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한 징조
조회 : 364 추천 : 0 글자수 : 4,880 자 2024-08-04
"카르샤. 들어가 있어."
"하지만..."
켈렌의 최근 정신 상태를 알고 있는 카르샤가 망설였다.
하지만 켈렌은 완고했고, 카르샤는 결국 켈렌의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었다.
주위에 그림자가 많아서 다행이었다.
만에 하나 무슨 문제가 생기더라도 카르샤는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터였다.
그녀가 켈렌만 두고 갈 리는 없겠지만서도.
"모습을 보여라."
켈렌의 나지막한, 하지만 마력을 실은 엄중한 경고가 퍼지자 주위에서 미묘한 움직임들이 포착되었다.
수십에 달하는 움직임을 감지한 켈렌은 마력을 서서히 퍼트렸다.
카웨다르푸스의 공격에서 힌트를 얻은,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미세한 양이지만 본인만큼은 통제가 가능한 옅은 마력.
한 번의 움직임 이후에는 다시 움직임이 멎었다.
하지만 시선은 그대로 느껴졌다.
그 시선에 어린 살기까지도.
"고작 이 정도로 날 잡겠다고?"
켈렌 본인을 잡으려는 게 아닌 것은 알고 있다.
이 장소를 지키는 것뿐이겠지.
하지만 켈렌은 대제국마도국장이자 황궁의 최측근이며 황제의 직속 호위담당 장관이었기에 이런 사태를 묵과할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하고.
"--!!"
켈렌의 도발에 정체 모를 것들이 마력을 한껏 내뿜었다.
그 무시무시한 살기가 깃든 마력에 켈렌은 약간 마음이 동하는 것을 느꼈다.
이 녀석들이라면 상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부터 이곳을 조사 구역으로 지정하고, 대제국마도국장 직속 관할령으로 내린다. 이의가 있다면 지금 나오도록."
마력이 크게 일렁이더니, 그늘진 곳에서 뭔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그래, 뭐냐."
튀어나온 것은 마족 잡졸.
언제라도 죽일 수 있는 하찮은 존재였고, 동시에 마계의 국민이자 제국의 평화 백성이었다.
함부로 죽여서도 안 되지만, 죽였다고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닌...
"알겠느냐?"
켈렌의 설명에 잡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녀석은 용기를 잃지는 않았다.
"부디 돌아가주십시오!"
"그 요구에 대한 근거가 합당하다면. 혹은 합당한 보상이 됐든지."
"무, 무엇을 원하십니까?"
"돈은 됐어. 무겁기만 하고. 명예? 권력? 그중에 너희가 뭘 줄 수 있지? 맛있는 음식이라면 좋겠지만 내 아내들의 솜씨를 따라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
잡졸의 창백했던 얼굴이 완전히 허얘졌다.
"난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게 되면 돌아갈 거다."
"저, 정말 그것으로..."
"아니, 하나를 깜빡한 것 같은데. 난 분명 '합당한' 보상이나 근거를 원한다고 했다. 내가 너희를 두고 돌아가기에 합당하다면야."
켈렌은 어찌 그러지 않겠냐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그렇다면..."
잡졸은 켈렌을 마을 광장으로 안내했다.
켈렌은 에스칼리나에 한 번 와봤지만 광장에 지하 통로가 있는 것은 처음 봤다.
게다가 꽤 최근에 생긴 듯 했다.
"...이곳으로 들어가면 광맥이 나옵니다. 마족들에게 좋은 광물이 풍부한지라 인간들에게 돈을 주고 땅을 샀지요."
"흠. 광맥이라. 게다가 합법적으로 땅을 샀다고 하는군."
"그, 그렇습니다만..."
"그럼 저 시체들은 뭐지?"
잡졸은 크게 당황해 허둥거리더니, 좋은 핑곗거리가 떠올랐는지 눈을 번쩍 떴다.
"도, 도적 떼! 그렇습니다! 도적들이 평화 협정을 깨고 달려들길래 어쩔 수 없이...!"
"알겠다. 너희는 그럼 이 밑에 있는 광맥을 원해서 마을 땅을 샀고, 도적 떼들이 우연히 쳐들어와서 그 녀석들을 처리했다는 거군?"
"예! 바로 그겁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켈렌은 피식 웃으며 잡졸의 어깨를 꽉 쥐었다.
그의 손에 닿은 잡졸의 어깨가 천천히 얼어붙기 시작했다.
잡졸은 고통에 신음을 흘렸지만, 압도적인 공포 앞에 고통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도적 떼라고 했지... 내게 샌드위치를 서비스로 준 식당 주인이 죽어 있는데 말이야..."
"그, 그건...!"
"마을 사람들이 도적 떼에 합류해 마을을 강제로 탈취하려 했다... 맞나?"
"......!!!"
에스칼리나는 좋은 마을이었다.
정겹고, 사람들도 좋았다.
켈렌이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이미 마을에는 그가 대단한 대식가라는 소문이 퍼져 있을 정도였다.
"엄마! 대식가가 뭐야?"
"으응? 대식가는... 음, 밥을 아주 많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을 말하는 거야."
"그럼 먹보네?"
"으응...?"
"먹보 아저씨! 이거 주께요!"
"아앗! 죄송합니다! 우리 아이가!"
켈렌은 무서운 표정으로 꼬마를 내려보고는, 한 마디 쏘아붙였다.
"아저씨가 아니라 형아다."
꿀밤을 먹여주곤 사탕을 빼앗은 켈렌은, 울먹거리는 소년에게 얼음으로 된 각종 조각상을 선물해주었다.
마을 아이들을 불러모아 미끄럼틀이나 그네, 시소를 만들어주고, 눈도 내리게 해주었다.
"그런 정겹고 아름다운 마을을..."
켈렌의 얼음 골렘들이 마을 여기저기로 퍼져 죽은 마을 사람들의 시체를 광장에 모으기 시작했다.
숨어있는 녀석들은 차마 골렘들을 건드리지 못했다.
"고작 광물 때문에 이렇게 만들어놨다는 건가...?"
잡졸의 몸은 이제 허벅지까지 얼어가고 있었다.
"죄, 죄송합, 죄송합니다...!"
턱까지 얼은 채로 덜덜 떨며 사죄하는 잡졸을, 그대로 얼려서 부순 켈렌은 싸늘하게 뱉었다.
"사죄는 해야할 사람들에게 해라."
그와 동시에 숨어있던 것들이 일제히 튀어나왔다.
대부분 마족이었고, 마족의 편에 선 인간들도 몇 있었다.
'마력이 개조된 건가...'
켈렌은 일전에 새로 개발한 마법을 사용해볼겸 의지와 마력을 실었다.
손바닥에 얇은 눈꽃이 생겨나더니, 구부러진 철사가 제멋대로 자라나는 것처럼 뻗었다.
튀어나간 모든 적들이 일순간 굳더니, 그 모습 그대로 얼어버렸다.
그러자 나서지 않고 인내하던 적들이 혀를 차며 모습을 드러냈다.
"명예도 없는 개죽음을 당할 바에는, 차라리 당신의 적으로 죽겠습니다."
"좋은 패기다만, 내가 너희를 개같이 죽이지 않는단 보장은?"
"어차피 정보가 필요하잖습니까?"
이번엔 정곡을 찔린 켈렌이 굳을 차례였다.
"안내해라."
켈렌은 지하 통로를 가리키며 말했고, 열둘에 달하는 마족 정예병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설은 인간계를 마계화 시키기 위해 심어둔 마소 저장소입니다."
"그래서 역겨운 마력이 느껴졌군."
"마을 사람들에 대한 것은 진심으로 애도를 전합니다."
"개소리는 집어치지."
"진심입니다. 우리는 발각되어선 안됐으니 말입니다. 해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럼 다른 곳에 심었으면 됐을 텐데?"
"아시다시피, 윗사람들은 가끔 고집불통인데다 꼭 틀린 말만 하는 것도 아니라서 말입니다."
"쯧."
켈렌은 지하 통로 끝의 공동에 위치한 마소 저장소를 경멸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심장처럼 박동하는 짙은 보랏빛의 거대한 주머니는 한번 움찔거릴 때마다 엄청난 양의 마력을 마소로 바꾸었다.
"우리를 용서하십시오."
"내가 왜..."
정예병의 마지막 말은 켈렌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냅다 박동하는 마소 저장소로 뛰어들더니, 안쪽에서 끔찍하게 갈려나갔다.
녹아내렸다고 말하는 게 맞으려나.
이윽고 그것들은 번데기처럼 하나로 뭉쳐졌고, 마소 저장소를 찢고 튀어나왔다.
"조금 전에 당신의 적으로서 죽겠다고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가 졌을 때의 이야기지요."
"역시 그 패기는 마음에 들어. 답례로 죽도록 패주마."
켈렌은 다리를 통해 지면으로 냉기를 흘려보냈다.
놈의 발목을 꽁꽁 얼려버리고는, 켈렌은 주먹에 마력을 실어 달려들었다.
하지만 허공에 퍼진 마소가 켈렌의 마력을 약간이나마 중화했는지 놈은 얼음에 갇힌 다리를 찢고 탈출했다.
그러나 인간이었다면 죽었을, 마족이라도 꽤 큰 부상을 재빨리 재생시킨 녀석은 당황한 켈렌에게 주먹을 날렸다.
켈렌의 옆구리에서 으지직 하는 소리가 들리자 마족은 사악한 웃음을 흘리더니, 마력을 폭발적으로 방출해 켈렌을 멀리 날려버렸다.
쾅, 굉음과 함께 켈렌이 공동 벽에 부딪혔다.
카르샤가 기겁하며 그림자 밖으로 나서려고 했지만, 켈렌은 이미 마력으로 그녀의 출입을 막아둔 상태였다.
"괜찮아. 얼음이야."
몸을 강화한 얼음이 부서지는 소리였음을 알자, 카르샤는 안도했고 마족은 짜증을 냈다.
"크하!"
이번엔 마족이 달려들었고, 켈렌은 침착하게 녀석을 꽁꽁 얼렸다.
완전히 봉인한다면 재생력도 소용이 없을 터.
하지만 놈의 집념은 켈렌이 과소평가한 것이 맞았다.
놈은 몸에 힘을 줘서 얼음 덩어리째로 자신을 동강냈고, 그 갈라진 신체부위에서 마족이 하나씩 재생되었다.
총 다섯이 된 놈들이 킬킬거리며 각자 자신의 팔을 뽑아냈다.
그것은 꾸물거리며 형태를 바꾸더니 검의 형태가 되었고, 팔이 뽑힌 자리에서는 새로운 팔이 돋아났다.
"초재생. 허. 재밌네."
켈렌은 피식 웃으며 마소에 대항해 마력을 방출했다.
아공간 저장소를 꺼낼까 했지만 상대가 너무 하찮았다.
"어디까지 재생될까? 팔다리도 되는 거 같고, 손이나 발... 손톱 정도로 쪼개도 재생되려나?"
"크후후, 우린 마소만 충분하다면 완전히 불타서 재가 되어도 재생된다!"
"아, 그래?"
켈렌은 살벌하게 웃으며 마력을 모았다.
마족 병사 다섯은 살기등등한 모습에 움찔했지만, 수적 우위를 깨달았다.
그들은 동시에 달려들어, 같은 지점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켈렌의 최근 정신 상태를 알고 있는 카르샤가 망설였다.
하지만 켈렌은 완고했고, 카르샤는 결국 켈렌의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었다.
주위에 그림자가 많아서 다행이었다.
만에 하나 무슨 문제가 생기더라도 카르샤는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터였다.
그녀가 켈렌만 두고 갈 리는 없겠지만서도.
"모습을 보여라."
켈렌의 나지막한, 하지만 마력을 실은 엄중한 경고가 퍼지자 주위에서 미묘한 움직임들이 포착되었다.
수십에 달하는 움직임을 감지한 켈렌은 마력을 서서히 퍼트렸다.
카웨다르푸스의 공격에서 힌트를 얻은,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미세한 양이지만 본인만큼은 통제가 가능한 옅은 마력.
한 번의 움직임 이후에는 다시 움직임이 멎었다.
하지만 시선은 그대로 느껴졌다.
그 시선에 어린 살기까지도.
"고작 이 정도로 날 잡겠다고?"
켈렌 본인을 잡으려는 게 아닌 것은 알고 있다.
이 장소를 지키는 것뿐이겠지.
하지만 켈렌은 대제국마도국장이자 황궁의 최측근이며 황제의 직속 호위담당 장관이었기에 이런 사태를 묵과할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하고.
"--!!"
켈렌의 도발에 정체 모를 것들이 마력을 한껏 내뿜었다.
그 무시무시한 살기가 깃든 마력에 켈렌은 약간 마음이 동하는 것을 느꼈다.
이 녀석들이라면 상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부터 이곳을 조사 구역으로 지정하고, 대제국마도국장 직속 관할령으로 내린다. 이의가 있다면 지금 나오도록."
마력이 크게 일렁이더니, 그늘진 곳에서 뭔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그래, 뭐냐."
튀어나온 것은 마족 잡졸.
언제라도 죽일 수 있는 하찮은 존재였고, 동시에 마계의 국민이자 제국의 평화 백성이었다.
함부로 죽여서도 안 되지만, 죽였다고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닌...
"알겠느냐?"
켈렌의 설명에 잡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녀석은 용기를 잃지는 않았다.
"부디 돌아가주십시오!"
"그 요구에 대한 근거가 합당하다면. 혹은 합당한 보상이 됐든지."
"무, 무엇을 원하십니까?"
"돈은 됐어. 무겁기만 하고. 명예? 권력? 그중에 너희가 뭘 줄 수 있지? 맛있는 음식이라면 좋겠지만 내 아내들의 솜씨를 따라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
잡졸의 창백했던 얼굴이 완전히 허얘졌다.
"난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게 되면 돌아갈 거다."
"저, 정말 그것으로..."
"아니, 하나를 깜빡한 것 같은데. 난 분명 '합당한' 보상이나 근거를 원한다고 했다. 내가 너희를 두고 돌아가기에 합당하다면야."
켈렌은 어찌 그러지 않겠냐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그렇다면..."
잡졸은 켈렌을 마을 광장으로 안내했다.
켈렌은 에스칼리나에 한 번 와봤지만 광장에 지하 통로가 있는 것은 처음 봤다.
게다가 꽤 최근에 생긴 듯 했다.
"...이곳으로 들어가면 광맥이 나옵니다. 마족들에게 좋은 광물이 풍부한지라 인간들에게 돈을 주고 땅을 샀지요."
"흠. 광맥이라. 게다가 합법적으로 땅을 샀다고 하는군."
"그, 그렇습니다만..."
"그럼 저 시체들은 뭐지?"
잡졸은 크게 당황해 허둥거리더니, 좋은 핑곗거리가 떠올랐는지 눈을 번쩍 떴다.
"도, 도적 떼! 그렇습니다! 도적들이 평화 협정을 깨고 달려들길래 어쩔 수 없이...!"
"알겠다. 너희는 그럼 이 밑에 있는 광맥을 원해서 마을 땅을 샀고, 도적 떼들이 우연히 쳐들어와서 그 녀석들을 처리했다는 거군?"
"예! 바로 그겁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켈렌은 피식 웃으며 잡졸의 어깨를 꽉 쥐었다.
그의 손에 닿은 잡졸의 어깨가 천천히 얼어붙기 시작했다.
잡졸은 고통에 신음을 흘렸지만, 압도적인 공포 앞에 고통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도적 떼라고 했지... 내게 샌드위치를 서비스로 준 식당 주인이 죽어 있는데 말이야..."
"그, 그건...!"
"마을 사람들이 도적 떼에 합류해 마을을 강제로 탈취하려 했다... 맞나?"
"......!!!"
에스칼리나는 좋은 마을이었다.
정겹고, 사람들도 좋았다.
켈렌이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이미 마을에는 그가 대단한 대식가라는 소문이 퍼져 있을 정도였다.
"엄마! 대식가가 뭐야?"
"으응? 대식가는... 음, 밥을 아주 많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을 말하는 거야."
"그럼 먹보네?"
"으응...?"
"먹보 아저씨! 이거 주께요!"
"아앗! 죄송합니다! 우리 아이가!"
켈렌은 무서운 표정으로 꼬마를 내려보고는, 한 마디 쏘아붙였다.
"아저씨가 아니라 형아다."
꿀밤을 먹여주곤 사탕을 빼앗은 켈렌은, 울먹거리는 소년에게 얼음으로 된 각종 조각상을 선물해주었다.
마을 아이들을 불러모아 미끄럼틀이나 그네, 시소를 만들어주고, 눈도 내리게 해주었다.
"그런 정겹고 아름다운 마을을..."
켈렌의 얼음 골렘들이 마을 여기저기로 퍼져 죽은 마을 사람들의 시체를 광장에 모으기 시작했다.
숨어있는 녀석들은 차마 골렘들을 건드리지 못했다.
"고작 광물 때문에 이렇게 만들어놨다는 건가...?"
잡졸의 몸은 이제 허벅지까지 얼어가고 있었다.
"죄, 죄송합, 죄송합니다...!"
턱까지 얼은 채로 덜덜 떨며 사죄하는 잡졸을, 그대로 얼려서 부순 켈렌은 싸늘하게 뱉었다.
"사죄는 해야할 사람들에게 해라."
그와 동시에 숨어있던 것들이 일제히 튀어나왔다.
대부분 마족이었고, 마족의 편에 선 인간들도 몇 있었다.
'마력이 개조된 건가...'
켈렌은 일전에 새로 개발한 마법을 사용해볼겸 의지와 마력을 실었다.
손바닥에 얇은 눈꽃이 생겨나더니, 구부러진 철사가 제멋대로 자라나는 것처럼 뻗었다.
튀어나간 모든 적들이 일순간 굳더니, 그 모습 그대로 얼어버렸다.
그러자 나서지 않고 인내하던 적들이 혀를 차며 모습을 드러냈다.
"명예도 없는 개죽음을 당할 바에는, 차라리 당신의 적으로 죽겠습니다."
"좋은 패기다만, 내가 너희를 개같이 죽이지 않는단 보장은?"
"어차피 정보가 필요하잖습니까?"
이번엔 정곡을 찔린 켈렌이 굳을 차례였다.
"안내해라."
켈렌은 지하 통로를 가리키며 말했고, 열둘에 달하는 마족 정예병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설은 인간계를 마계화 시키기 위해 심어둔 마소 저장소입니다."
"그래서 역겨운 마력이 느껴졌군."
"마을 사람들에 대한 것은 진심으로 애도를 전합니다."
"개소리는 집어치지."
"진심입니다. 우리는 발각되어선 안됐으니 말입니다. 해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럼 다른 곳에 심었으면 됐을 텐데?"
"아시다시피, 윗사람들은 가끔 고집불통인데다 꼭 틀린 말만 하는 것도 아니라서 말입니다."
"쯧."
켈렌은 지하 통로 끝의 공동에 위치한 마소 저장소를 경멸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심장처럼 박동하는 짙은 보랏빛의 거대한 주머니는 한번 움찔거릴 때마다 엄청난 양의 마력을 마소로 바꾸었다.
"우리를 용서하십시오."
"내가 왜..."
정예병의 마지막 말은 켈렌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냅다 박동하는 마소 저장소로 뛰어들더니, 안쪽에서 끔찍하게 갈려나갔다.
녹아내렸다고 말하는 게 맞으려나.
이윽고 그것들은 번데기처럼 하나로 뭉쳐졌고, 마소 저장소를 찢고 튀어나왔다.
"조금 전에 당신의 적으로서 죽겠다고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가 졌을 때의 이야기지요."
"역시 그 패기는 마음에 들어. 답례로 죽도록 패주마."
켈렌은 다리를 통해 지면으로 냉기를 흘려보냈다.
놈의 발목을 꽁꽁 얼려버리고는, 켈렌은 주먹에 마력을 실어 달려들었다.
하지만 허공에 퍼진 마소가 켈렌의 마력을 약간이나마 중화했는지 놈은 얼음에 갇힌 다리를 찢고 탈출했다.
그러나 인간이었다면 죽었을, 마족이라도 꽤 큰 부상을 재빨리 재생시킨 녀석은 당황한 켈렌에게 주먹을 날렸다.
켈렌의 옆구리에서 으지직 하는 소리가 들리자 마족은 사악한 웃음을 흘리더니, 마력을 폭발적으로 방출해 켈렌을 멀리 날려버렸다.
쾅, 굉음과 함께 켈렌이 공동 벽에 부딪혔다.
카르샤가 기겁하며 그림자 밖으로 나서려고 했지만, 켈렌은 이미 마력으로 그녀의 출입을 막아둔 상태였다.
"괜찮아. 얼음이야."
몸을 강화한 얼음이 부서지는 소리였음을 알자, 카르샤는 안도했고 마족은 짜증을 냈다.
"크하!"
이번엔 마족이 달려들었고, 켈렌은 침착하게 녀석을 꽁꽁 얼렸다.
완전히 봉인한다면 재생력도 소용이 없을 터.
하지만 놈의 집념은 켈렌이 과소평가한 것이 맞았다.
놈은 몸에 힘을 줘서 얼음 덩어리째로 자신을 동강냈고, 그 갈라진 신체부위에서 마족이 하나씩 재생되었다.
총 다섯이 된 놈들이 킬킬거리며 각자 자신의 팔을 뽑아냈다.
그것은 꾸물거리며 형태를 바꾸더니 검의 형태가 되었고, 팔이 뽑힌 자리에서는 새로운 팔이 돋아났다.
"초재생. 허. 재밌네."
켈렌은 피식 웃으며 마소에 대항해 마력을 방출했다.
아공간 저장소를 꺼낼까 했지만 상대가 너무 하찮았다.
"어디까지 재생될까? 팔다리도 되는 거 같고, 손이나 발... 손톱 정도로 쪼개도 재생되려나?"
"크후후, 우린 마소만 충분하다면 완전히 불타서 재가 되어도 재생된다!"
"아, 그래?"
켈렌은 살벌하게 웃으며 마력을 모았다.
마족 병사 다섯은 살기등등한 모습에 움찔했지만, 수적 우위를 깨달았다.
그들은 동시에 달려들어, 같은 지점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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