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고려가 슬슬 나라 꼴을 갖추어나가자 위기감을 느낀 김군자는 정략결혼을 제시했다. 김군자는 아직 20대 극 초반이었고 결혼한 경력도 없었으며 구 일본, 현 만제의 각성자 중 가장 등급이 높은 자였다. 게다가 아무리 한민족이 현 유라시아 대륙에서 가장 잘나가는 전투민족이라지만 일본의 인구가 한민족보다 월등히 많았으므로 정영수도 일본을 무력으로 침략하기보다 양국의 왕가를 합치는 방식으로 평화적인 통일이 더 낫다고 생각하여 이를 승인하였다. 국혼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황제 부부는 1년 중 6개월은 후고려의 수도인 계룡 특별시에서, 1년 중 6개월은 만제의 수도인 교토에서 지내기로 합의하였다. 그런데 특이한 일이 벌어졌다. 어느 날 정영수가 계룡 특별시장인 정바둑을 계룡 특별시에서도 가장 좋은 곳에 있는 황궁으로 불러낸 것이었다. 정바둑은 정영수의 침실 중 하나로 불려 갔다. 그리고 의식을 잃었다. 깨어나 보니 정바둑은 김군자와 한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것도 둘 다 옷을 입지 않고 이불만 덮고 있었다. 정바둑은 김군자의 상태를 살폈다. 김군자는 눈을 뜨고 있었지만, 환각 스킬에 걸려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정바둑은 혹여나 누군가에게 들킬까 봐 얼른 옷을 챙겨입고 침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니,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분명 복도로 향하는 문을 열고 나갔는데 정바둑이 들어온 곳은 고태제 정영수의 집무실 중 하나였다. 정바둑은 혹여나 자기가 황후인 김군자와 같이 누워있었던 것을 이미 들켰을까 봐 매우 긴장했다. 정영수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정영수가 바로 정바둑과 김군자에게 정신계열 스킬을 걸어둔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바둑은 성좌 나으리에게 하사받은 영혼이 있었으므로 정신계 스킬에 내성이 생겨 있었고, 그래서 정영수의 계산보다 훨씬 빨리 정신을 차리고 만 것이었다. 정영수는 한숨을 쉬며 동의를 구했다. 전쟁 도중 다치는 바람에 남성의 기능을 상실했지만 차마 공표할 수 없었으니 앞으로도 정신계 스킬에 걸린 김군자와 잠자리를 같이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정바둑은 0.1초도 망설이지 않고 승낙했다. 희희낙락하는 것은 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