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조회 : 823 추천 : 0 글자수 : 4,678 자 2022-12-12
코럴 문화재단 5층 대표이사실.
여비서가 안쪽에서 기다리고 계신다며 문을 열었다.
은수는 비서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대표실은 고풍스러운 책상과 책장, 소파가 놓여있을 뿐 사치스러움은 보이지 않았다. 대표이사 최성훈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어서오라며 편해 보이는 소파로 자리를 권했다.
“안녕하셨어요. 오랜만에 뵙네요.”
“은수 씨가 어쩐 일이십니까? 재단까지 발걸음을 해주시고.”
“잠시 여쭤볼 게 있어서요. 그런데, 정말 대표이사님이시네요. 전혀 몰랐는데…….”
그와는 갤러리나 시상식장에서 주로 만났는데 만날 때마다 너무 짧게 봐서 그런지 말을 섞은 기억도 거의 없었다.
“놀라셨습니까? 해원 작가님 후원과 관련된 업무는 제가 직접 합니다.”
아주 태연한 태도였다. 일부러 숨기진 않았나? 내가 너무 관심이 없었을 뿐인가?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말씀 못 드릴 이유도 없지요. 저희 재단이 세워지고 처음 후원한 학생이 은수 씨였거든요. 그때는 저도 대표이사가 아니었습니다.”
아. 가장 오래 대화한 날이 처음 후원받기 시작한 그날이었다. 초고속 승진을 했단 소린데 계속 나를 담당할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높은 자리에 올라가셨으니 다른 분에게 넘기셔도 되지 않나요? 번거로우실 텐데요.”
“코럴 재단은 돈 버는 회사가 아니라 화가를 지원하는 업무를 하는 문화재단입니다. 대표이사라는 직위도 상징적인 의미가 크죠. 그보다는 그냥 제 고집으로 직접 하고 있을 뿐입니다. 처음부터 제가 담당하던 작가님이라 다른 사람에게 넘기기도 아쉬워서 이어서 하고 있네요. 이상합니까?”
“아니에요.”
“그나저나 용건은 따로 있으신 듯합니다만.”
그의 직위에 대해 따지러 온 게 아닌데 잠시 정신이 팔렸다.
“혹시 제가 해원이라는 걸 아는 다른 관계자가 있나요? 아니면 실수로라도 흘러나간 경우는 없나요?”
담당자인 그가 범행을 저질렀으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여기서 정보가 누출되지 않았을까 의심하고 있긴 하다.
“저 뿐입니다만. 실수로 정보가 새나가도록 허술한 업무처리는 하지 않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은수 씨?”
“아니에요.”
“말씀해보십시오. 후원 작가에게 문제가 생기면 돕는 것도 저희의 업무입니다.”
“네……. 그림과 관련되었으니 대표님께도 말씀드려야겠네요. 최신작이 없어졌어요…….”
없어졌다고 말하는데 너무 착잡했다. 성훈은 화들짝 놀라서 목소리를 높였다.
“예? 지금 작품을 도난당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보통일이 아니잖습니까! 진작 말씀해주시지 그러셨습니까! 어디 다치지는 않으셨습니까?”
“다치지 않았어요. 그림만 없어진 거예요. 금방 해결될 줄 알았는데 실마리가 잡히지 않네요.”
“그게 언젭니까?”
“벌써 한 달은 된 것 같네요.”
은수의 말에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성훈이 기억을 되살려냈다.
“……그 즈음에 은수 씨에 대해 물었던 사람이 한 명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해원에 대해서요. 마침 제가 직원들 격려차 아래층에 있을 때라 제가 상대했었습니다. 그 사람이 해원을 이 재단에서 후원하고 있냐고 묻더군요.”
해원에 대해 물었다고? 후원하고 있냐고? 그것뿐……?
“그 사람은 우리 재단에서 해원을 후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거의 확신하고 있더군요. 진짜 질문은 언제부터 후원했는지, 였습니다. 숨길 이유도 없어서 5년 전부터라고 말해주긴 했습니다만…….”
그 정도라면 일반적인 대응인데, 성훈의 낯빛이 어두워져 있었다.
“뭔가 걸리는 게 있으세요?
“연락처를 요구하기에 목적을 밝히지 않으면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돌아가더군요. 그 뒤에 그 사람이 준 명함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 은수 씨의 허락을 받은 후라면 괜찮다고 말해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요?”
“없는 번호라더군요. 그 명함에 적인 모든 내용이 가짜였습니다. 그 때는 꺼림칙했지만 한 일이라곤 질문 몇 개라서 그냥 넘어갔는데 잘못된 판단이었군요. 제가 늦게라도 은수 씨에게 연락을 드려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성훈이 허리를 깊이 숙여 사과했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아마도 서른 중반 정도. 재단의 대표가 되기에 젊은 나이긴 해도 은수보다 한 참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다. 은수는 괜찮다고 하며 얼른 그를 일으켜 세웠다.
“아니에요. 그 사람이 범인이라는 증거도 없는데요.”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사과 받아들일게요.”
“대표님, 혹시 그 사람 얼굴은 기억나세요?”
“대략 기억은 납니다만. 몽타주라도 그리실 셈입니까?”
“아뇨. 혹시 이 사람들 중에 있나 싶어서요.”
은수는 스마트폰 앨범을 열어 사진 두 개를 보여줬다. 경찰로부터 얻은 납치미수범들의 얼굴 사진이었다.
“아, 이 사람이었습니다. 기억이 납니다. 여기 올 때는 말쑥한 차림으로 오긴 했습니다만.”
성훈이 가리킨 사람의 얼굴을 다시 확인하고 은수는 생각에 잠겼다.
*
가언의 병실.
가습기가 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병실 문이 열리고 은수가 들어왔다.
“어디 다녀와? 옷에 힘준 거 보니 집에 다녀오진 않았나본데.”
가언의 물음에 코럴 재단에 다녀왔다고 이실직고했다.
“거긴 갑자기 왜?”
“뭐라도 단서가 될 만한 게 없나 해서.”
“혼자 다녀왔어? 위험한데 누구라도 데려가지.”
가언의 수심이 깊어졌다. 겁 없이 행동하는 은수를 어떻게 단속해야 할 지 막막했다. 원래부터 은수와 연관되면 걱정이 많았지만 이번 사건으로 그 걱정이 더 깊어졌다.
“콜택시타고 건물 앞에서 내렸다가 일보고 다시 바로 택시타고 돌아왔어. 조심히 다녀왔으니까 걱정 마.”
은수가 얼른 선수 쳤다. 잔소리가 가언의 턱 끝까지 나왔다가 간신히 기어들어갔다.
“후. 그래서 단서는 찾았어?”
말 안했다 들키면 난리 나겠지? 또 걱정병이 도지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누가 해원을 후원하는지, 언제부터 후원했는지 물었대. 연락처도 물어봤다고 했고.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이 형을 찌른 그 사람이랑 동일 인물이었어.”
“……뭐?”
“그 사람은 거의 한달 전쯤에 재단에 찾아왔다고 했어. 적어도 한 달은 된 이야기라는 소리야. 어쩌면 화가 살인사건의 모방범이 다른 희생자를 찾는 건 아닐까? 네 번째 희생자를.”
“네 번째……?”
똑똑.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은 중민과 미주였다. 중민은 미주가 바리바리 싼 3층 도시락을 들고, 미주는 남편의 팔짱을 낀 채로 들어왔다. 은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도시락을 받아들었다.
“매일 안 들르셔도 되는데.”
“얘는 언제는 내 요리를 하루라도 거르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고 했으면서. 거짓말이었니?”
가언이 죄송한 얼굴로 겸양의 말을 하자 미주가 서운해 했다. 그는 얼른 태도를 바꿔 애교를 떨었다.
“거짓말은요. 어머니가 번거로우실까봐 그렇죠. 지금 침 뚝뚝 떨어지는 거 안보이세요?”
둘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중민이 은수에게 자리를 권했다.
“은수도 간호하느라 피곤할 텐데. 서있지 말고 옆에 앉아라.”
“그런데 둘이 무슨 비밀얘기를 했길래 우리가 오니까 딱 멈춰? 궁금하게. 사랑 얘기?”
“하여간 당신은 그냥 가언이랑 은수 엮지 못해서 안달이지.”
중민의 타박에 미주는 중민을 살짝 흘겨봤다.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면서도 가언은 여느 때와 같이 미소 짓지 못하고 심각한 고민에 잠겨있었다. 그만큼 방금 은수가 던져놓은 폭탄은 여파가 컸다.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가언의 저음이 둘을 부르자 밝았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반전됐다. 그의 음성에 묻어있는 심각성을 알았기 때문이다. 병실에 있는 모두가 가언의 입술에 집중했다.
“아무래도 은수에게 얘기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은수가 너무 위험해지고 있어요.”
뭘? 뭘 숨기고 있는데? 그들의 비밀스런 태도로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건 대충 알았다. 하지만 그게 이렇게 심각해져야만 하는 주제야?
심장이 바쁘게 뛰었다. 믿고 싶었던 그들을 향한 신뢰가 깨져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가언아, 우리가 옳은 선택을 하는 거니?”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어머니.”
미주는 떨리는 목소리로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래……. 다른 방법이 없구나.”
“네 말대로 하마.”
중민이 마른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가언의 목소리가 끝없이 가라앉았다.
“은수야 이리 와봐.”
“뭔데 그래. 괜히 불안하게 왜 폼은 잡고 그래.”
은수는 불안해하면서도 가언의 곁으로 다가갔다. 가언은 서랍을 열어 그 안에서 작은 편지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은수에게 내밀었다.
얼떨떨하게 편지를 받아들었다. 생각과는 다른 전개였다. 편지라니.
“누가 쓴 편진데?”
“읽어봐. 이야기는 그 뒤에 하자.”
은수는 편지봉투를 뒤집어 적혀있는 글씨를 확인했다. 오른쪽 아래 부분에 적힌 가언의 회사 주소와 가언의 이름. 보낸 사람에는 ‘박산호’라는 이름만 적혀있다.
“보내는 사람 주소는 없네? 박산호가 누구야?”
은수의 말에 대꾸하는 사람이 없었다. 의아해하며 가언을 바라봤지만 침잠한 눈빛으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미주는 흐느낄 준비라도 하듯 어깨를 들썩이고, 중민은 씁쓸한 얼굴을 하고 묵묵히 아내를 달랬다.
모두 은수의 행동을 조마조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길래 엄마랑 아빠, 가언 형까지 전부 이상한 반응을 보이지? 이 편지가 뭐라고?
은수는 봉투를 열어 안에 접혀있는 편지지를 꺼냈다. 아무 선도 그려있지 않는 A4용지 한 장. 봉투도 그렇지만 안에 들어있는 편지봉투도 밋밋하기만 했다.
종이를 펼쳐 두 손으로 들고 읽었다.
여비서가 안쪽에서 기다리고 계신다며 문을 열었다.
은수는 비서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대표실은 고풍스러운 책상과 책장, 소파가 놓여있을 뿐 사치스러움은 보이지 않았다. 대표이사 최성훈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어서오라며 편해 보이는 소파로 자리를 권했다.
“안녕하셨어요. 오랜만에 뵙네요.”
“은수 씨가 어쩐 일이십니까? 재단까지 발걸음을 해주시고.”
“잠시 여쭤볼 게 있어서요. 그런데, 정말 대표이사님이시네요. 전혀 몰랐는데…….”
그와는 갤러리나 시상식장에서 주로 만났는데 만날 때마다 너무 짧게 봐서 그런지 말을 섞은 기억도 거의 없었다.
“놀라셨습니까? 해원 작가님 후원과 관련된 업무는 제가 직접 합니다.”
아주 태연한 태도였다. 일부러 숨기진 않았나? 내가 너무 관심이 없었을 뿐인가?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말씀 못 드릴 이유도 없지요. 저희 재단이 세워지고 처음 후원한 학생이 은수 씨였거든요. 그때는 저도 대표이사가 아니었습니다.”
아. 가장 오래 대화한 날이 처음 후원받기 시작한 그날이었다. 초고속 승진을 했단 소린데 계속 나를 담당할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높은 자리에 올라가셨으니 다른 분에게 넘기셔도 되지 않나요? 번거로우실 텐데요.”
“코럴 재단은 돈 버는 회사가 아니라 화가를 지원하는 업무를 하는 문화재단입니다. 대표이사라는 직위도 상징적인 의미가 크죠. 그보다는 그냥 제 고집으로 직접 하고 있을 뿐입니다. 처음부터 제가 담당하던 작가님이라 다른 사람에게 넘기기도 아쉬워서 이어서 하고 있네요. 이상합니까?”
“아니에요.”
“그나저나 용건은 따로 있으신 듯합니다만.”
그의 직위에 대해 따지러 온 게 아닌데 잠시 정신이 팔렸다.
“혹시 제가 해원이라는 걸 아는 다른 관계자가 있나요? 아니면 실수로라도 흘러나간 경우는 없나요?”
담당자인 그가 범행을 저질렀으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여기서 정보가 누출되지 않았을까 의심하고 있긴 하다.
“저 뿐입니다만. 실수로 정보가 새나가도록 허술한 업무처리는 하지 않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은수 씨?”
“아니에요.”
“말씀해보십시오. 후원 작가에게 문제가 생기면 돕는 것도 저희의 업무입니다.”
“네……. 그림과 관련되었으니 대표님께도 말씀드려야겠네요. 최신작이 없어졌어요…….”
없어졌다고 말하는데 너무 착잡했다. 성훈은 화들짝 놀라서 목소리를 높였다.
“예? 지금 작품을 도난당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보통일이 아니잖습니까! 진작 말씀해주시지 그러셨습니까! 어디 다치지는 않으셨습니까?”
“다치지 않았어요. 그림만 없어진 거예요. 금방 해결될 줄 알았는데 실마리가 잡히지 않네요.”
“그게 언젭니까?”
“벌써 한 달은 된 것 같네요.”
은수의 말에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성훈이 기억을 되살려냈다.
“……그 즈음에 은수 씨에 대해 물었던 사람이 한 명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해원에 대해서요. 마침 제가 직원들 격려차 아래층에 있을 때라 제가 상대했었습니다. 그 사람이 해원을 이 재단에서 후원하고 있냐고 묻더군요.”
해원에 대해 물었다고? 후원하고 있냐고? 그것뿐……?
“그 사람은 우리 재단에서 해원을 후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거의 확신하고 있더군요. 진짜 질문은 언제부터 후원했는지, 였습니다. 숨길 이유도 없어서 5년 전부터라고 말해주긴 했습니다만…….”
그 정도라면 일반적인 대응인데, 성훈의 낯빛이 어두워져 있었다.
“뭔가 걸리는 게 있으세요?
“연락처를 요구하기에 목적을 밝히지 않으면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돌아가더군요. 그 뒤에 그 사람이 준 명함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 은수 씨의 허락을 받은 후라면 괜찮다고 말해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요?”
“없는 번호라더군요. 그 명함에 적인 모든 내용이 가짜였습니다. 그 때는 꺼림칙했지만 한 일이라곤 질문 몇 개라서 그냥 넘어갔는데 잘못된 판단이었군요. 제가 늦게라도 은수 씨에게 연락을 드려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성훈이 허리를 깊이 숙여 사과했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아마도 서른 중반 정도. 재단의 대표가 되기에 젊은 나이긴 해도 은수보다 한 참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다. 은수는 괜찮다고 하며 얼른 그를 일으켜 세웠다.
“아니에요. 그 사람이 범인이라는 증거도 없는데요.”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사과 받아들일게요.”
“대표님, 혹시 그 사람 얼굴은 기억나세요?”
“대략 기억은 납니다만. 몽타주라도 그리실 셈입니까?”
“아뇨. 혹시 이 사람들 중에 있나 싶어서요.”
은수는 스마트폰 앨범을 열어 사진 두 개를 보여줬다. 경찰로부터 얻은 납치미수범들의 얼굴 사진이었다.
“아, 이 사람이었습니다. 기억이 납니다. 여기 올 때는 말쑥한 차림으로 오긴 했습니다만.”
성훈이 가리킨 사람의 얼굴을 다시 확인하고 은수는 생각에 잠겼다.
*
가언의 병실.
가습기가 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병실 문이 열리고 은수가 들어왔다.
“어디 다녀와? 옷에 힘준 거 보니 집에 다녀오진 않았나본데.”
가언의 물음에 코럴 재단에 다녀왔다고 이실직고했다.
“거긴 갑자기 왜?”
“뭐라도 단서가 될 만한 게 없나 해서.”
“혼자 다녀왔어? 위험한데 누구라도 데려가지.”
가언의 수심이 깊어졌다. 겁 없이 행동하는 은수를 어떻게 단속해야 할 지 막막했다. 원래부터 은수와 연관되면 걱정이 많았지만 이번 사건으로 그 걱정이 더 깊어졌다.
“콜택시타고 건물 앞에서 내렸다가 일보고 다시 바로 택시타고 돌아왔어. 조심히 다녀왔으니까 걱정 마.”
은수가 얼른 선수 쳤다. 잔소리가 가언의 턱 끝까지 나왔다가 간신히 기어들어갔다.
“후. 그래서 단서는 찾았어?”
말 안했다 들키면 난리 나겠지? 또 걱정병이 도지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누가 해원을 후원하는지, 언제부터 후원했는지 물었대. 연락처도 물어봤다고 했고.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이 형을 찌른 그 사람이랑 동일 인물이었어.”
“……뭐?”
“그 사람은 거의 한달 전쯤에 재단에 찾아왔다고 했어. 적어도 한 달은 된 이야기라는 소리야. 어쩌면 화가 살인사건의 모방범이 다른 희생자를 찾는 건 아닐까? 네 번째 희생자를.”
“네 번째……?”
똑똑.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은 중민과 미주였다. 중민은 미주가 바리바리 싼 3층 도시락을 들고, 미주는 남편의 팔짱을 낀 채로 들어왔다. 은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도시락을 받아들었다.
“매일 안 들르셔도 되는데.”
“얘는 언제는 내 요리를 하루라도 거르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고 했으면서. 거짓말이었니?”
가언이 죄송한 얼굴로 겸양의 말을 하자 미주가 서운해 했다. 그는 얼른 태도를 바꿔 애교를 떨었다.
“거짓말은요. 어머니가 번거로우실까봐 그렇죠. 지금 침 뚝뚝 떨어지는 거 안보이세요?”
둘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중민이 은수에게 자리를 권했다.
“은수도 간호하느라 피곤할 텐데. 서있지 말고 옆에 앉아라.”
“그런데 둘이 무슨 비밀얘기를 했길래 우리가 오니까 딱 멈춰? 궁금하게. 사랑 얘기?”
“하여간 당신은 그냥 가언이랑 은수 엮지 못해서 안달이지.”
중민의 타박에 미주는 중민을 살짝 흘겨봤다.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면서도 가언은 여느 때와 같이 미소 짓지 못하고 심각한 고민에 잠겨있었다. 그만큼 방금 은수가 던져놓은 폭탄은 여파가 컸다.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가언의 저음이 둘을 부르자 밝았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반전됐다. 그의 음성에 묻어있는 심각성을 알았기 때문이다. 병실에 있는 모두가 가언의 입술에 집중했다.
“아무래도 은수에게 얘기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은수가 너무 위험해지고 있어요.”
뭘? 뭘 숨기고 있는데? 그들의 비밀스런 태도로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건 대충 알았다. 하지만 그게 이렇게 심각해져야만 하는 주제야?
심장이 바쁘게 뛰었다. 믿고 싶었던 그들을 향한 신뢰가 깨져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가언아, 우리가 옳은 선택을 하는 거니?”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어머니.”
미주는 떨리는 목소리로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래……. 다른 방법이 없구나.”
“네 말대로 하마.”
중민이 마른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가언의 목소리가 끝없이 가라앉았다.
“은수야 이리 와봐.”
“뭔데 그래. 괜히 불안하게 왜 폼은 잡고 그래.”
은수는 불안해하면서도 가언의 곁으로 다가갔다. 가언은 서랍을 열어 그 안에서 작은 편지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은수에게 내밀었다.
얼떨떨하게 편지를 받아들었다. 생각과는 다른 전개였다. 편지라니.
“누가 쓴 편진데?”
“읽어봐. 이야기는 그 뒤에 하자.”
은수는 편지봉투를 뒤집어 적혀있는 글씨를 확인했다. 오른쪽 아래 부분에 적힌 가언의 회사 주소와 가언의 이름. 보낸 사람에는 ‘박산호’라는 이름만 적혀있다.
“보내는 사람 주소는 없네? 박산호가 누구야?”
은수의 말에 대꾸하는 사람이 없었다. 의아해하며 가언을 바라봤지만 침잠한 눈빛으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미주는 흐느낄 준비라도 하듯 어깨를 들썩이고, 중민은 씁쓸한 얼굴을 하고 묵묵히 아내를 달랬다.
모두 은수의 행동을 조마조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길래 엄마랑 아빠, 가언 형까지 전부 이상한 반응을 보이지? 이 편지가 뭐라고?
은수는 봉투를 열어 안에 접혀있는 편지지를 꺼냈다. 아무 선도 그려있지 않는 A4용지 한 장. 봉투도 그렇지만 안에 들어있는 편지봉투도 밋밋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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