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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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아무 말도 안 하고 뚫어져라 쳐다봤다.
'미친 놈. 왜 자는 사람 쳐다보다가 일어나도 계속 말없이 쳐다봐?'
그래도 방계인 나랑 달리 직계인 놈이라 내가 먼저 굽히고 들어가야만 했다.
"하하하. 오랜만에 보네, 사촌. 그간 잘 지냈나?"
"마음에도 없는 소리하고 있네. 그러지 말고 편하게 말해."
'이게 미쳤나? 인사를 했으면 받아줘야지, 사회생활할 줄을 몰라. 이러니까 니들이 무시당하지. 한심한 놈.'
속으로 욕하다가 참고 넘어가기로 했다. 미래의 바너빌 가주가 아닌 세이더 가난뱅이들이 대신 나타났다면 나았을 것이다. 적어도 저 놈들에겐 화풀이를 하고 뒷말 걱정을 안 해도 된다. 그런데 아인에게 그랬다간 뒷말은 물론이고 아버지에게까지 소식이 들어갈 게 뻔하다.
"드레스 고르러 왔나 보네. 파트너는 있어?"
아. 무도회 가기 싫어서 그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2주 전부터 들어온 파트너 신청들 다 거절했는데 이제 와서 어디서 구할까?
"아니. 없어."
"그럼 나랑 갈래? 나도 없어."
잘못 들은 것 같다. 뭐하러 얘가 나와 함께 가려고 하지?
"응? 뭐라고?"
"이번 무도회 파트너가 되어주면 고맙겠어. 같이 갈래?"
"나랑 왜 가려고 하는 거냐. 너 약혼도 했잖아."
나와 똑같이 옅은 금발을 가진 아인은 그 말에 살짝 굳었다.
"결혼 전까진 가족 아니야. 그리고 넌 내 가족이야. 당연히 널 먼저 챙길 수밖에 없지."
헬레나와 아인은 15살에 약혼했다. 헬레나는 아인에게 아주 지극정성이었지만 반대로 이 놈은 헬레나에게 잘해주지 않았다. 좋게 말하면 자유롭게 하게 두었고, 솔직하게 말하면 무심했다. 정말 쓰레기 같다고 여러 번 생각했는데, 오늘도 그 생각이 들었다.
"파트너는 알아서 구할게. 넌 네 약혼녀나 신경 써."
"제대로 되지 않은 놈을 파트너로 세우면 분명 뒷말 나와. 그러지 말고 나와 함께 가지?"
"그만해 인마! 아무리 헬레나가 싫어도 그러면 안 돼. 음쓰처럼 살지 말고 회개해라~"
짜증나는 사촌 아닌 사촌 놈에게 날 구해줄 지옥의 주둥아리가 마침내 잠에서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