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리지 않는다
조회 : 356 추천 : 0 글자수 : 5,480 자 2024-07-27
아데카는 치안이 좋지 않기로 유명한 마을이지만, 카르샤와 켈렌에겐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감시 당하던 카르샤가 마을 중앙에 다다르자, 곳곳에서 시선이 노골적으로 날아들었다.
"네 두목을 불러."
카르샤는 그 중 하나를 붙잡고 우두머리를 호출했다.
자신이 직접 왔는데도 얼굴을 보이지 않는 걸 보면 배짱이 꽤 두둑한 놈인 듯 했다.
"잘 지냈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림자가 진 골목 사이에서 살집 있는 큰 체구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카르샤를 노려보던 사내는 켈렌을 쓱 보더니 조소를 흘렸다.
"결혼도 했다던데, 그 옆은 신랑인가? 아데카로 신혼여행을 오다니 특이한 취향이 생겼군그래."
켈렌은 차갑게 식은 표정으로 부카론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카르샤는 처음부터 힘으로 해결할 생각은 아니었는지, 제안을 했다.
"제국 용병 길드에 가입해라. 합법적으로 조직을 운영해."
"이건 또 무슨 개소리냐?"
물론 부카론은 씨알도 안 먹힌다는 표정으로 거절했다.
"선택지는 두 개다. 수락하거나, 거절하거나."
"당연히 거절이다!"
"들었지?"
켈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의 허가 없이, 즉 용병 길드에 가입하지 않은 모든 범죄 조직은 소탕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은 후였던 것이다.
"모두 나와라!"
부카론은 거절의 대가를 눈치챘는지, 먼저 습격을 시도했다.
마차는 따로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지 오래였으니 걸리적거릴 건 없었다.
"오랜만에 즐기고 와."
카르샤는 싱긋 웃으며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었고, 이내 부카론의 부하들을 학살하며 전장을 누볐다.
"젠장!"
부카론은 상대가 안된다는 걸 직감했는지 자신의 호위대까지 동원했다.
하지만 카르샤에게는 조금 더 귀찮은 상대일뿐, 어려운 적은 아니었다.
절망하던 부카론은 멀뚱히 서 있는 켈렌을 발견하곤 악의를 품었다.
보석을 삼키면 몇 가지 능력을 얻을 수 있는 마법을 익힌 그는, 망설임 없이 다이아몬드를 삼켰다.
딱 30초의 은신을 가능케 해주는 가성비 떨어지는 능력이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움직이지 마라."
녹슨 단검을 켈렌의 목에 가져다 대고는, 부카론은 은신이 풀림과 동시에 큰 소리로 카르샤를 불러세웠다.
"어이! 네 신랑이 어찌 돼도 상관없다 이거냐?"
부카론의 마지막 호위를 썰어넘긴 카르샤는 놀라서 멈칫했다.
그녀의 움직임이 멎은 것을 보고 만족스럽게 웃어제낀 부카론이 협박하려던 그때였다.
부카론은 자신의 거칠고 퉁실한 손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알아차렸다.
손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켈렌을 붙잡고 있던 몸이 완전히 얼어붙었던 것이다.
"크아악!"
냉기가 온몸을 파고드는 것을 느낀 그는 몸에 힘을 주며 움직이려고 발악했지만, 그래봐야 아프기만 할 뿐 해방될 수는 없었다.
"살려서 가야하나?"
"현상금은 꽤 짭짤할걸."
"갖다 놓을게."
켈렌은 얼음 분신과 빙룡을 하나씩 만들어내서, 부카론을 데려가게 했다.
부카론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이내 머리 끝까지 얼려버리겠단 협박에 입을 꾹 다물었다.
"끝난 건가?"
켈렌은 다시 마차에 올라탔고, 그와 동시에 머릿속이 다시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켈렌은 분명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여태 심리적인 문제로 이런 고생을 해본 적이 없던 그였다.
어째선지 요즘 들어 정신이 아파오는데, 분명 외적인 문제가 있을 터였다.
"그게 뭔지 도통 모르겠단 말이지..."
켈렌은 두통에도 고민을 거듭하면서, 이윽고 텔라카에 있는 베카로스 마법학교에 도착했다.
꽤나 독창적인 디자인에, 켈렌은 물론이고 아내들도 감탄을 터트렸다.
"우린 학교 구경이나 하고 있을까?"
프리나의 제안에 다른 둘도 찬성하면서 아내들은 금세 마법학교 정문을 돌파했다.
정확히는 스텔라의 얼굴을 알아본 경비병이 절차도 생략한 채 문을 열어준 것이지만.
"켈렌 님. 바넬라 교장선생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금방 찾아뵙겠네."
켈렌도 마찬가지로 정문을 통과하고, 금방 교장의 서재로 향했다.
교장은 활짝 웃으며 그를 맞이했고, 용건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이른바 학교의 교수가 되어달라는 제안이었다.
켈렌은 물론 질색하며 거절했지만, 교수는 끈질겼으며 은근한 광기의 소유자였다.
켈렌에게 마법으로 덤빌 생각을 하면서도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유연한 완급 조절의 능력자.
"어떤 대가든 치르겠습니다. 부디 우리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켈렌은 자신은 필요한 게 없다고 쏘아붙이곤 서재 밖으로 나서려 했다.
그러나 문이 굳게 잠기고 벽으로 변하자 순간적으로 마력을 발산하고 말았다.
그 살기등등한 기세에 교장인 바넬라는 기겁했지만, 켈렌은 사과하며 그럴 뜻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요즘 들어 마음이 불편한 탓에, 그게 해결되면 교수직을 다시 생각해보겠다고 말하자, 바넬라는 그 제안을 수락했다.
맹세를 하지는 않았기에 마음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당부했지만, 바넬라는 개의치 않았다.
하루만 와서 강의를 해주어도 학생들에겐 큰 도움이 될 터.
바넬라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켈렌도 더 이상 거절하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모쪼록 금방 나아지시길."
"......"
켈렌이 학교 본관 밖으로 나오자, 때마침 주변을 돌아다니던 학생 무리와 마주쳤다.
"앗! 새로 오신 교수님이십니까?"
"케렌 님 아니십니까! 그 마왕 토벌대의!"
"멍청하긴! 켈렌 님께 실례잖냐!"
여섯 명의 학생들은 각자 성향대로 떠들어댔다.
켈렌은 인내심있게 들어주었고, 그의 차분한 태도에 학생들도 하나둘 입을 다물었다.
"한 번에 한 명씩."
"마왕은 얼마나 강했나요?"
"지금의 나보다 더."
"세상에..."
"얼음은 인기없는 속성인데 왜 고르셨어요?"
"내가 고른 게 아니라, 얼음 속성의 마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마법을 좀 더 효율적으로 쓰고 싶은데 어떡하죠?"
"가장 자신 있는 걸 시전해봐라."
켈렌은 바넬라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학생들의 질문을 받아주었다.
그 모습은 그대로 바루펠에게도 전해졌다.
저택에 돌아온 켈렌은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바루펠을 만나게 되었다.
"벌써 교수직에 익숙해진 듯 한데."
"우연히 내가 잘 아는 것들만 물어봐서 그런 거다."
"네가 잘 아는 것들만 가르치면 되는 거 아닌가?"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런 말이 있지. 재능은 노력을 이해할 수 없기에 이기지 못한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너는 둘 다 가졌으니..."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라? 헛소리도 그쯤 하는 게 좋아. 요새 나는 상태가 별로 안 좋다고."
"예전에 카르샤를 만났던 동네에서, 애들이랑 놀아줬을 때 기억나냐? 그때 네 모습을 네가 봤어야 했는데."
켈렌은 손사래를 치며 침실로 향했다.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바루펠은 어깨를 으쓱이더니 도로 황궁으로 돌아갔다.
상태가 확실히 좋지 않음을 직감한 켈렌은 침대를 파고들었다.
"으음."
있어선 안 될 것이 자리를 잡았으나, 그게 뭔지, 대체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모르는 불쾌한 감각.
켈렌의 정신을 좀먹는 뭔가가 있었다.
"카웨다르푸스."
그 이름이 어째서 생각난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유가 반드시 있을 터였다.
아내들이 잘 시간이 되어 침실로 들어오자, 켈렌은 나갈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의아하게 여긴 셋이 야밤에 어딜 그리 나가냐고 묻자, 켈렌은 짤막하게 대답하곤 훌쩍 떠났다.
"마계."
세 아내는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았지만,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켈렌의 신변에는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지만... 왠지 더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은...
"카웨다르푸스!"
쏜살같이 마계로 넘어간 켈렌이 고함을 치며 얼음 요정과 분신을 하늘에 흩뿌렸다.
켈렌의 마력을 알아차린 카웨다르푸스는 10분이 채 지나기 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빨리도 알아차렸군. 마법사 양반."
"세 개의 질문을 하겠다. 대답에 따라 모든 게 바뀔 거다."
"성심성의껏 답해드리지."
"첫째. 내게 무슨 짓을 했나?"
"아주 사소한 거요. 몹시 사소해서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켈렌은 그제야 진실을 알아차렸다.
"아주 적은 양의 마력을 흘려서 교란시켰군."
"아마 메스꺼움이나 두통을 느꼈겠지. 평범한 인간들은 단순한 질환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역시 당신은 금방 알아챘군."
"이걸로 뭘 하려고 했지?"
"짐작하고 있지 않나? 전쟁은 내가 일으켰다네. 마계의 고위 귀족들을 설득해서 말이야. 하지만 내가 모르는 변수가 나타났네."
"내가 전장에서 날뛸 줄은 몰랐던 건가?"
"그뿐만 아니라 나를 그리 금방 찾아내서 위협할 줄도 몰랐지. 그래서 평화를 원하는 척했던 거고."
"내가 거슬렸겠지."
"그래. 당신이 없다면 인간계는 내 손 안에 떨어지는 거나 마찬가지지. 그래서 당신을 아예 배제해야 했어."
"적당히 흔들어주면 날뛰다가 쫓겨날 사람으로 보였나보군. 이런 수모가 다 있나."
"아주 안타까운 일이지. 차라리 그랬으면..."
켈렌은 지면에서 미약한 마력의 맥동을 느꼈다.
그 지점으로 미리 뿌려놓은 얼음 분신과 요정들을 카웨다르푸스 몰래 지면으로 이동시켰다.
"전쟁이 다시 시작될 일도 없었을 텐데."
카웨다르푸스가 손가락을 튕기자, 지면이 들썩이며 거대한 검은 나무들이 일제히 솟구쳐 올랐다.
마치 뱀처럼 꿈틀거리며 인간계 쪽으로 전지하는 나무들은 마치 거대한 쓰나미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젠 네놈도 약해빠진 일개 마법사일 뿐이니..."
하지만 켈렌은 코웃음을 치며 맞받아쳤다.
그리고 아공간 마력 저장소를 꺼내들었다.
켈렌의 기묘한 행동에 얼굴을 찌푸린 카웨다르푸스가 돌연 경악했다.
"아, 아니..."
따로 저장해둔 마력을 몽땅 흡수한 켈렌은, 그 모든 걸 다시 방출했다.
검은 나무 쓰나미는 그대로 얼어붙어 무너져내렸고, 얼음조각들은 다시 모여 강이 되었다.
자신의 회심의 일격이 단번에 수포로 돌아가자, 카웨다르푸스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만전인 나를 상대하기 위해 모든 걸 준비했어야지."
켈렌은 어리석은 마족을 비웃으며 그의 심장에 얼음검을 꽂았다.
그러나 카웨다르푸스는 죽기 직전에 켈렌을 향해 소리쳤다.
"이걸로... 나를 쓰러트렸다고 믿겠지...! 하지만... 끝난 게 아니다...!!"
전형적인 악당의 유언을 남기고는 산산조각이 난 카웨다르푸스.
켈렌은 마음속이 확실히 안정되는 것을 느끼고는 한숨을 내쉬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켈렌은 오랜만에 편하게 잠에 들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감시 당하던 카르샤가 마을 중앙에 다다르자, 곳곳에서 시선이 노골적으로 날아들었다.
"네 두목을 불러."
카르샤는 그 중 하나를 붙잡고 우두머리를 호출했다.
자신이 직접 왔는데도 얼굴을 보이지 않는 걸 보면 배짱이 꽤 두둑한 놈인 듯 했다.
"잘 지냈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림자가 진 골목 사이에서 살집 있는 큰 체구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카르샤를 노려보던 사내는 켈렌을 쓱 보더니 조소를 흘렸다.
"결혼도 했다던데, 그 옆은 신랑인가? 아데카로 신혼여행을 오다니 특이한 취향이 생겼군그래."
켈렌은 차갑게 식은 표정으로 부카론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카르샤는 처음부터 힘으로 해결할 생각은 아니었는지, 제안을 했다.
"제국 용병 길드에 가입해라. 합법적으로 조직을 운영해."
"이건 또 무슨 개소리냐?"
물론 부카론은 씨알도 안 먹힌다는 표정으로 거절했다.
"선택지는 두 개다. 수락하거나, 거절하거나."
"당연히 거절이다!"
"들었지?"
켈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의 허가 없이, 즉 용병 길드에 가입하지 않은 모든 범죄 조직은 소탕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은 후였던 것이다.
"모두 나와라!"
부카론은 거절의 대가를 눈치챘는지, 먼저 습격을 시도했다.
마차는 따로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지 오래였으니 걸리적거릴 건 없었다.
"오랜만에 즐기고 와."
카르샤는 싱긋 웃으며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었고, 이내 부카론의 부하들을 학살하며 전장을 누볐다.
"젠장!"
부카론은 상대가 안된다는 걸 직감했는지 자신의 호위대까지 동원했다.
하지만 카르샤에게는 조금 더 귀찮은 상대일뿐, 어려운 적은 아니었다.
절망하던 부카론은 멀뚱히 서 있는 켈렌을 발견하곤 악의를 품었다.
보석을 삼키면 몇 가지 능력을 얻을 수 있는 마법을 익힌 그는, 망설임 없이 다이아몬드를 삼켰다.
딱 30초의 은신을 가능케 해주는 가성비 떨어지는 능력이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움직이지 마라."
녹슨 단검을 켈렌의 목에 가져다 대고는, 부카론은 은신이 풀림과 동시에 큰 소리로 카르샤를 불러세웠다.
"어이! 네 신랑이 어찌 돼도 상관없다 이거냐?"
부카론의 마지막 호위를 썰어넘긴 카르샤는 놀라서 멈칫했다.
그녀의 움직임이 멎은 것을 보고 만족스럽게 웃어제낀 부카론이 협박하려던 그때였다.
부카론은 자신의 거칠고 퉁실한 손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알아차렸다.
손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켈렌을 붙잡고 있던 몸이 완전히 얼어붙었던 것이다.
"크아악!"
냉기가 온몸을 파고드는 것을 느낀 그는 몸에 힘을 주며 움직이려고 발악했지만, 그래봐야 아프기만 할 뿐 해방될 수는 없었다.
"살려서 가야하나?"
"현상금은 꽤 짭짤할걸."
"갖다 놓을게."
켈렌은 얼음 분신과 빙룡을 하나씩 만들어내서, 부카론을 데려가게 했다.
부카론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이내 머리 끝까지 얼려버리겠단 협박에 입을 꾹 다물었다.
"끝난 건가?"
켈렌은 다시 마차에 올라탔고, 그와 동시에 머릿속이 다시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켈렌은 분명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여태 심리적인 문제로 이런 고생을 해본 적이 없던 그였다.
어째선지 요즘 들어 정신이 아파오는데, 분명 외적인 문제가 있을 터였다.
"그게 뭔지 도통 모르겠단 말이지..."
켈렌은 두통에도 고민을 거듭하면서, 이윽고 텔라카에 있는 베카로스 마법학교에 도착했다.
꽤나 독창적인 디자인에, 켈렌은 물론이고 아내들도 감탄을 터트렸다.
"우린 학교 구경이나 하고 있을까?"
프리나의 제안에 다른 둘도 찬성하면서 아내들은 금세 마법학교 정문을 돌파했다.
정확히는 스텔라의 얼굴을 알아본 경비병이 절차도 생략한 채 문을 열어준 것이지만.
"켈렌 님. 바넬라 교장선생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금방 찾아뵙겠네."
켈렌도 마찬가지로 정문을 통과하고, 금방 교장의 서재로 향했다.
교장은 활짝 웃으며 그를 맞이했고, 용건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이른바 학교의 교수가 되어달라는 제안이었다.
켈렌은 물론 질색하며 거절했지만, 교수는 끈질겼으며 은근한 광기의 소유자였다.
켈렌에게 마법으로 덤빌 생각을 하면서도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유연한 완급 조절의 능력자.
"어떤 대가든 치르겠습니다. 부디 우리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켈렌은 자신은 필요한 게 없다고 쏘아붙이곤 서재 밖으로 나서려 했다.
그러나 문이 굳게 잠기고 벽으로 변하자 순간적으로 마력을 발산하고 말았다.
그 살기등등한 기세에 교장인 바넬라는 기겁했지만, 켈렌은 사과하며 그럴 뜻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요즘 들어 마음이 불편한 탓에, 그게 해결되면 교수직을 다시 생각해보겠다고 말하자, 바넬라는 그 제안을 수락했다.
맹세를 하지는 않았기에 마음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당부했지만, 바넬라는 개의치 않았다.
하루만 와서 강의를 해주어도 학생들에겐 큰 도움이 될 터.
바넬라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켈렌도 더 이상 거절하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모쪼록 금방 나아지시길."
"......"
켈렌이 학교 본관 밖으로 나오자, 때마침 주변을 돌아다니던 학생 무리와 마주쳤다.
"앗! 새로 오신 교수님이십니까?"
"케렌 님 아니십니까! 그 마왕 토벌대의!"
"멍청하긴! 켈렌 님께 실례잖냐!"
여섯 명의 학생들은 각자 성향대로 떠들어댔다.
켈렌은 인내심있게 들어주었고, 그의 차분한 태도에 학생들도 하나둘 입을 다물었다.
"한 번에 한 명씩."
"마왕은 얼마나 강했나요?"
"지금의 나보다 더."
"세상에..."
"얼음은 인기없는 속성인데 왜 고르셨어요?"
"내가 고른 게 아니라, 얼음 속성의 마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마법을 좀 더 효율적으로 쓰고 싶은데 어떡하죠?"
"가장 자신 있는 걸 시전해봐라."
켈렌은 바넬라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학생들의 질문을 받아주었다.
그 모습은 그대로 바루펠에게도 전해졌다.
저택에 돌아온 켈렌은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바루펠을 만나게 되었다.
"벌써 교수직에 익숙해진 듯 한데."
"우연히 내가 잘 아는 것들만 물어봐서 그런 거다."
"네가 잘 아는 것들만 가르치면 되는 거 아닌가?"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런 말이 있지. 재능은 노력을 이해할 수 없기에 이기지 못한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너는 둘 다 가졌으니..."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라? 헛소리도 그쯤 하는 게 좋아. 요새 나는 상태가 별로 안 좋다고."
"예전에 카르샤를 만났던 동네에서, 애들이랑 놀아줬을 때 기억나냐? 그때 네 모습을 네가 봤어야 했는데."
켈렌은 손사래를 치며 침실로 향했다.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바루펠은 어깨를 으쓱이더니 도로 황궁으로 돌아갔다.
상태가 확실히 좋지 않음을 직감한 켈렌은 침대를 파고들었다.
"으음."
있어선 안 될 것이 자리를 잡았으나, 그게 뭔지, 대체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모르는 불쾌한 감각.
켈렌의 정신을 좀먹는 뭔가가 있었다.
"카웨다르푸스."
그 이름이 어째서 생각난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유가 반드시 있을 터였다.
아내들이 잘 시간이 되어 침실로 들어오자, 켈렌은 나갈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의아하게 여긴 셋이 야밤에 어딜 그리 나가냐고 묻자, 켈렌은 짤막하게 대답하곤 훌쩍 떠났다.
"마계."
세 아내는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았지만,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켈렌의 신변에는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지만... 왠지 더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은...
"카웨다르푸스!"
쏜살같이 마계로 넘어간 켈렌이 고함을 치며 얼음 요정과 분신을 하늘에 흩뿌렸다.
켈렌의 마력을 알아차린 카웨다르푸스는 10분이 채 지나기 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빨리도 알아차렸군. 마법사 양반."
"세 개의 질문을 하겠다. 대답에 따라 모든 게 바뀔 거다."
"성심성의껏 답해드리지."
"첫째. 내게 무슨 짓을 했나?"
"아주 사소한 거요. 몹시 사소해서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켈렌은 그제야 진실을 알아차렸다.
"아주 적은 양의 마력을 흘려서 교란시켰군."
"아마 메스꺼움이나 두통을 느꼈겠지. 평범한 인간들은 단순한 질환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역시 당신은 금방 알아챘군."
"이걸로 뭘 하려고 했지?"
"짐작하고 있지 않나? 전쟁은 내가 일으켰다네. 마계의 고위 귀족들을 설득해서 말이야. 하지만 내가 모르는 변수가 나타났네."
"내가 전장에서 날뛸 줄은 몰랐던 건가?"
"그뿐만 아니라 나를 그리 금방 찾아내서 위협할 줄도 몰랐지. 그래서 평화를 원하는 척했던 거고."
"내가 거슬렸겠지."
"그래. 당신이 없다면 인간계는 내 손 안에 떨어지는 거나 마찬가지지. 그래서 당신을 아예 배제해야 했어."
"적당히 흔들어주면 날뛰다가 쫓겨날 사람으로 보였나보군. 이런 수모가 다 있나."
"아주 안타까운 일이지. 차라리 그랬으면..."
켈렌은 지면에서 미약한 마력의 맥동을 느꼈다.
그 지점으로 미리 뿌려놓은 얼음 분신과 요정들을 카웨다르푸스 몰래 지면으로 이동시켰다.
"전쟁이 다시 시작될 일도 없었을 텐데."
카웨다르푸스가 손가락을 튕기자, 지면이 들썩이며 거대한 검은 나무들이 일제히 솟구쳐 올랐다.
마치 뱀처럼 꿈틀거리며 인간계 쪽으로 전지하는 나무들은 마치 거대한 쓰나미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젠 네놈도 약해빠진 일개 마법사일 뿐이니..."
하지만 켈렌은 코웃음을 치며 맞받아쳤다.
그리고 아공간 마력 저장소를 꺼내들었다.
켈렌의 기묘한 행동에 얼굴을 찌푸린 카웨다르푸스가 돌연 경악했다.
"아, 아니..."
따로 저장해둔 마력을 몽땅 흡수한 켈렌은, 그 모든 걸 다시 방출했다.
검은 나무 쓰나미는 그대로 얼어붙어 무너져내렸고, 얼음조각들은 다시 모여 강이 되었다.
자신의 회심의 일격이 단번에 수포로 돌아가자, 카웨다르푸스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만전인 나를 상대하기 위해 모든 걸 준비했어야지."
켈렌은 어리석은 마족을 비웃으며 그의 심장에 얼음검을 꽂았다.
그러나 카웨다르푸스는 죽기 직전에 켈렌을 향해 소리쳤다.
"이걸로... 나를 쓰러트렸다고 믿겠지...! 하지만... 끝난 게 아니다...!!"
전형적인 악당의 유언을 남기고는 산산조각이 난 카웨다르푸스.
켈렌은 마음속이 확실히 안정되는 것을 느끼고는 한숨을 내쉬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켈렌은 오랜만에 편하게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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