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미르에게 죽음을, 아미에겐 속죄를- 1
조회 : 782 추천 : 0 글자수 : 7,454 자 2024-05-22
무사단 부단장 강은 무사단원들에게 잠시 수습한 동료들의 시신 앞에서 묵념할 것을 명령했다. 열한 구의 시체 앞에서 무사단원들은 숙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고, 바람에 흩날리는 갈대처럼 침묵 속에 굳어 있었다. 그 침묵을 깨는 건, 날 선 미르의 목소리였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보시다시피, 고인들에 대한 명복을 비는 중입니다만.”
“지금 그 말이 아니잖아?”
“전 그저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
강의 대답에 미르는 미리내를 찾았지만, 미리내는 벌써 말을 타고 달려가고 있었다.
아미가 독살하려 했다는 말은 그저 실없이 했던 농담이라는 변명에도 미리내는 아예 대화 자체를 거부했다.
“어떻게 할까? 말만 해. 당신 원하는 대로 해줄게.”
아미는 이미 포박되어 무사단의 말에 올라타 있었다.
“부탁이 있어요.”
“그래 말하라니까. 원하는 대로 해준다고. 내 말뜻 뭔지 알지?”
“제 정신이에요? 문제를 키우실 생각은 절대 하시면 안 돼요. 아셨죠?”
“그럼 어떻게 하라고?”
“동자와 저 두 분 좀 살펴주세요.”
“뭐?”
“지금 부탁드릴 사람이 미르님밖에 없어요.”
하늘은 다친 다리에도 불구하고 바람을 살피고 있었고, 청의동자는 하늘이 벗어준 상의를 덮고 잠자는 듯 고이 엎드려 있었다.
“부탁드려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아미를 보자, 그는 기가 찼다.
“부탁할 건 그게 아니잖아? 내 말뜻 모르겠어? 당신 바보야?”
“그럼, 전 미르님만 믿을게요.”
정리를 마친 강이 말 위에 올라탔다. 나머지 단원들도 신속히 말에 올라탔다.
강의 불편한 시선이 바람과 하늘을 향했다. 하늘은 강의 시선을 외면했다.
“마을 사람들이 불안해할 수 있으니, 시체들은 안장할 곳이 결정된 후 다시 와서 회수한다. 출발~”
강을 따라 아미를 태운 무사단 일행들이 출발했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어떻게 할까, 미르는 수없이 고민했다.
“저기 도련님~ 죄송합니다만, 저 좀 도와주십시오.”
하늘이었다. 그는 한쪽 발로 서서 정신을 잃은 바람을 일으키려 했지만, 애를 먹고 있었다.
“걸을 수 있겠어?”
“저야 짚을 막대기만 있으면 걷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저 형님은...”
그때, 저 멀리서 마차 한 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시내였다.
“당신이 여긴 어쩐 일입니까?”
“말도 안 듣고 제멋대로인 환자이지만, 한번 맡은 이상 끝까지 돌봐야 한다는 게 할아버지의 가르침입니다. 아직 뼈가 제대로 붙었는지 확인도 못했습니다.”
“아주 훌륭하구만.”
미르가 빙그레 웃었다.
시내의 가슴이 난데없이 두근거렸다.
##
한편, 하나 반도의 남서쪽, 돌로 된 성곽으로 둘러싸인 다름 지역, 그 중심에는 용천가의 본가가 우뚝 솟아 있었다. 본가로 향하는 대로는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며 대리석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길가에는 화려한 옷차림의 행인들과 값비싼 물건들을 진열한 상점들이 줄지어 있어, 용천가의 부와 권세를 과시하고 있었다.
멀리서 말을 타고 달려오는 일행들.
신출귀몰! 여이아!
갑자기 들려오는 사람들의 구호 소리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푸른 용의 투구와 푸른 용의 비늘 갑옷을 입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달려오고 있는 그들은 오늘은 동해 번쩍, 내일 서해 번쩍한다고 하여 ‘신출귀몰의 여이아‘라 불리는 용천가의 자랑이자 미래인, 용천가의 무남독녀 여이아와 네 명의 호위병인 용녀들이었다. 그들이 다가오자,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고, 그들이 지나가자, 다시 환호성과 함께 구호를 외쳤다.
신출귀몰! 여이아!
성처럼 생긴 대저택의 망루에서 바깥을 살피던 보초병이 그들을 발견하고, 황급히 황금 고동을 불었다.
뿌우~~~
대문 앞을 지키던 여전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대저택의 철문이 열리자 여이아 일행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계속 이어진 길에는 경비병이 지키고 있는 대문이 세 개가 더 있었고, 그 사이 사이에는 크고 작은 연못과 용의 형상을 한 여러 조형물, 그리고 정원들이 잘 정돈되어 있었으며, 건장한 남성들이 상의를 탈의한 채, 일을 하고 있었다.
큰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마침내 3층짜리 본가 저택이 보이자, 그제야 말의 속도를 줄였다. 그 앞에는 여이아 일행을 마중 나온 여자 하인들이 허리를 굽히고 대기하고 있었다. 여이아의 말이 천천히 걷기 시작하자, 뒤따라오던 용녀들의 탄 말들이 재빨리 앞으로 나아가더니 말에서 내려 양쪽으로 도열했다. 그리고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 수고하셨습니다. 여이아님.”
말에서 내린 여이아, 손 인사를 하고, 투구를 벗었다.
찰랑거리는 머릿결, 170 중반은 더 되어 보이는 그녀는 가주 못지않은 미모를 가진, 갑옷으로도 그녀의 볼륨감을 감출 수 없는 서구적인 미인이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검은 용 비늘 갑옷을 입은 우람한 40대의 남자가 나왔다.
용녀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혔다.
그는 용천군의 대장군, 고리한이었다.
“어? 웬일로 갑옷을 입으셨어요?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
“해치가에 봉화가 올랐다는 소식입니다. 지금 바름지역으로 바로 가셔야겠습니다.”
“그래요? 알았어요.”
다시 말 쪽으로 가려는 여이아.
“아니, 먼저 차 한잔하시면서 여독을 푸십시오.”
“차 안 마셔도 돼요.”
“마시셔야 합니다.”
왠지 여이아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고리한 대장군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냥 갈게요.”
“안 됩니다. 가주님의 명령입니다.”
왠지 모르게 실망한 표정의 여이아는 직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문이 닫히자, 고리한이 용녀들에게 명령했다.
“바로 출발해야 하니까, 서둘러 말을 교체하거라.”
“넵, 대장군.”
용녀들은 신속히 다시 말을 타고 여이아의 말을 데리고 마구간으로 달려갔다.
마구간에 들어서자, 이미 그곳에는 다른 네 명의 용녀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고생했어.”
용녀들이 말에서 내리자 대기하던 용녀들이 반갑게 끌어안았다.
신기하게도 서로 끌어안고 있는 용녀들의 용모가 똑같았다.
심지어 마구간에는 그들이 타고 온 말과 거의 분간이 안 가는 똑같은 말들이 매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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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가 모는 마차는 마을의 중심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고, 마차 안에는 바람과 하늘, 청의동자가 누워 있었다.
물론, 시내도 마루 옆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넋을 잃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소?”
“네? 잘 생겼... 아니, 뭐가 말입니까?”
“뭐긴 뭐겠습니까? 환자들 상태 말입니다. 아, 난 빼고.”
“한 분은 발목이 부러진 상태여서 부목을 대었고, 한 분은 의식불명 상태인데, 맥박을 보니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는 아닌 듯합니다. 뇌진탕이 의심되어서 일단 머리의 혈액순환을 돕기 위해, 침을 놓았습니다. 근데, 동자는...”
“그냥 쿨쿨 자는 것 같던데.”
“네. 숙면을 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쪽 나이도 어린 것 같은데, 의술이 아주 능숙한 것 같습니다.”
“아미, 그분도 저 못지않게 해박하신 것 같던데요?”
“아...”
아미란 말에 급 어두워진 미르. 그의 말실수가 빌미가 되었다. 물론 사실이기에 실수라 하기도 뭣하지만... 어릴 적부터 의심 많고 영특했던 그의 여동생 미리내는 아미에 대해 의심을 하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시내는 내친김에 둘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보기로 했다. 미르가 제멋대로이긴 하지만, 그만큼 감정에 솔직하다는 증표이기에 어쩌면 쉽게 털어놓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두 분은 어떤 사이십니까?”
“후~ 운명이라 생각했으나, 그건 아닌 것 같고...”
“아...”
그녀의 예상은 적중했다. 미르는 감정에 솔직한 사내였다.
“산을 올랐으나, 또 넘어야 할 산들이 보이고, 그래서 더 오르고 올라야 하나.. 뭐, 그런...”
이미 마음을 주신 것인가? 시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남자는 다리 셋 달린 동물에 불과하다 여기며 살아왔던 자신이, 겨우 본지 하루도 안 된 사내에게 끌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것도 이미 다른 여자를 마음에 품은 이를. 올려다보면 안 될 나무처럼 느껴질수록, 자꾸만 욕심이 생기는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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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지역, 용천가 본가 대저택 3층 여천우 처소.
“가주님, 여이아님 드십니다.”
문이 열리자, 여이아가 들어왔다.
여천우는 푹신한 안락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 옆에는 분칠한 소년 사제가 커다란 합죽선을 들고 부채질하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가주님.”
“그래. 수고했다.”
“마마산에 가신 일은 잘되셨습니까?”
“잘 되고 말고 할 일이 아니었다. 그저 통보하는 일이었지.”
“네. 그러셨군요. 근데, 못 보던 아입니다.”
그 말에 시종이 여이아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소년의 하얀 분칠이 몹시 거슬렸다.
“요새 심신이 피곤하다 하니, 고드라마 대사제가 곁에 두라 하더구나. 한 달간 이곳에 머무를 것이니, 그리 알거라.”
의아했다. 여이아의 어머니, 용천가의 가주 여천우는 결코 낯선 이를 가까이 두지 않는데...
“용안이 붉어지신 걸 보니, 실내가 더우신 모양입니다. 창문을 열까요?”
“아니다. 괜찮다. 그나저나, 오름 지역 정세는 어떠하더냐?”
“호지가의 군대가 부랑족의 잔당들을 쫓아 신성한 숲에 들어오긴 했습니다만, 저희가 전부 소탕해서 바로 물러갔습니다. 그래도 그 횟수가 빈번해지는 걸 보면, 잔당들의 소탕은 구실이고, 우리 경비대의 위치를 확인하려는 꼼수 같았습니다.”
“그렇구나. 앞으로도 예의 주시하거라.”
“외람되지만, 이번 달이 교대하는 달입니다. 그건 언니... 너는 잠시 물러가 있거라.”
여이아가 소년 사제에게 말을 하자, 소년 사제는 여천우의 눈치를 살폈다.
“뭐 하는 것이냐? 어서 나가보라니까.”
“아니다. 나갈 필요 없다.”
여이아는 놀란 눈으로 여천우를 바라보았다.
“내 일거수일투족을 살펴야 하는 아이다. 신경 쓰지 말고 할 말 있으면 해 보거라.”
여이아는 께름칙했다. 전과는 달라진 여천우의 태도가...
“아...네... 아까 고리한 대장군을 뵈었습니다. 해치가에 봉화가 올랐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바름지역으로 간다고. 어차피 이번 달은 며칠 안 남았으니, 제가 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아니다. 넌 여기서 대기 하거라.”
“그 이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때가 되면 어련히 알려주지 않겠느냐? 피곤할 테니, 이만 물러가거라.”
하지만 여이아는 그냥 빤히 여천우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왜, 아직 할 말이 더 남았느냐?”
“아닙니다.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여이아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후~ 부채질은 되었다. 아까 하던 거 마저 하거라.”
소년 사제는 합죽선을 내려놓으며, 그녀의 다리 쪽으로 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그녀의 치마 속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음~
여천우의 입에서 옅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누구의 그림자가 더 짙을까?”
“아직 저의 깨달음이 부족하여, 말씀드리기가 부담스럽습니다.”
입술 주위의 분칠이 희미해질 정도로 침에 젖은 소년이 고개를 들어 말했다.
“그래, 꼼꼼히 잘 살펴보거라.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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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루마을 촌장 집은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다.
미리내와 무사단 부단장은 기루마을 촌장의 어설픈 변명을 듣고 있었다.
“아니,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다 보니, 자칫 아가씨의 신변마저 위험할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급히 아가씨를 모실 마차라도 불러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데, 상황이 종료되었다니, 참으로 난망합니다.”
“알겠습니다. 많은 무사단원이 피해를 보았습니다. 하여, 그루로 이동하려는 계획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희생자 처리 문제와 부상자 치료에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한데, 그 괴물은 어찌 처치하신 겁니까?”
기루마을 촌장과 대화하던 부단장 강이 미리내를 쳐다보았다.
미리내가 싸늘하게 촌장을 바라보았다.
“바위에 깔려 죽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 기세등등하던 괴물이...”
“그만 하시죠. 이미 죽었는데, 계속 입에 담아 좋을 일이 있겠습니까?”
“네?”
“괴물이야 나타났다 쳐도 그 노인이 마을처자들을 먹어치운 식인요괴라고 믿게 하시겠냐 말입니다.”
“아... 아. 네. 아가씨의 뜻 잘 알겠습니다.”“전 부득이 하게 이곳에 더 머물러야겠는데, 문제없겠습니까?”
“그럼요. 문제없습니다. 한데, 얼마나 더 머무르실지...”
“부상당한 무사단원을 실어 나를 마차가 도착하면 바로 출발할 것입니다.”
“아, 예. 근데 저 광에 갇힌 여인 말입니다. 진짜 수상하지 않습니까? 아니, 이 마을 사람도 아닌데, 그 노인이 그런 무시무시한 괴물인 걸 어찌 알았단 말입니까? 저 여인이 부추기지만 않았어도, 무사단원들이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등질 일은 없지 않았겠습니까?”
미리내는 무심히 집 한 켠에 있는 광을 쳐다보았다.
광 안에는 아미가 포박당한 채, 앉아 있었다.
‘어떻게 할까? 말만 해. 당신 원하는 대로 해줄게.’
‘그래 말하라니까. 원하는 대로 해준다고. 내 말뜻 알지?’
‘부탁할 건 그게 아니잖아? 내 말뜻 모르겠어? 당신 바보야?’
아미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무리 입술을 깨물어도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하마터면 그에게 속마음을 말할 뻔했다. 갑자기 씁쓸해졌다.
그녀는 피곤한 듯, 눈을 감았다.
##
뿌우~
신출귀몰! 여이아!
성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여이아와 네 명의 호위병인 용녀들이 성문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구호를 외쳤지만, 다들 의아한 표정이었다.
지켜보던 행인 두 명이 서로 속삭였다.
“무슨 일이 생겼군.”
“아무래도 그런 거 같지? 근데, 자네 그거 알아?”
“뭔데?”
“어디 가서 내가 얘기했다고 하지마라.”
“알았어, 뭔데?”
“여이아님이 쌍둥이래.”
“뭐? 야, 이 정신 나간 놈아. 제명에 살고 싶으면 앞으로 절대 그런 소리 하지 마.”
“왜?”
“그 말 한번 했다가 끌려간 사람 여럿 봤으니까 하는 소리지. 유언비언 살포죄!”
“정말?”
놀란 행인은 손으로 자기 입을 싸매었다.
신출귀몰! 여이아!
어느새 여이아 일행은 성문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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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어딥니까?”
마차가 선 곳은 마을과는 조금 떨어진 산속, 아담한 초가집 앞이었다. 집 앞에는 조그만 옹달샘도 있었다.
시내가 마차에서 껑충 뛰어내리더니, 곳간에서 나무 바퀴가 달린 의자를 꺼내왔다.
미르가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손수 만든 것이오?”
“네. 여긴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요양하던 곳입니다.”
“아...”
“저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둘은 마차의 뒷문을 열어 하늘을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들것을 가져와 바람을 실어 방으로 옮겼다. 마지막으로 미르는 청의동자를 안아 방에 눕혔다.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하늘이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감사는 아미님께 드리십시오. 전 그분이 시키는 대로 따랐을 뿐입니다.”
“두 분이 다 미리 기획했다는 말씀입니까?”
“기획이라기보다는 두 가지 경우의 수를 얘기해주셨고, 저는 그에 따른 준비를 부탁받았을 뿐입니다.”
“경우의 수요?”
“네. 첫 번째가 무사단원들이 정오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고, 두 번째가 마을 촌장이 혼비백산 마을로 돌아오면, 한 시진을 기다리고 있다가 마차를 몰고 마을 외곽에 있는 신발 노인 댁으로 와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아, 저는 지금부터 탕약을 만들어야 하니, 쉬고들 계십시오.”
시내가 부엌으로 들어갔다.
하늘은 또다시 아미의 능력에 감탄하였고, 미르는 잔뜩 못마땅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쳐들어가, 아미를 빼 오고 싶었지만, 아미의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문제를 키우실 생각은 절대 하시면 안 돼요. 아셨죠?’
아미는 진짜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있어서, 어쩌면 지금의 상황도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변수를 더더욱 만들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어떻게 하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그녀를 빼 올 수 있을까?
“아, 맞다!”
순간, 미르의 눈이 번쩍 뜨였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보시다시피, 고인들에 대한 명복을 비는 중입니다만.”
“지금 그 말이 아니잖아?”
“전 그저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
강의 대답에 미르는 미리내를 찾았지만, 미리내는 벌써 말을 타고 달려가고 있었다.
아미가 독살하려 했다는 말은 그저 실없이 했던 농담이라는 변명에도 미리내는 아예 대화 자체를 거부했다.
“어떻게 할까? 말만 해. 당신 원하는 대로 해줄게.”
아미는 이미 포박되어 무사단의 말에 올라타 있었다.
“부탁이 있어요.”
“그래 말하라니까. 원하는 대로 해준다고. 내 말뜻 뭔지 알지?”
“제 정신이에요? 문제를 키우실 생각은 절대 하시면 안 돼요. 아셨죠?”
“그럼 어떻게 하라고?”
“동자와 저 두 분 좀 살펴주세요.”
“뭐?”
“지금 부탁드릴 사람이 미르님밖에 없어요.”
하늘은 다친 다리에도 불구하고 바람을 살피고 있었고, 청의동자는 하늘이 벗어준 상의를 덮고 잠자는 듯 고이 엎드려 있었다.
“부탁드려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아미를 보자, 그는 기가 찼다.
“부탁할 건 그게 아니잖아? 내 말뜻 모르겠어? 당신 바보야?”
“그럼, 전 미르님만 믿을게요.”
정리를 마친 강이 말 위에 올라탔다. 나머지 단원들도 신속히 말에 올라탔다.
강의 불편한 시선이 바람과 하늘을 향했다. 하늘은 강의 시선을 외면했다.
“마을 사람들이 불안해할 수 있으니, 시체들은 안장할 곳이 결정된 후 다시 와서 회수한다. 출발~”
강을 따라 아미를 태운 무사단 일행들이 출발했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어떻게 할까, 미르는 수없이 고민했다.
“저기 도련님~ 죄송합니다만, 저 좀 도와주십시오.”
하늘이었다. 그는 한쪽 발로 서서 정신을 잃은 바람을 일으키려 했지만, 애를 먹고 있었다.
“걸을 수 있겠어?”
“저야 짚을 막대기만 있으면 걷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저 형님은...”
그때, 저 멀리서 마차 한 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시내였다.
“당신이 여긴 어쩐 일입니까?”
“말도 안 듣고 제멋대로인 환자이지만, 한번 맡은 이상 끝까지 돌봐야 한다는 게 할아버지의 가르침입니다. 아직 뼈가 제대로 붙었는지 확인도 못했습니다.”
“아주 훌륭하구만.”
미르가 빙그레 웃었다.
시내의 가슴이 난데없이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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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하나 반도의 남서쪽, 돌로 된 성곽으로 둘러싸인 다름 지역, 그 중심에는 용천가의 본가가 우뚝 솟아 있었다. 본가로 향하는 대로는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며 대리석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길가에는 화려한 옷차림의 행인들과 값비싼 물건들을 진열한 상점들이 줄지어 있어, 용천가의 부와 권세를 과시하고 있었다.
멀리서 말을 타고 달려오는 일행들.
신출귀몰! 여이아!
갑자기 들려오는 사람들의 구호 소리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푸른 용의 투구와 푸른 용의 비늘 갑옷을 입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달려오고 있는 그들은 오늘은 동해 번쩍, 내일 서해 번쩍한다고 하여 ‘신출귀몰의 여이아‘라 불리는 용천가의 자랑이자 미래인, 용천가의 무남독녀 여이아와 네 명의 호위병인 용녀들이었다. 그들이 다가오자,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고, 그들이 지나가자, 다시 환호성과 함께 구호를 외쳤다.
신출귀몰! 여이아!
성처럼 생긴 대저택의 망루에서 바깥을 살피던 보초병이 그들을 발견하고, 황급히 황금 고동을 불었다.
뿌우~~~
대문 앞을 지키던 여전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대저택의 철문이 열리자 여이아 일행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계속 이어진 길에는 경비병이 지키고 있는 대문이 세 개가 더 있었고, 그 사이 사이에는 크고 작은 연못과 용의 형상을 한 여러 조형물, 그리고 정원들이 잘 정돈되어 있었으며, 건장한 남성들이 상의를 탈의한 채, 일을 하고 있었다.
큰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마침내 3층짜리 본가 저택이 보이자, 그제야 말의 속도를 줄였다. 그 앞에는 여이아 일행을 마중 나온 여자 하인들이 허리를 굽히고 대기하고 있었다. 여이아의 말이 천천히 걷기 시작하자, 뒤따라오던 용녀들의 탄 말들이 재빨리 앞으로 나아가더니 말에서 내려 양쪽으로 도열했다. 그리고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 수고하셨습니다. 여이아님.”
말에서 내린 여이아, 손 인사를 하고, 투구를 벗었다.
찰랑거리는 머릿결, 170 중반은 더 되어 보이는 그녀는 가주 못지않은 미모를 가진, 갑옷으로도 그녀의 볼륨감을 감출 수 없는 서구적인 미인이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검은 용 비늘 갑옷을 입은 우람한 40대의 남자가 나왔다.
용녀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혔다.
그는 용천군의 대장군, 고리한이었다.
“어? 웬일로 갑옷을 입으셨어요?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
“해치가에 봉화가 올랐다는 소식입니다. 지금 바름지역으로 바로 가셔야겠습니다.”
“그래요? 알았어요.”
다시 말 쪽으로 가려는 여이아.
“아니, 먼저 차 한잔하시면서 여독을 푸십시오.”
“차 안 마셔도 돼요.”
“마시셔야 합니다.”
왠지 여이아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고리한 대장군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냥 갈게요.”
“안 됩니다. 가주님의 명령입니다.”
왠지 모르게 실망한 표정의 여이아는 직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문이 닫히자, 고리한이 용녀들에게 명령했다.
“바로 출발해야 하니까, 서둘러 말을 교체하거라.”
“넵, 대장군.”
용녀들은 신속히 다시 말을 타고 여이아의 말을 데리고 마구간으로 달려갔다.
마구간에 들어서자, 이미 그곳에는 다른 네 명의 용녀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고생했어.”
용녀들이 말에서 내리자 대기하던 용녀들이 반갑게 끌어안았다.
신기하게도 서로 끌어안고 있는 용녀들의 용모가 똑같았다.
심지어 마구간에는 그들이 타고 온 말과 거의 분간이 안 가는 똑같은 말들이 매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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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가 모는 마차는 마을의 중심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고, 마차 안에는 바람과 하늘, 청의동자가 누워 있었다.
물론, 시내도 마루 옆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넋을 잃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소?”
“네? 잘 생겼... 아니, 뭐가 말입니까?”
“뭐긴 뭐겠습니까? 환자들 상태 말입니다. 아, 난 빼고.”
“한 분은 발목이 부러진 상태여서 부목을 대었고, 한 분은 의식불명 상태인데, 맥박을 보니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는 아닌 듯합니다. 뇌진탕이 의심되어서 일단 머리의 혈액순환을 돕기 위해, 침을 놓았습니다. 근데, 동자는...”
“그냥 쿨쿨 자는 것 같던데.”
“네. 숙면을 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쪽 나이도 어린 것 같은데, 의술이 아주 능숙한 것 같습니다.”
“아미, 그분도 저 못지않게 해박하신 것 같던데요?”
“아...”
아미란 말에 급 어두워진 미르. 그의 말실수가 빌미가 되었다. 물론 사실이기에 실수라 하기도 뭣하지만... 어릴 적부터 의심 많고 영특했던 그의 여동생 미리내는 아미에 대해 의심을 하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시내는 내친김에 둘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보기로 했다. 미르가 제멋대로이긴 하지만, 그만큼 감정에 솔직하다는 증표이기에 어쩌면 쉽게 털어놓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두 분은 어떤 사이십니까?”
“후~ 운명이라 생각했으나, 그건 아닌 것 같고...”
“아...”
그녀의 예상은 적중했다. 미르는 감정에 솔직한 사내였다.
“산을 올랐으나, 또 넘어야 할 산들이 보이고, 그래서 더 오르고 올라야 하나.. 뭐, 그런...”
이미 마음을 주신 것인가? 시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남자는 다리 셋 달린 동물에 불과하다 여기며 살아왔던 자신이, 겨우 본지 하루도 안 된 사내에게 끌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것도 이미 다른 여자를 마음에 품은 이를. 올려다보면 안 될 나무처럼 느껴질수록, 자꾸만 욕심이 생기는 그녀였다.
##
다름지역, 용천가 본가 대저택 3층 여천우 처소.
“가주님, 여이아님 드십니다.”
문이 열리자, 여이아가 들어왔다.
여천우는 푹신한 안락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 옆에는 분칠한 소년 사제가 커다란 합죽선을 들고 부채질하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가주님.”
“그래. 수고했다.”
“마마산에 가신 일은 잘되셨습니까?”
“잘 되고 말고 할 일이 아니었다. 그저 통보하는 일이었지.”
“네. 그러셨군요. 근데, 못 보던 아입니다.”
그 말에 시종이 여이아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소년의 하얀 분칠이 몹시 거슬렸다.
“요새 심신이 피곤하다 하니, 고드라마 대사제가 곁에 두라 하더구나. 한 달간 이곳에 머무를 것이니, 그리 알거라.”
의아했다. 여이아의 어머니, 용천가의 가주 여천우는 결코 낯선 이를 가까이 두지 않는데...
“용안이 붉어지신 걸 보니, 실내가 더우신 모양입니다. 창문을 열까요?”
“아니다. 괜찮다. 그나저나, 오름 지역 정세는 어떠하더냐?”
“호지가의 군대가 부랑족의 잔당들을 쫓아 신성한 숲에 들어오긴 했습니다만, 저희가 전부 소탕해서 바로 물러갔습니다. 그래도 그 횟수가 빈번해지는 걸 보면, 잔당들의 소탕은 구실이고, 우리 경비대의 위치를 확인하려는 꼼수 같았습니다.”
“그렇구나. 앞으로도 예의 주시하거라.”
“외람되지만, 이번 달이 교대하는 달입니다. 그건 언니... 너는 잠시 물러가 있거라.”
여이아가 소년 사제에게 말을 하자, 소년 사제는 여천우의 눈치를 살폈다.
“뭐 하는 것이냐? 어서 나가보라니까.”
“아니다. 나갈 필요 없다.”
여이아는 놀란 눈으로 여천우를 바라보았다.
“내 일거수일투족을 살펴야 하는 아이다. 신경 쓰지 말고 할 말 있으면 해 보거라.”
여이아는 께름칙했다. 전과는 달라진 여천우의 태도가...
“아...네... 아까 고리한 대장군을 뵈었습니다. 해치가에 봉화가 올랐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바름지역으로 간다고. 어차피 이번 달은 며칠 안 남았으니, 제가 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아니다. 넌 여기서 대기 하거라.”
“그 이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때가 되면 어련히 알려주지 않겠느냐? 피곤할 테니, 이만 물러가거라.”
하지만 여이아는 그냥 빤히 여천우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왜, 아직 할 말이 더 남았느냐?”
“아닙니다.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여이아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후~ 부채질은 되었다. 아까 하던 거 마저 하거라.”
소년 사제는 합죽선을 내려놓으며, 그녀의 다리 쪽으로 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그녀의 치마 속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음~
여천우의 입에서 옅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누구의 그림자가 더 짙을까?”
“아직 저의 깨달음이 부족하여, 말씀드리기가 부담스럽습니다.”
입술 주위의 분칠이 희미해질 정도로 침에 젖은 소년이 고개를 들어 말했다.
“그래, 꼼꼼히 잘 살펴보거라. 음~”
##
기루마을 촌장 집은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다.
미리내와 무사단 부단장은 기루마을 촌장의 어설픈 변명을 듣고 있었다.
“아니,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다 보니, 자칫 아가씨의 신변마저 위험할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급히 아가씨를 모실 마차라도 불러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데, 상황이 종료되었다니, 참으로 난망합니다.”
“알겠습니다. 많은 무사단원이 피해를 보았습니다. 하여, 그루로 이동하려는 계획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희생자 처리 문제와 부상자 치료에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한데, 그 괴물은 어찌 처치하신 겁니까?”
기루마을 촌장과 대화하던 부단장 강이 미리내를 쳐다보았다.
미리내가 싸늘하게 촌장을 바라보았다.
“바위에 깔려 죽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 기세등등하던 괴물이...”
“그만 하시죠. 이미 죽었는데, 계속 입에 담아 좋을 일이 있겠습니까?”
“네?”
“괴물이야 나타났다 쳐도 그 노인이 마을처자들을 먹어치운 식인요괴라고 믿게 하시겠냐 말입니다.”
“아... 아. 네. 아가씨의 뜻 잘 알겠습니다.”“전 부득이 하게 이곳에 더 머물러야겠는데, 문제없겠습니까?”
“그럼요. 문제없습니다. 한데, 얼마나 더 머무르실지...”
“부상당한 무사단원을 실어 나를 마차가 도착하면 바로 출발할 것입니다.”
“아, 예. 근데 저 광에 갇힌 여인 말입니다. 진짜 수상하지 않습니까? 아니, 이 마을 사람도 아닌데, 그 노인이 그런 무시무시한 괴물인 걸 어찌 알았단 말입니까? 저 여인이 부추기지만 않았어도, 무사단원들이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등질 일은 없지 않았겠습니까?”
미리내는 무심히 집 한 켠에 있는 광을 쳐다보았다.
광 안에는 아미가 포박당한 채, 앉아 있었다.
‘어떻게 할까? 말만 해. 당신 원하는 대로 해줄게.’
‘그래 말하라니까. 원하는 대로 해준다고. 내 말뜻 알지?’
‘부탁할 건 그게 아니잖아? 내 말뜻 모르겠어? 당신 바보야?’
아미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무리 입술을 깨물어도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하마터면 그에게 속마음을 말할 뻔했다. 갑자기 씁쓸해졌다.
그녀는 피곤한 듯, 눈을 감았다.
##
뿌우~
신출귀몰! 여이아!
성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여이아와 네 명의 호위병인 용녀들이 성문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구호를 외쳤지만, 다들 의아한 표정이었다.
지켜보던 행인 두 명이 서로 속삭였다.
“무슨 일이 생겼군.”
“아무래도 그런 거 같지? 근데, 자네 그거 알아?”
“뭔데?”
“어디 가서 내가 얘기했다고 하지마라.”
“알았어, 뭔데?”
“여이아님이 쌍둥이래.”
“뭐? 야, 이 정신 나간 놈아. 제명에 살고 싶으면 앞으로 절대 그런 소리 하지 마.”
“왜?”
“그 말 한번 했다가 끌려간 사람 여럿 봤으니까 하는 소리지. 유언비언 살포죄!”
“정말?”
놀란 행인은 손으로 자기 입을 싸매었다.
신출귀몰! 여이아!
어느새 여이아 일행은 성문을 빠져나갔다.
##
“여긴 어딥니까?”
마차가 선 곳은 마을과는 조금 떨어진 산속, 아담한 초가집 앞이었다. 집 앞에는 조그만 옹달샘도 있었다.
시내가 마차에서 껑충 뛰어내리더니, 곳간에서 나무 바퀴가 달린 의자를 꺼내왔다.
미르가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손수 만든 것이오?”
“네. 여긴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요양하던 곳입니다.”
“아...”
“저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둘은 마차의 뒷문을 열어 하늘을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들것을 가져와 바람을 실어 방으로 옮겼다. 마지막으로 미르는 청의동자를 안아 방에 눕혔다.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하늘이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감사는 아미님께 드리십시오. 전 그분이 시키는 대로 따랐을 뿐입니다.”
“두 분이 다 미리 기획했다는 말씀입니까?”
“기획이라기보다는 두 가지 경우의 수를 얘기해주셨고, 저는 그에 따른 준비를 부탁받았을 뿐입니다.”
“경우의 수요?”
“네. 첫 번째가 무사단원들이 정오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고, 두 번째가 마을 촌장이 혼비백산 마을로 돌아오면, 한 시진을 기다리고 있다가 마차를 몰고 마을 외곽에 있는 신발 노인 댁으로 와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아, 저는 지금부터 탕약을 만들어야 하니, 쉬고들 계십시오.”
시내가 부엌으로 들어갔다.
하늘은 또다시 아미의 능력에 감탄하였고, 미르는 잔뜩 못마땅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쳐들어가, 아미를 빼 오고 싶었지만, 아미의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문제를 키우실 생각은 절대 하시면 안 돼요. 아셨죠?’
아미는 진짜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있어서, 어쩌면 지금의 상황도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변수를 더더욱 만들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어떻게 하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그녀를 빼 올 수 있을까?
“아, 맞다!”
순간, 미르의 눈이 번쩍 뜨였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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