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2부] 저주받은 마석의 시작점과 밀레니엄(2)
조회 : 525 추천 : 0 글자수 : 4,401 자 2024-09-16
사실 율리어스는 아직도 그녀가 껄끄러웠다.
하지만 그런 것을 느끼는 감정과는 반대로 흘러가는 시간만큼의 약은 없었다.
그녀는 밀레니엄 저택에 온 이후에 조금은 건강을 되찾는가 싶더니. 얼마 가지 못했다.
아픈 날들이 나날이 늘어가면서 릴리스티아의 어머니는 그가 엔테리아 아카데미아에서 첫 방학을 맞이하고 저택에 돌아온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그는 불필요한 사람이 보이지 않자, 은근히 신경이 쓰이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아예 남이었다면 저택에 처박혀 있든지 말든지 아예 무관심을 가지면 그만이었다.
그치만 그녀는 거기서 끝날 관계성이 아닌 게 문제였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릴리스티아의 친어머니.
그리고 밀레니엄 저택에는 가주이면서 친부의 자리를 매김을 한 가장은 있었지만, 그다음으로 중요한 친모의 자리는 공석이 된 지 오래였다.
율리어스의 친모를 포함한 그녀들은 모두 대부분이 사고사로 사망했다.
‘저주….’
가주에겐 감히 언급할 생각은 한 번도 하지 못했지만, 지나친 기우에 흔들려 한 번쯤은 머릿속을 스치고 갈 단어는 될 수 있었다.
밀레니엄 저택은 안주인의 자리는 저주를 받았다?
‘훗.’
막상 대놓고 그렇게 나열해 보니, 그건 좀 아닌 감이 들었다.
그런 저주를 받았다곤 보기에 율리어스의 어머니나. 막내의 어머니도 원체 몸이 가냘프고 허약한 탓도 있었다.
그리고 하나 같이 딱 자식 한 명씩만 낳고서는 시름시름 앓다가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해 버렸다.
‘망할 아버지…. 여자 운이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냐?’
그런 생각에까지 미치는 건 진짜 어쩔 수 없었다.
첫 방학 그날부터 이 저택에 마지막으로 남은 안주인(율리어스는 인정하지 않았다.)은 이미 그가 못 본 사이 병이 깊어졌다.
그가 아버지에게 듣기론 앓아누운 일수가 점점 늘더니, 그녀의 얼굴을 가끔 직접 들여다보지 않는 한은 보기 힘들 정도라고 했다.
‘내 아버지이지만 진짜 여성 운 만큼은 없는 게 맞았구나.’
새어머니의 상태를 알게 되자, 그는 생각에 대한 확신마저 들었다.
‘……….’
처음으로 그는 망할 아버지가 조금은 안쓰러워 보였다.
하지만 감정이 그렇게 든다는 것뿐.
그 이상은 없었다.
릴리스티아에게 그동안 아낀 것을 보면, 새어머니 또한 못지 않게 애정이 있을 거로 생각한 그였다.
그런데 가주의 표정은 두 모녀의 앞에서만 걱정하는 모습만 보일 뿐, 그 이외엔 얼추 내비치지 않을 정도로 평소와 변함이 없어 보였다.
물론, 율리어스는 그런 개인사의 사사로운 감정까지는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망할 아버지에서 일반적인 보통 아버지와 같이 자신을 대해주는 자세가 달라진 이후로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그런 정도로 감정을 일단락지었었는데…….
그 문제가 커지는 건 그 이후였었다.
율리어스가 중급 생이 되고 또 찾아온 방학으로 저택에 온 날.
이제야 문득 왜 그랬는지 율리어스는 눈치를 챌 수 있었다.
릴리스티아의 표정은 평소처럼 그에게 무관심으로 무표정을 일관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녀의 얼굴 한구석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내리깔려져 있었다.
그리고 뒤에서 묵묵히 따라오는 그녀의 어깨는 축져져 있다는 것 또한 늦게 발견했다.
가주는 일부러 그런 부분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녀를 오랫동안 유심히 보아왔던 그로서는 상태가 달라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냥 단순히 그저 그렇게 아픈 수준급이 아니란 걸 직감했는데….
그 직감은 틀리지 않았었다.
그것은 율리어스가 엔테리아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얼마 안 되어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이후로도 저택에 머물 때마다 그의 눈에 비친 적이 없었기에 율리어스가 의심하며 여기까지 예측하기에는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무슨 병입니까…?”
끼이이익.
탁.
가주의 서재에서 가주와 율리어스는 단둘만 남게 되었다.
예전 같았더라면 이렇게 둘만 남은 자체가 어색하게 짝이 없을 정도로 불편했지만. 지금은 조금 나아진 것도 있었고 그 불편함이 그에게 제일 중요한 게 아니었다.
릴리스티아에게 직접 물어보았자 대답은 듣기 어렵다는 것을 무엇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물어보는 건 아버지에게 묻는 게 제일 빨랐다.
그리고 좀 봐줄 만한 상태의 아버지라면 그에게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는 늘어놓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새. 새…. 흠흠. 새어머니의 병명이 뭔지 아버지께 듣고 싶습니다.”
아버지라면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율리어스는 난생처음 편하게(?) 느껴지는 아버지에게 직설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가주는 아들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기보다는 한참이나 아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그런 게 아니라는 건 율리어스 본인이 잘 알고 있었겠지만. 가주의 시선은 그렇게 느껴질 정도로 빤히 쳐다봄에 이런 생각도 절로 드는 수밖에 없었다.
‘부, 불편해.’
그리고 그런 시선을 받은 기억이 없었던 만큼이나 어색한 나머지 율리어스는 가주의 시선을 회피하면서도 질문에 대한 대답은 끝까지 듣고 싶어선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마음을 참아내야만 했다.
“흠흠.”
그러자 그제야 뜸을 들이듯 가주의 율리어스 앞에서 보란 듯이 헛기침을 했다.
“오랜만에 네 입에서 질문다운 질문을 듣는구나.”
“……….”
그는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니, 오히려 반문해서 묻고 싶은걸지도 모르겠다.
아들과 아버지 사이에 질문다운 질문이 무엇인지를……….
하지만 재차 따지고 싶지 않았다.
그런 케케묵은 감정이 쌓인 질문들은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의 낡아빠져 못 쓰는 물건들과 다를 바 없었다.
가슴속이 맺혀 응어리진 어두운 감정들 또한 굳이 드러내고도 싶지 않았다.
“질문에 대답이나 어서 해주시지요.”
그는 어느새 약간 삐딱한 말투로 엇나가 버렸다.
오래된 감정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역효과로 인한 건 다 덮어버릴 수 없는 것 같았다.
“이제야 네 모습답구나.”
‘칫.’
결국, 가주는 아들의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자신을 대해 주길 원했었던 듯 더 이상 율리어스를 불편한 시선으로 쳐다보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가주의 모습에 대한 불편함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꺼림칙한 느낌을 받는 건 율리어스 쪽이었다.
그 꺼림칙함에 짜증이 나는 건 사실이었지만 괜한 분란은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릴리스티아와 더는 멀어지기도 싫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꼭 가까워질 수 있다는 전제에 가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자질구레한 사실은 율리어스만 잘 지켜 내는 것으로 만족했다.
“사실을 말해주기 싫으신 거면 그만두시지요,”
시간만 낭비되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와 이러고 있을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릴리스티아와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만이 굴뚝같이 치솟는 율리어스였다.
드르륵.
그는 가주가 쓸데없는 말만 늘어놓자, 짜증이 엉키는 반면, 가주는 느닷없이 그 책상의 맨 아래 서랍을 열더니 뭔가를 꺼내는 것 같았다.
‘열쇠…?“
가주의 손에는 웬 새까맣게 그을린 듯한 자국들로 가득해 꽤 오래 방치한 듯 색이 바래버린 열쇠 같이 보이는 게 그의 눈에 들어왔다.
”받거라. 율.“
가주가 열쇠로 추정되는 물건을 손에 쥔 채로 율리어스에게 다시 시선이 향하자, 그는 움찔거렸다.
”율?“
”그만 부르시지요.“
그는 흠칫거리다가 매우 껄끄럽다는 표정을 넘어서 아니꼽게 가주의 말을 뿌리쳤다.
갑자기 정체 모를 열쇠를 넘긴 것에서 놀란 것보다 율리어스를 부르는 애칭이 참 애석하게 들렸다.
소 악마라 불리는 그때, 아버지라는 사람이 좀 더 풋풋함이 느껴지는 친근감으로 아들을 대했더라면 지금의 율리어스는 애석함이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굳이 이제 와서….‘
늦어도 한참을 늦어 버렸다.
그리고 웬만해선 아버지에게 율이라고 듣고 싶지 않은 아들이었다.
”크 흠흠. 일단은 이것 먼저 받거라.“
겸연쩍어진 가주의 입에선 헛기침이 자연스레 연발되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다시 시선을 자기 손바닥으로 돌리기에 급급했다.
그러자 언제까지고 그런 시선으로만 보고 있을 수 없던 그도 아버지의 손에서 색이 바랜 열쇠를 받아 챙겼다.
’이유가 있으니 주는 거겠지….‘
나름 진지한 이야기에 쓸데없는 물건을 넘겨줄 리 없다고 생각하며 그는 받아 든 열쇠를 자세히 훑어보았다.
색이 바랠 대로 바래서는 표면이 검은색에 가까울 정도로 녹이 슬어 있었다.
열쇠의 손잡이 부분에는 쌍룡이 서로 등을 맞대고 그 용들의 입에는 무색의 구슬을 물고 있는 게 녹을 씀에도 제법 화려한 디테일이 살아 있어 보였다.
그리고 녹이 슨 것과 반대로 흠집 하나 보이지 않았다.
사용한 흔적들도 남아 있지 않은걸로 보아선 꽤 오래 고이 보관된 것 같았다.
밀레니엄 가문을 뜻하는 쌍룡이 열쇠의 손잡이에 새겨진 만큼 절대 일반적인 열쇠가 아님을 그는 이내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열쇠는 대체 뭐지요?!“
하지만 그런 것을 느끼는 감정과는 반대로 흘러가는 시간만큼의 약은 없었다.
그녀는 밀레니엄 저택에 온 이후에 조금은 건강을 되찾는가 싶더니. 얼마 가지 못했다.
아픈 날들이 나날이 늘어가면서 릴리스티아의 어머니는 그가 엔테리아 아카데미아에서 첫 방학을 맞이하고 저택에 돌아온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그는 불필요한 사람이 보이지 않자, 은근히 신경이 쓰이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아예 남이었다면 저택에 처박혀 있든지 말든지 아예 무관심을 가지면 그만이었다.
그치만 그녀는 거기서 끝날 관계성이 아닌 게 문제였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릴리스티아의 친어머니.
그리고 밀레니엄 저택에는 가주이면서 친부의 자리를 매김을 한 가장은 있었지만, 그다음으로 중요한 친모의 자리는 공석이 된 지 오래였다.
율리어스의 친모를 포함한 그녀들은 모두 대부분이 사고사로 사망했다.
‘저주….’
가주에겐 감히 언급할 생각은 한 번도 하지 못했지만, 지나친 기우에 흔들려 한 번쯤은 머릿속을 스치고 갈 단어는 될 수 있었다.
밀레니엄 저택은 안주인의 자리는 저주를 받았다?
‘훗.’
막상 대놓고 그렇게 나열해 보니, 그건 좀 아닌 감이 들었다.
그런 저주를 받았다곤 보기에 율리어스의 어머니나. 막내의 어머니도 원체 몸이 가냘프고 허약한 탓도 있었다.
그리고 하나 같이 딱 자식 한 명씩만 낳고서는 시름시름 앓다가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해 버렸다.
‘망할 아버지…. 여자 운이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냐?’
그런 생각에까지 미치는 건 진짜 어쩔 수 없었다.
첫 방학 그날부터 이 저택에 마지막으로 남은 안주인(율리어스는 인정하지 않았다.)은 이미 그가 못 본 사이 병이 깊어졌다.
그가 아버지에게 듣기론 앓아누운 일수가 점점 늘더니, 그녀의 얼굴을 가끔 직접 들여다보지 않는 한은 보기 힘들 정도라고 했다.
‘내 아버지이지만 진짜 여성 운 만큼은 없는 게 맞았구나.’
새어머니의 상태를 알게 되자, 그는 생각에 대한 확신마저 들었다.
‘……….’
처음으로 그는 망할 아버지가 조금은 안쓰러워 보였다.
하지만 감정이 그렇게 든다는 것뿐.
그 이상은 없었다.
릴리스티아에게 그동안 아낀 것을 보면, 새어머니 또한 못지 않게 애정이 있을 거로 생각한 그였다.
그런데 가주의 표정은 두 모녀의 앞에서만 걱정하는 모습만 보일 뿐, 그 이외엔 얼추 내비치지 않을 정도로 평소와 변함이 없어 보였다.
물론, 율리어스는 그런 개인사의 사사로운 감정까지는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망할 아버지에서 일반적인 보통 아버지와 같이 자신을 대해주는 자세가 달라진 이후로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그런 정도로 감정을 일단락지었었는데…….
그 문제가 커지는 건 그 이후였었다.
율리어스가 중급 생이 되고 또 찾아온 방학으로 저택에 온 날.
이제야 문득 왜 그랬는지 율리어스는 눈치를 챌 수 있었다.
릴리스티아의 표정은 평소처럼 그에게 무관심으로 무표정을 일관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녀의 얼굴 한구석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내리깔려져 있었다.
그리고 뒤에서 묵묵히 따라오는 그녀의 어깨는 축져져 있다는 것 또한 늦게 발견했다.
가주는 일부러 그런 부분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녀를 오랫동안 유심히 보아왔던 그로서는 상태가 달라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냥 단순히 그저 그렇게 아픈 수준급이 아니란 걸 직감했는데….
그 직감은 틀리지 않았었다.
그것은 율리어스가 엔테리아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얼마 안 되어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이후로도 저택에 머물 때마다 그의 눈에 비친 적이 없었기에 율리어스가 의심하며 여기까지 예측하기에는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무슨 병입니까…?”
끼이이익.
탁.
가주의 서재에서 가주와 율리어스는 단둘만 남게 되었다.
예전 같았더라면 이렇게 둘만 남은 자체가 어색하게 짝이 없을 정도로 불편했지만. 지금은 조금 나아진 것도 있었고 그 불편함이 그에게 제일 중요한 게 아니었다.
릴리스티아에게 직접 물어보았자 대답은 듣기 어렵다는 것을 무엇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물어보는 건 아버지에게 묻는 게 제일 빨랐다.
그리고 좀 봐줄 만한 상태의 아버지라면 그에게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는 늘어놓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새. 새…. 흠흠. 새어머니의 병명이 뭔지 아버지께 듣고 싶습니다.”
아버지라면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율리어스는 난생처음 편하게(?) 느껴지는 아버지에게 직설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가주는 아들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기보다는 한참이나 아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그런 게 아니라는 건 율리어스 본인이 잘 알고 있었겠지만. 가주의 시선은 그렇게 느껴질 정도로 빤히 쳐다봄에 이런 생각도 절로 드는 수밖에 없었다.
‘부, 불편해.’
그리고 그런 시선을 받은 기억이 없었던 만큼이나 어색한 나머지 율리어스는 가주의 시선을 회피하면서도 질문에 대한 대답은 끝까지 듣고 싶어선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마음을 참아내야만 했다.
“흠흠.”
그러자 그제야 뜸을 들이듯 가주의 율리어스 앞에서 보란 듯이 헛기침을 했다.
“오랜만에 네 입에서 질문다운 질문을 듣는구나.”
“……….”
그는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니, 오히려 반문해서 묻고 싶은걸지도 모르겠다.
아들과 아버지 사이에 질문다운 질문이 무엇인지를……….
하지만 재차 따지고 싶지 않았다.
그런 케케묵은 감정이 쌓인 질문들은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의 낡아빠져 못 쓰는 물건들과 다를 바 없었다.
가슴속이 맺혀 응어리진 어두운 감정들 또한 굳이 드러내고도 싶지 않았다.
“질문에 대답이나 어서 해주시지요.”
그는 어느새 약간 삐딱한 말투로 엇나가 버렸다.
오래된 감정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역효과로 인한 건 다 덮어버릴 수 없는 것 같았다.
“이제야 네 모습답구나.”
‘칫.’
결국, 가주는 아들의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자신을 대해 주길 원했었던 듯 더 이상 율리어스를 불편한 시선으로 쳐다보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가주의 모습에 대한 불편함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꺼림칙한 느낌을 받는 건 율리어스 쪽이었다.
그 꺼림칙함에 짜증이 나는 건 사실이었지만 괜한 분란은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릴리스티아와 더는 멀어지기도 싫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꼭 가까워질 수 있다는 전제에 가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자질구레한 사실은 율리어스만 잘 지켜 내는 것으로 만족했다.
“사실을 말해주기 싫으신 거면 그만두시지요,”
시간만 낭비되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와 이러고 있을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릴리스티아와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만이 굴뚝같이 치솟는 율리어스였다.
드르륵.
그는 가주가 쓸데없는 말만 늘어놓자, 짜증이 엉키는 반면, 가주는 느닷없이 그 책상의 맨 아래 서랍을 열더니 뭔가를 꺼내는 것 같았다.
‘열쇠…?“
가주의 손에는 웬 새까맣게 그을린 듯한 자국들로 가득해 꽤 오래 방치한 듯 색이 바래버린 열쇠 같이 보이는 게 그의 눈에 들어왔다.
”받거라. 율.“
가주가 열쇠로 추정되는 물건을 손에 쥔 채로 율리어스에게 다시 시선이 향하자, 그는 움찔거렸다.
”율?“
”그만 부르시지요.“
그는 흠칫거리다가 매우 껄끄럽다는 표정을 넘어서 아니꼽게 가주의 말을 뿌리쳤다.
갑자기 정체 모를 열쇠를 넘긴 것에서 놀란 것보다 율리어스를 부르는 애칭이 참 애석하게 들렸다.
소 악마라 불리는 그때, 아버지라는 사람이 좀 더 풋풋함이 느껴지는 친근감으로 아들을 대했더라면 지금의 율리어스는 애석함이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굳이 이제 와서….‘
늦어도 한참을 늦어 버렸다.
그리고 웬만해선 아버지에게 율이라고 듣고 싶지 않은 아들이었다.
”크 흠흠. 일단은 이것 먼저 받거라.“
겸연쩍어진 가주의 입에선 헛기침이 자연스레 연발되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다시 시선을 자기 손바닥으로 돌리기에 급급했다.
그러자 언제까지고 그런 시선으로만 보고 있을 수 없던 그도 아버지의 손에서 색이 바랜 열쇠를 받아 챙겼다.
’이유가 있으니 주는 거겠지….‘
나름 진지한 이야기에 쓸데없는 물건을 넘겨줄 리 없다고 생각하며 그는 받아 든 열쇠를 자세히 훑어보았다.
색이 바랠 대로 바래서는 표면이 검은색에 가까울 정도로 녹이 슬어 있었다.
열쇠의 손잡이 부분에는 쌍룡이 서로 등을 맞대고 그 용들의 입에는 무색의 구슬을 물고 있는 게 녹을 씀에도 제법 화려한 디테일이 살아 있어 보였다.
그리고 녹이 슨 것과 반대로 흠집 하나 보이지 않았다.
사용한 흔적들도 남아 있지 않은걸로 보아선 꽤 오래 고이 보관된 것 같았다.
밀레니엄 가문을 뜻하는 쌍룡이 열쇠의 손잡이에 새겨진 만큼 절대 일반적인 열쇠가 아님을 그는 이내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열쇠는 대체 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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