“……아닙니다. 이런 스킨십이 낯설어서 당황하긴 했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습니다.”
“아구구. 어쩜 이렇게 내 취향에 꼭 맞는 병아리가 들어왔지? 미리 알았으면 퇴임 미루는 건데 그랬어!”
오금을 시리게 하는 발언이었다. 사실, 반쯤은 농담이니 나머지 반은 진담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주변에서 과도한 친밀함의 피해를 맛본 사람들이 동정 섞인 시선을 보내왔다. 백민은 멀뚱히 말랑말랑한 살 사이에 파묻혀 있다가 몸에 힘을 뺐다.
나쁘지 않았다.
줄곧 부러워했던 ‘상상 속의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체온이니까. 학교에 다녀오는 아이를 두 팔 벌려 맞이하는 엄마에게 안기면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이런 마음이 편안해지는 내음이 나지 않을까? 그래서 기쁘거나 슬프거나 괴로울 때도 엄마를 먼저 부르게 되는 게 아닐까?
백민은 두 눈을 지르감았다.
그녀에겐 두 명의 엄마가 있었다. 그녀를 낳은 무관심한 친엄마와 진이와 영이를 낳아준 연약한 새엄마.
친엄마는 그녀가 안아달라고 팔을 뻗으면 매몰차게 그 팔을 뿌리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새엄마가 있을 땐 거절당한 기억에 지레 겁먹고 다가서지 못했다. 원래부터 연약했던 새엄마는 두 아이를 낳고 나서 몸져눕는 시간이 길었다. 일찍 철 든 백민이 안아달라고 조를 수 있을 리 없었다.
백민은 과거의 기억을 떨쳐내고 아줌마의 팔을 밀어냈다. 이번에는 저항감 없이 아줌마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는 조영자의 눈빛에서 안쓰러움이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졌다. 본인은 모르지만, 백민의 무의식은 스킨십이 부족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애정결핍의 증거였다.
“팔이 허전한걸? 누구든지 와도 좋아요~. 앞으론 내 넓은 품에 안길 일도 없다고요. 그립다고 뒤늦게 울지 말고 얼른 오라니까~. 에이, 사양하지 말고~.”
팔을 활짝 펼치고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큰소리로 외치지 않았는데도 워낙 성량이 좋아서 목소리가 홀 전체에 울렸다.
조영자 팀장의 눈가에는 웃음 주름이 진하게 그어져 있었다. 나이가 들면 얼굴에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 보인다는데, 그녀는 절로 호감이 가는 웃는 상이었다. 얼마나 긍정적인 정신을 가지고 살았는지, 얼마나 감정에 솔직했는지 나타내는 척도였다.
“……최후의 보루를 쓰는 수밖에 없겠네요.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 알고 미리 부탁해뒀죠……. 부엉.”
이수철의 중얼거림을 그 옆에 가까이 서 있던 백민은 똑똑히 들었다. 그러나 그 방법이 뭔지 짐작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조영자 팀장에 대한 최후의 대응책으로 쓰였던 모양인데, 그녀를 처음 만나는 백민은 귀를 쫑긋 세우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소형견의 날카로운 울음이 아니라 대형견이 짖는 소리에 가까웠다.
물 위에 떠가는 나뭇잎처럼 연회장 문으로 향하더니 누군가가 입장하길 기다리며 문을 밀어 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 봐 마음 졸이며 기다리던 백민은 이산가족 상봉과 맞먹는 극적인 만남을 목격할 수 있었다.
황갈색과 흰색의 털을 휘날리며 달려온 커다란 세인트버나드 ‘헤이즐넛’이 아직도 팔을 벌리고 있던 조영자 팀장의 품에 골인한 것이다.
“수고해줘. 캐럿, 이 착한 녀석. 끼인.”
이수철은 입안에 99% 카카오를 머금은 얼굴로 읊조렸다. 그녀에게 마구 귀여움을 받는 헤이즐넛의 표정으로 봤을 때, 딱히 헤이즐넛도 좋아하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당해준다.’ 하는 권태로움에 가까운 감정이 엿보였다.
“아구! 우리 멍멍이 왔써요? 어디서 이런 착하고 예쁜 녀석이 나왔나 몰라! 이제 우리 헤이즐넛도 자주 못 보겠네. 아쉬워서 어쩌지?”
이수철은 차마 못 보겠다는 듯이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백민인 뇌리에 순간 ‘동물 학대’라는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동물들과 말이 통하는 이수철이 존재하는 한, 그럴 리는 없었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이수철은 인간과 동물을 동등하게 보는, 아니 오히려 동물 쪽에 우선으로 생각하는 유일한 인간이니까.
“헤이즐넛 정말 관대하네요. 수철 선배님.”
“우리 헤럿이 좀 그렇지? 다른 녀석들은 덩치가 작아서 조 팀장님 힘을 감당할 수가 없기도 하고, 조 팀장님이 헤럿을 워낙 좋아해서……. 내가 부탁하면 엄청 성가셔하면서도 재깍 와주더라고. 미안하게. 찍찍.”
친구인 세인트버나드와 교감하는 이수철에게 향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 시선에서 감지되는 감정은 감탄, 혹은 흠모에 가까웠다. 백민은 새삼스러웠다.
이수철은 델타 팀 사무실에 있을 때는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적었다. 시끌벅적한 사권일과 자기주장이 강한 도은강, 홍미지 사이에서 항상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하지만 그는 개성이 강한 델타 팀에게 끈끈한 접착제였고, 여차할 때 의지할 수 있는 듬직한 맏형이었다.
‘너무 과대해석한 걸지도 모르지만, 억측 같지는 않아.’
백민은 델타 팀원들에 대해 하나하나 배워가고 있었다. 배우면 배울수록 그녀는 델타 팀에 애착이 생겼다. 이렇게 좋은 동료들을 만나기는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일. 그토록 귀한 행운을 얻은 백민은 어깨를 펴며 작게 미소 지었다.
어느새 단상에 올라간 조영자 팀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위에는 커다란 플래카드가 붙어있었고 그녀의 옆에는 세인트버나드 헤이즐넛이 꼼짝없이 붙들려 있었다.
“오늘 송별회에 참석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누구 송별회인지는 말 안 해도 아시죠? 바로 저 조영자예요. 협회의 큰 언니, 빅 마마, 절망의 야차, 연구반의 악마……. 여러 별명으로 불리면서 알리우스 협회에서 일한 지도 어언 30년이 됐네요. 알파 팀에서 일했던 시기도, 연구반으로 부서 이동을 하고 나서도 항상 초능력자들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이 있었어요. 여러분도 이곳에서 오래 일하다가 명예롭게 퇴임하기를 바랄게요. 송별사를 길게 하면 재미없겠죠? 지난 추억은 한잔하면서 차차 풀기로 해요.”
의아해하는 사람은 이 공간에 한 명뿐이었다. 가장 최근에 입사한 백민만이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붕 떠 있었다.
예식장으로 쓰일만한 장소이니만큼 엄숙한 송별회를 상상했는데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은 조영자 팀장의 입술에 시선을 고정했다.
‘뭐지?’
“그럼 시작해볼까요?”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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