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2부] 보이지 않는 목소리(2)
조회 : 216 추천 : 0 글자수 : 4,606 자 2024-12-25
울트라 딥의 정중앙에 박혀 있는 검은 요석.
생긴 것부터 투명하게 반짝이는 외관과 전혀 상반되는 느낌의 검은 요석은 전혀 그녀의 관심
을 받지 못했다.
그것은 아주 거무튀튀하고 칙칙할 정도로 불쾌한 마나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그녀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 인간. 삼켜라. 」
끝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잠잠하다 싶더니, 또 시작되었다.
설사 끝이 보인다고 하더라도 릴리스티아가 목소리에 명령적인 어투에 긍정적으로 따라줘야만 무사히 끝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확연해지었었다.
꿀꺽.
마른침이 넘어갔다.
곧이곧대로 금방 삼킬 건 아니었다.
목소리는 그 이상의 위협을 가하지 않았던 게 그녀에게는 머뭇거릴 시간을 준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굳이 목소리를 따라 재빨리 꺼림칙한 마석(검은 요석)을 삼킬 이유나 명분도 찾아볼 수 없었다.
「 인간. 삼켜라.
이유나 명분은 얼마든지 있다. 」
‘………!’
목소리는 마치 그녀의 머릿속을 들춰 보듯이 아무렇지 않게 고집으로 굳힐 뻔한 생각에 제법 큰 파문을 일으켰다.
목소리가 얼마나 꿰뚫어 보고 있는지 현재 그녀는 종잡아 보는 것도 힘들어졌다.
여기서는 아무래도 가볍게 볼 수 없었다.
고집으로 생겼던 옹절함마저 접어가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궁금함으로 똘똘 뭉쳐진 생각 같아선 당장에라도 목소리가 말하고자 하는 이유나 명분을 캐묻고 싶었다.
물론, 섣불리 해서는 급히 후회를 불러 올 법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귀가 솔깃거렸다.
질끈.
은연중에 아랫입술을 깨물어 버린 것도 몰란 정도였다.
마음이 요동치는 걸 참아가며 막아 내기란 힘들었다.
다른 때의 그 어쩔 수 없다의 보다도 더했음에 이번은 진짜 틀러 버렸다.
“저에게…그럴 말한 명분이 있다고 말하고 ᄉ…….”
「 있다. 인간.
네 영혼이 욕망을 갈구하고 있다. 」
‘욕…망?’
느닷없는 소리만이 연이어 이어졌다.
이유나 명분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지조차 이해하기 힘들었는데…더했으면 더했지.
목소리는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키게만 만들어 줬었다.
「 인간. 삼켜라.
욕망을 이루어라. 」
‘나의 욕망……?…!!’
릴리스티아는 한참을 의문의 꼬리에 꼬리를 잡으며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순간 문득 떠올랐다.
애초에 이 지하실에 왜 오게 되었는지를….
알 수 없는 병을 앓고 있는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그녀는 율리어스가 방학을 맞이하여, 저택에 돌아오기 전 그가 서재에서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 릴리스티아. 네 어머니를 구하고 싶다면 방도는 지하실에 있을 것이다. ]
릴리스티아는 그런 아버지의 말을 듣자마자 동공이 커지며 흔들렸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어머니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 너만 원한다면 아버지를 따라 지하실로 같이 갔으면 하는구나. ]
강제로 권한다거나 억압적이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는 그런 의미가 내포된 말이란 걸 지금에서야 본격적으로 깨달았다.
릴리스티아, 그녀 본인이 원하는 것에 가치를 두었지만, 역시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사람은 꼭 자신에게 들이닥칠 모를 일은 겪어보아야만 알게 되는 이치라 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지하실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짐에도 그녀의 안위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모른다.
지금 앞에 있는 사람도 하필이면 아버지가 아닌 소 악마 오라버니였다.
그녀는 많은 생각이 교차하었다.
그는 그녀를 지하실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이용하기만 했던 걸까?
일부러 처음부터 작정하고 두 모녀를 저택으로 받아들인 걸까?!
이제 와 생각한들 금방 답이 나오지 않겠지마는.
목소리에 흔들리고 있는 그녀는 단 한마디는 결정지을 수 있었다.
“내…. 제 소원…. 아니. 욕망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 인간. 삼켜라.
네 욕망을 해방하라. 」
한순간에 목소리는 그녀의 머릿속을 통해 모든 것을 꿰뚫어 본 듯 말했다.
하지만 릴리스티아는 이제 그런 부분은 껄끄럽다거나 놀랍지도 않았다.
불쾌하게 짝이 없던 부분은 접고 흑요석을 이제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삼키라는 말에 그대로 삼키기엔 거부감은 눈을 질끈 감아서라도 삼켜야 할 입장이었다.
「 인간. 손을 내밀어라. 」
올 게 온 듯싶었다.
‘……….’
막상 앞서 결심은 했지만 부자연스럽게 움직여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평소에 스스럼없이 잘 움직이던 그녀의 손은 어색할 정도로 느리게 움직이며 떨리기까지 하고 있었다.
툭.
그녀의 손아귀에 울트라 딥을 두른 검은 요석이 떨어졌다.
이제 이걸 삼키기만 하면 끝이었다.
하지만….
‘그 뒤는…?’
아무도 모르는 일일 것이다.
밀레니엄 가(家) 저택의 지하실에 이런 요석이 숨겨져 있을 거라는 건 직접 들어오지 않았으면 몰랐을 일임은 분명했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녀에게만 이 목소리만 들리는 듯, 그 이외에 지하실에 같이 들어왔던 두 사람도 계속 주위만 맴돌 뿐이었다.
참 모르는 일들투성이였지만 어머니의 안위가 먼저인 그녀였다.
그녀는 많은 생각이 드는 가운데 요석을 쥔 손을 오므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마음속 한 편에 자리 잡은 불안 함의 씨앗이 눈에 밟혔다.
그 씨앗은 염려.
어머니를 구할 수 있는 반면에 어떠한 대가가 따르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지에 대해 망설이면서도 지금은 외면할 수밖에 없을 듯 보였다.
‘뒤는…. 뒤는 나중에 생각하자.’
오랜 시간을 끌 수 없었다.
보나 마나 목소리가 똑같은 소리를 내뱉으며 다그칠 게 뻔했다.
짧게 남아 한숨인 듯 아닌 듯한숨을 토해내었다.
릴리스티아는 아주 잠깐이지만 어머니를 제외한 모든 생각을 내려놓기로 선택을 한 모양인 듯싶었다.
감았던 눈이 살짝이지만, 파르르 떨리며 손안에 쥐어진 요석이 보였다.
결심은 굳혀져서 시간이 이미 경과했다.
이제 실행으로 옮기는 것만이 남아 있었다.
‘어머니만 살릴 수 있다면…!’
용기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던 그녀는 요석을 삼키는 것도 아찔함을 느끼며 느리게 지침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럴 땐 오히려 그녀의 용기가 매우 과감하게 드러났었다.
그녀는 목을 뒤로 살짝 젖히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요석을 입안으로 넣어 버렸다.
“리, 릴리스티아. 뭐하는 짓이야!?”
#.
그녀는 한 가지 간과한 게 있다는 것을 몰랐…. 아니, 알 리가 없었다.
바로 그녀 자신이 목소리만을 듣고 한 행동이 반쯤 홀린 듯이 꿈같은 이야기가 아닌 밖(현실)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대체 뭐, 뭘 먹은 거야?!”
율리어스는 덜 깬 정신 사이로 릴리스티아가 손에 꽉 쥔 검은 구슬을 입속으로 넣는 것을 보며 놀랐다.
흥분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막기에는 한참은 늦었다.
그녀의 손에 그런 구슬이 쥐어져 있다는 것도 뭔가를 먹는 행동을 취해서 눈치를 챌 수가 있었다.
“무슨 일이더냐, 율리어스?”
율리어스와 한참 실랑이를 벌이며 주위를 서성거리던 그가 아들이 갑자기 큰소리를 치는 바람에 놀라선 바싹 다가왔었다.
“그…. 그게. 릴리스티아가 갑자기 칙칙하게 생긴 검은 구슬을 먹는 바람에…….”
“검은…구슬?”
그러자 그는 특이해 보일 정도로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를 짧게 연상시켜 생각이라도 하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태도를 보였다.
‘방금 전만해도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 하?’
그 모습을 본 그를 보며 율리어스의 의심은 그칠 수가 없었다.
그가 꼭 기분 나쁘게 생긴 검은 구슬에 대해 뭐라도 아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당장 그녀의 입안에서 뱉게 만드는 게 급선무였었다.
“릴리스티아. 내 말이 들리면 입안에 있는 거 당장 뱉….”
꿀 – 꺽.
단 몇 초 사이에 그녀의 목젖이 굴곡을 이루며 움직여 버렸다.
말릴 사이도 없이 그대로 삼켜 버렸다.
‘…………….’
몇 초라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검은 구슬은 눈앞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무슨 일이냐?”
“…릴리스티아가 이상하게 생긴 물건을 꿀꺽하고 삼켜 버려…….”
“무엇, 무엇을 말이더냐!”
릴리스티아가 열쇠를 뽑고도 줄곧 무색할 정도로 무관심을 보이던 그는 뭔가를 삼켰다는 말에 동공이 확대될 정도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 순간 더러 놀랐던 율리어스는 바로 대답이 나오기는커녕, 두 눈만 끔뻑거렸다.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봇물이 터지듯이 튀어나오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보기 힘든 장관(?)이었다.
“아, 아버지…!?”
율리어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아버지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
아들이 자신을 이상한 눈초리로 그 어느 때보다 뚫어져라 보자, 그도 그때 서야 진중치 못했다는 것을 눈치채었던 모양이었다.
“흐흠. 그래서 릴리스티아가 삼킨 것이 무엇이더냐, 율리어스?”
차분함을 억지로 유지했지만, 그래도 그는 평소보다 많이 어색해 보였다.
“그게 제가 보기엔 칙칙하게 짝이 없는 구슬 같….”
탁!
그러자 갑자기 그는 릴리스티아를 잡고 있던 율리어스의 손을 쳐 내더니, 그 자리를 끼어들었다.
“아버지!?”
오늘따라 진짜 왜 저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참 이상했다.
하지만 그 행동은 거기서 다가 아니었다.
율리어스가 말릴 사이도 없었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마구잡이식으로 흔들어 대기까지 했다.
“당장 뱉어라. 뱉어내야 한다. 릴리스티아!”
작가의 말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날 1편 연재하고 갑니다^^
닫기나는 1% 노력과 99% 운을 가진 무직 전생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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