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가려진 실체, 그 너머에는- 4
조회 : 670 추천 : 0 글자수 : 7,600 자 2024-05-21
주막에서 멀지 않은 숲속에는 작은 폭포가 있었다. 시원한 물줄기가 바위를 타고 쏟아지며 맑은 웅덩이를 만들어 내는 그곳은 시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였다. 시내는 폭포 아래에 살짝 몸을 담그고 물장구를 쳤다. 차가운 물이 피부에 닿자, 온몸의 피로가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깊게 숨을 내쉬었다.
하얗게 부서지는 물보라 속에서 시내는 진정한 해방감을 느꼈다. 어젯밤부터 마주한 이상한 사건들과 수상한 사람들, 그리고 조금 전 겪었던 무사단원들의 음침한 시선과 불쾌한 농담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평온하게 만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물장난을 치던 시내는 이내 물동이에 물을 채워 폭포수 옆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바위에 걸터앉아 물기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멀리서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짧은 꼬리 황금돼지는~ 착한 사람 인두겁 쓰고~”
처음에는 평화로운 숲속의 정취와 잘 어울리는 노래인 줄 알았다. 하지만 곧 노랫말에 담긴 의미를 새겨듣자 섬뜩한 느낌이 엄습했다.
‘황금돼지? 인간의 가죽을 쓴다고? 도대체 무슨 노래지?’
시내는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털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쨌든 물은 길어야 했다. 그녀는 물동이를 들고 폭포에서 걸어 나왔다. 주막에 다다르자, 시내는 멈칫했다. 또다시 무지막지한 사내들의 희롱과 음침한 시선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솔직히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아미와 약속을 했다. 생사의 기로에 놓인 저 잘생긴 애꾸눈의 사내를 돌봐주기로. 절대 범상치 않은 두 사람. 도대체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둘은 무슨 관계일까? 그들과 뜻하지 않게 조우한 일은 지루한 그녀의 삶에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좀 더 그들을 알고 싶다는 마음이 새록새록 생겨났다. 그녀의 발걸음은 저절로 주막 안으로 향하고 있었다.
주막은 썰렁했고 남녀의 울음소리만 가득했다.
‘어디로 간 거지?’
무사단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벌써 떠난 것일까? 시내는 의아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감을 느꼈다. 해치가의 치안을 담당하는 그들의 부재가 오히려 반가운 것이, 시내로선 참 어처구니없게 느껴졌다. 주막 내부로 들어서자, 주막 주인 내외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그녀를 맞았다.
“시내야, 너도 들었냐? 그 요상한 노래 말이야.”
“네, 아이들이 황금돼지 어쩌고 하던 것 같은데...”
“너 알고 있었냐, 우리 마을에 황금돼지가 살고 있었댜.”
“예? 황금돼지요?”
“그려. 그놈이 마을 처자들을 잡아먹었다는구먼.”
“신발 짓는 노인 기억나냐? 그 노인이 황금돼지란다. 무사단원들이 그놈 잡는다고 다 달려갔구먼.”
“아...”
그 노래가 섬뜩하게 느껴졌던 건 바로 이 때문이었나?
“설마 우리 순이가... 아니겄쥬?”
“에이, 내가 말했잖여, 분명히 야반도주한 거라고.”
“맞구먼유. 우리 순이는 어디선가 잘 살아 있을 거구먼유.”
눈물을 글썽이며 애써 웃어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서, 시내는 부모로서의 슬픔과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뭐라고 위로를 해주어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지금은 환자를 봐야 할 때였다.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방으로 향했다.
‘앞으로 기이한 일들이 많이 벌어질 거예요. 그래서 더욱 이 남자가 필요해요. 빨리 깨어날 수 있도록 부디 부탁드려요.’
지난밤, 아미가 해주었던 말들이 모두 사실일지 모른다. 그녀는 덜컥 겁이 났다. 방문을 열고 물동이의 물을 전부 끼얹어서라도 빨리 누워있는 남자를 깨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헉~
그녀의 간절함이 기적을 일으킨 것인가? 이미 미르는 멀쩡히 일어나 있었다. 침상에 앉아 하품하던 미르는 놀란 눈으로 시내를 바라보았다. 시내는 어안이 벙벙했다. 밤새 생사의 기로에 놓였던 사람 맞는 것일까? 갑자기 맥이 탁 풀리며, 양동이를 바닥에 털썩 내려놓았다.
##
“설마, 혼자 온 건 아닐 테고, 어서 불러. 싹 다 해치우고 너랑 오붓한 시간 좀 보내게.”
노인은 느긋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미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청의동자 말대로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강하다는 것이라는데, 대체 얼마나 강한 것인지...“그자가 여기에 와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자? 누구?”
“어르신을 죽였던 사람.”
노인은 잠시 놀란 듯했으나, 이내 킥킥 웃어댔다.
“난 또 누구라고. 날 죽인 사람? 내가 이렇게 버젓이 살아있는데, 날 죽였다니. 크크. 해치가의 망나니였지, 아마? 이런. 나 때문에 약이 바짝 올라 있겠구먼. 해치가의 장자 자리마저 잃었다면서? 한눈에 나를 알아보길래, 무슨 대단한 힘이라도 있는 줄 알았지. 근데, 알고 보니 그게 다였어. 순 맹탕이더라고. 그래서 내가 죽은 척해줬지. 크크.”
“지금은 다릅니다.”
“달라? 어떻게?”
“이번엔 진짜 어르신을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입니다.”
그 말에 노인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래? 그거 재밌겠구먼. 요즘 너무 무료했거든. 그럼, 간만에 몸 좀 풀어볼까? 일단 숨어있는 쥐새끼들부터 정리 좀 해야겠구먼.”
노인이 자신의 가느다란 두 다리에 손을 대었다. 그러자 다리가 점점 부풀어 올랐다. 벌떡 일어난 노인은 재빠르게 아미를 낚아챘다. 그리곤 혀를 내밀어 아미의 얼굴을 연신 핥았다. 아미는 인상을 찡그렸지만, 이상하게도 별다른 반항을 하지 않았다. 대신 옷소매에 숨겨놓은 *도목검을 슬며시 꺼내어 들었다.
‘조금만 참아, 아미야. 심장에 이 검을 정확히 꽂아야만 해. 조금만 버텨.’
아미는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음, 역시 맛이 달콤하구먼.”
한편, 바위 뒤에서 상황을 주시하던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촌장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으... 아무래도 저 처자가 위험스러운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무사단을 부르시지요?”
“안 됩니다. 절대 나서지 말란 얘기 못 들으셨습니까?”
바람이 나서 말했다.
“지금 저거 안 보여? 어휴~ 저러다가 진짜 무슨 봉변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같은 일행 아니었나? 그럼 그냥 보고만 있겠다는 거야? 사내들이 비겁하게 숨어있기나 하고. 쯧쯧.”
“그럼, 촌장님이 나서시렵니까?”
하늘도 참고 보기 힘든 광경이었으나, 호들갑을 떠는 촌장 때문에 더 기분이 상했다.
“뭐? 내가 나서? 좋아. 우리 무족의 후예들을 뭐로 보고. 얘들아~ 준비하거라.”
촌장이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까 함께 온 마을 장정들이 보이지 않았다. 남아있는 사람은 미리내, 바람, 하늘, 촌장. 단 네 명뿐이었다.
“어? 다 어디 갔어?”
“아까, 위험할 수 있으니, 아이들을 데리고 다들 마을로 돌아가라 하지 않았습니까?”
“아, 맞다. 그랬지. 에이~”
촌장은 쑥스러운 듯, 미리내를 쳐다보았다. 미리내는 말없이 아미의 말을 되새기고 있었다.
‘황금돼지의 정체를 밝힐 기회는 이번뿐입니다. 아가씨께서 증인이 되어주십시오. 혹시 제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결코 나서지 마시고 지켜만 보셔야 합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대체 저 여자는 뭘 믿고 저리 무모하다 할 정도로 용감한 것인가?
쉭, 쉭~
화살들이 하늘을 갈랐다.
“뭐야?”
사방에서 날아온 화살들은 아미와 노인을 향했다. 노인은 재빨리 아미를 감쌌다. 그 바람에 아미는 도목검을 놓치고 말았다. 초가집 마당에 연신 내리꽂히는 화살들. 미리내 일행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기겁했다. 인근 숲속에 숨어있던 무사단 부장이 뛰쳐나왔다.
“아가씨, 이제부터는 저희가 나서겠습니다. 하하하.”
미리내가 만류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부장의 신호에 무사단원들이 일제히 숲속에서 뛰쳐나왔다. 그들은 칼을 뽑아 들고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마터면 내 맛있는 음식에 상처가 날 뻔했구먼. 크크크, 쥐새끼들이 우르르 몰려오는구나!”
노인이 몸을 일으켜 무사단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의 몸이 허공에서 회오리바람처럼 빙글빙글 돌더니, 어느새 커다란 황금빛 털을 가진 돼지의 형상으로 변해 있었다. *10척이나 되는 거대한 몸에, 아래턱의 송곳니 무척 크고 날카로웠다. 바닥에는 노인의 인두겁이 떨어져 있었다. 왜소한 노인의 몸에 어떻게 거대한 몸집이 들어가 있었던 것일까? 무사단원들은 일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함성을 지르며 황금돼지에게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들의 칼은 황금빛 가죽에 그저 부딪힐 뿐, 상처 하나 내지 못했다.
“으하하하! 간지럽다, 이 녀석들아!”
소리까지 기괴해진 황금돼지가 입을 크게 벌리더니, 무사단원 하나를 통째로 물어버렸다. 섬뜩한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선혈이 사방에 튀었다.
“으아아아악!”
동료의 처참한 최후에 무사단원들은 공포에 질렸다. 그들은 황급히 뒷걸음질 쳤지만, 황금돼지의 발톱이 그들의 등을 할퀴었다. 단번에 찢겨나간 살점과 뿜어져 나오는 피. 아비규환의 참상이 벌어졌다. 부장은 그 광경을 보고 슬슬 뒷걸음을 치더니 숲속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철수! 철수! 어서 도망가!”
“으아아악! 살려줘!”
살아남은 무사단원들도 부장의 뒤를 따라 필사적으로 도망쳤지만, 황금돼지는 그들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재빠른 돌진으로 무사단원들을 하나둘 물어뜯으며, 피바람을 일으켰다. 주변은 온통 살육의 수라장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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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어딥니까?”
“기루란 마을입니다. 봉화대에서 쓰러졌던 것은 기억하십니까?”
“아, 그랬지. 혹시 내 봇짐 못 봤소?”
“글쎄요. 전...”
“대체 어디서 흘린 거지? 아, 혹시 당신이 이랬소?”
“네? 뭘요?”
“당신이 내 등에 침을 꽂았냐 말입니다.”
“아. 네. 몸은 좀 어떠십니까? 지금 이렇게 움직이는 건 무리일 것 같은데.”
“괜찮아요. 근데, 이것 좀 뽑아 주겠소? 뭔 침을 이리 많이 꽂아 넣은 겁니까?”
시내는 남자가 생긴 것과 달리 참 재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가가 그의 등에 꽂힌 침들을 뽑아 주다 보니, 괜히 심통이 났다. 할아버지에게 어렵사리 전수한 의술을 총동원해 잠 한숨 못 자고 간호했건만, 아직 이 남자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았다.
“의식불명이어서 본인은 모르시겠지만, 어젯밤은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상처도 상처지만, 묘두사의 독인지 뭔지, 밤새 살피느라 얼마나 고생한 줄 아십니까?”
시내는 평소에는 하지 않던 생색까지 내보았다.
“그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네?”
미르의 목소리가 갑자기 진지해지자, 시내는 살짝 겁이 났다.
“아미란 분이 말씀해 주었습니다. 선천적으로 독에 면역이 있으신 것 같다고. 하지만 스스로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니 제가 옆에서 도와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여자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무사단이 당도한다 하여, 아침 일찍 나가셨습니다.”
“아, 골치 아프게 되었군. 무사단은 지금 어디에 머무는지 아십니까?”
“다들 황금돼지를 잡으러 갔습니다.”
“뭐요?”
“믿기진 않지만, 신발 짓는 노인이 황금돼지라고 하여, 다들...”
시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르가 벌떡 일어났다.
무서운 얼굴로 시내에게 물었다.
“거기가 어딥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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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아가씨 모시고 피하세요.”
아미가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 먼저 반응한 것은 무사단을 쫓던 황금돼지였다.
휙 하늘을 날아오른 황금돼지는 큰 바위 위에 내려앉았다.
“크크크. 이게 누구신가? 해치가의 예쁜이 아니신가? 이거 오늘 완전히 횡재했네.”
황금돼지가 미리내를 쳐다보자, 바람과 하늘이 재빨리 앞을 막았지만, 그들의 손에 무기가 없었다. 칼을 가지고 있던 촌장은 황금돼지의 본모습을 보자마자, 말도 없이 바로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무기라곤 미리내가 들고 있던 장검 하나가 전부였다.
미리내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자기 신발까지 지어줬던 노인이 이런 흉측하게 생긴 괴물이었다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황금돼지가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바람과 하늘 역시 떨리기는 매한가지였으나, 사력을 다해 버티고 있었다.
“너희는 불쌍해서 봐줄 테니까, 어서 썩 꺼져.”
바람이 하늘을 쳐다보더니, 갑자기 씨익 웃었다.
“동생아, 뒤를 부탁한다.”
“뭔 소리예요? 사람이 안 하던 짓하면 죽어요. 형님. 아가씨 모시고 빨리 튀어요.”
“이 새낀 이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잘난 척하려고 하네. 네가 두 살 더. 헉.”
바람이 황금돼지에 발길질에 저 멀리 떨어져 나갔다. 바람은 입에서 피를 흘리며 꼼짝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자 악에 받친 하늘이 몸을 달려 양발 차기를 했다.
“우리 형님을. 이 돼지 새끼가!”
하지만, 하늘은 비명을 지르며 땅으로 나동그라졌다. 재빨리 일어났으나, 발목이 부러진 듯 너덜거렸다. 바람은 미리내에게 다급하게 외쳤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제가 어떻게든 주의를 끌 테니, 어서 자리를 피하십시오”
쿠웩~~
갑자기 황금돼지는 고통스러운 듯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놀라 쳐다보는데, 아미가 황금돼지의 등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황금돼지가 바람과 하늘에게 정신을 파는 동안, 큰 바위에서 뛰어내려 황금돼지의 등에 도목검을 꽂아 넣은 것이었다. 황금돼지의 몸은 도목검이 꽂힌 부분부터 타오르기 시작했다.
“어서 도망가세요. 아가씨.”
아미가 필사적으로 매달리며 미리내에게 외쳤지만, 미리내는 너무 놀란 탓에 몸이 말을 듣지 않는지 꼼짝을 못 했다. 뜨거운 열기와 황금돼지가 아미를 떨어뜨리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통에 아미는 버티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하늘이 미리내를 향해 외쳤다.
“어서요. 아가씨.”
아미는 어떻게든 버티려 팔에 힘을 주는 순간, 도목검이 빠져나가며 그녀는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이년이 저 흉측한 걸 숨기고, 감히 날 죽이려 들어? 날 속인 벌로 바로 이 자리에서 네 가랑이를 찢어발기고 천천히 잡아먹어 주겠다. 너희들은 잘 봐둬. 내가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크크크.”
쿵~~
갑자기 하늘에서 뭔가가 떨어지더니, 휙 하고 황금돼지를 향해 날아갔다.
미처 피하지 못한 황금돼지의 얼굴을 강타했고, 황금돼지는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또 뭐야?”
황금돼지가 눈을 떠보니, 그 앞엔 청의동자가 화난 얼굴로 그의 배 위에 서 있었다.
“황금돼지, 지금 당장 썩 꺼져.”
“오~ 이게 누구야? 거구귀 아냐? 이게 얼마 만이야?”
청의동자가 한 발을 세게 내리찍자, 황금돼지의 몸이 땅속으로 깊이 파묻혔다
“크크크. 오랜만에 친구한테 하는 인사치곤 참으로 과격하구먼. 크크크”
“친구? 누가 너의 친구야? 난 너처럼 더러운 놈은 친구 하지 않아.”
“그래? 그럼 할 수 없고.”
황금돼지가 배를 튕기니, 청의동자가 튕겨 나갔다.
벌떡 일어난 황금돼지.
“그럼 내가 너를 잡아먹어도 되는 거네? 정말, 오늘 운수 대통이야. 크크크”
“잡아먹을 수 있으면 어디 잡아먹어 보던가.”
청의동자 다시 하늘로 솟구치더니, 바로 땅으로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생판 다른 모습이었다. 마치 작은 산과도 같은 육중한 체구, 거친 돌처럼 울퉁불퉁한 피부는 어두운색을 띠고 있으며, 마치 세월의 풍파를 그대로 맞은 듯한 거대한 주름과 상처들로 덮여 있었다. 그의 얼굴은 공포 그 자체였다. 불타오르는 듯한 붉은 눈은 어둠마저도 불태울 것 같았으며, 모든 것을 꿰뚫어 볼 듯한 강렬한 시선을 발산했다. 코는 들창코에 가까우며, 넓은 콧방울이 숨을 쉴 때마다 크게 벌어지곤 한다. 입은 크고 넓어 얼굴의 반을 차지했으며, 입을 벌릴 때마다 날카롭고 길게 뻗은 이빨들이 드러났다. 긴 머리카락은 윤기 없이 흐트러져 있고, 그 아래로는 턱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나 있었다. 손과 발은 몸집에 비해 아주 작았지만, 사람의 몇 배에 달했으며, 손톱은 마치 갈고리처럼 날카롭고 단단했다. 그는 옷을 거의 걸치지 않은 상태로, 그의 몸은 단단한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가 지닌 엄청난 힘을 짐작하게 했다.
“저게 꼬마였어?”
하늘은 믿기지 않는 듯, 입을 다물지 못했고, 미리내는 여전히 벌벌 떨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최대한 청의동자의 정체를 감추어 주고 싶었던 아미는 너무도 곤혹스러운 얼굴이었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도목검(桃木剣) - 요물들을 퇴치하는 신성한 힘을 가진 목검. 미르가 비수를 가져간 대신 몰래 아미의 봇짐에 넣어 놓음.
*10척 - 3.03m
하얗게 부서지는 물보라 속에서 시내는 진정한 해방감을 느꼈다. 어젯밤부터 마주한 이상한 사건들과 수상한 사람들, 그리고 조금 전 겪었던 무사단원들의 음침한 시선과 불쾌한 농담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평온하게 만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물장난을 치던 시내는 이내 물동이에 물을 채워 폭포수 옆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바위에 걸터앉아 물기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멀리서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짧은 꼬리 황금돼지는~ 착한 사람 인두겁 쓰고~”
처음에는 평화로운 숲속의 정취와 잘 어울리는 노래인 줄 알았다. 하지만 곧 노랫말에 담긴 의미를 새겨듣자 섬뜩한 느낌이 엄습했다.
‘황금돼지? 인간의 가죽을 쓴다고? 도대체 무슨 노래지?’
시내는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털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쨌든 물은 길어야 했다. 그녀는 물동이를 들고 폭포에서 걸어 나왔다. 주막에 다다르자, 시내는 멈칫했다. 또다시 무지막지한 사내들의 희롱과 음침한 시선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솔직히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아미와 약속을 했다. 생사의 기로에 놓인 저 잘생긴 애꾸눈의 사내를 돌봐주기로. 절대 범상치 않은 두 사람. 도대체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둘은 무슨 관계일까? 그들과 뜻하지 않게 조우한 일은 지루한 그녀의 삶에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좀 더 그들을 알고 싶다는 마음이 새록새록 생겨났다. 그녀의 발걸음은 저절로 주막 안으로 향하고 있었다.
주막은 썰렁했고 남녀의 울음소리만 가득했다.
‘어디로 간 거지?’
무사단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벌써 떠난 것일까? 시내는 의아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감을 느꼈다. 해치가의 치안을 담당하는 그들의 부재가 오히려 반가운 것이, 시내로선 참 어처구니없게 느껴졌다. 주막 내부로 들어서자, 주막 주인 내외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그녀를 맞았다.
“시내야, 너도 들었냐? 그 요상한 노래 말이야.”
“네, 아이들이 황금돼지 어쩌고 하던 것 같은데...”
“너 알고 있었냐, 우리 마을에 황금돼지가 살고 있었댜.”
“예? 황금돼지요?”
“그려. 그놈이 마을 처자들을 잡아먹었다는구먼.”
“신발 짓는 노인 기억나냐? 그 노인이 황금돼지란다. 무사단원들이 그놈 잡는다고 다 달려갔구먼.”
“아...”
그 노래가 섬뜩하게 느껴졌던 건 바로 이 때문이었나?
“설마 우리 순이가... 아니겄쥬?”
“에이, 내가 말했잖여, 분명히 야반도주한 거라고.”
“맞구먼유. 우리 순이는 어디선가 잘 살아 있을 거구먼유.”
눈물을 글썽이며 애써 웃어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서, 시내는 부모로서의 슬픔과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뭐라고 위로를 해주어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지금은 환자를 봐야 할 때였다.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방으로 향했다.
‘앞으로 기이한 일들이 많이 벌어질 거예요. 그래서 더욱 이 남자가 필요해요. 빨리 깨어날 수 있도록 부디 부탁드려요.’
지난밤, 아미가 해주었던 말들이 모두 사실일지 모른다. 그녀는 덜컥 겁이 났다. 방문을 열고 물동이의 물을 전부 끼얹어서라도 빨리 누워있는 남자를 깨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헉~
그녀의 간절함이 기적을 일으킨 것인가? 이미 미르는 멀쩡히 일어나 있었다. 침상에 앉아 하품하던 미르는 놀란 눈으로 시내를 바라보았다. 시내는 어안이 벙벙했다. 밤새 생사의 기로에 놓였던 사람 맞는 것일까? 갑자기 맥이 탁 풀리며, 양동이를 바닥에 털썩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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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혼자 온 건 아닐 테고, 어서 불러. 싹 다 해치우고 너랑 오붓한 시간 좀 보내게.”
노인은 느긋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미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청의동자 말대로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강하다는 것이라는데, 대체 얼마나 강한 것인지...“그자가 여기에 와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자? 누구?”
“어르신을 죽였던 사람.”
노인은 잠시 놀란 듯했으나, 이내 킥킥 웃어댔다.
“난 또 누구라고. 날 죽인 사람? 내가 이렇게 버젓이 살아있는데, 날 죽였다니. 크크. 해치가의 망나니였지, 아마? 이런. 나 때문에 약이 바짝 올라 있겠구먼. 해치가의 장자 자리마저 잃었다면서? 한눈에 나를 알아보길래, 무슨 대단한 힘이라도 있는 줄 알았지. 근데, 알고 보니 그게 다였어. 순 맹탕이더라고. 그래서 내가 죽은 척해줬지. 크크.”
“지금은 다릅니다.”
“달라? 어떻게?”
“이번엔 진짜 어르신을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입니다.”
그 말에 노인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래? 그거 재밌겠구먼. 요즘 너무 무료했거든. 그럼, 간만에 몸 좀 풀어볼까? 일단 숨어있는 쥐새끼들부터 정리 좀 해야겠구먼.”
노인이 자신의 가느다란 두 다리에 손을 대었다. 그러자 다리가 점점 부풀어 올랐다. 벌떡 일어난 노인은 재빠르게 아미를 낚아챘다. 그리곤 혀를 내밀어 아미의 얼굴을 연신 핥았다. 아미는 인상을 찡그렸지만, 이상하게도 별다른 반항을 하지 않았다. 대신 옷소매에 숨겨놓은 *도목검을 슬며시 꺼내어 들었다.
‘조금만 참아, 아미야. 심장에 이 검을 정확히 꽂아야만 해. 조금만 버텨.’
아미는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음, 역시 맛이 달콤하구먼.”
한편, 바위 뒤에서 상황을 주시하던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촌장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으... 아무래도 저 처자가 위험스러운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무사단을 부르시지요?”
“안 됩니다. 절대 나서지 말란 얘기 못 들으셨습니까?”
바람이 나서 말했다.
“지금 저거 안 보여? 어휴~ 저러다가 진짜 무슨 봉변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같은 일행 아니었나? 그럼 그냥 보고만 있겠다는 거야? 사내들이 비겁하게 숨어있기나 하고. 쯧쯧.”
“그럼, 촌장님이 나서시렵니까?”
하늘도 참고 보기 힘든 광경이었으나, 호들갑을 떠는 촌장 때문에 더 기분이 상했다.
“뭐? 내가 나서? 좋아. 우리 무족의 후예들을 뭐로 보고. 얘들아~ 준비하거라.”
촌장이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까 함께 온 마을 장정들이 보이지 않았다. 남아있는 사람은 미리내, 바람, 하늘, 촌장. 단 네 명뿐이었다.
“어? 다 어디 갔어?”
“아까, 위험할 수 있으니, 아이들을 데리고 다들 마을로 돌아가라 하지 않았습니까?”
“아, 맞다. 그랬지. 에이~”
촌장은 쑥스러운 듯, 미리내를 쳐다보았다. 미리내는 말없이 아미의 말을 되새기고 있었다.
‘황금돼지의 정체를 밝힐 기회는 이번뿐입니다. 아가씨께서 증인이 되어주십시오. 혹시 제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결코 나서지 마시고 지켜만 보셔야 합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대체 저 여자는 뭘 믿고 저리 무모하다 할 정도로 용감한 것인가?
쉭, 쉭~
화살들이 하늘을 갈랐다.
“뭐야?”
사방에서 날아온 화살들은 아미와 노인을 향했다. 노인은 재빨리 아미를 감쌌다. 그 바람에 아미는 도목검을 놓치고 말았다. 초가집 마당에 연신 내리꽂히는 화살들. 미리내 일행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기겁했다. 인근 숲속에 숨어있던 무사단 부장이 뛰쳐나왔다.
“아가씨, 이제부터는 저희가 나서겠습니다. 하하하.”
미리내가 만류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부장의 신호에 무사단원들이 일제히 숲속에서 뛰쳐나왔다. 그들은 칼을 뽑아 들고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마터면 내 맛있는 음식에 상처가 날 뻔했구먼. 크크크, 쥐새끼들이 우르르 몰려오는구나!”
노인이 몸을 일으켜 무사단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의 몸이 허공에서 회오리바람처럼 빙글빙글 돌더니, 어느새 커다란 황금빛 털을 가진 돼지의 형상으로 변해 있었다. *10척이나 되는 거대한 몸에, 아래턱의 송곳니 무척 크고 날카로웠다. 바닥에는 노인의 인두겁이 떨어져 있었다. 왜소한 노인의 몸에 어떻게 거대한 몸집이 들어가 있었던 것일까? 무사단원들은 일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함성을 지르며 황금돼지에게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들의 칼은 황금빛 가죽에 그저 부딪힐 뿐, 상처 하나 내지 못했다.
“으하하하! 간지럽다, 이 녀석들아!”
소리까지 기괴해진 황금돼지가 입을 크게 벌리더니, 무사단원 하나를 통째로 물어버렸다. 섬뜩한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선혈이 사방에 튀었다.
“으아아아악!”
동료의 처참한 최후에 무사단원들은 공포에 질렸다. 그들은 황급히 뒷걸음질 쳤지만, 황금돼지의 발톱이 그들의 등을 할퀴었다. 단번에 찢겨나간 살점과 뿜어져 나오는 피. 아비규환의 참상이 벌어졌다. 부장은 그 광경을 보고 슬슬 뒷걸음을 치더니 숲속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철수! 철수! 어서 도망가!”
“으아아악! 살려줘!”
살아남은 무사단원들도 부장의 뒤를 따라 필사적으로 도망쳤지만, 황금돼지는 그들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재빠른 돌진으로 무사단원들을 하나둘 물어뜯으며, 피바람을 일으켰다. 주변은 온통 살육의 수라장이 되어버렸다.
##
“여기가 어딥니까?”
“기루란 마을입니다. 봉화대에서 쓰러졌던 것은 기억하십니까?”
“아, 그랬지. 혹시 내 봇짐 못 봤소?”
“글쎄요. 전...”
“대체 어디서 흘린 거지? 아, 혹시 당신이 이랬소?”
“네? 뭘요?”
“당신이 내 등에 침을 꽂았냐 말입니다.”
“아. 네. 몸은 좀 어떠십니까? 지금 이렇게 움직이는 건 무리일 것 같은데.”
“괜찮아요. 근데, 이것 좀 뽑아 주겠소? 뭔 침을 이리 많이 꽂아 넣은 겁니까?”
시내는 남자가 생긴 것과 달리 참 재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가가 그의 등에 꽂힌 침들을 뽑아 주다 보니, 괜히 심통이 났다. 할아버지에게 어렵사리 전수한 의술을 총동원해 잠 한숨 못 자고 간호했건만, 아직 이 남자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았다.
“의식불명이어서 본인은 모르시겠지만, 어젯밤은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상처도 상처지만, 묘두사의 독인지 뭔지, 밤새 살피느라 얼마나 고생한 줄 아십니까?”
시내는 평소에는 하지 않던 생색까지 내보았다.
“그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네?”
미르의 목소리가 갑자기 진지해지자, 시내는 살짝 겁이 났다.
“아미란 분이 말씀해 주었습니다. 선천적으로 독에 면역이 있으신 것 같다고. 하지만 스스로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니 제가 옆에서 도와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여자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무사단이 당도한다 하여, 아침 일찍 나가셨습니다.”
“아, 골치 아프게 되었군. 무사단은 지금 어디에 머무는지 아십니까?”
“다들 황금돼지를 잡으러 갔습니다.”
“뭐요?”
“믿기진 않지만, 신발 짓는 노인이 황금돼지라고 하여, 다들...”
시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르가 벌떡 일어났다.
무서운 얼굴로 시내에게 물었다.
“거기가 어딥니까?”
##
“어서 아가씨 모시고 피하세요.”
아미가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 먼저 반응한 것은 무사단을 쫓던 황금돼지였다.
휙 하늘을 날아오른 황금돼지는 큰 바위 위에 내려앉았다.
“크크크. 이게 누구신가? 해치가의 예쁜이 아니신가? 이거 오늘 완전히 횡재했네.”
황금돼지가 미리내를 쳐다보자, 바람과 하늘이 재빨리 앞을 막았지만, 그들의 손에 무기가 없었다. 칼을 가지고 있던 촌장은 황금돼지의 본모습을 보자마자, 말도 없이 바로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무기라곤 미리내가 들고 있던 장검 하나가 전부였다.
미리내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자기 신발까지 지어줬던 노인이 이런 흉측하게 생긴 괴물이었다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황금돼지가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바람과 하늘 역시 떨리기는 매한가지였으나, 사력을 다해 버티고 있었다.
“너희는 불쌍해서 봐줄 테니까, 어서 썩 꺼져.”
바람이 하늘을 쳐다보더니, 갑자기 씨익 웃었다.
“동생아, 뒤를 부탁한다.”
“뭔 소리예요? 사람이 안 하던 짓하면 죽어요. 형님. 아가씨 모시고 빨리 튀어요.”
“이 새낀 이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잘난 척하려고 하네. 네가 두 살 더. 헉.”
바람이 황금돼지에 발길질에 저 멀리 떨어져 나갔다. 바람은 입에서 피를 흘리며 꼼짝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자 악에 받친 하늘이 몸을 달려 양발 차기를 했다.
“우리 형님을. 이 돼지 새끼가!”
하지만, 하늘은 비명을 지르며 땅으로 나동그라졌다. 재빨리 일어났으나, 발목이 부러진 듯 너덜거렸다. 바람은 미리내에게 다급하게 외쳤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제가 어떻게든 주의를 끌 테니, 어서 자리를 피하십시오”
쿠웩~~
갑자기 황금돼지는 고통스러운 듯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놀라 쳐다보는데, 아미가 황금돼지의 등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황금돼지가 바람과 하늘에게 정신을 파는 동안, 큰 바위에서 뛰어내려 황금돼지의 등에 도목검을 꽂아 넣은 것이었다. 황금돼지의 몸은 도목검이 꽂힌 부분부터 타오르기 시작했다.
“어서 도망가세요. 아가씨.”
아미가 필사적으로 매달리며 미리내에게 외쳤지만, 미리내는 너무 놀란 탓에 몸이 말을 듣지 않는지 꼼짝을 못 했다. 뜨거운 열기와 황금돼지가 아미를 떨어뜨리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통에 아미는 버티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하늘이 미리내를 향해 외쳤다.
“어서요. 아가씨.”
아미는 어떻게든 버티려 팔에 힘을 주는 순간, 도목검이 빠져나가며 그녀는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이년이 저 흉측한 걸 숨기고, 감히 날 죽이려 들어? 날 속인 벌로 바로 이 자리에서 네 가랑이를 찢어발기고 천천히 잡아먹어 주겠다. 너희들은 잘 봐둬. 내가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크크크.”
쿵~~
갑자기 하늘에서 뭔가가 떨어지더니, 휙 하고 황금돼지를 향해 날아갔다.
미처 피하지 못한 황금돼지의 얼굴을 강타했고, 황금돼지는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또 뭐야?”
황금돼지가 눈을 떠보니, 그 앞엔 청의동자가 화난 얼굴로 그의 배 위에 서 있었다.
“황금돼지, 지금 당장 썩 꺼져.”
“오~ 이게 누구야? 거구귀 아냐? 이게 얼마 만이야?”
청의동자가 한 발을 세게 내리찍자, 황금돼지의 몸이 땅속으로 깊이 파묻혔다
“크크크. 오랜만에 친구한테 하는 인사치곤 참으로 과격하구먼. 크크크”
“친구? 누가 너의 친구야? 난 너처럼 더러운 놈은 친구 하지 않아.”
“그래? 그럼 할 수 없고.”
황금돼지가 배를 튕기니, 청의동자가 튕겨 나갔다.
벌떡 일어난 황금돼지.
“그럼 내가 너를 잡아먹어도 되는 거네? 정말, 오늘 운수 대통이야. 크크크”
“잡아먹을 수 있으면 어디 잡아먹어 보던가.”
청의동자 다시 하늘로 솟구치더니, 바로 땅으로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생판 다른 모습이었다. 마치 작은 산과도 같은 육중한 체구, 거친 돌처럼 울퉁불퉁한 피부는 어두운색을 띠고 있으며, 마치 세월의 풍파를 그대로 맞은 듯한 거대한 주름과 상처들로 덮여 있었다. 그의 얼굴은 공포 그 자체였다. 불타오르는 듯한 붉은 눈은 어둠마저도 불태울 것 같았으며, 모든 것을 꿰뚫어 볼 듯한 강렬한 시선을 발산했다. 코는 들창코에 가까우며, 넓은 콧방울이 숨을 쉴 때마다 크게 벌어지곤 한다. 입은 크고 넓어 얼굴의 반을 차지했으며, 입을 벌릴 때마다 날카롭고 길게 뻗은 이빨들이 드러났다. 긴 머리카락은 윤기 없이 흐트러져 있고, 그 아래로는 턱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나 있었다. 손과 발은 몸집에 비해 아주 작았지만, 사람의 몇 배에 달했으며, 손톱은 마치 갈고리처럼 날카롭고 단단했다. 그는 옷을 거의 걸치지 않은 상태로, 그의 몸은 단단한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가 지닌 엄청난 힘을 짐작하게 했다.
“저게 꼬마였어?”
하늘은 믿기지 않는 듯, 입을 다물지 못했고, 미리내는 여전히 벌벌 떨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최대한 청의동자의 정체를 감추어 주고 싶었던 아미는 너무도 곤혹스러운 얼굴이었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도목검(桃木剣) - 요물들을 퇴치하는 신성한 힘을 가진 목검. 미르가 비수를 가져간 대신 몰래 아미의 봇짐에 넣어 놓음.
*10척 - 3.03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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