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그것도 피에 물든 바람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눈 앞에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벽이 보인다. 그 벽은 너무나 단단하고, 강해서 지금의 나로는 절대 무리인 벽이었다.
한심해.. 내 자신이 너무... 소중한 사람을 죽인 녀석인데..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니...
"끝이더냐?"
"..."
그의 입에서 나온 그 한마디에도 나는 고통에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심장은 이렇게 빨리 뛰는데, 벽이 선명하진 않지만 그래도 보일 정도인데...! 더 이상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한번은 살려주마."
"뭐...라고..?"
지금 내가 들은 게 제대로 들은 게 맞는가. 내 팔 하나를 없애고 이미 한번 사람까지 죽인 장본인이, 어째서 나를..
"나는 신이고, 너는 그저 곁에 있는 사람을 잃어 신에게 도전한 가여운 인간이다. 죽음은 언제 올지 모르는 것. 너 또한 마찬가지다. 너의 목숨이 언제 다할지는 나조차 모른다. 그러니 더 강해져서 와라. 나를 이길 수 있을 정도로."
그는 그리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있는 힘을 다해 남아있는 팔을 뻗었지만. 절대 닫지 않았다. 과다출혈로 눈 앞이 점점 흐려져 갔지만, 다행히 금방 사람들이 와서 목숨은 부지 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남에게는 절대 보이고 싶지 않은 눈물이 흘렀다. 이미 떠나간 그 사람을 생각하니 그저 슬플 따름이었다.
"신..이라고 했지.."
결심했다. 신이든 뭐든 다 부숴 버리겠다고.
...
그렇게 다짐하고 몇 년이 지났다.
"이것만 있으면.. 난 부자가 될 수 있어!!"
누군가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쳐서 달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도둑질이 얼마나 나쁜 짓인지 아시죠?"
"응? 넌 또 뭐야! 방해하지 말고 저리 가!"
휴.. 이거 말로 해서는 안되겠네.. 말로 끝내고 싶었는데..
"죄송합니다! 저도 이게 일이라서요!"
나는 도망가는 그에게 있는 힘껏 발차기를 날렸다. 사람에게 검을 쓰는 건 금지니까.. 그렇게 몇분뒤에.
"어디 보자.. 악! 금이 갔잖아! 이거 가진님에게 또 한 소리 듣겠네.."
나는 자칭 신이라고 하는 자와 붙은 후 몇 년 동안 노력해서 십월무 태병검사(十月務 太兵劍士) 1월 자리까지 올랐다.
여기서 십월무 태병검사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10명의 검사를 말한다. 전 세계의 인구가 많은 만큼 쓰는 무기도 가지각색, 검이 대부분이긴 하다. 1월 자리까지 오르긴 했지만 한 두명 빼고는 다른 십월무들을 모른다.
"이럴 때가 아니지. 늦게 가면 가진님께 또 한 소리 들을 거야."
나는 이 쓰러져 있는 사람이 훔쳐간 물건을 가지고 가진님이 있는 정야산 성으로 향했다. 정야산 성은 300년 전부터 지어진 성으로 17대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그 17대 왕이 '가진' 님이다.
신이랑 싸우기 전부터 몇 백년 동안 나는, 아니 검사들은 악귀와 싸웠다. 지금까지도. 악귀의 시작이 어딘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어느 때부터 나타난 악귀들과 검사가 싸우게 된 것뿐.. 검사들이 악귀와 싸우긴 하지만 이승에 한이 남아있는 악귀를 죽일 때는 우리도 별로 신나 거나 재밌지는 않다. 그들도 한때는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곧 정야산 성에 도착했다. 몇 백년이 지났으면서도 성은 본 모습을 잃지 않고 언제나 크고 당당해 보였다.
"십월무 1월 물건을 찾아 왔습니다."
"..들어와라."
가진님은 항상 가림막 뒤에 앉아있어 그의 얼굴을 본 사람은 드물다. 나도 몇번 못 봤지..
"그.. 물건을 가져오긴 했으나.. 조금 깨져서..."
"괜찮다. 그리고 지금은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어라, 용서해주시는 건가..? 그런데 그것보다 큰일 이라고?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큰일 이라는게... 정확히 뭘 말씀 하시는지.."
"서해 바다에 있는 서대은원 왕국에 대해 알고는 있겠지?"
서대은원 이라면..
"네.. 여기 정야산 성과 교우 관계에 있는 왕국 말씀 이시죠..?"
"그래, 그런데 그곳으로부터 몇 달 간 연락이 닿지를 않고 있다. 그래서 너가 그 곳에 가서 상황을 봐주면 좋겠구나."
깨진 걸 용서 하신 건 이것 때문이었구나. 뭐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니 다녀 올까.
"알겠습니다. 그 상황을 보고 오면 되는 거죠?"
"그리고 하나 더."
또 무슨 말을 하실려고.. 불안하게..
"너가 아무리 1월 이라지만 만약 위험한 일이 생길 것을 대비해 십월무 한명을 더 보내 놨다."
"저 말고.. 또 다른 십월무요?"
"그래. 먼저 출발했으니 서대은원 왕국에 도착하면 만날 수 있을 거다."
"알겠습니다.."
나는 가진님께 인사를 드리고 밖으로 나왔다. 하.. 그나저나 나 말고 또 다른 십월무? 난 4월이랑 7월 밖에 모르는데.. 제발 그 둘 중 한 명이면 좋겠다. 그렇게 나는 정야산 성을 나와 서대은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