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 각성하다(수정)
조회 : 1,047 추천 : 0 글자수 : 1,393 자 2022-12-01
살인 혐의로 수배된 정영희라는 사내가 있었고, 그가 각성했다. 그는 21세기 중반에 다시 일본의 식민지가 된, 예전에 남한 혹은 대한민국이라고 불리던 곳에서 탄생한 자였다. 그는 내지인, 즉 일본인들이 말하는 소위 '조센징'이면서도 일본인을 살해하고 도망쳐 수배범이 된 자였다. 그는 계룡산 중턱까지 이어진 빈민가, 그중에서도 집창촌 출신이었고, 그가 숨어든 곳은 계룡산 깊은 골짜기였다. 등산객도 오지 않고, 누군가 온다면 약초꾼이나 올 법한 곳에서, 그는 숨어 살았다. 정영희가 내지인을 살해한 것은 초여름이었고 정영희는 한반도 남부가 아직 남한이라고 불릴 무렵 농업과 식물학을 전공했고 서바이벌이 취미였던 사내였다. 치열하게 숨어 살며 아는 식물로 간신히 끼니를 연명하는 그에게 가장 걱정되는 것은 겨울나기였다. 옷도 너무 얇았고, 그가 숨어 사는 동굴은 차디찬 겨울을 나기에는 너무 열악한 곳이었다. 안전하고 좋은 동굴에서는 살 수 없었다. 웅담이 그렇게 인기를 끌었는데도 불구하고 끈덕지게 멸종하지 않은 곰이 그곳의 주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정영희에게는 비축해둔 식량마저 없었다. 거의 2미터에 가까운 장신은 엄청난 열량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산에서 찾을 수 있는 먹을거리가 거의 없기도 해서였다. 계룡산 중턱까지 올라온 빈민굴에서 뭔가를 훔쳐오는 것도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왜놈, 그것도 일본군 소속을 죽인 정영희를 어느 정도 자랑스럽게 여기던 빈민가에서는 약간의 도둑질을 너그러이 넘겼고, 정영희가 원래 살던 집에서 짐을 가져가는 것 정도는 목격자가 분명 있었음에도 헌병경찰에 알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정영희의 도둑질이 몇 개월 넘게 계속되자 본디 자기들 먹고살 것도 없는 그들의 마음이 돌아선 것이다. 결국, 빈민굴까지 헌병경찰이 기어들어 순찰을 하게 되었고, 정영희는 도둑질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겨울도 문제지만 소금도 문제였다. 무언가를 잡아먹지 않고서는 염분을 채울 수 없었는데, 날이 추워지면서 그나마 먹을 곤충들마저 싹 사라졌고, 정영희는 키가 크고 살집이 좋았지만, 몸무게 대부분은 지방이었으므로 느리기 짝이 없는 사내였다. 사냥은 불가능했다. 그물도 없고 낚시에도 재주가 없어서 물고기를 먹는 것도 불가능했다. 정영희는 사형이 내려지지 않고 감옥살이로 끝낼 수 있으면 자수할 생각마저 있었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식민지 주민이 감히 본국 군인을 살해한 일이다. 무조건 사형, 그것도 공개처형이 될 것이 뻔했다. 외통수에 걸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그에게 갑자기 행운의 여신이 러브콜을 보내온 것이다. 정영희는 각성자가 되었다. 각성자에 대해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거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감형되거나 사면될 수 있다. 각성자는 귀중한 자원이니 말이다. 심지어 정영희의 등급은 SSSSS+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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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도망자, SSSSS+급 각성자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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