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2부] 망할 아버지가 이상해졌다. (by. 율리어스)
조회 : 530 추천 : 0 글자수 : 4,366 자 2024-08-17
어렴풋이 새어 나와 버렸다.
겉으론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는 자기 속내까지는 속이기 어려웠다.
그 모습을 보자니. 가주도 속으론 짧지만, 흐뭇한 미소가 반사적으로 나오는 것만큼은 막을 수 없었다.
‘아…. 뭐야… 진짜……하.’
소년도 깜빡했던 디저트가 떠올랐던 모양이었다.
식탁에서 조금은 멀어지다 발걸음을 돌려보니 자신을 빼고는 분위기가 한층 좋아 보였다.
‘나도 디저트 안 ᄆ…. 아, 아니. 나도 저렇게 어울려 줄 수 있는데…….’
릴리스티아보다 몇 살 위인 것 맞지만, 아직은 디저트가 동시에 어른 거리는 아이일 뿐인 율리어스였었다.
소년은 솔직히 본인이 디저트까지 신경을 써 주면서 같이 나란히 마주 앉아 히히덕덕거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야박하게 짝이 없었다.
소년은 나름 애를 썼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하나 같이 돌아오는 건 방해꾼과 무관심뿐임에 이건 ‘희망’이라도 찾아볼 수 있는지 누군가에게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때 사가스라도 있었더라면…….
이미 이 토하고 싶은 심정을 사가스에게 털고 남았을지도 모르는 어린 율리어스였었다.
소년은 한숨이 깊고 깊어진 시름을 안고서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힐끗거리며 몰래 쳐다보던 걸 멈추었다.
‘가자. 기회는 또 있겠지….’
다시 돌아서는 소년의 뒷모습은 정말 쓸쓸하다못해 처량해 보였다.
그렇게 그날은 릴리스티아에게 더 이상 접근을 한다거나 다가가지 않았다.
심신으로 많이 지쳤던 소년이었다.
이 나무 같은 소녀는 아직 100번을 찍은 건 아니었지만, 슬슬 100번 안에 넘어갈련지도 이젠 걱정이 다 될 정도였다.
그리고 만약 100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다면……?
사실 그런 부분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걸 미리 생각해봤자 좌절감만 더 커질 것만 같았고 망할 아버지 이외엔 소년은 웬만해선 이루고 싶은 건 자기 손으로 달성해내고 마는 성격이었다.
어떠한 방해 공작이 소년의 앞을 막은 들, 극복할 자신감은 있었다.
‘나를 저렇게까지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말이었지….’
일부 하인이나 하녀들이 소년을 소 악마라 숙덕거리며 피하거나 무서워하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다.
아…. 몇몇은 혐오한다는 자체에 가까운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릴리스티아는 식사 자리가 아니더라도 소년에 대한 반응은 엄청났었다.
디저트 사건 이후. 소년은 마음을 추스르며 그이튿날에도 도전을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소년만 봐도 소녀는 자동반사적으로 움츠러들었고, 손발이 떨리고 있었다.
거기에 얼굴은 파랗게 상기되며 뭔가 더 심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예 더듬거리는 듯한 말조차도 붙일 수가 없었다.
‘하아…. 애초에 내 방법이 틀려 먹은 거려나….’
조언해주거나 의논할 상대가 없으니, 소년은 한 가지 방법만을 밀어붙이다가 숨이 턱까지 차올라 답답함을 토해내는 데 여념이 없었다.
빈틈이 없었다.
제삼자가 보기에도 소녀는 소년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싫어하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 같아선 율리어스의 낯빛은 짙은 어둠에 깔려 버렸다.
결국, 식사 자리를 제외하고 몰래 릴리스티아를 기다린다거나 우연히 마주쳐도 다 소용이 없어 보였다.
그것은 부질없는 미련이 마치 소년을 조롱하는 것만 같았다.
「 율. 방법이 틀려 먹었다는 걸 깨닫는 게 너무 늦잖아?
그 도서실에서 실패했을 때 고쳤ᄋ….」
“저건 과거일 뿐이야. 사가스.”
계속 뱅뱅 돌기만 하는 이야기에 답답한 듯 사가스가 쓴소리를 끄집어내었다.
하지만 지금의 율리어스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 아…. 아니. 그래도…그렇지.
그걸 또 왜 남 말하듯이 굴어….
사람…. 아. 아니지. 괜한 성신 무색하게 만드네. 흠흠.
좋아. 그건 그렇다 칠게.
그래도 어린 율리어스 성격상 끝까지 포기는 하지 않았을 거 같은데…?
어떻게든 조금은 진전이 있었겠ㅈ………. 」
“아니”
그의 눈썹이 꿈틀대었다.
“내 성좌지만…. 실망이야.”
오히려 반대로 사가스가 그에게 쓴소리를 듣게 되었다.
「 뭐…. 뭔?
지금의 율이야…. 잘 알겠지만. 어린 율 까지는 내가 어떻게 파악할 ᄉ….」
“그게 본제지.”
「 …………. 」
그래도 여전히 율리어스가 무슨 말하고자 하는지 사가스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문제였지.
아주 커다란 문제가…. 문제가 말이야.”
#.
그에게서 이상한 기류가 흘렀다.
이야기 내내 느낄 수 있었던 씁쓸함과도 거리가 멀어 보였다.
사가스도 그 이상한 기류에 움찔거렸다.
그가 중얼거리듯 말하는 아주 커다란 문제가 새로운 궁금증을 안겨다 주었지만, 선 듯 되묻지는 못했다.
전혀 그럴 분위기가 아님을 사가스도 직감한 터였다.
그리고…….
침묵이 흐르기 시작한 무언의 분위기 뒤로 그의 입은 다시 열렸다.
그날도 여전히 릴리스티아의 마음을 열지 못한 채, 많은 날이 지나갔었다.
계절이 여러 번 지나가고, 식탁의 의자에 앉기 위해 낑낑거리며 올라와 앉던 소녀도 이제 아무렇지 않게 착석하기 쉬워져 버렸다.
그 앙증맞게 굴던 모습도 제법 사라져 버린 지 어느덧 2년이란 세월이 다가오고 있었다.
올해로 일곱 살이 되던 소녀는 조금은 귀티가 나면서 똘망똘망한 느낌마저 났었다.
그리고 소년은 열두 살.
이미 엔테리아 능력을 각성해 아카데미아를 다니고 있었다.
전생의 능력을 발현한 지는 1년이 지났다.
그동안 릴리스티아를 제외하고는 모든 게 제법 변했다.
망할 아버지는 가주로서. 한 번에 두 가지 전생의 능력을 발현한 그를 그 어느 때보다도 인정하며 새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그 덕분인지….
저택의 하녀와 하인들도 도련님을 대하는 태도는 훨씬 더 나아져 갔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율리어스가 바란 것들이 아니었다.
능력.
발현.
인정.
그런 것들은 언젠가는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독 릴리스티아만이 변함이 없었다.
소년이 아카데미아에 입학을 하던 날도, 방학을 맞아 가끔 저택에 돌아온 날도,
소녀는 전혀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요즘 릴리스티아의 시선은 망할 아버지에게 자주 머물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최근 방학을 맞아 소년은 저택에 돌아왔었다.
끼이익.
“어서 오너라. 율리어스.”
투다다다….
“옵빠. 마니 마니 보고띠펏어여!”
저택의 문을 열자, 소년을 맞이하고자 앞서 나오는 사람은 두 명이었다.
망할 아버지와 이제 다섯 살이 된 막내(배다른) 여동생, 아이린.
아이린의 덜떨어진 발음은 릴리스티아의 전철을 밟듯하면서도 그녀와 달리 그를 전혀 무서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를 보자마자 아장아장한 걸음으로 냅다 달려 나가기에만 바빴다.
털썩.
‘이크.’
어떠한 장애물도 없는데 자기 발에 꼬여 넘어질 뻔한 아이린을 급하게 안으며, 사고사(?)로 이어질 뻔한 걸 무사히 무마시킬 수 있었다.
“옵빠. 옵빠. 옵빠.”
린은 귀가 따가울 정도로 그를 불러대었다.
“리니리니. 안 보고 띠펏어여? 흐잉.”
율리어스의 반응이 좀 무미건조했다.
다섯 살의 릴리스티아가 만약 소년의 앞에서 그랬었다면 ‘심쿵사’를 할 법도 했지만, 두 여동생은 전혀 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다.
린이도 귀여운 아이란 건 맞았다.
하지만 그 귀여움은 다섯 살 때의 릴리스티아를 능가하지 못한다는 게 율리어스의 고집에서 비롯된 생각이었다.
그러자 한참을 뚫어져라 오빠의 얼굴을 쳐다보던 어린 린이는 눈동자에는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아…. 아.’
소년은 미간에 주름이 생기며 찡그렸다.
어색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엉겁결에 린이를 앉아주는 둥 마는 둥 한 자세를 취하게 되어 버렸다.
‘귀찮아.’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린이는 릴리스티아에게는 심술을 부리며 따르지 않았지만, 아카데미아에 들어가기 전부터 소년은 모양 빠지게 졸졸 따라다녔다.
너무나 상반되게 차이 나는 두 여동생 때문에 아카데미아의 ‘방학’이 마냥 좋은 건지. 아닌 건지 그 여부는 참 소년에게 있어서는 아이러니하게 된 셈이었다.
오늘도 소년에게 그런 일상이 시작되는 건 여전했다.
린이를 아껴준 적도 없는데 귀찮게 들러붙자, 금방이라도 바닥으로 내동댕이치고 싶은 마음으로 손절을 간절했지만 참아야만 했다.
릴리스티아도 어쩔 수 없이 망할 아버지를 따라 마중을 나온 듯했었기에 괜한 패악(?)을 부리는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더 이상 찍혀도 차감될 이미지는 없었지만, 소녀의 시선에 담기고 싶지 않았다.
“밀레니엄 후작 가의 사람은 함부로 우는 것이 아니다.”
소년이 곤란한걸 눈치챈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틈을 끼어든 건 의외성이 느껴지는 가주였다.
그는 린이 소년에게 달라붙은 이후로 쭉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와는 사뭇 다른 표정으로 썩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다.
눈썹이 꿈틀거리며 인상이 찡그려졌다.
뭔가 아주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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