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너네 어떻게 친해진 거야?”
갑작스러운 물음이었다.
지원은 두 눈을 깜빡이며 슬쩍 자신을, 그리고 승호를 가리켰다. 혹시 우리 말하는 거야? 흡사 그렇게 묻는 듯했다.
질문을 한 같은 반 친구, 성훈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원이 이렇게 바보 같이 알아듣지 못하는 애는 아니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그렇게 특별한 건 아니었어.”
지원은 곰곰이 회상에 잠겼다.
솔직히 말하자면 두 사람이 가까워진 이유는 별거 아니었다.
처음으로 자리를 바꾸기 시작했을 때, 아마 3월 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원은 자신의 앞에 앉은 승호를 보며 덩치 엄청 큰 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굳이 말을 걸지 않았다.
말을 걸 이유는 없었으니까.
이유가 없으면 굳이 말을 안 해도 된다. 지원과 승호는 그 흔한 인사조차 하지 않은 채 그저 수업을 들었다.
처음으로 대화한 것도 중국어 쪽지 시험할 때였다.
앞좌석에서 작게 자른 A4 용지를 나눠줘야 하는데, 지원은 받지 못했다.
‘야.’
‘어?’
‘나 종이 안 줘?’
‘없는데?’
……놀랍게도 그게 첫 대화였다.
승호는 자기가 마지막이었다는 듯 한 장밖에 없는 종이를 팔락이며 보여주었다. 지원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왜?
당연히 이런 일을 참을 지원이 아니었다. 승호에게 종이가 없다는 걸 확인한 지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중국어 쌤에게 말했다.
‘쌤! 저 종이 못 받았어요!’
‘어? 아…….’
그 이후로 변명 비슷한 걸 들었다.
대충 승호가 너무 큰 탓에 그 뒤에 있었던 지원이 안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깜빡 잊었다고…….
어이가 없는 사유였지만, 지원은 무사히 종이를 받을 수 있었다. 중국어 쌤이 종이를 넉넉하게 준비해서 참 다행인 일이었다.
쪽지 시험이 끝나고, 지루한 중국어 수업이 끝난 직후였다.
지원은 대뜸 승호에게 말을 걸었다.
‘야.’
‘너 내 이름 몰라?’
‘대충 몰라도 대화는 할 수 있잖아.’
틀린 말은 아닌데, 그래도 상대방의 이름은 알아야 하지 않아?
성훈은 그렇게 말한 걸 꾹 참았다.
여기서 지원에게 그런 말을 했다가 오히려 이야기를 듣지 못할 수 있다. 승호는 말해주지 않을 거 같았다.
‘진짜 내가 네 덩치에 가려져서 안 보인다고 생각해?’
‘뭔 소리야.’
‘아니! 쪽지 시험 때 나만 종이 못 받은 거! 진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내가 좀, 좀, 작은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라고 자부할 수 있는데!’
‘……그걸 왜 나에게 말해.’
‘그야 내가 너랑 얽혔으니까.’
아이고, 역시 남지원.
이름도 모르는 상대방에게 불평부터 늘여놓았구나.
의외인 점이 있다면 승호는 그런 지원의 말에 진지하게 받아주었다고 한다. 대충 눈대중으로 서로의 체격 차를 비교하고, 지나가던 애 한 명에게 부탁해서 진짜 중국어 쌤이 못 봤을 가능성을 체크했다.
굳이 그 정도로 해야 할 일이었나, 그게?
당연히 성훈도 같은 반이었기 때문에 지원이 말한 쪽지 시험 때 있었던 일을 알았다. 하지만 곧장 쉬는 시간에 다른 반 애들에게 찾아갔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몰랐다.
참…… 정성이구나.
“그게 끝이야?”
“그거 외에 뭐가 필요해? 그러다가 의외로 잘 맞는 구석이 있어서 계속 친해졌다, 이런 거지.”
“아, 그래…….”
성훈은 슬쩍 승호를 보았다.
이야기의 당사자면서 꿋꿋하게 아무 말이 없는 게 어색하지 않았다. 만약 말이 많았다면 오히려 이상하게 보지 않았을까?
성훈은 턱을 괸 채 승호를 보았다.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시선에 그제야 승호가 몇 박자 늦게 반응했다.
“왜.”
“아니, 굳이 남지원 말을 그렇게 들어줄 이유가 있나, 싶어서.”
“들어주면 안 되는 거야?”
“들어줄 이유도 없잖아.”
“야! 본인 앞에서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언제나 그렇듯 지원이 소리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승호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말이 없어졌다가, 입을 열었다.
“근데 그거 말고도 하나 더 있었어.”
“어?”
“수학여행 때 말야.”
“아~.”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성훈은 전혀 이야기 흐름을 예측하지 못했다.
4월 초에 수학여행을 다녀오긴 했다. 근데 거기서 또 무슨 일이 있었다고? 성훈은 자연스럽게 수학여행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여기서 두 사람이 친해졌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