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 [2부] 기억의 파편이 닿은 곳
조회 : 7 추천 : 0 글자수 : 4,603 자 2026-10-15
아르휀은 아르휀대로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나마 하고 싶은 말은 다 뱉고 싶었던지 그의 울음이 잦아들어서 말은 또박또박 잘 들렸다.
하지만 그것과는 또 별개의 소리가 튀어나왔다.
‘애초에 져서 분한 것도 아니란 거야, 뭐야….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잖아?’
서두가 없어 보이는 듯한 그의 이상한 말들.
하지만 이상하게도 둘의 대화는 미묘하게 이어져 가는 것같이 느껴졌다.
무슨 조화인지 참 알다가도 모를 분위기만이 흐르고 있었다.
덕분에 아르휀만이 혼자 덩그러니 동떨어진 느낌으로 시스에게도 말을 걸 수도 없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뭐ㄱ…….’
근원의 발상지가 될 핀트가 될 만한 건 일이 일어난 전개에 따라 얼마든지 콕 집어 낼만도 했었다.
그렇지만 그러기엔 그는 애당초 침입자에 불과했다.
난데없이 나타나 싸움을 건 쪽은 그였고, 혼자서 오만방자함을 비롯해 난리를 피우더니….
졌다.
졌으면 조용히 물러나면 될 것이지.
그게 깔끔한 결말의 끝으로는 이어지지 않은 게 문제였다.
아르휀은 도통 이해를 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아니 왜…. 왜? 시스가 난데없이 그쪽 누나야?!’
마음 같아선 폭풍 같은 질문을 날리며, 따지고 싶었다.
나만 빼고 뭐야? 왜?!
둘이 진짜 아는 사이였어?
저쪽은 왜 사라지지 않고, 계속 시스 앞에서 버티는 거야?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럴 수가 없었다.
따지고는 싶은 것은 지극히 아르휀의 개인적인 심정으로….
뭔가 끼어들 수 없는 분위기라는 건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굴뚝같은 마음을 참으며 눈치껏 분위기만을 읽었다.
그 덕분에랄까?
아르휀은 거의 벙찐 표정으로 시스와 그를 번갈아 쳐다보는 것 이외에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
지끈.
움찔….
그가 시스를 ‘누나’라는 이상한 호칭으로 부르는 소리를 듣고 난 이후부터 뭔가 이상했다.
가슴 부분이 미어지듯이 찌릿찌릿했다.
【 아프……다!? 】
알아내기 힘든 미묘함이 시스의 감정을 메우기 시작했다.
【 ……잘 모르겠어. 】
이게 어떤 감정인지 시스는 바로 깨우치기가 힘들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스는 희로애락에 따라 표현될 감정이 흐려져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 감정들은 그 오랜 시간을 거쳐 결렬 되어버린 걸지도 몰랐다.
목소리가 들리는 대상들에게 한해서 감정이 없어 보이는 기계처럼 여태껏 똑같이 기계 음성으로 딱딱하게 반응했었다.
그런데 그런 딱딱함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시스 본인도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마치 메마른 대지에 이슬 한 방울이 떨어진 것처럼.
아주 스스럼 없이 녹아드는 기분 같았다.
「 누…. 누, 누나. 아…악.
대체 내가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어!
모르겠는데. 너한테서 자꾸 뭔가…. 뭐랄까…으으.
뭔가 어떤 기억이 겹쳐 보인단 말이야…! 」
그도 시스와 마주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떤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나는 바람에 괴로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시스에게 ‘누나’라고 부르는 걸 멈추지도 않았다.
‘…그냥 지켜보자.’
원래 끼어들 틈새도 없어 보이는 둘 사이였지만.
끼어든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민폐일 것 같았다.
사사로운 감정을 접으며 자진해서 묵언수행을 들어가는 아르휀이었다.
【 나…. 난 몰라. 넌 대체 누ㄱ……. 】
찌리릿…. 퍽!
그 순간 뇌가 찌릿하게 경직되는 느낌이 시스를 덮쳤다.
처음 아파져 왔던 욱신거림과는 차원이 달랐다.
【 …아……아아아. 】
시스는 열심히 혼잣말로 중얼거리기에 바빴다.
【 기억…기억.
소거되었던 오래된 메모리가 현시점으로부터 복구, 복구 중……. 】
시스의 메모리에서는 평소보다 심한 잡음이 발생하며 미로에 갇혀버렸다.
그리고 온전히 그 메모리에 매달리게 되자 그녀의 눈은 그대로 스르르 감겨져 상황은 고립되었다.
치…직.
치지지지지….
치지지지지직.
엄청난 잡음들은 한참을 복구가 되어가고있는 메모리와 씨름이 한창이었다.
【 복구…복구률……47…63…77…89……메모리의 복구가 가능합니다.
마스터. 이 메모리를 복구시키겠습니까? 】
……
…………!
‘그, 그런 걸 난데없이 나한테 물어본다고?!’
이건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아주 중요한 열람권을 권한이 아르휀에게 주어졌다.
그 둘 사이에서 끼어들 수 없는 제삼자라고만 생각했건만….
‘아직 내 역할이 남아있다…라는 거려나?’
아르휀은 이런저런 기분이 막 섞여선 뒤숭숭해졌다.
처음엔 강제로 묵언수행을 하는 것 같아서 언짢은 기분도 없다곤 할 수 없었다.
시스는 애초에 그를 몰아내기 위해 아르휀의 힘을 임시지만 부여받았다.
그런데 전투는 급박해져 갈수록 점점 배제되어 홀대해져 가는 느낌은 커져갔다.
그래서 관전하면 할수록 제삼자의 입장으로 감정이입이 되었다.
그렇게 토라진 아르휀의 마음속에 돌고 돌아서 온 게 시스의 권한 승낙에 관한 질문이었다.
‘고민…아니, 굳이 내가 메모리 복구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시스가 무엇을 복구하려는 지 아르휀은 자세히 알 리는 만무했다.
하지만 눈치는 있었다.
그 눈치 것으로 그와 시스 사이의 알 수 없는 대화에 관계가 있음을 지레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 마스터. 메모리를 복구시키겠습니까? 】
아르휀이 아주 잠시 잠깐 생각하는 사이, 시스의 기계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그런데 마치 그 목소리는 아르휀에게 한정해서 보채는 듯이 들리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지금, 이 순간에 시스가 원하는 것을 들어줘야만 할 것 같은 느낌도 강하게 쐐기를 박았다.
“알겠어. 시스. 승인할게.
그 메모리를 복구시켜.”
내심 조금은 찜찜한 기분도 지울 수 없었다.
복구시켜서 뒤탈만 나지 않는다면, 그 찜찜한 기분마저도 홀연히 버릴 수 있겠지만….
결과는 어떻게 이어질지는 시스가 복구시킨 메모리에 다 달려있었다.
【 확인 완료.
메모리 복구 승인을 받았습니다.
메모리가 100% 복구가 되겠습니다. 】
키 이이이이잉 -
감겼던 시스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그녀의 눈동자는 순식간에 파랗게 물들었다.
마치 기억의 파노라마가 스쳐 가듯 그녀의 파란 눈동자에선 수많은 데이터베이스가 읽혀 가고 있었다.
【 … 아…. 아…아악……앗. 】
기억의 매개체가 급격히 움직이자, 시스는 처음에 괴로운 듯한 비명을 질렀다.
******************
- 누나, 카스 누나….
- 왜, 폴?
- 우린 언제까지나 함께인 거 맞지, 맞지? 그런 거지?!
폴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마치 언제 헤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선 미약하게 폴의 몸이 떨림이 카스에게까지 느껴졌다.
토닥토닥.
그러자 카스는 부드럽게 그런 폴을 어루만져 주었다.
- 그렇지 않아. 폴.
비록 우리는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별의 성좌지만.
우리가 만약 헤어져도 기억만 한다면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단다.
- 지, 진짜?
그럼 누나…. 누나도 절대 폴 잊어버리면 안 된다. 알겠지? 응, 응?!
카스는 대답 대신 응석 부리는 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그리고…우리가 헤어진다 해도 성좌의 주인과 계약만 맺을 수 있다ᄆ…….
- 응, 누나? 그게 뭐야??
폴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 아냐. 폴 넌 아직 몰라도 된단다.
우린 곧 긴 잠에 빠질 거야.
그리고 언젠가 다시 깨어나면 누나가 다시 말해줄게.
- …………….
- ( 당신을 기다릴게요. 내 성좌의 주인….)
************************
또그르르..
뚝.
메모리를 읽기 바빴던 시스의 푸른 눈동자가 눈꺼풀과 내려가며 함께 스르르 감겼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눈가에는 촉촉함이 어렸다.
그 촉촉함 아래로 이내, 눈물 한 방울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 ……포, 포…폴? 】
시스는 메모리에서 찾은 기억을 더듬으며 떨리는 음성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 누, 누나? 누나…?!
맞아. 누나. 나 폴이야. 폴이라고!
이제 내가 누군지 알아보는 거야!? 」
그의 목소리도 매한가지로 떨리고 있었다.
그 어떤 두려움보다는 그리움.
사뭇힌 그리움에서 헤어 나온 환희.
「 꾸, 꿈이 아닌 거지. 맞지. 응. 누나!? 」
감정이 무척이나 기쁨에 벅차올라선 그는 갑자기 자신의 볼을 꼬집어 대었다.
아얏!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절대 꿈이 아니라는 것을 볼에 상기된 아픔이 모두 현실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 폴…폴룩스. 】
시스의 눈가에는 촉촉함의 흔적 뒤로 다시 본연의 감정을 찾아 안정적인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재차 불렀다.
「 응. 누나. 카스…. 카스토르 누나!
정말…정말 정말 정말 보고 싶었어…. 흑.
내가…폴이 얼마나 누나를 기다린 줄 알아? 」
【 너를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구나. 폴. 】
「 미, 미안하면 다시, 다시는 폴을 두고 아무 데도 가지 마! 」
그는 마치 물고 늘어지는 어린아이처럼 징징거리듯 시스의 주위를 맴돌기에 바빴다.
‘……………………….’
아르휀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지만.
딱 한 가지는 추론할 수 있었다.
‘둘은 남매라는 건데….
그렇다면 시스는 단순한 시스템이 아니…….’
【 마스터. 】
이런저런 의문으로 아르휀이 머릿속이 복잡해져가는 그때였다.
【 모든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마스터.
이제 마스터에게 제가 아는 진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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