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2부] 마명을 읊어라.
조회 : 204 추천 : 0 글자수 : 4,197 자 2025-11-14
그를 그의 손아귀에 찾아와야 하는 건 순서상으론 맞았다.
재계약은 이뤄졌지만, 여전히 그의 손아귀에서 자유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그에게서 평소와 다른 조금은 급급한 듯한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그녀도 그를 안전하게 찾아올 수 있다면 안심은 되었다.
하지만 지금 처한 현실은 이론과도 많이 달랐다.
쉽지 않다.
어떻게 빼내야만 하는지도 릴리스티아는 그 방법을 모색하기도 힘들었다.
냅다 눈 꼭 감고 훔쳐 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그런 방법이 통할 거라면 누구든지 얍삽하게 빼앗아 오고도 남았다.
‘대체 어떻게 해야….’
「 방법은 나한테 있다. 」
“네? 방법이 아이덴님한테 있다고요?”
릴리스티아는 약간 당황했다.
그의 본체와 같은 돌을 찾아와야 한다는 소리에 당연히 계약자인 그녀가 직접 알아서 처리해야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그녀의 생각에 그가 뒷북을 치듯이 말하는 바람에 당혹감 사이로 심통이 들 법도 했다.
그렇지만 뭐라 대꾸하며 쏘아붙이듯이 그에겐 말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의 본체를 찾는 일이었고, 그는 그녀의 능력을 다시 일깨워 줄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쓸데없는 일에 열을 올릴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그에게 방법이 있다면 따르고 볼 일이었다.
「 일단은 기다려라.
소년은 나의 마력을 써서 어떤 스킬을 발동할 생각이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그 스킬이 발동하는 순간 나의 마명(마석의 이름)을 불러라. 」
그가 또 다른 스킬을 쓴다는 건 릴리스티아도 어느 정도 예상한 바였다.
아르휀의 누나부터 사라지게 만들 정도면 아르휀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에게 있어 지금 필요하지 않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꺼번에 아르휀 이외의 사람을 사라지게 만들지는 못했다.
그런 부분을 제외하고는 긴장감도 바짝 섰다.
“그런데…아이덴님의 마명이라면 아이덴티ᄐ…….”
「 아니다. 」
그는 불쾌하다는 어투로 딱 잘라 의사를 표현했다.
하지만 릴리스티아는 아주 당연하게도 그렇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과거 계약의 이후로부터 그를 아이덴님라고 불렀다.
그런데 막상 부정당하는 듯한 거절의 의사에 그녀는 눈이 동그랗게 커져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 그건 내가 잠들어 있는 돌 껍질에 어리석은 인간들이 붙인 따분한 이름일 뿐이다. 」
그는 무척이나 그 이름에 대한 경위에 관해 말하면서도 시답지 못한 말투가 역력했었다.
평소보다 불만감이 많이 섞인 게 새삼 릴리스티아도 느낄 정도였다.
‘그, 그랬었구나…하하.’
매우 어색한 표정에 갇혀버릴 정도로 그녀는 난감함에 봉착해 버렸다.
여태껏 그런 건 생각해 보지 않았던 터라 아무렇지 않게 그를 알고 있는 그대로 불렀던 점이 뜨끔거렸다.
그래서 그녀는 슬쩍 그의 눈치를 보는 느낌이었다.
「 잘 들어라. 계약자여.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소년이 스킬을 쓰면 나는 다시 잠이 들 것이다.
스킬을 쓰는 그 순간에 나의 마명을 읊어라.
나의 마명은 ᛟᚦᚺᛁᚢᚲᚺᚢᛋ. 」
‘……….’
그녀가 이상할 정도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가 발음한 마명의 언어는 뭐라고 하는지 들리지 않았다.
“아이덴님. 다시 한번…. 한 번만 더 말해주시겠어요?”
조금은 뻘쭘한 기색으로 그녀는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 ᛟᚦᚺᛁᚢᚲᚺᚢᛋ. 」
‘역시나 같아.’
여전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인간의 언어가 아닌 듯 싶었다.
뭐라는지 알아들을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막상 그러려니 그녀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뭐라고 말을…아이덴님의 계약자는 모두 저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걸까?
아니면. 나만 못 알아듣는 건…….’
우왕좌왕 거렸다.
과거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전례에 있었던 듯한 일이 그녀, 자신에게 일어나자 여러 생각이 교차했었다.
어쩌면 전례의 계약자들과 다르게 자신만이 이 언어를 못 알아듣는 거 아닌지 마저 조바심이 들어선 자격지심에까지 미칠지도 몰랐다.
‘지, 진짜 그런 거면 어떡해야 하는 거지!?’
마치 그와 계약을 맺을 자격이 없는데 이 자리에 쓸데없이 있어선 점점 작아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 계약자여, 그럴 필요 없다. 」
“에…에에에에에에?!”
그 순간 너무 당황한 나머지 입에서 이상한 소리마저 밖으로 튀어나와 버렸다.
단숨에 진정되기란 쉽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 그런 반응은 당연하다.
마명은 인간의 언어가 아니다.
그게 이전에 계약한 인간들도 하나같이 마명을 알아듣지 못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
“………아.”
한순간에 잡다한 고민에 빠졌던 자신이 바보로 추락해 버렸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은 매우 새빨갛게 상기되었다.
「 매번 겪는 일이다. 신경 쓰지 마라. 계약자여.
앞으로 이 마명은 인간의 언어로 오피우쿠스(Ophiuchus)라고 부르면 된다. 」
‘오피우쿠스….’
떨떠름한 기분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런 기분 속의 와중에도 릴리스티아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의 마명을 되새겼다.
「 이제 그만 시간이 되었다. 」
아직도 그녀는 멍한 기운이 덜 빠진 듯했었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 그녀에게는 많은 일이 벌어진 듯했지만, 그 모든 건 릴리스티아가 받아들이기로 한 이상 복수를 위해 나아가는 한 걸음 뗐을 뿐이었다.
「 곧 소년이 시전한 스킬이 발동되면 임의적으로 나에게 머물던 마력 또한 사라진다.
그전에 내 마명을 읊어라.
그 기회를 놓친다면, 언제 깨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 」
멍하니 얼빠져 있을 사이도 없었다.
그의 단 한 마디에 그녀의 눈이며, 귀가 번쩍 뜨였다.
이 기회를 잃어버린다면 복수를 가능하게 만드는 발단이라 할 수 있는 힘을 손에 넣지 못했다.
‘안 돼. 그것만은…!’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어떻게 찾아왔는데, 당연히 두 손 놓고 그대로 놓쳐버릴 릴리스티아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하겠어요!
아이데…. 아니, 쿠스님은 마명을 읊을 타이밍만 정확히 알려주세요.”
정확한 타이밍만 재어서 기회를 낚아챌 수 있다면 어떻게든 행동으로 옮길 자신이 있었다.
애초에 이 선택은 그녀가 잃은 건 없었다.
복수를 이루고 그에게 욕망을 삼켜지고 난 후의 결과는 나중에 생각해 보아도 충분했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자체로, 복수를 이룰 힘을 다시 갖출 수 있고 없고의 문제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릴리스티아는 두 손을 꼭 쥐어 잡을 정도로 단단히 결심했다.
「 단 한 번의 기회를 기다려라. 계약자여. 」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한참 동안 그녀에게 들리지 않았다.
숨죽여 그가 그녀를 부를 그 기회를 기다릴 뿐이었다.
#.
「 율. 그 주문을 이제 읊어도 되겠어. 」
아이덴티티의 기본적인 표면색이 아주 새빨갛게 도드라지고도 남았다.
충만한 나머지 더 이상 사가스의 성흔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 율은 그런데 괜찮겠냐?
아직 우리 성좌들이 쓰는 스펠에 익숙하지 않은 거로 아는데?! 」
그러자 그는 어떤 제스처도 없이 침묵만을 유지했다.
그것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는 대답과 마찬가지였다.
못하고 익숙지 못한 걸 꽤 쉽게 인정하지 않는 부류의 타입이랄까?
그런 부분은 참 그는 고집이 셌다.
「 그럴 수 있는 건데. 뭐, 어떠냐?
다른 녀석들의 계약 인간들도 뻔해.
원래 인간들이 알아 들을 수도, 발음하기도 힘든 스펠링인 걸 어쩔 수 없잖아….
준비는 끝났으니까. 하던 대로 내 염화에만 따라오면 돼. 」
꿈틀.
그러자 강한 자존심에 약간 손상(?)을 받은 듯한 그는 변함없을 것만 같았던 무표정에 빗금이라는 한 획이 그였다.
미간에 주름이 생겨났다.
그의 반응에 사가스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율리어스가 인상을 쓰자 자동반사적으로 몸이 쭈뼛대는 건 피할 수 없었다.
「 아…. 아, 아 아니 이건 원래 이런 거ᄂ…….」
“상관 마.
네 염화 없이도 조만간 가능할 테니까.”
말에 가시가 있어선 뽀로통해하는 어투가 드러났지만 그래도 율리어스는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다.
「 그, 그래. 알겠어. 」
사가스는 약간 당황한 어투로 알아들었다는 듯이 대답했다.
처음 이 스킬을 쓰고자 스펠링을 읊을 때는 반대로 율리어스가 말없이 따라왔었다.
그런데 그 따라서 배우는 속도는 어느덧 사가스를 따라잡아 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율리어스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조 만 간이 아니라는 것을 사가스는 느꼈다.
염화 없이도 성좌의 성흔을 두른 스폘을 읊을 수 있다는 건 사가스의 말대로 간단한 시전이 아님을 뜻했다.
그런데 율은 허투루 말을 선포하는 인간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에 성좌와 계약자 사이에 생긴 공통의 스펠을 혼자 읊는 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곧이었다.
율이 성좌인 자신을 의지하는 것도 좋았지만 원래부터 그는 혼자 하는 것이 익숙해 보였다.
아마도 사가스가 그의 익숙함에 또 녹아드는 게 빠를 것 같음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됐으니까. 염화로 스펠이나 읊어.”
여전히 뚱한 말투였지만 사가스에 대한 불만은 어느 정도 가라앉은 듯싶었다.
「 ᛑᛂᛘᛁ-ᛔᛚᛆᚿ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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