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2부] 재회란 이름의 운명
조회 : 280 추천 : 0 글자수 : 4,221 자 2025-11-12
〔 띠링. 〕
움찔.
깜짝 놀랐다.
그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신경이 곤두선 채로 경계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시스의 알림이 울렸다.
【 이질적인 기운이 강해집니다.
여기서 당장 떠나길 권합니다. 】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가볍게만 들렸던 시스의 경고는 수위가 급히 올라가 버린 것 같았다.
이제 그에게서 당장 멀어져야 할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 이질적인 기운이 대체 뭐길래 시스가 저렇게까지 경고의 태세를 취하는 지, 긴장되는 한편으로는 그 정체가 더욱 궁금해져갔었다.
하지만 천하(?)의 시스도 모르는 걸 대책 없이 부딪혀서 파헤쳐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순간의 겁 없이한 당돌한 선택으로 일을 그르치는 것도 싫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시스가 첫 경고등이 들어올 때부터 그가 빨리 이곳을 떠나길 원했다.
그는 이 방에 소리소문없이 나타남과 동시에 그 누구에게도 초대받지 않는 손님으로 우연히 히스테리 마녀를 쫓는 역할이 되었을 뿐이었다.
분명 그는 자신의 볼일인 나를 만나러 온 거겠지만 그 이상은 장소를 더불어 수용해 줄 용의가 없었다.
개인적인 1대1의 만남으로 부딪혔다면 달라질 가능성은 있어 보였지만 지금은 그게 다였다.
릴리스티아도 뭔가 그를 불편해하는 것 같아서 그가 나가지 않는다면 이쪽이 한시바삐 자리를 비워버리는 게 상책이었다.
【 어서 이 자리를 뜨길 바랍니다. 】
‘대게 보채네.’
이미 다 알아들었음에도 내가 빨리 대답하지 않아서 시스가 저러는 모양이었다.
이제 이 방에 더 머물라고 해도 있고 싶지 않았다.
“알았어. 알아들었으니까. 그만하고 기다려봐. 릴ᄅ….”
그러고 나는 얼른 일행들을 챙기기 위해 뒤를 돌아보는데 벤은 기절 상태가 깨어나지 않은 건 그렇다 치더라도 왠지 모르겠지만 릴리스티아의 분위기가 이상해 보였다.
‘왜 저러는 거람…?’
그런 상황이 된 건 갑자기였다.
그녀의 시선은 그를 경계할 때는 언제고 뭔가 딴 데 가 있었다.
얼이 빠져 있는 느낌이 더 가까워 보이기도 했었고 무슨 문제가 생긴 듯싶었다.
휘익. 휘익
샤샤샥.
나는 손바닥으로 그녀의 눈앞에 바싹 대어 몇 번을 흔들어 보았다.
‘………이거 많이 이상한데?“
그녀 눈의 초점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검은 눈동자가 나의 손을 따라 움직일 법인데 움직이기는커녕, 혼자 딴 세상에 가 있는 사람 같았다.
빨리 여길 벗어나야 하는 게 급선무인데 매번 귀찮게 구는 벤 녀석이 잘 넘어가자, 그녀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상황을 신속히 이어 나가지 못했다.
’하필 이 타이밍에….‘
그렇다고 그녀를 내버려 두고 벤 녀석만 부축해서 데리고 나갈 수도 없었다.
예전의 아르휀이었다면 몰랐지만. 지금은 그녀와 접점이 생기면서 이야기는 달라졌다.
갈수록 아르휀인 지금의 나에게 영향력이 커지는 그녀였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 지금 이곳을 떠야 합니다.
이질적인 기운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
망설이고 있을 시간은 없는데 내가 두 사람을 다 부축하고 여기를 나간다는 건 불가능한 현실이었다.
‘벤 녀석이라도 제정신이었다면…해결되었을 텐데. 하.’
결정적인 순간에 벤의 텔레포트가 필요함에도 참 도움이 되지 않았다.
혼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판국에 시스도 촉박만 가할 뿐,
이래선 이대로 불안한 기운에 침식당할 것만 같았다.
#.
‘기분이 이상해.’
릴리스티아는 갑자기 이 방에서 익숙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두루뭉술하게 느껴지는 기분이 몰려왔다.
이 방에 온 지 제법 지났었지만 이런 오묘한 느낌이 드는 건 뭐라 형용하기도 힘든 기분이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졌던 상황들도 점점 멀어져가는 느낌으로 집중이 되지 않았다.
분명 누군가 말을 거는 거 같았지만 현실이 아닌 것처럼 붕 뜨고 있었다.
‘내가…왜 이러지…….’
릴리스티아도 어떻게든 아르휀과 함께 이 방에서 한시바삐 나가고 싶은 생각이 한사코 먼저였었다.
밀레니엄 가문의 사람들이 어떤 인간이란 건 누구보다 더 잘 안다고 운운할 수 있었던 그녀는 아르휀이 그에게 휘말리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꿍꿍이속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절대 그를 아르휀과 말도 섞지 못하게 막으려고 애를 썼었다.
그리고 아르휀도 릴리스티아의 의중을 눈치 챈 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그에게 거절의 의사를 표하며 그대로 발을 빼면 될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랬는데….
릴리스티아는 자신에게서 이상한 변화가 일어남을 느끼는 동시에 현실과 멀어지면서 동떨어져 갔었다.
아르휀이 뭐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윽고.
릴리스타아가 우려했던 게 본인의 현실이 되어버렸다.
현실과 의사소통을 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
그녀는 한 번도 겪지 못한 이상한 광경에 눈앞이 캄캄해짐을 절감해야만 했었다.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거예요. 어머니…. 흑.’
막다른 골목에 몰리자 울컥해지는 감정이 커지며 어머니가 떠올랐다.
그녀가 힘들 때마다 어머니가 생각났었다.
하지만 이번에 떠오른 직접적인 이유와 자신이 이런 이상한 상황과 직면한 원인은 다른 곳에 있는 것 같았다.
‘밀레니엄…!’
릴리스티아가 힘든 시간을 악착같이 버티게 된 원인이며, 오게 된 경위의 모든 발단이 눈앞에 나타남과 동시에 자신을 괴롭히는 것만 같았다.
‘그래. 여태껏 이런 일은 없었어.’
모든 일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 보니 거기엔 떡하니. 밀레니엄 가문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카데미아에 입학한 이후로 여태껏 율리어스와 부딪힐 일이 없을뿐더러, 일부러 부딪힐 꼬투리조차도 일부러 만들지 않았건만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 셈이었다.
릴리스티아가 애써 피해 가더라도 율리어스와는 한 번쯤은 부딪힐 운명이라는 것을 현실이 말해주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하…. 하하.’
모든 게 수풀로 돌아감에 기가 막힌 실소 밖에 나오지 않았다.
처음으로 인생이 참 덧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녀가 한때 그를 피한 이유는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솔직히 그녀는 아카데미아에서 그를 몇 번 멀리서 본적은 있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속으로 분노를 삭여야만 했었다.
엘리트급에 속하는 그와 초급반의 햇병아리에 불가한 릴리스티아.
그 차이는 엄청났다.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하늘과 땅’ 차이와 다를 바 없었다.
일반적으로 그런 것을 체감할 때마다 대게 한 없이 자신이 작아질 법도 했지만. 그녀는 그것보다 차오르는 분노가 다반사였다.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살인자.’
당장에라도 어머니의 복수를 하고 싶은 분노의 감정을 추슬러야만 했었다.
평민의 어쭙잖은 실력으로 아카데미에 합격은 했지만, 그를 눈앞에 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능력만 있었더라면….
지금 이런 상황에까지 이르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긴 한 그녀였다.
하지만 푸념에만 가까운 이론이었다.
릴리스티아의 능력은 사실 그때, 밀레니엄의 저택에서 저주받은 마석(아이덴티티)의 사건으로 인해 개화한 건 맞았지만 욕망을 이루지 못한 채, 어정쩡한 마무리가 되었다.
그 영향으로 일부분의 능력은 사라져 버렸고 힐러와 비슷한 개념의 엔테리아가 아카데미아에 들어가기 전 얼마 안 되어 눈을 뜰 수 있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매우 아찔했었던 모양이었다.
‘이제 이 상태에서 어쩌면 좋ᄋ….’
여러 생각에 빠지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 상태가 오래 유지 하는 것도 원하지 않았고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는지가 걱정이 되어 끙끙 앓던 그 순간이었다.
「 인간. 」
릴리스티아는 생각하다 말다 멈칫거렸다.
머릿속에서 자신을 부르는 듯한 굵고 딱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그윽했다.
그리운 목소리.
그녀는 혹여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을 정도로 감정이 고조되었다.
잠깐 사이에 한 번밖에 들리지 않았었기에 환청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아…….’
「 오랜만이다. 나의 오래된 계약자여. 」
……!!
걱정할 필요도 없이 그건 환정이 아님이 다시 드러났다.
하지만 벌써 몇 년의 시간이 지났었다.
밀레니엄 저택에서 벌어졌던 사고가 났던 직후, 그는 다시 잠이 들고 계약 또한 그대로 해제되어 그를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을 거라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다.
“어, 어떻게…….”
좀처럼 영문을 알 수 없었다.
「 인간. 당황하지 마라. 」
“네, 네? 하지만 어떻게 안 그럴 수가 있겠어요…?
아이덴님이…아이덴님이…….”
릴리스티아의 흥분은 쉽게 가라앉을 듯이 보이지 않았다.
전혀 기대하고 있지 않은 부분이 기정사실이 되면서 현실로 받아들이는데 매우 벅찬 만큼이나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선 버벅거렸다.
「 진정해라. 인간.
나는 지금 오래 머물 수 없다. 」
“…에?”
영문을 모르는 건 한 번으로 족했다.
그런데 그는 연속으로 이해하기 힘든 말들을 쏟아부었다.
릴리스티아의 머릿속은 정리가 되지 않은 채, 엉켜버렸다.
「 인간. 잘 들어라.
나는 지금 저 소년의 손아귀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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