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2부] 재회란 이름의 운명(2)
조회 : 647 추천 : 0 글자수 : 4,381 자 2025-11-13
재회의 감격도 잠시 잠깐이었다.
그가 난데없이 어떠한 방향을 가리키듯이 말했다.
그의 이야기 방향을 잇고자 하는 곳에는 하필이면 율리어스가 있었다.
“아이덴님….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어요.”
그녀의 머릿속이 비 온 뒤 개는 맑은 하늘처럼 정리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 인간. 너는 당연히 모르는 일이다. 」
그러니까 릴리스티아는 그에게서 어떤 경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 이야기가 그렇게 진전이 되는 것인지 알고 싶은 것이었다.
답답함에 한 마디 던지고 싶은 마음도 솟구쳤지만, 상대가 아이덴인 만큼 그녀는 그럴 수가 없었다.
기다림이 해결해 줄 뿐.
「 나는 몇 년 전 소녀와 계약이 끊어진 이후로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내가 드문드문 눈을 뜬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지금도 저 소년에게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
“그와 계약이라도 한 상태인가요?”
계약이라도 하지 않은 이상은 벗어나기 힘들다는 게 설명이 되지 않았다.
「 그것은 아니다. 」
“그럼, 대체 왜….”
「 소년이 이질적인 기운으로 나에게 제약을 걸고 있다.
제약 때문에 깊은 잠에서 깨어난 건 맞다.
하지만 현재 나는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다. 」
그래서일까?
무뚝뚝한 말투에서 평소보다 기운이 더 없어 보이는 느낌이 드는 것도 같았다.
그리고 지금 그가 어떤 상태에 놓였는지 어느 정도 추리할 수 있었다.
“아이덴님은…. 그럼. 아니.
마석 자체가 현재 그의 손에 있다는 거네요?!”
「 그렇다. 」
“그런데 이질적인 기운이라니요?”
그녀도 고개를 갸웃거릴 부분이었다.
이미 저주받은 마석, 그 자체가 이질적인 기운과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존재가 자신의 재량에 제약받을 정도면 율리어스, 그에게 또 다른 뭔가가 있음을 뜻했다.
밀레니엄 가문에서 예사롭지 않은 일이 숨겨진 지하실에 있었던 일처럼 시작되려는 조짐이 보이는 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런 거라면 더더욱 안 돼.’
그가 위험스러운 인물이라는 건 아르휀의 누나를 사라지게 만들었을 때부터 눈치채었어야 했는데 늦은 감이 들었다.
앞으로 아르휀에게도 마수의 손길이 뻗치고도 남았다.
릴리스티아는 이제 더 불길해진 그와 멀어지는 게 급선무였다.
‘어서 여길 벗어나야 해.
언제 그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그런데 벗어나기엔 너무 오래 머문 감도 들었다.
‘진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러자 약간의 조바심이 들면서 불안함의 싹을 지울 수 없었다.
아르휀의 능력도 꽤 뛰어난 편이라고 생각하는 그녀였지만 그가 가진 미지의 능력을 판가름하기란 힘들었다.
머릿속이 다시 복잡해지며 그녀는 진퇴양난을 겪어야만 했었다.
「 인간. 그 기운의 정체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방법은 있다.
소녀여, 너와 나 사이에 다시 계약이 체결된다면 모든 게 해결된다.
대신 너의 새로운 욕망이 필요하다. 」
“…모, 모든 게 해결……!”
욕망이라는 단어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답변과 새로운 제시가 끝나기 무섭게 릴리스티아의 사고력만이 무섭게 돌아갔었다.
어쩌면 그때 각성했던 힘을 되찾을지도 몰랐다.
그러면 걱정했던 그가 가진 미지수의 힘이 덜 두렵게 느껴졌다.
그리고….
다시 그 힘을 찾는다면 릴리스티아에겐 전희 회복과 다름이 없었다.
“아이덴님. 그 계약 다시 저와 해주세요!”
늘 신중하고도 진중해 보였던 릴리스티아가 이번만큼은 1분 1초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모든 걸 다 떠나서 그 힘을 찾을 수 있다면, 아쉬울 게 하나도 없었다.
「 계약자여, 네 새로운 욕망은 무엇이냐? 」
어느 일이든 순서가 있었고, 그 순서를 먼저 따라야만 했었다.
그리고 아이덴티티에게 있어서는 언제나 계약자가 달성하는 순간 자연적으로 얻어낼 수 있는 인간의 욕망이 우선순위였다.
‘그랬…었지.’
그제야 막상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허겁지겁 달려들었던 자신에게 강제적인 제동을 걸 수 있었다.
인간의 욕망.
순수함이든 더럽거나 치사, 과욕적이라도 욕망을 가지고 있다면 아이덴티티에겐 별 상관이 없었다.
다만, 그 욕망의 크기가 클수록 더없이 좋았다.
욕망을 먹고 사는 존재이기에 욕망에 대한 갈망은 얼마든지 가지고 있었다.
밀레니엄 저택의 사건 때에도 그랬다.
아이덴티티가 반응하며 깨어날 수 있었던 약간은 운명적(?)이라고도 할 수 있었지만, 그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건 릴리스티아가 가진 욕망.
그녀가 가진 순수하고도 이루기 힘든 걸 갈구하고자 하는 욕망이 아주 컸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녀에게 거는 기대감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녀만이 몇 년 만에 깨어난 아이덴티티를 밀레니엄 가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끌어당기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과거의 계약자라 하더라도 재계약을 위해서라면 그녀의 욕망이 앞서 필요했다.
“나, 나의 새로운 욕망이요…?”
「 그렇다. 과거의 계약자여, 지금 내가 가진 욕망을 알고 싶다. 」
릴리스티아는 조금 급작스러움에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생각을 더듬거렸다.
과거 여러 가지를 잃었던 그녀는 사실 욕망이 한 두 가지는 아니었다.
아카데미아에서 누구보다도 빨리 강한 엔테리아를 가지고 싶은 욕심
여러 엔테리아에 눈을 떠 활용하고 싶은 욕구.
평민이라고 무시했던 선생님이라 귀족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은 짜릿함.
이런 것들은 솔직히 아카데미아 안에서 어느 학생이든 간에 갖고 있을 만한 욕망의 덩어리들과 다를 바 없었다.
시시하고도 작은 욕망에 불과하며, 아이덴티티에겐 너무 이루기 쉬운 것들뿐이라 하찮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런 욕망들로만 그녀의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던 거라면, 그는 매우 실망이 컸었다.
하지만 릴리스티아는 거기서 생각이 끝나지 않았다.
‘복수…. 복수를 해야 돼.’
자신의 능력이 갖춰줘야만 바로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아주 큰 일이었다.
제일 갈구하던 생각에 이르자, 그녀의 표정은 굳어져 갔다.
「 바로 그거다. 과거의 계약자여. 」
“네, 네?!”
순식간에 굳었던 릴리스티아의 표정이 풀리며 반문했었다.
「 그 욕망이라면 과거의 네 욕망에 어울린다.
그 욕망에 어울려 주겠다. 」
마치 그는 릴리스티아의 머릿속을 다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많이 놀란 그녀는 주춤거리며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저주받은 마석이 이렇듯 모두의 인간에게 접촉하기 쉽고 머릿속을 휘젓고 다닌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물론 그건 아니었다.
릴리스티아가 이미 그전의 해지했던 계약자인 게 큰 이유였다.
욕망을 이루고 계약마저 끝난 상대는 제정신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인간을 상대로는 접촉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이렇게 이루어진 아이덴티티와 릴리스티아의 두 번째 만남으로 떼야 뗄 수 없는 운명일지도 몰랐다.
“저, 저 정말 저와 다시 계약이 가능한 거예요, 아이덴님!?”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믿어지지 않았다.
릴리스티아는 그가 자신에게서 욕망들을 들어본 것은 알았다.
하지만 사실 그 욕망들을 가지고 그가 만족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하고 조잡해 보였기에 그가 원하는 욕망에는 발끝도 못 미친다고 실망감과 같은 무력감이 먼저였다.
그래서 큰 기대도 하지 못했다.
그의 기대치를 만족하지도 못하는 만큼이나 본전도 바라보지 않았다.
「 물론이다.
그 욕망으로 재계약은 충분하다. 」
그는 그녀의 머릿속에서 자잘한 조각들처럼 언제 끼워서 맞춰질지 모르는 작은 욕망들은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과거에 생명을 다루는 것에 견주고도 남을 듯한 욕망이 쉽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찾아야만 했었다.
그녀만이 꼼짝없이 잡힌 밀레니엄 가문에 속한 소년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그는 포기하지 않고 그녀의 머릿속을 헤매었다.
- 복수…복수…….
아주 깊숙한 곳에서 메아리치는 듯한 울림이 그를 사로잡았다.
- 복수, 복수하고 말겠어.
내 어머니를 죽인 사람들….
「 이건 예사롭지 않은 욕망이다. 」
그는 그대로 사로잡혀 버렸다.
그 욕망의 기억은 그도 아는 과거였다.
그리고 마치 뼈 아프게도 오래도록 이나 숨겨 왔었던 채로 곪아버린 상처처럼 그녀의 기억 속에 내리박혀 버린 듯싶었다.
인간에게는 나쁜 기억에 현실로 이어질 가능성은 본인에게 달려있었다.
하지만 아이덴티티에게는 무엇보다도 좋은 기회로만 여겨졌다.
「 과거에 욕망을 이루지 못한 계약자여.
현재 갈망하고 있는 복수의 이름을 한 욕망을 이뤄주마. 」
‘그, 그렇구나,’
그제야 그녀는 그가 어떤 욕망을 마음에 들어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조금은 뜻밖이었다.
애초에 과거의 욕망과는 상반되었다.
과거는 사람의 살리는 욕망이었다면, 현재는 죽이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했었다.
복수는 인간 모두에게는 아니었지만 몇몇은 지니고 있을 터,
크게 작용하지 않을 거라 쉽게 치부했었다.
그런데 의외로 그에게 그 복수의 욕망을 선택당했던 바람에 그녀는 그 이유도 무척 궁금했지만, 더 이상 캐묻지 않기로 했다.
그 이유보다는 결론이 더 중요함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릴리스타아가 잘 알고 있었다.
“이제부터 제가 무엇을 하면 될까요…아이덴님?”
「 계약자여, 나를 저 소년에게서 찾아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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