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의 개화(1)
조회 : 2,563 추천 : 0 글자수 : 4,556 자 2023-08-21
용사 벨라르드가 마룡 칼라투테스를 격퇴하고 113년이 지났다.
마룡이 점거했던 수도는 어느새 회복하여 제국의 중심다운 모습을 되찾았고 대도시들은 번성했으나, 지방의 시골 마을들은 여전히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가끔씩 쳐들어오는 마물들을 겨우 막아내고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해 먹고 산다.
수도 북서쪽, 아탈루겐 호수 근처에 위치한 나그랑 마을도 마찬가지였다.
호수와 숲이 근처에 있어 식량을 걱정하지는 않으나, 그만큼 마물들의 습격도 잦았다.
호수 너머 코틀람 산맥에는 고블린 부락이 둘이나 있고, 슈델 숲을 빠져나가면 바로 오크 서식지가 나타난다.
이러니 식량이 쌓이는 가을에는 마물이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쳐들어왔다.
그날도 여느 날과 같았다.
오늘치 추수를 끝낸 켈렌이 창고에 호박을 쌓아두던 그때, 누군가의 비명이 들려왔다.
"꺄아악!"
"오크, 오크다! 오크가 쳐들어왔다!"
켈렌은 화들짝 놀라 수레를 던져둔 채, 괭이를 집어들었다.
과연, 창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켈렌은 마물의 습격을 눈치챘다.
큰 나무 몽둥이를 든 채, 듣기 싫은 뀌익- 또는 췩-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오크들!
그것들은 식량 냄새를 맡고 곧장 창고로 향해 오는 중이었다.
"켈렌! 안돼! 도망쳐라, 아!"
셸리 아주머니가 켈렌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켈렌은 괭이를 놓지도, 발을 떼지도 않았다.
고블린들에게 창고를 털린 지난해 겨울, 토끼라도 잡아오겠다던 제파트 아저씨는 돌아오지 않았다.
호수에서 뭐라도 낚아오겠다며 낚싯대를 챙긴 피렌 형의 낚싯대가 부러진 채 숲에서 발견됐다.
배고파서 우는 아이에게 뭐든 먹여야겠다고 밖으로 나선 휴미드 아주머니가 얼어죽었다.
켈렌은 고작 옥수수 하나, 감자 하나가 없어서 죽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그렇게 죽어선 안됐다.
그들의 죽음이, 켈렌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동시에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키가 2미터를 훌쩍 넘는 근육질의 오크 셋.
15살에 불과한 소년이 괭이만 들고 오크 셋을 해치운다니, 차라리 하늘이 갈라지는 게 믿기 쉬울 터.
물론 오크들이 소년을 봐줄 이유도 없었다.
식량을 털러 왔는데, 길을 막는 게 있다면 치워버릴 뿐.
"우웍!"
나무 몽둥이가 켈렌의 옆구리를 향해 휘둘러진다.
훈련은 개뿔, 마물들에게 맞선 적도 없는 켈렌에게, 그것은 너무나도 강한 일격이었다.
"아악!"
나름 괭이로 막는다고 내세웠지만, 힘의 격차부터가 명확했다.
괭이는 성냥처럼 부러지고, 얻어맞은 켈렌은 휙 날아가 창고 바깥 벽에 부딪혔다.
"끄- 끄-"
"취-익!"
축 늘어진 켈렌을 보며, 오크들은 비웃었다.
그리고는 창고의 문을 발로 뻥 차곤 성큼성큼 발을 딛었다.
"앗! 켈렌!!"
마물들이 습격해올 시기인지라 마을에 상주하던 기사들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켈렌이 대답이 없자, 기사들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는, 창고 안에서 들려오는 흉악한 소리에 곧바로 돌격했다.
"타핫!"
"하압!"
"이얏!"
식량을 먹어치우는 데 정신이 팔린 오크 셋을 해치우는 것.
제국의 훈련된 기사들에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을 여전히 불편하게 한 것은 켈렌이 오크들과 맞섰다는 것.
기사들은 여러 감정이 실린 눈으로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그들은 켈렌의 용기에 감명받은 것이 아니라, 소년의 객기를 한심하게 생각한 것이다.
고작해야 열다섯 먹은 소년이, 오크 셋을 상대할 생각을 하다니, 이것은 어리석음을 넘어선 자살행위였다.
"내가 따끔하게 가르치도록 하지."
켈렌이 비틀거리며 창고 벽에 기대 일어서자, 기사 마프리가 소년의 어깨를 강하게 붙들었다.
"아악!"
갈비뼈에 금이 간 통증에 눈물을 글썽인 소년.
그러나 마프리는 켈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소리쳤다.
"제국에서 가장 멍청한 놈을 뭐라고 부르는지 아느냐! 훈련도 안 받은 주제에 오크를 잡겠다고 설치는 꼬맹이라고 한다!"
켈렌의 두 눈에서 닭똥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통증 때문인지, 폐부를 찌르는 일침 때문인지.
"그딴 건 용기가 아니라 객기! 자살행위다!"
"하, 학, 하지만...!"
켈렌은 가슴을 들썩이면서도 할 말을 전부 뱉었다.
기사 마프리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켈렌을 와락 끌어안았다.
"켈렌, 네가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짓을 저지르긴 했다!"
마프리는 소년의 등을 토닥이며(켈렌은 죽을만큼 아팠다.) 말했다.
"하지만, 덕분에 오크놈들이 먹었을 옥수수 하나를 지켜냈구나. 그래도, 두 번 다시 이런 멍청한 짓은 하지 마라."
"......"
"의사한테 가보자."
켈렌은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프긴 많이 아팠던 것이다.
*****
"켈렌을 수도의 기사학교에 보내면 어떻겠습니까?"
마프리가 켈렌네 집에 찾아온 것은 오크 소동으로부터 이틀 후였다.
그가 말하기로, 자신도 오래 고민을 했다고 한다.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크들에게 맞선 용기(물론 순화해서 표현했다)를 높게 평가했단다.
굳이 하나 더 꼽자면, 앞으로도 멍청한 짓을 하게 된다면, 강해져서 하라는 것이었다.
켈렌의 어머니는 물론 처음엔 반대했지만, 그마저도 단호하진 못했다.
마프리의 의견에 다른 기사들이 찬성하자, 켈렌의 어머니도 결국 백기를 들고야 말았다.
종국에는 기사들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켈렌의 수도행에 관심을 쏟게 되었다.
"이건 그동안 가면서 먹을 것들, 그리고 좋은 것은 아니지만 집에 있던 검이란다. 챙겨가렴."
켈렌 본인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은, 수도로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물론 혼자서 가는 것은 아니고, 정기 보고를 위해 기사단으로 향하는 마프리와 동행하기로 했다.
말을 타고 일주일은 가야 할 거리.
순간이동 마법진은 가격도 비싼 데다가, 애초에 나그랑 마을 가까이에 있지도 않았다.
대도시에나 있을 법한 것이 지방 시골 마을에 어떻게 있겠는가.
마프리와 켈렌은 말을 타고 이동할 수밖에 없었는데, 하필 켈렌의 첫 승마였던지라...
"으악!"
"말과 먼저 친해져야지! 그리고 함부로 말 뒤쪽으로 가지 마라! 또 걷어차이기 싫다면 명심해!"
그 후로 세 번의 발길질이 있은 후, 켈렌은 겨우 말에 올라탈 수 있었다.
속도를 내어 말을 타게 될 때까지는 이틀이 걸렸다.
그리고 사흘, 마물과 마주쳤다.
오크 한 마리였지만, 더욱 사납고 흉폭했다.
마프리는 갑주를 켈렌에게 양보한 채로 싸웠고, 몽둥이에 얻어맞았다.
기사의 머리 위로 휘둘러지는 몽둥이를, 켈렌은 몸을 내던져 막아냈다.
흉갑이 심하게 찌그러졌지만, 그것이 마프리를 살렸다.
"타핫!"
기사는 땅을 박차고 검을 휘둘러, 오크를 베어버렸다.
켈렌이 눈을 뜬 것은 두 시간 후였다.
"멍청한 꼬맹이, 일어났냐."
"오크는..."
"처리했지. 네 덕분에."
마프리는 싱긋 웃으며 녹인 초콜릿과 우유를 섞은 것을 한 컵 내밀었다.
"마셔라. 몸의 회복에 단 것보다 좋은 건 없어."
켈렌은 그것을 쭉 들이키고는, 마프리의 맞은 편에 앉았다.
모닥불을 바라보며, 켈렌은 물었다.
"제가 잘 할 수 있을까요?"
"아니, 멍청해서 안 된다."
"......"
"최고가 되어야지. 멍청하면서 못하면 최악이잖냐."
"그럼 제가..."
"넌 할 수 있는 놈이야. 사소한 걸 자꾸 묻지 말고 부딪혀봐라."
켈렌은 그날 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기사학교라니, 언제 한 번 생각이나 해봤던가.
기대 반, 걱정 반.
그런 마음으로, 켈렌은 겨우 잠들 수 있었다.
"나는 이쪽으로 간다. 기사단 건물은 수도 바깥에 있어서 말이지. 저 탑이 보이지?"
과연, 마프리가 가리킨 곳에는 높은 탑이 보였다.
켈렌이 고개를 끄덕이자, 마프리는 품에서 돌돌 말린 양피지 하나를 꺼내 소년에게 건넸다.
"저 탑을 향해 쭉 가라. 기사학교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테고, 도착해서는 그 종이를 보여주면 된다."
마프리가 오른쪽 갈림길로 향하자, 켈렌은 양피지를 꼭 쥔 채로 왼쪽 길로 향했다.
곧이어 수도의 외벽과 관문, 그 너머로 보이는 수많은 건물들이 켈렌의 눈에 들어왔다.
"정지! 용건은?"
"기사학교를 찾아왔습니다."
켈렌은 양피지를 내밀었다.
"나그랑 마을에서 왔다고. 좋은 일이지, 기사학교는 수도 중심지의 광장 근처에 있다. 길이 어렵지는 않을 거다."
"감사합니다."
켈렌은 곧이어 광장 서쪽의, 거대한 성채와도 같은 기사학교를 발견했다.
그곳의 문지기에게도 양피지를 보여주자, 일은 수월히 해결되었다.
어머니가 챙겨준 보석과 마을 사람들이 한두 푼 모아준 돈으로 1년치 입학금을 치를 수 있었다.
"제국 최고의 기사학교, 엘카토스에 입학한 걸 환영한다."
엘카토스의 교장, 베르탈롬이 자상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켈렌은 얼떨떨한 얼굴로 악수에 응했다.
*****
"...자퇴하는 게 어떻겠느냐?"
기사학교, 엘카토스.
입학 8개월차.
엘카토스의 교장, 베르탈롬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마룡이 점거했던 수도는 어느새 회복하여 제국의 중심다운 모습을 되찾았고 대도시들은 번성했으나, 지방의 시골 마을들은 여전히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가끔씩 쳐들어오는 마물들을 겨우 막아내고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해 먹고 산다.
수도 북서쪽, 아탈루겐 호수 근처에 위치한 나그랑 마을도 마찬가지였다.
호수와 숲이 근처에 있어 식량을 걱정하지는 않으나, 그만큼 마물들의 습격도 잦았다.
호수 너머 코틀람 산맥에는 고블린 부락이 둘이나 있고, 슈델 숲을 빠져나가면 바로 오크 서식지가 나타난다.
이러니 식량이 쌓이는 가을에는 마물이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쳐들어왔다.
그날도 여느 날과 같았다.
오늘치 추수를 끝낸 켈렌이 창고에 호박을 쌓아두던 그때, 누군가의 비명이 들려왔다.
"꺄아악!"
"오크, 오크다! 오크가 쳐들어왔다!"
켈렌은 화들짝 놀라 수레를 던져둔 채, 괭이를 집어들었다.
과연, 창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켈렌은 마물의 습격을 눈치챘다.
큰 나무 몽둥이를 든 채, 듣기 싫은 뀌익- 또는 췩-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오크들!
그것들은 식량 냄새를 맡고 곧장 창고로 향해 오는 중이었다.
"켈렌! 안돼! 도망쳐라, 아!"
셸리 아주머니가 켈렌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켈렌은 괭이를 놓지도, 발을 떼지도 않았다.
고블린들에게 창고를 털린 지난해 겨울, 토끼라도 잡아오겠다던 제파트 아저씨는 돌아오지 않았다.
호수에서 뭐라도 낚아오겠다며 낚싯대를 챙긴 피렌 형의 낚싯대가 부러진 채 숲에서 발견됐다.
배고파서 우는 아이에게 뭐든 먹여야겠다고 밖으로 나선 휴미드 아주머니가 얼어죽었다.
켈렌은 고작 옥수수 하나, 감자 하나가 없어서 죽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그렇게 죽어선 안됐다.
그들의 죽음이, 켈렌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동시에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키가 2미터를 훌쩍 넘는 근육질의 오크 셋.
15살에 불과한 소년이 괭이만 들고 오크 셋을 해치운다니, 차라리 하늘이 갈라지는 게 믿기 쉬울 터.
물론 오크들이 소년을 봐줄 이유도 없었다.
식량을 털러 왔는데, 길을 막는 게 있다면 치워버릴 뿐.
"우웍!"
나무 몽둥이가 켈렌의 옆구리를 향해 휘둘러진다.
훈련은 개뿔, 마물들에게 맞선 적도 없는 켈렌에게, 그것은 너무나도 강한 일격이었다.
"아악!"
나름 괭이로 막는다고 내세웠지만, 힘의 격차부터가 명확했다.
괭이는 성냥처럼 부러지고, 얻어맞은 켈렌은 휙 날아가 창고 바깥 벽에 부딪혔다.
"끄- 끄-"
"취-익!"
축 늘어진 켈렌을 보며, 오크들은 비웃었다.
그리고는 창고의 문을 발로 뻥 차곤 성큼성큼 발을 딛었다.
"앗! 켈렌!!"
마물들이 습격해올 시기인지라 마을에 상주하던 기사들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켈렌이 대답이 없자, 기사들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는, 창고 안에서 들려오는 흉악한 소리에 곧바로 돌격했다.
"타핫!"
"하압!"
"이얏!"
식량을 먹어치우는 데 정신이 팔린 오크 셋을 해치우는 것.
제국의 훈련된 기사들에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을 여전히 불편하게 한 것은 켈렌이 오크들과 맞섰다는 것.
기사들은 여러 감정이 실린 눈으로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그들은 켈렌의 용기에 감명받은 것이 아니라, 소년의 객기를 한심하게 생각한 것이다.
고작해야 열다섯 먹은 소년이, 오크 셋을 상대할 생각을 하다니, 이것은 어리석음을 넘어선 자살행위였다.
"내가 따끔하게 가르치도록 하지."
켈렌이 비틀거리며 창고 벽에 기대 일어서자, 기사 마프리가 소년의 어깨를 강하게 붙들었다.
"아악!"
갈비뼈에 금이 간 통증에 눈물을 글썽인 소년.
그러나 마프리는 켈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소리쳤다.
"제국에서 가장 멍청한 놈을 뭐라고 부르는지 아느냐! 훈련도 안 받은 주제에 오크를 잡겠다고 설치는 꼬맹이라고 한다!"
켈렌의 두 눈에서 닭똥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통증 때문인지, 폐부를 찌르는 일침 때문인지.
"그딴 건 용기가 아니라 객기! 자살행위다!"
"하, 학, 하지만...!"
켈렌은 가슴을 들썩이면서도 할 말을 전부 뱉었다.
기사 마프리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켈렌을 와락 끌어안았다.
"켈렌, 네가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짓을 저지르긴 했다!"
마프리는 소년의 등을 토닥이며(켈렌은 죽을만큼 아팠다.) 말했다.
"하지만, 덕분에 오크놈들이 먹었을 옥수수 하나를 지켜냈구나. 그래도, 두 번 다시 이런 멍청한 짓은 하지 마라."
"......"
"의사한테 가보자."
켈렌은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프긴 많이 아팠던 것이다.
*****
"켈렌을 수도의 기사학교에 보내면 어떻겠습니까?"
마프리가 켈렌네 집에 찾아온 것은 오크 소동으로부터 이틀 후였다.
그가 말하기로, 자신도 오래 고민을 했다고 한다.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크들에게 맞선 용기(물론 순화해서 표현했다)를 높게 평가했단다.
굳이 하나 더 꼽자면, 앞으로도 멍청한 짓을 하게 된다면, 강해져서 하라는 것이었다.
켈렌의 어머니는 물론 처음엔 반대했지만, 그마저도 단호하진 못했다.
마프리의 의견에 다른 기사들이 찬성하자, 켈렌의 어머니도 결국 백기를 들고야 말았다.
종국에는 기사들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켈렌의 수도행에 관심을 쏟게 되었다.
"이건 그동안 가면서 먹을 것들, 그리고 좋은 것은 아니지만 집에 있던 검이란다. 챙겨가렴."
켈렌 본인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은, 수도로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물론 혼자서 가는 것은 아니고, 정기 보고를 위해 기사단으로 향하는 마프리와 동행하기로 했다.
말을 타고 일주일은 가야 할 거리.
순간이동 마법진은 가격도 비싼 데다가, 애초에 나그랑 마을 가까이에 있지도 않았다.
대도시에나 있을 법한 것이 지방 시골 마을에 어떻게 있겠는가.
마프리와 켈렌은 말을 타고 이동할 수밖에 없었는데, 하필 켈렌의 첫 승마였던지라...
"으악!"
"말과 먼저 친해져야지! 그리고 함부로 말 뒤쪽으로 가지 마라! 또 걷어차이기 싫다면 명심해!"
그 후로 세 번의 발길질이 있은 후, 켈렌은 겨우 말에 올라탈 수 있었다.
속도를 내어 말을 타게 될 때까지는 이틀이 걸렸다.
그리고 사흘, 마물과 마주쳤다.
오크 한 마리였지만, 더욱 사납고 흉폭했다.
마프리는 갑주를 켈렌에게 양보한 채로 싸웠고, 몽둥이에 얻어맞았다.
기사의 머리 위로 휘둘러지는 몽둥이를, 켈렌은 몸을 내던져 막아냈다.
흉갑이 심하게 찌그러졌지만, 그것이 마프리를 살렸다.
"타핫!"
기사는 땅을 박차고 검을 휘둘러, 오크를 베어버렸다.
켈렌이 눈을 뜬 것은 두 시간 후였다.
"멍청한 꼬맹이, 일어났냐."
"오크는..."
"처리했지. 네 덕분에."
마프리는 싱긋 웃으며 녹인 초콜릿과 우유를 섞은 것을 한 컵 내밀었다.
"마셔라. 몸의 회복에 단 것보다 좋은 건 없어."
켈렌은 그것을 쭉 들이키고는, 마프리의 맞은 편에 앉았다.
모닥불을 바라보며, 켈렌은 물었다.
"제가 잘 할 수 있을까요?"
"아니, 멍청해서 안 된다."
"......"
"최고가 되어야지. 멍청하면서 못하면 최악이잖냐."
"그럼 제가..."
"넌 할 수 있는 놈이야. 사소한 걸 자꾸 묻지 말고 부딪혀봐라."
켈렌은 그날 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기사학교라니, 언제 한 번 생각이나 해봤던가.
기대 반, 걱정 반.
그런 마음으로, 켈렌은 겨우 잠들 수 있었다.
"나는 이쪽으로 간다. 기사단 건물은 수도 바깥에 있어서 말이지. 저 탑이 보이지?"
과연, 마프리가 가리킨 곳에는 높은 탑이 보였다.
켈렌이 고개를 끄덕이자, 마프리는 품에서 돌돌 말린 양피지 하나를 꺼내 소년에게 건넸다.
"저 탑을 향해 쭉 가라. 기사학교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테고, 도착해서는 그 종이를 보여주면 된다."
마프리가 오른쪽 갈림길로 향하자, 켈렌은 양피지를 꼭 쥔 채로 왼쪽 길로 향했다.
곧이어 수도의 외벽과 관문, 그 너머로 보이는 수많은 건물들이 켈렌의 눈에 들어왔다.
"정지! 용건은?"
"기사학교를 찾아왔습니다."
켈렌은 양피지를 내밀었다.
"나그랑 마을에서 왔다고. 좋은 일이지, 기사학교는 수도 중심지의 광장 근처에 있다. 길이 어렵지는 않을 거다."
"감사합니다."
켈렌은 곧이어 광장 서쪽의, 거대한 성채와도 같은 기사학교를 발견했다.
그곳의 문지기에게도 양피지를 보여주자, 일은 수월히 해결되었다.
어머니가 챙겨준 보석과 마을 사람들이 한두 푼 모아준 돈으로 1년치 입학금을 치를 수 있었다.
"제국 최고의 기사학교, 엘카토스에 입학한 걸 환영한다."
엘카토스의 교장, 베르탈롬이 자상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켈렌은 얼떨떨한 얼굴로 악수에 응했다.
*****
"...자퇴하는 게 어떻겠느냐?"
기사학교, 엘카토스.
입학 8개월차.
엘카토스의 교장, 베르탈롬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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