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2부] 바보같이, 내가 다 망쳐버렸어. (by. 율리어스)
조회 : 601 추천 : 0 글자수 : 4,730 자 2024-05-11
율리어스는 속으론 내심 즐거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예비 여동생 앞에서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막상 나타나 반기면 이상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걸 당연할 것 같았고 더불어 예비 여동생이 무서워하거나 피하지만 않으면 다행이지 않을까 싶은 조바심마저 들었다.
그런 마음에 정원 쪽에서 소녀가 저택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조각상 근처에 꼭꼭 숨어선 그림자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저벅…. 저벅?
‘발소리?!’
율리어스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자신 이외의 사람들은 그녀들을 반강제적으로(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고용인들이 한두 명은 아닐 것으로 어림짐작해 보고 있다) 떨떠름하게 맞이하는 게 지금의 실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며 인기척조차 느껴지는 건지….
율리어스는 바짝 긴장했다.
‘어서 저택 안에나 들어갈 것이ㅈ……….’
동상 뒤에 숨어 살짝 흘겨본 소년의 눈에는 어쩔 수 없이 정원 쪽을 맴돌며 다가오는 몇몇 고용인들과 소녀가 보였다.
흠칫.
순간적으로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내심 율리어스는 덜컥했지만, 소녀의 눈은 전혀 소년을 보고 있지 않았다.
혼자 동시에 마주쳤다고 착각한 것을 그렇게 생각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이건 생각해보지도 못한 전개였다.
‘쟨 겁…. 아니, 긴장감도 없나?’
생전 처음 와 보는 귀족가의 저택에 오자마자 하는 행동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집사의 뒤나 잘 따를 것이지….’
먼발치에서 보니 오히려 집사가 조금은 진땀을 빼며, 어쩔 수 없이 정원을 구경시켜 주는 꼴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겉으로 보기엔 소녀는 별 내색 없이 눈동자만이 정원의 맺혀 있는 꽃망울처럼 반짝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고작 밟으면 금방 으스러지는 풀떼기가 뭐가 좋다고,’
툴툴대며 입을 빼죽 내밀어 대던 소년은 그 와중에도 소녀를 유심히 쳐다 보면서 눈을 쉽사리 떼지는 못했다.
“^&%$%##%##%^#$#%#$%”
“(^&*^*$#$………*(&%^$(*(&*&%&$.”
‘큭. 뭐라는 건지. 하나도 안 들리네,’
분명 그녀들과 고용인들은 무슨 대화하고 있었지만, 율리어스는 그 내용은 들을 수 없었다.
아니,
들리지 않는 게 정답에 가까웠다.
나중에 와서 느낀 거지만 소녀의 목소리는 모기가 앵앵거리듯 아주 작아서 가까이 바싹 붙지 않는 이상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고용주들도 어느 정도 소녀에게 밀착하거나 소녀의 어머니를 통해 대신 이야기를 전달받아 대화를 주도 하는 수밖엔 없었다.
‘아니. 저 아주머니 이야기는 별 관심 없다고. 난.’
조금은 아쉬웠다.
잘하면 망할 아버지보다 예비 여동생의 목소리도 먼저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 기회는 고스란히 날아가 버렸다.
그 어느 때보다 독점욕이 강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정원에서도 조금은 그 마음을 참지 못하고 은근슬쩍 자연스러운 연출(?)을 하며 튀어 나가고 싶었다.
‘뭐 생각 같아선 예비 여동생이 망할 아버지를 뵙기 전에 여기서라도 당장……….’
튀어나오고 싶고, 선수를 치고 싶었다.
하지만…….
‘참자.’
조금만 더 지켜보기로 하며 한 발 물러섰다.
‘내 이미지가 있지. 크흠흠.’
첫인상부터 소녀에게 정원에서 숨어 있다가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이상한 인간으로 낙인찍히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그렇게 또 소년은 인내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저벅………저벅저벅.
발소리는 이내 멀어져가고 있었다.
소녀가 정원 구경을 마친 듯 발길을 다시 돌렸다.
‘휴,’
일단 여려 잡념이 드는 사이로, 들키지 않을걸로 고개를 돌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끼이이이이.
탁!
율리어스는 소녀가 저택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닫히는 걸 끝까지 지켜보고 나서야 유유자적한 걸음으로 정원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주위를 내심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네.’
자기 자신에게 하는 무미건조한 말투였다.
하지만 그건 안전하다는 것을 뜻했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끼…. 끼익 끼익.
율리어스는 소녀가 들어간 지 아주 조금은 시간 차이를 두고 닫혀져 있는 저택 안의 문을 조심히 열었다.
‘조금만 더 지켜보는 거니까.’
따라붙는 건 포기하지 않았다.
아직 말도 붙일 타이밍도 정하지 못한 마당이었지만 어떻게든 아버지보다는 먼저 자신을 소녀에게 보이고 싶은 건 여전했다.
탁.
문을 최대한 조용히 닫았다.
평소보다 눈치를 살피며 살금살금 안으로 들어온 소년의 모습은 왠지 도둑의 모습을 연상했다.
‘이제 빨리 뒤를 쫓아가지 않………어?’
그리고 그사이로 눈에 선할 정도로 아주 익숙한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보였다.
율리어스는 다급히 열린 문을 살며시 닫으며 한사코 바삐 빠른 걸음으로 구석진 곳으로 몸을 맡겼다.
‘저 아저씨는………레이콜드먼 집사 아저씨?’
집사 아저씨의 모습을 보자 소년은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니, 집사 아저씨가 왜 저기 있는….’
이 상황이 덜컥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들은 아버지의 명령으로 손님이란 신분으로 저택으로 불러들여진 것 맞았다.
하지만 먼저 손님의 입장으로 온 순간, 그녀들은 저택의 객실로 가는 게 순서였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미 그녀들은 객실로 가는 곳과는 전혀 반대 방향의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 방향은 가주의 서재로도 이어진 계단이었다.
그리고 이 시간이면 아버지가 서재에서 사무를 보고 있을 시간도 아니었는데,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안 되겠어.’
율리어스는 이번엔 뭐라는 지 꼭 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치 도둑고양이처럼 날세게 움직여 계단 아래로까지 바로 밀착했다.
‘여기면 들리겠ㅈ……….’
“가주님께서 들이라 하십니다,”
들렸다.
집사 아저씨의 지긋하면서도 나긋나긋한 목소리였다.
정원 때와는 달리 아주 밀착한 만큼이나 귀에 쏙쏙히 들려왔었다.
‘자, 잠시만. 아무래도 뭔가 이상한 거 같아.
이 시간에 그 일 중독자 아버지가 서재에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들인다고!?’
율리어스의 초점으로 해서 망할 아버지가 분명 서재에 있을 시간도 아닌데 서재에 있다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평소와 전혀 다른 행동을 보이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힘들어졌다.
‘대체 무슨 생각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네. 이 망할 아버지가.’
어느새 소년의 얼굴엔 소녀를 마냥 쫓던 장난기 섞인 표정은 사라지고 어딘가 불쾌해 까지 보였다.
어둡게 일그러져 가고 있었다.
‘큭. 참는 김에 조금만 더 참아 보자.’
이미 참기 힘들어 보이는 역력한 표정이었지만 억지로나마 다시 귀를 기울여 그와 그녀들의 대화를 경청했다.
“네…. 콜록. 감사합니다. 레이콜드먼 집사님.”
소녀의 어머니는 가까이 보니, 낯빛이 창백해 보이면서 어딘가 아파 보였다.
기침을 참으며 하는 그녀의 대답은 기운이 없어 보임에도 집사 아저씨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가 담긴 제스처를 취했다.
‘뭐. 내가 알 바는 아니지만. 평민 주제에 나름 할 건 다 하네.’
소년은 여전히 소녀의 어머니에겐 관심이 없었다.
“이, 이러지 마십시오.
이게 저의 직무이며, 가주님께서 내리신 분부를 그대로 전해드린 것뿐입니다.”
소년은 예상한 답변이라는 저절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집사 아저씨라면 저렇게 대답하고도 남……아, 아 자, 잠시만?’
자기 귀를 의심했다.
결국 이대로는 모든 게 망할 아버지의 뜻대로 흘러간다는 것이었다.
율리어스의 계획대로라면 객실에 먼저 묵어어야 할 예비 여동생을 자신이 먼저 볼 수 있었을 건데…….
그 계획이 망할 아버지의 생각지도 못한 돌발행동에 틀어지고 있었다.
훅, 훅!
‘그럴 수야 없지.’
이번만큼은 포기하지 않을 심산인 듯 소년의 콧김이 거세졌다.
‘내 마음에 든 만큼 내가 먼저라고. 이 망할 아버지!’
율리어스는 더 이상 계단 아래쪽에 숨어 있을 필요가 없었다.
이제 이대로 무작정 나가 아버지보다 선수를 먼저 치면 그만이었다.
잠시 집사와 그녀들 사이에 약간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는 사이 율리어스는 계단 아래가 아닌 바로 그녀들 뒤로 다가가고 있었다.
‘아…. 그런데 막상 뭐라고 하면 되는 거지?’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걸 소년은 그제야 뒤늦게 깨달았다.
사실 열 살이 되도록 돌아가신 어머니 이외에 제대로 말을 편하게 걸어본다거나 대화를 1분 이상도 나눠본 적이 없었다.
‘미치……겠….’
“어서 들어가 보ㅅ……….”
‘헉!’
아주 다급해져 버렸다.
지금 그녀들 앞에 나타나 자기 존재를 먼저 알리지 않는다면 예비 여동생마저도 간교한(?) 아버지에게 넘어가 빼앗기고 말 거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소년은 그만 저질러 버렸다.
【 누가 함부로 들어가도 된다고 했지? 】
말과 행동. 그리고 자신이 자아내야 할 평온한(?) 분위기는 침착함을 잃어 버린 지 오래였다.
완전히 다 제각기 논 듯한 험악하고도 무거운 언사가 튀어나와 버리고 말았다.
그건 이미 지극히 평범한 열 살짜리의 언행이 아닌 그 뒤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벌벌 떠는 집사 아저씨.
얼굴에 핏기 하나 돌지 않은 채 새파랗게 질려 버린 소녀.
‘망했다.’
그것도 첫 만남부터 좋은 인상은커녕…….
긴 대화가 이어짐에 불구하고 소년은 생각한 만큼이나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언행 불일치.
무엇보다 간과했던 점이 상대가 여자, 어린 소녀라는 생물이 문제였다.
‘이…. 아…으……….’
처음으로 소녀 앞에서 소년은 자기 자신이 정말 한심스러운 인간으로 느껴지는 일순간을 겪어야만 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론 아주 심각하면서 철저하게 모든 걸 망쳐 버렸다.
막상 나타나 반기면 이상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걸 당연할 것 같았고 더불어 예비 여동생이 무서워하거나 피하지만 않으면 다행이지 않을까 싶은 조바심마저 들었다.
그런 마음에 정원 쪽에서 소녀가 저택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조각상 근처에 꼭꼭 숨어선 그림자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저벅…. 저벅?
‘발소리?!’
율리어스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자신 이외의 사람들은 그녀들을 반강제적으로(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고용인들이 한두 명은 아닐 것으로 어림짐작해 보고 있다) 떨떠름하게 맞이하는 게 지금의 실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며 인기척조차 느껴지는 건지….
율리어스는 바짝 긴장했다.
‘어서 저택 안에나 들어갈 것이ㅈ……….’
동상 뒤에 숨어 살짝 흘겨본 소년의 눈에는 어쩔 수 없이 정원 쪽을 맴돌며 다가오는 몇몇 고용인들과 소녀가 보였다.
흠칫.
순간적으로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내심 율리어스는 덜컥했지만, 소녀의 눈은 전혀 소년을 보고 있지 않았다.
혼자 동시에 마주쳤다고 착각한 것을 그렇게 생각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이건 생각해보지도 못한 전개였다.
‘쟨 겁…. 아니, 긴장감도 없나?’
생전 처음 와 보는 귀족가의 저택에 오자마자 하는 행동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집사의 뒤나 잘 따를 것이지….’
먼발치에서 보니 오히려 집사가 조금은 진땀을 빼며, 어쩔 수 없이 정원을 구경시켜 주는 꼴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겉으로 보기엔 소녀는 별 내색 없이 눈동자만이 정원의 맺혀 있는 꽃망울처럼 반짝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고작 밟으면 금방 으스러지는 풀떼기가 뭐가 좋다고,’
툴툴대며 입을 빼죽 내밀어 대던 소년은 그 와중에도 소녀를 유심히 쳐다 보면서 눈을 쉽사리 떼지는 못했다.
“^&%$%##%##%^#$#%#$%”
“(^&*^*$#$………*(&%^$(*(&*&%&$.”
‘큭. 뭐라는 건지. 하나도 안 들리네,’
분명 그녀들과 고용인들은 무슨 대화하고 있었지만, 율리어스는 그 내용은 들을 수 없었다.
아니,
들리지 않는 게 정답에 가까웠다.
나중에 와서 느낀 거지만 소녀의 목소리는 모기가 앵앵거리듯 아주 작아서 가까이 바싹 붙지 않는 이상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고용주들도 어느 정도 소녀에게 밀착하거나 소녀의 어머니를 통해 대신 이야기를 전달받아 대화를 주도 하는 수밖엔 없었다.
‘아니. 저 아주머니 이야기는 별 관심 없다고. 난.’
조금은 아쉬웠다.
잘하면 망할 아버지보다 예비 여동생의 목소리도 먼저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 기회는 고스란히 날아가 버렸다.
그 어느 때보다 독점욕이 강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정원에서도 조금은 그 마음을 참지 못하고 은근슬쩍 자연스러운 연출(?)을 하며 튀어 나가고 싶었다.
‘뭐 생각 같아선 예비 여동생이 망할 아버지를 뵙기 전에 여기서라도 당장……….’
튀어나오고 싶고, 선수를 치고 싶었다.
하지만…….
‘참자.’
조금만 더 지켜보기로 하며 한 발 물러섰다.
‘내 이미지가 있지. 크흠흠.’
첫인상부터 소녀에게 정원에서 숨어 있다가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이상한 인간으로 낙인찍히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그렇게 또 소년은 인내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저벅………저벅저벅.
발소리는 이내 멀어져가고 있었다.
소녀가 정원 구경을 마친 듯 발길을 다시 돌렸다.
‘휴,’
일단 여려 잡념이 드는 사이로, 들키지 않을걸로 고개를 돌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끼이이이이.
탁!
율리어스는 소녀가 저택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닫히는 걸 끝까지 지켜보고 나서야 유유자적한 걸음으로 정원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주위를 내심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네.’
자기 자신에게 하는 무미건조한 말투였다.
하지만 그건 안전하다는 것을 뜻했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끼…. 끼익 끼익.
율리어스는 소녀가 들어간 지 아주 조금은 시간 차이를 두고 닫혀져 있는 저택 안의 문을 조심히 열었다.
‘조금만 더 지켜보는 거니까.’
따라붙는 건 포기하지 않았다.
아직 말도 붙일 타이밍도 정하지 못한 마당이었지만 어떻게든 아버지보다는 먼저 자신을 소녀에게 보이고 싶은 건 여전했다.
탁.
문을 최대한 조용히 닫았다.
평소보다 눈치를 살피며 살금살금 안으로 들어온 소년의 모습은 왠지 도둑의 모습을 연상했다.
‘이제 빨리 뒤를 쫓아가지 않………어?’
그리고 그사이로 눈에 선할 정도로 아주 익숙한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보였다.
율리어스는 다급히 열린 문을 살며시 닫으며 한사코 바삐 빠른 걸음으로 구석진 곳으로 몸을 맡겼다.
‘저 아저씨는………레이콜드먼 집사 아저씨?’
집사 아저씨의 모습을 보자 소년은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니, 집사 아저씨가 왜 저기 있는….’
이 상황이 덜컥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들은 아버지의 명령으로 손님이란 신분으로 저택으로 불러들여진 것 맞았다.
하지만 먼저 손님의 입장으로 온 순간, 그녀들은 저택의 객실로 가는 게 순서였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미 그녀들은 객실로 가는 곳과는 전혀 반대 방향의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 방향은 가주의 서재로도 이어진 계단이었다.
그리고 이 시간이면 아버지가 서재에서 사무를 보고 있을 시간도 아니었는데,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안 되겠어.’
율리어스는 이번엔 뭐라는 지 꼭 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치 도둑고양이처럼 날세게 움직여 계단 아래로까지 바로 밀착했다.
‘여기면 들리겠ㅈ……….’
“가주님께서 들이라 하십니다,”
들렸다.
집사 아저씨의 지긋하면서도 나긋나긋한 목소리였다.
정원 때와는 달리 아주 밀착한 만큼이나 귀에 쏙쏙히 들려왔었다.
‘자, 잠시만. 아무래도 뭔가 이상한 거 같아.
이 시간에 그 일 중독자 아버지가 서재에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들인다고!?’
율리어스의 초점으로 해서 망할 아버지가 분명 서재에 있을 시간도 아닌데 서재에 있다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평소와 전혀 다른 행동을 보이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힘들어졌다.
‘대체 무슨 생각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네. 이 망할 아버지가.’
어느새 소년의 얼굴엔 소녀를 마냥 쫓던 장난기 섞인 표정은 사라지고 어딘가 불쾌해 까지 보였다.
어둡게 일그러져 가고 있었다.
‘큭. 참는 김에 조금만 더 참아 보자.’
이미 참기 힘들어 보이는 역력한 표정이었지만 억지로나마 다시 귀를 기울여 그와 그녀들의 대화를 경청했다.
“네…. 콜록. 감사합니다. 레이콜드먼 집사님.”
소녀의 어머니는 가까이 보니, 낯빛이 창백해 보이면서 어딘가 아파 보였다.
기침을 참으며 하는 그녀의 대답은 기운이 없어 보임에도 집사 아저씨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가 담긴 제스처를 취했다.
‘뭐. 내가 알 바는 아니지만. 평민 주제에 나름 할 건 다 하네.’
소년은 여전히 소녀의 어머니에겐 관심이 없었다.
“이, 이러지 마십시오.
이게 저의 직무이며, 가주님께서 내리신 분부를 그대로 전해드린 것뿐입니다.”
소년은 예상한 답변이라는 저절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집사 아저씨라면 저렇게 대답하고도 남……아, 아 자, 잠시만?’
자기 귀를 의심했다.
결국 이대로는 모든 게 망할 아버지의 뜻대로 흘러간다는 것이었다.
율리어스의 계획대로라면 객실에 먼저 묵어어야 할 예비 여동생을 자신이 먼저 볼 수 있었을 건데…….
그 계획이 망할 아버지의 생각지도 못한 돌발행동에 틀어지고 있었다.
훅, 훅!
‘그럴 수야 없지.’
이번만큼은 포기하지 않을 심산인 듯 소년의 콧김이 거세졌다.
‘내 마음에 든 만큼 내가 먼저라고. 이 망할 아버지!’
율리어스는 더 이상 계단 아래쪽에 숨어 있을 필요가 없었다.
이제 이대로 무작정 나가 아버지보다 선수를 먼저 치면 그만이었다.
잠시 집사와 그녀들 사이에 약간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는 사이 율리어스는 계단 아래가 아닌 바로 그녀들 뒤로 다가가고 있었다.
‘아…. 그런데 막상 뭐라고 하면 되는 거지?’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걸 소년은 그제야 뒤늦게 깨달았다.
사실 열 살이 되도록 돌아가신 어머니 이외에 제대로 말을 편하게 걸어본다거나 대화를 1분 이상도 나눠본 적이 없었다.
‘미치……겠….’
“어서 들어가 보ㅅ……….”
‘헉!’
아주 다급해져 버렸다.
지금 그녀들 앞에 나타나 자기 존재를 먼저 알리지 않는다면 예비 여동생마저도 간교한(?) 아버지에게 넘어가 빼앗기고 말 거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소년은 그만 저질러 버렸다.
【 누가 함부로 들어가도 된다고 했지? 】
말과 행동. 그리고 자신이 자아내야 할 평온한(?) 분위기는 침착함을 잃어 버린 지 오래였다.
완전히 다 제각기 논 듯한 험악하고도 무거운 언사가 튀어나와 버리고 말았다.
그건 이미 지극히 평범한 열 살짜리의 언행이 아닌 그 뒤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벌벌 떠는 집사 아저씨.
얼굴에 핏기 하나 돌지 않은 채 새파랗게 질려 버린 소녀.
‘망했다.’
그것도 첫 만남부터 좋은 인상은커녕…….
긴 대화가 이어짐에 불구하고 소년은 생각한 만큼이나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언행 불일치.
무엇보다 간과했던 점이 상대가 여자, 어린 소녀라는 생물이 문제였다.
‘이…. 아…으……….’
처음으로 소녀 앞에서 소년은 자기 자신이 정말 한심스러운 인간으로 느껴지는 일순간을 겪어야만 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론 아주 심각하면서 철저하게 모든 걸 망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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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나는 1% 노력과 99% 운을 가진 무직 전생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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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어스)조회 : 84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353 93.93. [2부] 내 두근거림 물려 내!조회 : 1,09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451 92.92. [2부] 처음엔 뭐가 뭔지 몰라도 두근두근거려.조회 : 85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406 91.91. [2부] 릴리스티아는 지난 과거를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1)조회 : 71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318 90.90. [2부] 썩 내키지 않는 오라버니와의 재회조회 : 75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466 89.89. [2부] 저 녀석 대신 네가 맞을래?조회 : 84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417 88.88. [2부] 내 누나는 히스테리 마녀(3)조회 : 62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410 87.87. [2부] 내 누나는 히스테리 마녀(2)조회 : 866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518 86.86. [2부] 내 누나는 히스테리 마녀(1)조회 : 90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313 85.85. [2부] 느닷없는 방문조회 : 89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415 84.84. [2부] 지저귀고 있는 어둠 속으로(2)조회 : 1,22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462 83.83. [2부] 지저귀고 있는 어둠 속으로(1)조회 : 957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457 82.82. [2부] 예상외의 협력자(2)조회 : 94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771 81.81. [2부] 예상외의 협력자(1)조회 : 993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455 80.80. [2부] 플라타와 바리안조회 : 1,200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607 79.79. [2부] 혐의부인의 가능성조회 : 1,194 추천 : 0 댓글 : 0 글자 : 4,593 7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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