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현대병원 정문 앞 사거리 카페.
쇼윈도 앞 좌석에 앉은 여자가 두 손으로 머그컵을 쥐어들고선 쇼윈도 너머를 바라본다.
머그컵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폰을 살짝 들어 시간을 확인한다.
- 그래, 지금 시간은 12시 48분. 이제 시작이네?
긴 생머리를 어깨 한 쪽으로 넘겨 앞으로 빼낸 뒤 갑자기 영어 원서를 들어올리는 여자.
아니나 다를까, 3~4명 무리의 남자들이 카페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책을 굳이 허공에 들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책 표지를 볼 수 있게 노출하는 여자.
주문을 마친 3~4명의 무리가 자기들끼리 웃고 얘기하다 여자를 발견하고,
말문을 잃는 마법에 걸린 듯 입을 다물고 그녀의 주변으로 끌리듯 다가간다.
심지어 한 명은 눈빛이 멍하고 그윽해졌다.
- 걸렸어... 뜨거운 눈길이 느껴진다. 1단계 성공!
여자는 절대 자신을 쳐다보는 눈길에 맞대응을 하지 않는다.
- 즐길 수 있을 만큼 즐겨.
처음엔 두 눈에 나를 담아 천천히 각인시킬 수 있게 시간을 주는 게 낫다.
나까지 쳐다보면 당황하고 부끄러워서 주눅이 들테니까?!
남자들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지만 사실 대답을 요하는 대화가 아니다.
대화의 목적과 의미는 이미 소실. 관심은 오로지 옆 쪽에 앉은 그녀다.
연갈색 긴 생머리, 하얗고 뽀얀 피부, 갈색 동공, 버선코를 연상시키는 코, 그리고 조그마한 붉은 입술.
연예인 지망생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청초한 이미지의 그녀.
이 여자를 위해서라면 두 어깨에 가장의 무게를 얹어도 거뜬할 것 같...
"음료 4잔 나왔습니다!"
카페 점원의 우렁찬 목소리가 마녀가 쳐놓은 결계와 금사빠 남자들의 착각을 동시에 깬다.
갑자기 정신을 차린 무리가 멋쩍은 듯 픽업대로 가 음료를 받고는 카페를 나선다.
그 중 두 명은 출입문이 그녀의 얼굴에 있는 듯 고개가 돌아가면서까지 끝까지 야무지게 그녀를 쳐다보다 나갔다.
- 성,공!
그녀는 가방에서 다이어리를 꺼내 기록을 하기 시작한다.
12시 50분~ 12시 58분 광현대병원 스박 4명 유효 50% 1
자, 서둘러야지.
이제 금융권의 꽃 여의도쪽으로 이동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