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 [2부] 마스터의 권능, 그리고 텅 빈 기억(2)
조회 : 53 추천 : 0 글자수 : 4,567 자 2026-10-11
이게 또 무슨 생뚱맞은 소리람.
아르휀은 저 목소리가 남의 머릿속 안을 휘저어 다닌 게 1연타.
머리가 울리고 아픈 것만으로도 이미 2연타.
이렇게 사람을 괴롭힌 것도 모자란 모양인지 아르휀은 해도 해도 선을 넘는다는 생각이 미쳤다.
‘나대는 꼴이 이젠 가관이네. 가관.’
선을 넘은 채, 유분수를 모르는 목소리는 첫 등장에서부터 사실 거만하게 짝이 없었는데….
그런 부류의 사람은 이미 많이 보아왔던 터라 얼마 안 가, 잦아들 거로 생각했건만.
‘애초에 저 목소리가 인간이 아니니까.’
바랄 걸 바랐어야 했었다.
인간에서 머나먼 콧대가 높은 존재일수록 자신을 되돌아보기란 참으로 힘든 과정에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렸다.
그리고 바라보았자 의미가 없었던 만큼이나 그 목소리는 이젠 아예 시스를 내려다보듯 무시하는 느낌이 물씬 풍겨 나오기까지 했었다.
【 언어도단입니다.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말을 뱉다니 참으로 당신은 옹졸한 존재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습니다. 】
「 어…. 언…어 ᄃ…. 뭐?
야. 네가 뭔데 감히 날 함부로 비평하는 거야! 」
갑자기 흔들림을 보였다.
‘설마. 저 목소리는 언어도단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거…아니겠지?!’
끝까지 말대꾸로 맞서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아르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식.
일자무식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 뭐랄까 이 느낌은 참 미묘했다.
처음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나타날 때만 해도 마치 격이 다른 인물(?)처럼 굴더니, 딱 그때 그뿐이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버벅거리는 말투에서부터 어째서인지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완전히 서로 정반대네. 이건.’
시스와는 아주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고고한 척 도도하게 구는 첫인상까지만 시스와 살짝 겹쳐 보였지만, 겉핥기에 불과한 건 오래가지 못했다.
아르휀조차도 알 수 없는 시스의 그 깊고 깊은 속내와 장혜(오랫동안 이어지는 지혜).
누구인들 간에 함부로 따라 하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시스와 견주는 순간부터 어쩌면 이 승부는 정해져 있었을지도 몰랐다.
이 여성체의 목소리는 무엇을 하든 간에 승리를 뒤집는 건 참 어렵다고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아르휀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덧없음에 이르렀다.
아르휀의 머릿속에 들어왔을 때부터 이미 이 목소리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율리어스도 이렇게 될 거라는 걸 모두 예상한 건 아니라고 본다.
굳이 처음부터 따로 아르휀을 아공간까지 초대(?)해 이렇게까지 번거롭게 짝이 없는 방식을 쓴다는 건….
뭐, 이해해, 이해하지.
이런 수법은 신경 쓰이는 대상을 조용히 없애거나 회유할 때 쓰는 빌런들의 수법의 일종으로
아르휀이 되기 전의 그도 몇 번은 경험을 해본 적이 있었다.
비교적 그런 걸 ‘당했다’란 표현을 쓰지만, 그에겐 예외였다.
‘촌스러운 수작질에 당한 일종의 수치지. 수치.
하하…. 그런데 이번엔 바보 같은 게 이건 여념 없이 수치사네?’
그 와중에 아르휀이 되어버린 후, 감각이 죽어버린 그는 그때와 비교해 보면 수치사를 당했다고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수치를 당한 아르휀의 입장은 이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율리어스가 불법 초대(?)에 연이어 검은 돌로 무엇을 노렸든 간에 시스가 발 벗고 나선다면 상관이 없었다.
돌에서 나왔던 그 여성체의 목소리는 시스의 위엄에 비하다면….
새 발의 피 수준.
아니 어쩌면 그 이하로 갈수록 격이 떨어져 가고 있기에 그 어떤 엄포도 시스의 기선을 제압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별스럽지 않게 느꼈다.
「 뭐라는지 난 모르겠으니까. 다 집어치워. 우씨! 」
목소리는 꽤 열받은 듯 씩씩거렸다.
아니, 그 열분마저 과해져서는 이미 목소리의 상태는 흥분에 휩싸여 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 됐어. 됐어. 다 대꼬.
다 필요 없으니까 나 말고는 나대지 마! 」
‘대꼬?’
혀마저 꼬인 애마냥 꼭 마치 이런 상상이 절로 펼쳐질 것만 같았다.
마트에서 사고 싶은 장난감이 있는데 안 사줘서 누워서 난동을 부리고 있는 떼쟁이 금쪽이.
‘푸…푸우…우……윽.’
엄청났었다.
진짜 금방이라도 그런 금쪽이의 모습이 이 목소리와 겹쳐선 시스와 아르휀의 앞에 나타날 것만 같았다.
싱크로율이 잘 맞아떨어지는 바람에 일순간 참기 힘들 정도로 얼굴이 일그러져 버렸다.
그대로 웃음이 터져 나올 뻔한 아르휀이었다.
「 뭐, 뭐야! 설마 지금 날 비웃음 거야. 인간! 」
참는다고 참았는데 그 사이로 비집고 새어나간 웃음소리가 들린 듯싶었다.
귀도 더럽게 밝은 모양새 덕분에 여성체의 목소리는 아르휀을 째려보는 느낌마저도 들었다.
【 그쪽을 겨냥해도 소용없습니다.
이제와서 목표물을 바꾼다는 건 참으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남아일언 중천금이 되겠습니다.
어디 용기가 있다면 도전을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
으. 음.
듣고 보니 이건 또 아닌데…?
“시스. 넌 중성…아니, 지금의 너는 여성체에 더 가깝지 않아?”
조목조목 따져야 할 부분은 꼭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그 요인이 아르휀의 자신 머릿속 안이라서 더 그랬었던 걸까?
어째서인지를 떠나서 참견이 늘어나는 자기 자신을 막을 수가 없었다.
【 그런 것 또한 지금, 이 순간에 중요하지 않습니다.
힘을 빌려준 이상 마스터는 침입자와 저 사이에서 빠져주시기를 바랍니다. 】
아아, 그래. 시스의 말도 틀린 거 하나도 없지.
아르휀이 딴지를 걸고 싶은 그걸 또 시스는 냉대하게 받아쳐 버렸다.
마치 도움이 안 되는 존재는 빠져 있어 달라는 식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
이뤄 뭐라 말할 수밖에 없는 섭섭함.
「 나…나마 이…이러, 러……아 몰라!
다 필요 없으니까.
너. 내 눈앞에 너만 날 불순물 취급하는데 곧 찍소리도
못하게 만들어 버릴 거야.
진짜 각오해. 이…. 이 요망하게 생긴 암캐야! 」
【 저급하게 짝이 없는 소리만 늘어놓는 걸로 보아선 본인이 허접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허접한 만큼 순순히 여기서 사라져 주십시오. 】
대단했다.
흔들릴 뻔한 저속한 단어에도 시스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냉대하게 받아칠 뿐.
「 그, 그런다고 내가 쫄 줄 알아? 흥이닷! 」
그럴싸하게 들리는 목소리였지만 들키고 싶지 않은 모양새였다.
말을 더듬는 건 어떻게든 숨기는 게 어려워 보였다.
이참에 시스에게 항복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몰랐다.
제일 빠르면서도 손쉽게 자존심을 구겨지지 않은 방법을 아르휀은 권장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끼어들 순 없지만.’
【 그럼 어서 보여줘 보세요. 당신이 나에게 졸지 않았다는 증거를 말입니다. 】
가차 없네.
가히 그 말투와 의기양양한 모습은 이미 목소리의 머리 꼭대기에 눌러앉아 버린 고고한 여왕과도 같았다.
「 아…. 아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거든?
어디 두고 보자고.
얼마나 그렇게 내 앞에서 버틸 수 있을지. 흥! 」
드드드…드드
뭐, 뭐야?
이상했다.
여성체의 목소리가 시스의 도발에 발버둥 치는 듯한 움직임에 아르휀의 머리가 또다시 울리는 타격감을 받아야만 했었다.
드드드드득.
【 마스터의 정신체에서 비합법적인 성력이 느껴집니다.
침입자를 제거할 때까지 버텨주시길 바랍니다. 마스터. 】
“서, 성력?!”
난데없이 마력도 아닌 성력이라는 뜬금없는 시스의 말에 아르휀은 어이가 없어졌다.
여성체의 목소리가 쳐들어오고 나서부터 머리가 울리고 지끈거리는 것까지는 넘어갈 수 있는 이해력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점점 거칠고 난동 부리는 느낌이 물씬 나는 존재가 성력을 다룬다니 아르휀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 네. 마스터. 성력이 맞습니다. 】
하. 참나.
어이없음에 이어 기가 막힌 소리만이 불규칙적으로 입밖에 맴돌았다.
“저런 철까지 없어 보이는 목소리에 얼어 죽을 성력.
하…. 성력이 아깝……….”
【 마스터가 생각하시는 그 성력이 아닙니다. 】
아르휀은 참지 못하고 늘어지는 성력에 대한 한탄에 시스의 애매한 답변이 이어져 들려왔다.
에…. 어, 으응?
【 흔하지 않은 성스러운 성녀의 성력이 흔히 인간의 머릿속에 뇌려 박혀 있지만, 아닙니다. 】
다른 성력이라면….
【 별의 힘이 존재합니다. 】
그나마 목소리에게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 성스러운 성력이 아니라 아르휀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한편에는 여러 의문이 들기 시작했었다.
“성령…. 저 목소리가 설마 그런 존재야?”
【 침입자와 성력 그리고 성령에 대한 정보는…데이터는 존재…아니, 읽어 들일 수가 없습니다.】
시스가 삐거덕거렸다.
평소와 달리 부자연스럽게 보일 정도로 대답도 전혀 시원스럽지 못했다.
그 상태는 무척이나 이상하게 보였다.
혹시….
“목소리…. 아니, 침입자에 관해서 질문할게.
시스 넌 침입자의 정체에 대해 어떻게 생ᄀ…. 아니, 아니야. 이것보다는…. 아!
어떤 결론에 도달할 수 있지?”
【 그 어떠한 결론에 도달할 데이터란 존재 여부성을 거부합니다. 】
‘맞네. 딱 저기서 걸리는 거였군.’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시스는 침입자의 정체성에 대한 직접적인 자료를 송출하려고 하면 이상 상태를 일으키는 것 같았다.
마치 어떠한 자료에 대한 기억에 버그가 걸린 것처럼….
이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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