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월/xx일 목요일의 일기



오늘도 K오빠는 여전히 대본 연습을 하셨다. 미니 대본은 신의 한 수였다며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어제 한 고생 따위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나도 오전에는 빨래며, 청소며, 밑반찬 만들기 등 밀린 집안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오후에는 K오빠가 대본 연습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내가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봤는지 오빠가 말을 걸어왔다.

“왜 그렇게 봐? 또 같이 하고 싶어졌어?”
“아니요! 절대요!”
“하하하, 정색하기는. 알았어. 안 시킬게. 근데 구경하면 재밌어?”
“네, 재밌어요. 신기하기도 하고요. 어쩜 그렇게 잘 하세요?”

내 칭찬에 K오빠는 조금 부끄러운 듯 딴청을 피우더니 어제 일이 생각났는지 조금 웃었다.

“잘 하긴, 그냥 겨우 배우 소리 들을 정도로만 하는 거지. 풋, 하긴. 나도 어제 네가 어떻게 그렇게 하나 신기하긴 했어.”
“...배우님께 그런 소리도 다 듣고 참으로 영광입니다.”
“농담이야, 하하.”

그러더니 다시 대본 연습을 시작하셨고 나도 오빠가 보지 말란 말씀은 안 하셨기에 사양 않고 계속 구경했다. 진지한 러브신 장면이어서 한창 흥미진진하게 구경하고 있었는데 자꾸 오빠가 이쪽을 신경 쓰는 기색이 느껴졌다. 역시 러브신 연기 중에 보는 건 부담스러우신 걸까 싶어서 책을 꺼내들고 딴 일을 하려는 척하는데 K오빠가 날 불렀다.

“네? 오빠, 왜요?”
“있잖아, 혹시 말야.”
“네?”
“나...지금 좀 웃겨?”
“예? 뭐가요?”

웃기다니, 무슨 말씀이실까? 나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K오빠는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 주저하며 말을 이었다.

“아니, 지금 되게 진지한 장면인데 내가 너무...”
“?”
“조그맣잖아.”
“...풉.”

오빠의 귀여운 말에 나는 참지 못하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죄송스러웠지만 그 순간 K오빠의 절망에 찬 표정이 참으로 볼만했다.

“아하하하, 아니요, 안 웃겨요.”
“거짓말, 웃고 있잖아!”
“하하하, 아니 이건 그래서 웃는 게 아니고 오빠가 조그맣다고 진지하게 말하는 게 너무 웃겨서, 푸하하하.”
“아아, 그래, 미안하다! 조그만 애가 진지하게 말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