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해결
조회 : 503 추천 : 0 글자수 : 5,103 자 2024-08-06
켈렌은 오랜만에 기분이 좋았다.
마법뿐만 아니라 체술과 검술까지 섞어 싸우는데도 이 녀석들, 한계가 없는지 계속해서 몰아붙여온다.
"크하하! 싸울수록 불리해지는 것을 모르겠나?"
이젠 열둘로 불어나버린 마족 잔당을 차례대로 베어넘기면서, 켈렌은 씩 웃었다.
그래, 이런 감각을 원했다.
완벽함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음을 깨우쳐주는 경험을 원했다.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전투를 원했다.
"고작해야 이런 마법 실력으로-!"
놈들의 대검에 팔다리가 날아가도 별 걱정은 없었다.
초재생에 버금가는 얼음 생성으로 견딜 뿐이었다.
"하하하하! 와라!"
켈렌은 광적인 웃음을 터트리며 사방으로 냉기를 흩뿌렸다.
마족 잔당들이 잠시 움직임이 느려진 틈을 타 얼음검을 만들어 한놈의 가슴팍에 찔러박았다.
"크아악!"
내부부터 얼어붙는 감각에 비명을 질렀지만, 벗어날 수는 없었다.
초재생능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얼려버리면 무용지물.
"젠장!"
약점이 까발려진 이상 마족 잔당들의 승산은 완전히 사라졌다.
장기전으로 가도 켈렌이 크게 지친 기색이 없자 오히려 당황한 그들이다.
초조해하면서도 공격해오는 태도에 흔들림이 없다는 것은 높이 살 일이지만...
그런 기본적인 재주로 켈렌을 잡을 수는 없었다.
켈렌은 봉인구를 해제했다.
자신의 마력을 역으로 순환시켜 교란을 일으키며 마력 회로의 작동이 원활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었다.
일반 마법사라면 마력 역류로 기절하거나 마력 회로가 박살날 테지만, 켈렌은 더 이상 그런 부작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정령에 가까워진 몸은 마력 회로의 제약에서 이미 벗어난 상태였으니.
"죽어라!"
그에 비해 마족 잔당들은 태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과 비교하면 완전히 평정을 잃은 상태였다.
"안 되지."
켈렌의 공격에 의해 분열되는 것밖엔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마력 회로의 봉인구를 해제한 켈렌에게는 공격조차 닿지 않았다.
"크아악!"
마족 잔당 둘이 비명을 지르며 추가로 사라졌다.
생산되는 마소량에 비해 소모되는 마소량이 더 많아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셋이 남았을 때였다.
"이젠 재생도 느려졌군."
켈렌의 얼음검에 썰려나간 팔이 재생되는 것을 의식한 마족 잔당 하나가 더 죽었다.
이제 둘만 남은 상황.
"자, 정보를 토해내고 고통없이 죽을 테냐, 아니면..."
"우리에게 그 정도 긍지도 없을 거라 판단한 것이냐!"
"오케이."
켈렌은 소리친 녀석의 허벅지에 얼음구슬을 던졌다.
가시처럼 박힌 그것은 내부에서 천천히 얼어붙으며 신체를 괴사시켰다.
아무리 재생 능력이 있다고 해도 그 고통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어쩌면 재생 능력이 있기 때문에 더한 고통을 느끼는 것일지도.
이윽고 동충하초처럼 완전히 얼어버린 녀석을 보고, 마지막 한놈은 완전히 겁에 질렸다.
"자비를 베풀어 선택지를 주마."
"마, 말하겠습니다! 부디 말하게 해주십시오!"
"...지껄여라."
켈렌은 듣는 내내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마음은 걱정과 기대로 혼란스러웠다.
그도 그럴 게 카웨다르푸스의 인간계 마계화 프로젝트가 이미 거의 진행되었다는 사실이 첫째.
새로운 마왕의 즉위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둘째였다.
그림자 속에서 모든 걸 같이 들은 카르샤는 경악했지만, 켈렌은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새로운 마왕이라?"
"그, 그렇습니다. 전쟁은 멎었지만, 힘을 가진 자들끼리 권력 싸움을 벌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지 않습니까?"
잔당 놈이 눈치를 보며 말했다.
다행히 켈렌은 웃으며 맞받아쳤다.
"오히려 싸움이 없는 게 이상할 따름이지. 다름 아닌 마계니까."
"맞습니다! 그, 그래서 결국 싸움 후에 강자가 나타났고, 마왕으로 등극하게 될 거란..."
"새로운 마왕이 즉위하면?"
"예?"
켈렌이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
"그 다음엔 뭐냐."
"그, 저... 마계의 권력 싸움이 안정되고..."
"그 새로운 마왕이란 놈이 인간계를 치지 않는단 보장이 있나?"
잔당 놈은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그 치열한 마계의 싸움 속에서 살아남은 마왕은 언젠가 인간계로 눈을 돌릴 것이었다.
인간계와 마계의 평화는 깨지게 될 것이고, 또 적대감이 쌓여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고작 몇 년 정도의 평화를 벌기 위해 마계를 손수 정벌한 게 아니었다.
"그, 그렇지만... 아무래도 마족들의 성격상..."
"그래. 강한 자가 모든 것을 가지는 곳이 마계였지. 그럼 내가 마계를 쓸어버려도 원망은 안 하겠군?"
"......"
또 침묵.
켈렌은 마력을 살벌하게 흘렸다.
"너희 마족들은 평화가 싫은 건가? 전쟁을 일으키고 서로 죽여야 직성이 풀리는 건가?"
"아, 아닙니다!"
"아니긴, 새끼야. 내가 보고 들은 게 있는데."
"부디... 제발...!"
"안돼. 결정했다."
켈렌은 싹싹 비는 잔당 놈을 끝내 죽여버리고, 마소 저장고를 파괴했다.
그 직후 켈렌의 얼음 새가 바루펠에게 닿았다.
안 그래도 바루펠 또한 제국의 곳곳에서 느껴지는 불길한 기운에 대해 조사하던 중이었다.
"거길 지키는 놈들이 꽤 강하니까 괜히 인력 낭비하지 마. 내가 처리한다."
켈렌의 얼음 분신이 떼로 달려드는데 멀쩡한 공간은 있을 수가 없었다.
나흘 만에 제국의 모든 마소 저장고가 파괴되자, 마계에서 계획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귀족들은 어금니를 뿌드득 갈았다.
"또 그 미친 마법사입니까!"
"도가 지나치지 않는가!"
평화를 깨부수는 행위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계획을 망치는 것도 적당히 해야 할 것 아닌가!
무소불위, 최강의 힘을 가진 존재는 이렇게나 거슬리는 존재였던가.
"마왕을 즉위시키는 계획이 들통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확신하고 있소. 이미 들킨 게 틀림없소. 그렇지 않고서야..."
그들이 작당 모의를 하던 회랑의 천장이 와드득 소리를 내며 쪼개졌다.
"무슨 이야기들을 그리 즐겁게 하시나?"
켈렌이었다.
귀족들 중 하나가 반사적으로 공격을 날렸다.
켈렌의 머리 절반이 사라졌지만, 분신일 게 뻔했다.
"인사가 먼저였나?"
이번엔 머리가 통째로 사라졌다.
하지만 곧바로 재생된 머리가 말했다.
"안녕들 하신가? 무슨 이야기인지 몰라도, 나도 껴도 되겠지?"
"그렇게 하시오."
또 공격을 날리기 전에, 가장 연로한 귀족이 말했다.
그는 다른 귀족 하나를 손짓으로 물러나게 시켜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고맙군."
켈렌은 의자를 얼려 그 위에 앉았다.
귀족들은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고, 이에 켈렌이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왜들 그러시나? 좀 전에는 활발하시더니."
몇몇 귀족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우리의 말이 들렸던 것일까?
그들의 텔레파시에 켈렌이 끼어들었다.
"그래. 들렸지. 몽땅 다."
"......"
"도가 지나친, 미친 마법사라던가."
"부적절한 호칭과 언동에 대해 사과드리겠소. 그런 표현은 쓰지 않았어야 했는데."
"그런 계획도 세워선 안 됐지."
켈렌이 마력을 방사하며 말했다.
싸늘한 공기가 회랑을 뒤덮었다.
"새로운 마왕은 내가 직접 결정한다."
적막 속에서 켈렌의 음성이 모두를 충격에 빠트렸다.
젊고 어리석은 귀족 하나가 벌떡 일어나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인간 주제에 감히 마계의 왕을-"
그는 말을 끝마치지도 못한 채 얼음 덩어리로 변해 부서졌다.
켈렌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가장 강한 자가 모든 것을 얻는 게 마계의 규칙 아닌가? 힘 앞에 종족이니 신분이니, 다 필요 없잖아?"
"...맞소."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마계의 모든 마족을 죽여버리고 싶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마족이 움찔하며 경계했다.
켈렌은 또 한 번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지만 우리 자비로운 황제께서 말씀하시길, 그들에게 기회를 주라더군."
"...감사히 자비를 받아들이겠소."
"세 가지 요구 사항이 있다."
"무엇이오?"
"첫째, 마왕의 즉위는 모레로 한다. 둘째, 마왕에게는 절대적인 충성을 바친다. 셋째, 마왕은 내가 결정한다."
마족들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이마에 혈관이 불거졌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도 항의하지 못했다.
얼음 파편이 되어버린 젊은 귀족이 너무나 큰 두려움을 주고 있었다.
"불만이나 건의할 것이 있는가?"
"...마왕을 결정하는 것을 볼 수 있겠소?"
"아,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결정했으니까."
켈렌이 손가락을 튕기자, 회랑에 매달려 있던 빙룡이 입속에서 마족 하나를 토해냈다.
"...누구지?"
"전쟁 때 주운 고아 소년이다. 열셋에 소년병으로 싸우더군."
질타하는 듯한 눈빛에 모두가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절박했던 상황이었기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변명했다.
켈렌은 핑계를 일축하고는, 카토를 일으켜 세웠다.
"이젠 네가 마왕이다."
카토는 경악하고는, 귀족들을 둘러보고, 켈렌을 보았다.
세월이 좀 흘렀음에도 여전히 유약한 모습이었다.
"1년에 한 번, 마왕성에 방문하겠다. 카토의 안위가 아무래도 걱정되니."
"하, 하지만... 마계에선 힘이 모든 걸 결정하지 않소? 이런 소년이..."
"그럼 내가 마왕이 되는 것은 어떨까? 아니면 황제의 명령이고 뭐고 다 쓸어버려?"
이 밑도끝도 없는 불합리함에 마족들은 치를 떨었다.
턱이 빠개질 정도로 이를 악물었지만, 항의는 하지 못했다.
종족 하나를 몰살시킬 힘이, 눈앞의 남자에게 있었으니까.
"알...겠소."
결국 동의를 받아낸 켈렌은 공간을 무겁게 옥죄던 마력을 거둬들였다.
"좋군."
그리고 켈렌은 빙룡을 타고 떠나버렸다.
남은 것은 침통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귀족들과, 어쩔 줄 몰라 울먹거리는 마족 소년뿐이었다.
마법뿐만 아니라 체술과 검술까지 섞어 싸우는데도 이 녀석들, 한계가 없는지 계속해서 몰아붙여온다.
"크하하! 싸울수록 불리해지는 것을 모르겠나?"
이젠 열둘로 불어나버린 마족 잔당을 차례대로 베어넘기면서, 켈렌은 씩 웃었다.
그래, 이런 감각을 원했다.
완벽함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음을 깨우쳐주는 경험을 원했다.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전투를 원했다.
"고작해야 이런 마법 실력으로-!"
놈들의 대검에 팔다리가 날아가도 별 걱정은 없었다.
초재생에 버금가는 얼음 생성으로 견딜 뿐이었다.
"하하하하! 와라!"
켈렌은 광적인 웃음을 터트리며 사방으로 냉기를 흩뿌렸다.
마족 잔당들이 잠시 움직임이 느려진 틈을 타 얼음검을 만들어 한놈의 가슴팍에 찔러박았다.
"크아악!"
내부부터 얼어붙는 감각에 비명을 질렀지만, 벗어날 수는 없었다.
초재생능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얼려버리면 무용지물.
"젠장!"
약점이 까발려진 이상 마족 잔당들의 승산은 완전히 사라졌다.
장기전으로 가도 켈렌이 크게 지친 기색이 없자 오히려 당황한 그들이다.
초조해하면서도 공격해오는 태도에 흔들림이 없다는 것은 높이 살 일이지만...
그런 기본적인 재주로 켈렌을 잡을 수는 없었다.
켈렌은 봉인구를 해제했다.
자신의 마력을 역으로 순환시켜 교란을 일으키며 마력 회로의 작동이 원활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었다.
일반 마법사라면 마력 역류로 기절하거나 마력 회로가 박살날 테지만, 켈렌은 더 이상 그런 부작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정령에 가까워진 몸은 마력 회로의 제약에서 이미 벗어난 상태였으니.
"죽어라!"
그에 비해 마족 잔당들은 태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과 비교하면 완전히 평정을 잃은 상태였다.
"안 되지."
켈렌의 공격에 의해 분열되는 것밖엔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마력 회로의 봉인구를 해제한 켈렌에게는 공격조차 닿지 않았다.
"크아악!"
마족 잔당 둘이 비명을 지르며 추가로 사라졌다.
생산되는 마소량에 비해 소모되는 마소량이 더 많아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셋이 남았을 때였다.
"이젠 재생도 느려졌군."
켈렌의 얼음검에 썰려나간 팔이 재생되는 것을 의식한 마족 잔당 하나가 더 죽었다.
이제 둘만 남은 상황.
"자, 정보를 토해내고 고통없이 죽을 테냐, 아니면..."
"우리에게 그 정도 긍지도 없을 거라 판단한 것이냐!"
"오케이."
켈렌은 소리친 녀석의 허벅지에 얼음구슬을 던졌다.
가시처럼 박힌 그것은 내부에서 천천히 얼어붙으며 신체를 괴사시켰다.
아무리 재생 능력이 있다고 해도 그 고통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어쩌면 재생 능력이 있기 때문에 더한 고통을 느끼는 것일지도.
이윽고 동충하초처럼 완전히 얼어버린 녀석을 보고, 마지막 한놈은 완전히 겁에 질렸다.
"자비를 베풀어 선택지를 주마."
"마, 말하겠습니다! 부디 말하게 해주십시오!"
"...지껄여라."
켈렌은 듣는 내내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마음은 걱정과 기대로 혼란스러웠다.
그도 그럴 게 카웨다르푸스의 인간계 마계화 프로젝트가 이미 거의 진행되었다는 사실이 첫째.
새로운 마왕의 즉위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둘째였다.
그림자 속에서 모든 걸 같이 들은 카르샤는 경악했지만, 켈렌은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새로운 마왕이라?"
"그, 그렇습니다. 전쟁은 멎었지만, 힘을 가진 자들끼리 권력 싸움을 벌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지 않습니까?"
잔당 놈이 눈치를 보며 말했다.
다행히 켈렌은 웃으며 맞받아쳤다.
"오히려 싸움이 없는 게 이상할 따름이지. 다름 아닌 마계니까."
"맞습니다! 그, 그래서 결국 싸움 후에 강자가 나타났고, 마왕으로 등극하게 될 거란..."
"새로운 마왕이 즉위하면?"
"예?"
켈렌이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
"그 다음엔 뭐냐."
"그, 저... 마계의 권력 싸움이 안정되고..."
"그 새로운 마왕이란 놈이 인간계를 치지 않는단 보장이 있나?"
잔당 놈은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그 치열한 마계의 싸움 속에서 살아남은 마왕은 언젠가 인간계로 눈을 돌릴 것이었다.
인간계와 마계의 평화는 깨지게 될 것이고, 또 적대감이 쌓여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고작 몇 년 정도의 평화를 벌기 위해 마계를 손수 정벌한 게 아니었다.
"그, 그렇지만... 아무래도 마족들의 성격상..."
"그래. 강한 자가 모든 것을 가지는 곳이 마계였지. 그럼 내가 마계를 쓸어버려도 원망은 안 하겠군?"
"......"
또 침묵.
켈렌은 마력을 살벌하게 흘렸다.
"너희 마족들은 평화가 싫은 건가? 전쟁을 일으키고 서로 죽여야 직성이 풀리는 건가?"
"아, 아닙니다!"
"아니긴, 새끼야. 내가 보고 들은 게 있는데."
"부디... 제발...!"
"안돼. 결정했다."
켈렌은 싹싹 비는 잔당 놈을 끝내 죽여버리고, 마소 저장고를 파괴했다.
그 직후 켈렌의 얼음 새가 바루펠에게 닿았다.
안 그래도 바루펠 또한 제국의 곳곳에서 느껴지는 불길한 기운에 대해 조사하던 중이었다.
"거길 지키는 놈들이 꽤 강하니까 괜히 인력 낭비하지 마. 내가 처리한다."
켈렌의 얼음 분신이 떼로 달려드는데 멀쩡한 공간은 있을 수가 없었다.
나흘 만에 제국의 모든 마소 저장고가 파괴되자, 마계에서 계획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귀족들은 어금니를 뿌드득 갈았다.
"또 그 미친 마법사입니까!"
"도가 지나치지 않는가!"
평화를 깨부수는 행위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계획을 망치는 것도 적당히 해야 할 것 아닌가!
무소불위, 최강의 힘을 가진 존재는 이렇게나 거슬리는 존재였던가.
"마왕을 즉위시키는 계획이 들통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확신하고 있소. 이미 들킨 게 틀림없소. 그렇지 않고서야..."
그들이 작당 모의를 하던 회랑의 천장이 와드득 소리를 내며 쪼개졌다.
"무슨 이야기들을 그리 즐겁게 하시나?"
켈렌이었다.
귀족들 중 하나가 반사적으로 공격을 날렸다.
켈렌의 머리 절반이 사라졌지만, 분신일 게 뻔했다.
"인사가 먼저였나?"
이번엔 머리가 통째로 사라졌다.
하지만 곧바로 재생된 머리가 말했다.
"안녕들 하신가? 무슨 이야기인지 몰라도, 나도 껴도 되겠지?"
"그렇게 하시오."
또 공격을 날리기 전에, 가장 연로한 귀족이 말했다.
그는 다른 귀족 하나를 손짓으로 물러나게 시켜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고맙군."
켈렌은 의자를 얼려 그 위에 앉았다.
귀족들은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고, 이에 켈렌이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왜들 그러시나? 좀 전에는 활발하시더니."
몇몇 귀족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우리의 말이 들렸던 것일까?
그들의 텔레파시에 켈렌이 끼어들었다.
"그래. 들렸지. 몽땅 다."
"......"
"도가 지나친, 미친 마법사라던가."
"부적절한 호칭과 언동에 대해 사과드리겠소. 그런 표현은 쓰지 않았어야 했는데."
"그런 계획도 세워선 안 됐지."
켈렌이 마력을 방사하며 말했다.
싸늘한 공기가 회랑을 뒤덮었다.
"새로운 마왕은 내가 직접 결정한다."
적막 속에서 켈렌의 음성이 모두를 충격에 빠트렸다.
젊고 어리석은 귀족 하나가 벌떡 일어나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인간 주제에 감히 마계의 왕을-"
그는 말을 끝마치지도 못한 채 얼음 덩어리로 변해 부서졌다.
켈렌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가장 강한 자가 모든 것을 얻는 게 마계의 규칙 아닌가? 힘 앞에 종족이니 신분이니, 다 필요 없잖아?"
"...맞소."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마계의 모든 마족을 죽여버리고 싶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마족이 움찔하며 경계했다.
켈렌은 또 한 번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지만 우리 자비로운 황제께서 말씀하시길, 그들에게 기회를 주라더군."
"...감사히 자비를 받아들이겠소."
"세 가지 요구 사항이 있다."
"무엇이오?"
"첫째, 마왕의 즉위는 모레로 한다. 둘째, 마왕에게는 절대적인 충성을 바친다. 셋째, 마왕은 내가 결정한다."
마족들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이마에 혈관이 불거졌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도 항의하지 못했다.
얼음 파편이 되어버린 젊은 귀족이 너무나 큰 두려움을 주고 있었다.
"불만이나 건의할 것이 있는가?"
"...마왕을 결정하는 것을 볼 수 있겠소?"
"아,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결정했으니까."
켈렌이 손가락을 튕기자, 회랑에 매달려 있던 빙룡이 입속에서 마족 하나를 토해냈다.
"...누구지?"
"전쟁 때 주운 고아 소년이다. 열셋에 소년병으로 싸우더군."
질타하는 듯한 눈빛에 모두가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절박했던 상황이었기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변명했다.
켈렌은 핑계를 일축하고는, 카토를 일으켜 세웠다.
"이젠 네가 마왕이다."
카토는 경악하고는, 귀족들을 둘러보고, 켈렌을 보았다.
세월이 좀 흘렀음에도 여전히 유약한 모습이었다.
"1년에 한 번, 마왕성에 방문하겠다. 카토의 안위가 아무래도 걱정되니."
"하, 하지만... 마계에선 힘이 모든 걸 결정하지 않소? 이런 소년이..."
"그럼 내가 마왕이 되는 것은 어떨까? 아니면 황제의 명령이고 뭐고 다 쓸어버려?"
이 밑도끝도 없는 불합리함에 마족들은 치를 떨었다.
턱이 빠개질 정도로 이를 악물었지만, 항의는 하지 못했다.
종족 하나를 몰살시킬 힘이, 눈앞의 남자에게 있었으니까.
"알...겠소."
결국 동의를 받아낸 켈렌은 공간을 무겁게 옥죄던 마력을 거둬들였다.
"좋군."
그리고 켈렌은 빙룡을 타고 떠나버렸다.
남은 것은 침통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귀족들과, 어쩔 줄 몰라 울먹거리는 마족 소년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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