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산호의 이름
조회 : 988 추천 : 0 글자수 : 2,540 자 2022-12-31
가언이 은해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어깨가 맞닿도록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 어깨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마음을 조금은 편안하게 만들었다. 아직 확정된 게 아니었다. 편지에서도 홍지희 화백이 불륜을 저지른 적 없다 하지 않았나.
얼굴이 조금 풀리는 걸 지켜본 가언이 말했다.
“다시 임경태 씨를 찾고 있는 중이야. 시간이 많이 흘러서 기억은 흐릿하겠지만 지푸라기라도 잡아봐야지.”
“편지에서는 사건 당시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고 했는데 그에 대한 증거는 찾아내지 못했다. 수상한 지문이나 족적은 없었고.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이, 그 즈음에 누군가 집에 무단침입을 했다는군.”
“혹시, 그 사건 당시에는 그 무단침입자가 용의자로 몰리지 않았어?”
혁건의 말에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무단침입은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한번 집에 무단으로 들어왔다면 추가 범죄로 이어질 수 있었다. 신고를 했다면 어딘가에 기록이 남아있을 터였다.
“아는 사람이어서 신고를 하지 않고 넘어갔나 봐.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아서 누군지 알 수는 없어.”
기대가 사그라지고 실망이 되었다.
“홍지희 씨 집 근처에 사는 이웃이 그런 소리를 들었다고 했대. 경찰에서도 그 증언을 듣고 무단침입한 사람을 찾으려고 했지. 그런데 다들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정도만 알고 이름이나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네.”
“찾을 방법이 없었겠구나.”
“그리고 워낙 정황이 확실해서 결국은 치정살인사건으로 종결 됐어.”
수상한 정황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대략적인 상황만 알게 된 지금으로선 편지를 보낸 자 말대로 내 친 아버지가 범인이 아니라고 곧이곧대로 믿을 수도 없었다.
“진범이 따로 있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개인적으로 나는, 꽤 높다고 보고 있어.”
가언은 희망적으로 말했지만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한 겉치레 같기도 했다.
“옛날사건의 진범이 나를 납치하려고 했을까?”
“그럴 가능성도 충분해. 최근 네 주변에서 벌어진 일들이 우연으로 생겼다고 하기에는 너무 공교로우니까. 은해 네가 어디에 원한사고 다닐 사람도 아니고.”
“차라리 전에 말한 것처럼 화가 연쇄살인사건의 모방범이라는 가설이 더 신빙성 있겠는데?”
은해와 가언의 대화를 듣던 혁건이 끼어들었다.
“모방범이 나오긴 너무 이르지. 지금 한창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고 화가들도 몸사리고 있을 테니까. 화가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잡히기 전이었다면 공범을 의심해볼 수 있었겠지만 이젠 그것도 아니고. 지금이라면 과거 네 친부모님과 연관된 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다는 가정이 설득력 있지.”
혁건의 설명을 들으니 모방범일 가능성이 낮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그 편지는 도대체 누가 보냈을까요?”
“음.”
“딱히 짚이는 사람은…….”
혁건도 가언도 말끝을 흐렸다. 편지를 보낸 사람을 찾는 것은 삼척 일가족 살인사건의 진범을 찾는 일 보다 더 난해했다.
“어딘가에 살아있는 건 아닐까? 오빠가…….”
사건 현장에 죽어있던 소년은 오빠가 아니라 다른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 누군가 죽어가는 오빠를 살려서 데려가지 않았을까. 나처럼 기억을 잃고 다른 사람으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드라마 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한 가닥 희망을 버릴 수 없었다.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주고 싶지만, 박산호 군은 깊은 자상을 입고 나서 하룻밤이나 방치됐다.”
“살아있다면 기적 정도가 아니라 미스터리겠네요…….”
13살. 그 어린 나이에 칼에 찔리고 나서 그 긴 시간을 살아있을 수는 없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헛된 꿈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말로 할 수는 없었지만 가슴 한구석에 박힌 어리석은 기대를 지울 수는 없었다.
편지를 보낸 사람 이름에 박산호라고 적히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몰랐을 텐데. 이런 기대 하지 않았을 텐데.
“그 당시 상황을 자세히 알고 편지를 쓸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지.”
혁건의 목소리에는 무게가 담겨 있었다.
“도대체 누가요!”
누가 산호의 이름을 사칭해서 편지를 보냈나. 고인을 욕되게 만드는 행동이라는 걸 알면서!
이어지는 혁건의 말에 심장이 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범인.”
편지를 보낸 사람이 범인이라면 홍지희 화백의 결백을 믿고 있는 것도 진주라는 이름을 알고 있는 것도 다 설명할 수 있었다.
“범인이 보냈을까요? 저도 그 가정, 해보긴 했습니다. 하지만 잡힐 위험을 감수하고 편지를 보낸 이유를 도무지 짐작할 수가…….”
가언이 말을 가만히 듣기만 했다. 은해도 그의 말에 동의했다. 자신을 제거하고 싶었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상태로 처리하는 편이 쉬울 것이다.
“우리와 최후의 숨바꼭질을 하는 스릴을 즐기고 싶은지도 모르지. 진범이 따로 있다면 그 자는 평범한 사람이라곤 할 수 없어. 일가족을 살해하고 피해자중 한 명을 범인으로 몰다니. 우리가 그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을 거다.”
범죄자의 심리를 일반인이 이해하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한 명도 아니고 무려 3명을 죽인 범죄자의 심리는 더욱 더.
“아니라면 우리가 모르는 목격자가 있을 수도 있지.”
다른 목격자가 있었다면 왜 그때 증언하지 않은 걸까. 왜 이제와서 편지를 보낸 걸까. 그것도 산호의 이름을 빌려서.
은해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혁건은 사건을 파고들수록 착잡해졌다. 가언은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듯이 천천히 말을 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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