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2부] 관심과 무시
조회 : 79 추천 : 0 글자수 : 4,250 자 2025-10-08
‘뭐, 뭐야 대체 저 눈빛은……큭?!’
촉촉한 눈빛이 나에겐 큰 거부감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기대치가 있어 보이는 그녀의 그런 눈빛은 평소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히스테리 마녀일 때와 같은 인물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였다.
더 이상 히스테리 마녀를 쳐다볼 자신이 없었다.
평소와 전혀 반대로 눈에서 꿀이라도 떨어질 듯한 눈빛이라니….
‘으…. 내 눈.’
나쁘게 말하면 금방이라도 내 눈이 썩을 뻔했다.
나는 아니꼬운 나머지 황급히 고개를 돌려 아예 히스테리 마녀만큼은 쳐다보지 않았다.
「 유…율. 저 여자. 느낌이 좋지 않아. 」
촉이 좋은 사가스도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던지 아까보단 투덜거리지는 않았지만, 말은 안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뭐?”
그렇지만 눈빛을 받는 대상자가 전혀 아무런 느낌을 받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어 보였다.
율리어스는 무덤덤한 반응을 보일 뿐, 레이첼이 어떤 시선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지 자체부터 별 감흥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 뭐. 목석같아서 나쁘지는 않네. 않아. 」
“쯧.”
그러자 오히려 그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듯 혀만 찼었다.
사가스가 말하는 의도에는 관심은커녕, 시답잖은 소리만 늘어놓는 것 같아 조금 짜증이 난듯한 모양이었다.
「 아니면 됐지.
애초에 율이 먼저 저 여자를 부르지만 않았으면…. 」
괜히 그에게 나무람을 듣는 것 같아 되려 사가스는 은근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어쩌면 변명하는 걸로 보였지만 약간 억울했던 것 같은 표정이 금방이라도 보일것만 같았다.
“아…. 아.”
이제야 그녀의 이름을 불렀던 이유든 뭐든 뭔가라도 좋으니 어떤 말이라도 그가 뱉으려는 듯 짧은 신음을 흘렸다.
“율, 율리어스 선배님.”
레이첼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넌지시 불러보았다.
그런데 서로 각각 인지만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고작 이름 한 번 부른 걸로 시작해서 혼자 두근거려서 설레는 마음으로 헛다리 짚는 레이첼과
어떻든 간에 여지라는 틈을 준 적도 없을뿐더러 그냥 눈앞에 보여서 불러본 게 다인 율리어스.
둘은 아주 극과 극으로 상반되는 첫 만남이 연출되었다.
“세이비어 양. 거기서 좀 비켜줬으면 하는데?”
〔 데 – 엥! 〕
율리어스의 단답형으로 딱 잘라 말해버리는 말투치고는 그나마 상대방을 배려한 듯싶었지만, 그 말은 결코 첫 만남에서 나올법한 멘트가 아니었다.
그녀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 그의 입에서 아무렇지 않게 나오자,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이 역력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두근거렸던 심정을 한순간에 쪼개버릴 충격을 받았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푸...!’
「 끄…. 끅끄….」
히스테리 마녀에게서 좀처럼 볼 수 없는 희귀한 표정과 희소한 광경에 나는 물론이고 사가스 또한 쏟아져 튀어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고생했었다.
“사가스….”
율리어스의 단 한마디에 보인 그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아 보였다.
「 아, 아니 푸…흐흐…. 흐흐흐.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율의 성격을 내가 모르는 건 아니지만…적당히라는 게 있지? 」
한편으로는 기분 나쁜 여자가 율에게 제대로 무시를 받아버린 점이 통쾌한 사가스였지만,
그래도 율의 인성에 신경이 쓰이는 건 쓰이는 거였다.
“딱히.”
무성의하게 짝이 없었다.
목적과는 상관이 없으니 볼 정도 없다는 말투에 이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어째선지 그녀만이 참 불쌍하고도 측은하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정도였다.
뿌드득.
?!
아주 이상한 소리가 귓전에 맴돌았다.
자주 접한다면 접한다고도 아니면 아니라고도 할 수 있는 약간은 껄끄러운 소리.
나는 은연중에 그 소리의 출저를 따라 시선을 멈추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히스테리 마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금방이라도 잘근잘근 씹어버리고 싶은 분노가 일렁거리는 게 표독스러워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가지런한 이들이 소름 끼치는 소리로 부딪히고 있었다.
분노의 소용돌이가 그녀를 중심으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히스테리 마녀를 보면서 싸한 느낌을 받았다.
자존심이 장난 아니게 높은 히스테리 마녀가 상대가 밀레니엄 가문의 영식이라고 해도 가만히 있을 턱이 없었다.
‘이건 잘못 건드렸네.’
탄식해도 이미 늦어버린 듯싶었다.
불쾌감에 몹시 치를 떨던 그녀는 이제 눈앞에 있는 상대가 누구인들 중요하지 않았다.
4대 가문의 위신.
언제부터인가 어느 가문이 높고 위상을 펼치느냐를 떠나서 눈치를 보지 않는 점이 멀어진 지 오래된 만큼 그녀 또한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음을 인지했다.
“내가 왜 비켜줘야 하지?”
그녀의 표정은 원래의 거만하고 도도하기 짝이 없는 히스테리 마녀로 돌아갔다.
그녀는 아예 결연적인 태도로 콧대를 세운 채, 아무렇지 않게 선배인 그에게 반말을 하대했다.
그가 그녀를 의도적으로 휘두르고 싶어서 휘두른 것도 아니었는데 아니꼽다는 식으로 그의 말을 받아치는 것과 다름없었다.
「 뭐야? 저 거만한 여자는?! 」
사가스도 당혹함과 더불어 기막힘을 느꼈다.
몇 초 전만 해도 별 좋지 않은 느낌은 받았지만 서도. 저렇게 돌변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도저히 같은 여자라고 인정하기 힘들었다.
“그럼. 그렇지.”
율리어스는 또 홀로 이상한 장난은 맞추며 말을 읊조렸다.
「 ………. 」
사가스는 율이 뭘 말하고 싶은지 또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원래부터라면 마치 단짝처럼 척하고 척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 눈치가 빨랐지만, 이 방에 난입한 이후로 뭔가 이상해졌다.
혼자 앞서가는 알 수 없는 생각들로 가득 찬 머릿속을 헤집어 보고 싶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성좌에겐 그럴 권리까지는 없었다.
동등한 관계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어디까지나 성좌에게 붙는 제약이 있기에 그 선을 넘는 것엔 무리수였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아쉬운 쪽이 원래 지는 법.
사가스는 어렴풋이 그의 의도를 추리해 나갔다.
「 저 여자 모른다면서? 」
“모른다면 모르고. 알면 아는 거.”
「 아니…. 」
이번에는 아리송한 답변마저 내어놓고 있었다.
주위를 답답하게 만드는 단답형의 답변을 듣다 보니 한 번쯤은 진짜 그냥 뻥 뚫게 말해줬으면 하는 바람마저 생기려는 사가스였다.
“세이비어 가문과 영애에 관한 무성한 소문”
그가 아는 건 딱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눈앞에서 그녀를 직접 보는 순간, 결과는 단숨에 나왔다.
“눈에 보이는 것 빼고는 다 거짓이라는 거지.”
.
그는 그녀의 진짜 모습이 소문이 들어맞는다는 걸 입증되었다는 듯한 말투였다.
율리어스도 사실 레이첼을 거의 비공식 자리에서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한가지 모습만을 보아왔다.
4대 가문이 모임을 갖는 다거나 밀레니엄 가문이 개인적으로 세이비어 가문과 부딪히는 자리.
그곳에서 그는 그녀가 기품을 갖춘 도도한 미인이라는 인식을 받았다.
하지만 율리어스는 그 인식을 거기서 끝내진 않았었다.
무의식중에 드는 의문도 포함되었지만, 그는 뭔가 남아있는 찜찜함을 쉽게 버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 잔재하게 남은 찜찜함이 모습을 드러내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본 그녀의 모습을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그녀와 겹쳐보는 순간 모든 건 드러났었다.
「 무슨 소문? 」
사가스는 개인적으로 그녀에게 관심은 없었다.
하지만 율이 그녀에 대해 뭔가를 더 아는 것 같이 아리송한 말들만 늘어놓자 자연스레 저절로 관심이 생겨났다.
그 관심 때문에 소문마저 궁금해졌다.
“그녀의 가문 밖에서만 떠도는 부정적인 소문.”
「 그런 소문이 있었다고? 난 모르겠는데. 」
당연히 사가스는 알 리가 없었다.
그때 당시에도 사가스는 레이첼이라는 인간에게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카데미 안에서 특히 더하지.
그녀의 남동생이 세이비어 가문의 수치라고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녀가 더 수치거든. 쿡.”
율리어스는 그녀가 더 안쓰럽다는 듯이 비웃었다.
「 그 소문이라면 뭐….」
아카데미 안에서 오히려 그 소문을 모른다면 간첩에 가까웠다.
아카데미에서 입학시험의 시점 때부터 나(아르헨)는 노엔테리아로 찍혀버린 이야기를 시작해서 세이비어 가문에 대해 쉬쉬하는 여러 소문은 늘어만 갔었다.
그리고 대게 레이첼이 그런 보잘것없는 노엔테리아를 감싸는 천사 같은 영애라고들 알고 있었지만,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다.
그 부분에서 나름 의구심을 가졌던 율리어스는 그녀의 진짜 인성을 알게 되자, 쓴웃음이 절로 지었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모든 게 가짜인 허영덩어리 그 자체지.”
「 알 것 같기도 하네.
워룸에서 율이랑 내가 본 건 가짜가 아니니까. 」
노엔테리아라고는 믿을 수 없는 아르휀이 가진 능력.
친남매인 그녀와 달리 아르휀의 실력은 가짜가 아니었다.
아주 뛰어났으며 어디에서 본 적도 없는 엔테리아임 분명했다.
「 이제 알겠네. 알겠어.
애초에 여기 온 목적은 단 하나밖에 없었단 거네, 뭐.
난 또 율이 아직도 여동생에게 미련이 있………. 」
“있으면 있는 거도 없으면 없는 거.”
그는 또 모호한 말만 늘어놓으며 사가스의 말을 강제로 정리시켜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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