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렌의 결혼식
조회 : 318 추천 : 0 글자수 : 4,699 자 2024-07-24
켈렌은 예의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국가적인 행사도 아니고 별 대단할 것 없는 이벤트인데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 것인가.
눈처럼 새하얀 예복은 너무 뻣뻣해서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절차는 또 왜 그렇게 많은지, 하루가 다 가고도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준비되셨습니까?"
하인 하나가 문틈으로 머리를 빼꼼 내밀고 묻자, 켈렌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부들이 준비하는 동안 하객들을 맞이하는 것은 본인의 몫이었으니.
"으."
바깥으로 나간 켈렌은 단번에 고난을 직감했다.
자그마치 수천에 달하는 하객이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켈렌과 스텔라가 보낸 청첩장이 천 장이다.
카르샤는 활동 영역이 영역이니만큼 부를 사람이 없을 텐데도 수백 명의 하객을 초대했다.
프리나는 정령술사들을 대거 초대해 정령들까지 불렀다.
대지의 정령왕과 화염의 정령왕까지 식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심지어는 마족 중에서도 참석한 이들이 있었다.
켈렌의 기억에는 분명 카웨다르푸스만이 올 것이었는데, 어쩌다 수십 명씩이나 오게 된 건가?
"결혼 축하드립니다!"
켈렌을 발견한 마법학교의 학생 중 하나가 소리쳤다.
분명 바루펠이 소식을 전했을 테고, 학생들은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을 테지.
어린 학생의 눈치없는 발언을 들은 근처 하객들이 모두 켈렌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인근 하객이라고 해도 수백, 켈렌은 무수한 사람들의 인사와 악수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뿐이면 다행이었겠지만, 불행히도 그중엔 유명인사와 몇 마디 대화라도 해보려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평소였다면 매몰차게 등을 돌렸겠지만, 자리가 자리이고 입장이 입장이다보니 켈렌은 미소를 지울 수가 없었다.
"후에 우리 마법학교에 한 번 들러주게. 특별 강의 시간을 가져야겠군."
"정령계는 어떻게 가실 수 있었던 겁니까?"
"마계를 여행하셨던 이야기를 꼭 한 번 듣고 싶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느라 지친 켈렌은 결국 금단의 비기를 사용하고 말았다.
성의없다는 평가를 받을지도 몰랐지만, 뭐 어쩌겠는가.
수천 명의 대화 상대를 사람 하나가 다 맡는다는 건 너무 비인간적이었다.
켈렌은 얼음 분신을 조금 만들어 사람들 사이로 뿌리고, 그동안 켈렌은 중요한 손님들에게로 향했다.
"귀한 시간을 내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잘 지낸 것뿐만 아니라 내 귀한 여동생과 결혼까지! 축하한다네!"
"인간들은 이런 식으로 협박을 하던데. 만약 내 여동생을 조금이라도 불행하게 한다면..."
"그만. 겁을 주고 있잖니."
대지토룡왕과 화염 황제, 만해태와룡이 그들이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존재만으로 이 공간을 지배할 수 있는 양반들이 이렇게 얌전히 있는 건 보기 드문 일이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십니까? 뭐라도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계속 내게 뭔가를 주려고 하는군요? 난 그저 그대와 눈송이가 행복하길 바랄 뿐이에요."
"그건... 물론입니다."
여제가 상냥하게 웃자, 다른 두 정령왕도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식은 언제쯤 시작되나요?"
"10분이면 준비가 끝날 겁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괜찮아요. 넉넉히 준비해요."
여제는 자신의 마력을 흩뿌려 분위기를 조금 더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켈렌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신부들을 보러 가세요. 우리는 기다릴 테니."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켈렌은 조심스럽게 자리를 떴다.
역시 정령왕들을 한 자리에서 모두 만나는 건 좋은 경험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도 많은 큰 행사이기에 위화감 없이 잘 섞여 있긴 하지만, 존재 그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숨길 수 없었다.
압도적인 존재감에 지친 켈렌은 고개를 흔들고는 신부 대기실로 향했다.
문 앞에 서자 안쪽에서는 잡담을 나누는지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켈렌은 들어가기 전에 잠시 서서 생각했다.
검사에, 암살자에, 정령왕.
켈렌은 새삼 자신이 얼마나 '독특한' 행동을 벌이고 있는지 깨달았다.
아무리 켈렌이 남의 눈치를 안 보고 산다고 해도, 이런 경우는 예외였다.
켈렌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행사 시작이 다가오는 이 시점에 망설임은 있어선 안 됐다.
"멋진데?"
"옷이 날개네."
"......"
이젠 완전히 친해진 듯 서로 말을 주고받는 세 신부를 보며, 켈렌은 괜한 걱정을 했다고 생각했다.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있었고, 자신 역시 행복해질 자신이 있었다.
"어떻게 아닐 수가 있겠어."
세 신부는 켈렌의 자만에 얼굴을 찡그렸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켈렌의 마법으로 이루어진 드레스에 직접 마력을 섞어, 몹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마치 얇고 가느다란 수정으로 이루어진 실을 엮어 만들어낸 드레스 같았다.
"내가 다 초라해보이는군."
"어떻게 아닐 수 있겠어."
한 방 먹은 켈렌이 피식 웃으면서 먼저 밖으로 나섰다.
이윽고, 본격적인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
결혼식 자체는 평범하게 진행되었다.
양측 입장과 소개, 주례와 축사, 축가 등.
제국 양식의 일반적인 결혼식과 크게 다른 점은 하객의 수준과 신부가 셋이라는 것뿐이었다.
"제국 변방의 마을에서 태어난 작고 초라한 인간이, 어떻게 이 정도의 성취를 누렸는가. 정말 신기할 정도의 운명이로군."
화염 황제가 흥미롭다는 듯 중얼거리자, 두 정령왕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정령왕들은 흐뭇한 표정으로 행사를 지켜보았다.
"결혼 축하 연회를 시작하겠다!"
이윽고 결혼식이 끝나자, 바루펠은 켈렌과는 상의하지도 않은 연회를 열었다.
바루펠이 공간을 찢어 수많은 음식들과 사람들을 소환했다.
단단히 준비한 채 대기하고 있던 인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자, 연회는 금방 시작되었다.
"이런 걸 준비했었나?"
"더한 것도 준비했지."
바루펠은 손가락을 튕겨 허공을 찢었고, 거기선 검은 공 같은 것이 튀어나왔다.
바루펠은 그 일렁이는 반물질 같은 것을 켈렌에게 던지더니 마력을 불어넣으라고 말했다.
켈렌은 별 생각 없이 검은색 비눗방울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켈렌은 자신과 이 아공간 소환물질이 완전히 연결된 것을 느꼈다.
동시에 마력이 격류처럼 빠져나가자 가벼운 현기증이 느껴졌다.
"이건 뭐지?"
"아공간 아티팩트. 정확히는 마법이긴 한데... 흠. 설명하기 힘들군."
"내 마력에 동기화된 아공간 생성 물질인가?"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쓰다보면 익숙해질 거야. 결혼 축하한다."
그제야 바루펠이 건넨 게 결혼 선물이라는 것을 깨달은 켈렌이 얼굴을 찌푸렸다.
"밥이나 살 것이지. 이런 걸 준담."
"밥값이 더 나올 거라는 데에 금화 천 개라도 걸어주지."
"예리한 자식."
켈렌은 아공간 생성물을 아공간에 보내버렸다.
어차피 마력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소환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리라.
"나머지 선물들은 신부들이 받는 것 같더라. 하긴, 너한테 줄 건 없겠지."
"무슨 뜻이지?"
"워낙 필요한 게 있어야지. 돈이나 밥 같은 건 결혼 선물로는 좀 그렇잖아."
켈렌은 혀를 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신부들이 수많은 하객들에게 둘러싸여 선물을 받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만...
켈렌은 슬슬 귀찮아지는 걸 느꼈다.
그와 동시에 켈렌은 막대한 불안감을 느꼈다.
결혼식에 마음이 없다면 후에 아내들과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건 가능한 건가?
마침 카르샤가 켈렌에게 다가왔다.
지인이 가장 적었기에 인사도 빨리 끝난 탓이었다.
그리고 켈렌을 가장 오래 봐 왔던 그녀였기에 위화감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
"아냐, 아무것도."
"무슨 일이라도 있어?"
"그냥 기분이... 좀 이상하네."
"나중에 얘기해줘."
카르샤는 켈렌의 뺨에 가벼운 키스를 남기고는 그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켈렌은 마음속 공허함이 약간 채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하객들 사이로 걸어갔다.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에게 정성스럽게 답해주고, 켈렌은 술을 잔뜩 챙겼다.
자주 마시지도, 많이 마시지도 않는 편이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더러웠다.
술을 마셔야만 나을 것 같았다.
"진정이 안 되는군."
연거푸 술잔을 들이키고 있던 켈렌에게, 쿠라스가 다가왔다.
그 또한 분위기에 휩쓸려 술을 좀 마셨는지 얼굴이 벌건 상태였다.
"고민 있는 얼굴이구만."
켈렌의 맞은편에 앉자마자 대뜸 말을 꺼내는 쿠라스에게, 켈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혼이란 게 두렵나?"
"아닙니다... 단지..."
"누군가와 조금 더 깊은 관계를 맺는다는 게 쉽지는 않지."
"......"
"끊어내기도, 저버리기도 어렵고, 뭘 하든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될 테지."
"...그렇습니다."
쿠라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탁자를 두드렸다.
"너무 걱정하진 말게. 자네를 이해해주지 못할 사람들은 아니잖나."
"하지만..."
"오히려 따라나서는 것을 걱정해야 하지 않겠나?"
"......!"
쿠라스는 그렇게 켈렌의 고민을 들어주었고, 함께 술잔을 들어주었다.
그 결과, 켈렌은 쿠라스에게 업혀서 집에 돌아가게 됐다.
국가적인 행사도 아니고 별 대단할 것 없는 이벤트인데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 것인가.
눈처럼 새하얀 예복은 너무 뻣뻣해서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절차는 또 왜 그렇게 많은지, 하루가 다 가고도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준비되셨습니까?"
하인 하나가 문틈으로 머리를 빼꼼 내밀고 묻자, 켈렌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부들이 준비하는 동안 하객들을 맞이하는 것은 본인의 몫이었으니.
"으."
바깥으로 나간 켈렌은 단번에 고난을 직감했다.
자그마치 수천에 달하는 하객이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켈렌과 스텔라가 보낸 청첩장이 천 장이다.
카르샤는 활동 영역이 영역이니만큼 부를 사람이 없을 텐데도 수백 명의 하객을 초대했다.
프리나는 정령술사들을 대거 초대해 정령들까지 불렀다.
대지의 정령왕과 화염의 정령왕까지 식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심지어는 마족 중에서도 참석한 이들이 있었다.
켈렌의 기억에는 분명 카웨다르푸스만이 올 것이었는데, 어쩌다 수십 명씩이나 오게 된 건가?
"결혼 축하드립니다!"
켈렌을 발견한 마법학교의 학생 중 하나가 소리쳤다.
분명 바루펠이 소식을 전했을 테고, 학생들은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을 테지.
어린 학생의 눈치없는 발언을 들은 근처 하객들이 모두 켈렌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인근 하객이라고 해도 수백, 켈렌은 무수한 사람들의 인사와 악수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뿐이면 다행이었겠지만, 불행히도 그중엔 유명인사와 몇 마디 대화라도 해보려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평소였다면 매몰차게 등을 돌렸겠지만, 자리가 자리이고 입장이 입장이다보니 켈렌은 미소를 지울 수가 없었다.
"후에 우리 마법학교에 한 번 들러주게. 특별 강의 시간을 가져야겠군."
"정령계는 어떻게 가실 수 있었던 겁니까?"
"마계를 여행하셨던 이야기를 꼭 한 번 듣고 싶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느라 지친 켈렌은 결국 금단의 비기를 사용하고 말았다.
성의없다는 평가를 받을지도 몰랐지만, 뭐 어쩌겠는가.
수천 명의 대화 상대를 사람 하나가 다 맡는다는 건 너무 비인간적이었다.
켈렌은 얼음 분신을 조금 만들어 사람들 사이로 뿌리고, 그동안 켈렌은 중요한 손님들에게로 향했다.
"귀한 시간을 내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잘 지낸 것뿐만 아니라 내 귀한 여동생과 결혼까지! 축하한다네!"
"인간들은 이런 식으로 협박을 하던데. 만약 내 여동생을 조금이라도 불행하게 한다면..."
"그만. 겁을 주고 있잖니."
대지토룡왕과 화염 황제, 만해태와룡이 그들이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존재만으로 이 공간을 지배할 수 있는 양반들이 이렇게 얌전히 있는 건 보기 드문 일이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십니까? 뭐라도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계속 내게 뭔가를 주려고 하는군요? 난 그저 그대와 눈송이가 행복하길 바랄 뿐이에요."
"그건... 물론입니다."
여제가 상냥하게 웃자, 다른 두 정령왕도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식은 언제쯤 시작되나요?"
"10분이면 준비가 끝날 겁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괜찮아요. 넉넉히 준비해요."
여제는 자신의 마력을 흩뿌려 분위기를 조금 더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켈렌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신부들을 보러 가세요. 우리는 기다릴 테니."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켈렌은 조심스럽게 자리를 떴다.
역시 정령왕들을 한 자리에서 모두 만나는 건 좋은 경험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도 많은 큰 행사이기에 위화감 없이 잘 섞여 있긴 하지만, 존재 그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숨길 수 없었다.
압도적인 존재감에 지친 켈렌은 고개를 흔들고는 신부 대기실로 향했다.
문 앞에 서자 안쪽에서는 잡담을 나누는지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켈렌은 들어가기 전에 잠시 서서 생각했다.
검사에, 암살자에, 정령왕.
켈렌은 새삼 자신이 얼마나 '독특한' 행동을 벌이고 있는지 깨달았다.
아무리 켈렌이 남의 눈치를 안 보고 산다고 해도, 이런 경우는 예외였다.
켈렌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행사 시작이 다가오는 이 시점에 망설임은 있어선 안 됐다.
"멋진데?"
"옷이 날개네."
"......"
이젠 완전히 친해진 듯 서로 말을 주고받는 세 신부를 보며, 켈렌은 괜한 걱정을 했다고 생각했다.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있었고, 자신 역시 행복해질 자신이 있었다.
"어떻게 아닐 수가 있겠어."
세 신부는 켈렌의 자만에 얼굴을 찡그렸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켈렌의 마법으로 이루어진 드레스에 직접 마력을 섞어, 몹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마치 얇고 가느다란 수정으로 이루어진 실을 엮어 만들어낸 드레스 같았다.
"내가 다 초라해보이는군."
"어떻게 아닐 수 있겠어."
한 방 먹은 켈렌이 피식 웃으면서 먼저 밖으로 나섰다.
이윽고, 본격적인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
결혼식 자체는 평범하게 진행되었다.
양측 입장과 소개, 주례와 축사, 축가 등.
제국 양식의 일반적인 결혼식과 크게 다른 점은 하객의 수준과 신부가 셋이라는 것뿐이었다.
"제국 변방의 마을에서 태어난 작고 초라한 인간이, 어떻게 이 정도의 성취를 누렸는가. 정말 신기할 정도의 운명이로군."
화염 황제가 흥미롭다는 듯 중얼거리자, 두 정령왕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정령왕들은 흐뭇한 표정으로 행사를 지켜보았다.
"결혼 축하 연회를 시작하겠다!"
이윽고 결혼식이 끝나자, 바루펠은 켈렌과는 상의하지도 않은 연회를 열었다.
바루펠이 공간을 찢어 수많은 음식들과 사람들을 소환했다.
단단히 준비한 채 대기하고 있던 인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자, 연회는 금방 시작되었다.
"이런 걸 준비했었나?"
"더한 것도 준비했지."
바루펠은 손가락을 튕겨 허공을 찢었고, 거기선 검은 공 같은 것이 튀어나왔다.
바루펠은 그 일렁이는 반물질 같은 것을 켈렌에게 던지더니 마력을 불어넣으라고 말했다.
켈렌은 별 생각 없이 검은색 비눗방울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켈렌은 자신과 이 아공간 소환물질이 완전히 연결된 것을 느꼈다.
동시에 마력이 격류처럼 빠져나가자 가벼운 현기증이 느껴졌다.
"이건 뭐지?"
"아공간 아티팩트. 정확히는 마법이긴 한데... 흠. 설명하기 힘들군."
"내 마력에 동기화된 아공간 생성 물질인가?"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쓰다보면 익숙해질 거야. 결혼 축하한다."
그제야 바루펠이 건넨 게 결혼 선물이라는 것을 깨달은 켈렌이 얼굴을 찌푸렸다.
"밥이나 살 것이지. 이런 걸 준담."
"밥값이 더 나올 거라는 데에 금화 천 개라도 걸어주지."
"예리한 자식."
켈렌은 아공간 생성물을 아공간에 보내버렸다.
어차피 마력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소환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리라.
"나머지 선물들은 신부들이 받는 것 같더라. 하긴, 너한테 줄 건 없겠지."
"무슨 뜻이지?"
"워낙 필요한 게 있어야지. 돈이나 밥 같은 건 결혼 선물로는 좀 그렇잖아."
켈렌은 혀를 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신부들이 수많은 하객들에게 둘러싸여 선물을 받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만...
켈렌은 슬슬 귀찮아지는 걸 느꼈다.
그와 동시에 켈렌은 막대한 불안감을 느꼈다.
결혼식에 마음이 없다면 후에 아내들과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건 가능한 건가?
마침 카르샤가 켈렌에게 다가왔다.
지인이 가장 적었기에 인사도 빨리 끝난 탓이었다.
그리고 켈렌을 가장 오래 봐 왔던 그녀였기에 위화감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
"아냐, 아무것도."
"무슨 일이라도 있어?"
"그냥 기분이... 좀 이상하네."
"나중에 얘기해줘."
카르샤는 켈렌의 뺨에 가벼운 키스를 남기고는 그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켈렌은 마음속 공허함이 약간 채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하객들 사이로 걸어갔다.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에게 정성스럽게 답해주고, 켈렌은 술을 잔뜩 챙겼다.
자주 마시지도, 많이 마시지도 않는 편이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더러웠다.
술을 마셔야만 나을 것 같았다.
"진정이 안 되는군."
연거푸 술잔을 들이키고 있던 켈렌에게, 쿠라스가 다가왔다.
그 또한 분위기에 휩쓸려 술을 좀 마셨는지 얼굴이 벌건 상태였다.
"고민 있는 얼굴이구만."
켈렌의 맞은편에 앉자마자 대뜸 말을 꺼내는 쿠라스에게, 켈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혼이란 게 두렵나?"
"아닙니다... 단지..."
"누군가와 조금 더 깊은 관계를 맺는다는 게 쉽지는 않지."
"......"
"끊어내기도, 저버리기도 어렵고, 뭘 하든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될 테지."
"...그렇습니다."
쿠라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탁자를 두드렸다.
"너무 걱정하진 말게. 자네를 이해해주지 못할 사람들은 아니잖나."
"하지만..."
"오히려 따라나서는 것을 걱정해야 하지 않겠나?"
"......!"
쿠라스는 그렇게 켈렌의 고민을 들어주었고, 함께 술잔을 들어주었다.
그 결과, 켈렌은 쿠라스에게 업혀서 집에 돌아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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