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2부] 가주, 참전(2)
조회 : 45 추천 : 0 글자수 : 4,228 자 2025-05-16
“그게 어떻게 당신 것이라고 장담하는지 그 이유를 말할 수 있나?”
갑자기 그는 그녀에게 이유를 운운했다.
【 ………. 】
그러자 그녀는 꿀 먹은 벙어리라도 된 듯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과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자신의 것이라고 한 거였군.”
【 네놈…. 네놈.
그것을 삼킨 순간 네놈부터 죽여버리겠다! 】
그녀는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그의 말투에 이유를 따질 필요도 없이 울컥해 버렸다.
“글쎄.”
그는 으르렁거리는 그녀를 전혀 경계하지 않았다.
반대로 여유로워 보였다.
“삼킨다라….
당신 같은 여자가 함부로 삼킬 물건이 아닐 텐데?
그것의 이름도 모르는 주제에. 후훗.”
아예 유유자적한 미소 마저 아무렇지 않게 입꼬리가 올라갈 정도로 그의 얼굴에서 그려져 가고 있었다.
‘내가 아는 한 아버지의 미소가 아니지…. 저건.’
‘릴리스티아가 알고 있는 아버지의 미소가 아니야.’
엇비슷한 생각이 동시에 교차되고 있었다.
율리어스와 릴리스티아는 여태껏 보아왔던 그의 미소와는 생소하게 느껴질 정도로 다른 느낌을 받았던지 얼떨떨한 표정으로 눈을 뗄 수 없었다.
처음으로 이 둘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별로 좋은 상황과 경우는 아니었다.
지금 두 아이의 눈앞에 있는 아버지는 평소와는 너무나도 달라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율리어스가 그에게서 실망감이 커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모두를 속이고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릴리스티아가 삼킨 물건에 관해 그는 여전히 집착증세를 보이는 것 같았다.
특히, 이제는 잘 아는 것 같이 구는 점마저 율리어스 눈에는 버거워 보이면서도 짜증이 일었다.
그렇게 율리어스는 아버지에 대한 여러 의심이 끊이지 않아, 들끓는 감정에 휘말리고 있는 반면에, 릴리스티아의 감정은 혼돈에 휩싸이고 있었다.
‘……….’
그것은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표리부동에 얽혀버렸다.
믿음이 컸던 만큼이나 그녀는 아버지가 그런 부류의 사람일 것이라고는 의심의 싹도 틔워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막 그 싹이 표리부동을 밑거름 삼아 커질지도 모른다는 확신으로 나아가고 말았다.
생각을 고쳐잡기 힘든 만큼이나 떠나버린 확신은 이제 돌아올지 안을지도 몰랐다.
【 하. 】
그의 조롱하는 듯한 말투에 그녀(새어머니)는 기가 막힌 웃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고요한 성격에서 180도 변한 모습이 이미 파격(?)적인데 말 하나하나에 따라 시시때때로 일그러지는 표정 또한 가관의 수준을 뛰어넘고 있었다.
“역시 모르는군. 응?”
꽤 노골적으로 빈정대는 그의 말투는 이제 능구렁이처럼 능글능글하기까지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런 아버지의 다른 면모를 볼 때마다 얼굴이 점점 굳어져 갔다.
하지만 그는 율리어스와 릴리스티아가 그 모습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계없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보였다.
그는 마치 대놓고 자신의 본모습을 여봐란듯이 굴었다.
이제 켕길 것도 없는 사람으로 행동하는 것만 같아선 누구의 눈에는 뻔뻔하게 보이기까지 했었다.
【 내, 내가 그걸 왜 몰라…. 우 우우우 웃기지 마! 】
그녀는 제법 말을 더듬거렸다.
그리고 능글스러운 그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듯이 씩씩거리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건 뭐 누가 보아도….’
율리어스의 눈에도 선했다.
‘어머니. 모르면 모른다고 인정하세요.’
그녀의 눈에도 자신의 어머니가 딱하다는 걸 떠나서 처량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한심해 보이지 않는다는 게 그나마 다행일지도 몰랐다.
“그럼. 당신이 진짜 안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 안다고. 알아. 안다니까.
그러니까 날 방해하지 말고 꺼지라고! 】
그녀는 무시당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지만, 중요한 건 계속 늘어나는 방해자를 다 제치고 어떻게든 ‘그것’을 자신이 삼켜버리는 것이었다.
“전혀 아닌 표정인데?
이름조차도 모른다면 가질 자격 없지 않을까, 응?!”
그는 듣는 귀가 많은 만큼이나 모두 들으라는 듯이 말하며,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가질 자격…?’
그런 조건은 애초에 생각조차도 하지 못한 채, 얼떨결에 마석을 삼키게 되었던 릴리스티아는 약간 혼란이 찾아왔다.
그리고 자격이란 말에 율리어스도 은근히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떤 자격이 있었기에 마석이 릴리스티아를 선택했는지 문득 궁금하기도 한 표정으로 미간이 살짝 구겨졌었다.
‘그런 게……상관이 있나?’
솔직히 잘 모르겠다는 아리송한 결론에 도달하는 율리어스가 맞을지도 몰랐다.
율리어스의 관점에서 알고 있는 사실은 마석은 밀레니엄 가(家)의 지하실에 존재하는 선조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 같은 물건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이어서 물려받는 것이라면, 모두 한 핏줄을 이은 만큼 조건은 동등하다고 볼 수 있었다.
다만, 다음 가주 대에서 마석이 반응하는 것이었다면?
‘아버지가 선택을 받는 게 맞는 거였지.’
그런데 결과는 달랐다.
마석은 릴리스티아에게 반응했고. 그녀의 입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랬던 정황들을 살펴보면 율리어스는 아버지가 뭘 원했고 하고 싶었는지 더 짐작하기가 힘들었다.
‘목소리님은 혹시 아버지에게 갔어야 했…….’
「 자격 같은 건 없다. 」
‘에…?’
이상했다.
그러기엔 아버지가 자격에 대해 끄집어내자마자 릴리스티아도 느끼는 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굳이 어머니와 릴리스티아, 자신과의 다른 점을 꼽자면, 피.
혈연관계였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아버지는 본인이 아닌, 오라버니나 자신을 마석이 잠들어 있는 석상 앞으로 보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짙어졌다.
애초에 핏줄이 석상에서 마석을 깨우는 조건이었고 그런 아버지의 의중을 몰랐던 그녀는 얼떨결에 어머니의 병에 휘둘러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자격이 관계없다는 목소리님의 소리에 그녀는 어벙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그럴 리ㄱ…….’
「 내가 아는 건 단 한 가지뿐이다. 」
저주받은 마석은 솔직히 그녀가 포함되어저 있는 가문이며, 그 이외에 사람은 현재 관심이 없었다.
그녀 말고는 관심이 없었던 만큼, 자질구레한 건 따지고 싶지 않은 담담한 말투였다.
「 나는 그곳에서 제일 욕망이 강한 계약자에게 끌렸다.
눈을 떴다.
단지 그것뿐이다. 」
그 말은 무척이나 단조로워 보이면서도 의무감만 앞섰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마석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 의지만 이행하면 그뿐이었다.
‘……….’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섭섭한 건 어쩔 수 없는 듯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선택받은 운명’이라는 그런 말을 꼭 원한 것도 아니었지만 릴리스티아는 릴리스티아대로 밀려오는 실망감을 맛보게 되는 건 피할 수 없었다.
「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계약자? 」
어머니의 방에 오기 전부터 도착했을 때의 그런 분위기라면 뭔가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말할 분위기는커녕, 완전 사무적이란 의무감만 가득한 마석의 말에 그녀는 어떤 말도 함부로 뱉지 못했다.
결국, 마석은 릴리스티아가 욕망을 이루면 떠나고 끝날 사이밖에 되지 않았다.
‘아무것도…아니에요,’
아쉬움이 많이 묻어나왔다.
그렇지만 혼자 의미를 둬봤자 긴 여운을 남기고 느끼는 건 끝까지 혼자란 걸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니 그걸로 된 걸지도 몰랐다.
그렇게 자격에 대한 의문이 여러 꼬리를 물고 늘어지고 해답이 주어지고 있었지만, 그 자격 운운을 시작한 쪽은 여전했다.
두 사람의 신경전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다.
【 자격? 웃기지 마.
그쪽이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거 아냐? 풉…! 】
그녀는 갑자기 그를 향해 보란 듯이 비웃음을 뿜어냈다.
한 풀 더 꺾이며 당황할 것 같은 전개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당당한 기색을 뿜으며 전면적으로 나왔다.
“하하. 당신이야말로 웃기지도 않는 그럴싸한 소릴 하는데 재주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군.
근거도 없는 소리는 당신에게만 해롭다고?”
그녀를 릴리스티아에게서 떼어놓는 게 먼저였던 그는 그 또한 쉽게 물러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 자격? 근거?
쓸데없는 소리.
진짜 아무것도 모르네? 애송이야, 애. 송. 이. 】
‘큭.’
점점 만만치 않았다.
겉으론 미소를 짓고 있지만 그는 처음에 넘쳐흐르던 그 여유와 달리 휘말리는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를 정도로 점점 그의 말이 그녀에게 먹히지 않는 듯한 느낌이 강해져만 갔었다.
그런 느낌은 보고 있는 입장에 있는 아이들에게 더욱 그렇게 보이고 있었다.
아버지는 눈만 여전히 웃고 있을 뿐.
그 이외에는 반대로 압박을 받는 것 같았다.
“기가 막힌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군.”
【 그건 내가 할 말이야! 】
한마디도 지지 않았다.
누가 옳고 그름을 떠나서 각각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진실에 한해서 자존심을 내세우기에 급급했다.
두 사람은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나서는 겉보기에도 부부였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어 보일 정도였다.
“이거 말이 안 통하네….
좋아. 그렇다면 아이덴티티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알고 싶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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