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미르에게 죽음을, 아미에겐 속죄를- 3
조회 : 718 추천 : 0 글자수 : 7,146 자 2024-05-24
미르와 청의동자가 들어선 이상한 가게의 내부는 생각보다 썰렁했다. 허름한 나무판자로 이어 붙인 듯한 좁은 공간에는 베틀 하나와 천몇 필, 바늘과 실 외에는 별다른 물건이 없었다. 햇볕에 바랜 낡은 옷감들이 벽에 걸려 있긴 했지만,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있어 오랫동안 내버려진 듯 보였다. 벽 한구석에는 침상이 보였고, 가림막이 반쯤 처져있었다.
공간의 한가운데에는 낡은 베틀이 놓여 있었고, 할머니가 앉아 있었는데, 등이 구부정하게 굽어 거의 베틀에 닿을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할머니의 눈은 이미 백내장이 심해 흐릿했고, 숨소리는 마치 풀무처럼 골골거렸다. 그런 할머니가 어떻게 옷을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주름지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베틀을 움직이며 천을 짜고 있었다.
“저, 할머니. 옷 좀 지으러 왔습니다.”
“누구 옷이오? 총각 자네가 입을 것인가?”
“아닙니다. 이 꼬마가 입을 것입니다.”
할머니가 물끄러미 청의동자를 쳐다보았다.
청의동자는 할머니의 시선에 의아함을 느꼈다.
“아주 귀한 손님이 찾아오셨구먼. 근데, 왜 여자 옷을 입혀놨어? 에구 속상했겠구먼. 걱정 마시오. 금방 지어줄 테니.”
할머니가 미르를 나무라자, 뾰로통해졌던 청의동자는 금세 해맑아졌다.
미르는 천을 할머니에게 건넸다.
“얼마나 걸릴까요? 저 앞에 포목점 주인이 여기선 금방 짓는다고 하던데...”
“그건 우리 손녀에게 물어보게. 옷 짓는 거는 그 아이의 담당이라. 홍의야~”
홍의? 손녀인 듯한 그 아이는 아까 계속 청의동자를 노려보더니, 어디론가 휙 가버렸다.
“할머니, 그 손녀는 아까 어디로 가던데요?”
“왜요, 할머니.”
헉~
손녀가 가림막을 젖히고 나왔다.
“다 들었으면서 모른척하기는. 쯧쯧. 왜 그렇게 심통이야? 어서 네 낭군님 옷 좀 지어라.”
“몰라요.”
손녀는 다시 가림막으로 들어가 버렸다.
“너 그러면 할머니가 속상해.”
할머니가 말했다.
“천 들고 일로 와.”
손녀가 뚱한 소리로 말했다.
할머니가 천을 청의동자에게 안기고 어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청의동자는 왠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가림막 안으로 들어갔다.
“벗어.”
“왜?”
“벗어야 치수를 잴 거 아냐.”
“내 치수 몰라?”
“세월이 얼마나 지났는데, 지금까지 그걸 기억해?”
“알았어. 아, 아파.”
“가만히 있어. 바늘로 찌르기 전에.”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꼬마들의 말에, 미르가 피식 웃었다.
할머니는 인자한 눈빛으로 미르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같이 한 지는 얼마나 되었나?”
“아, 저와의 인연이 아닙니다. 전 단지 대신해서 옷을 지어주러 왔을 뿐입니다.”
“그럼 저 아이의 인연은 어딜 가고?”
“잠시 곤경에 빠져서... 제가 곧 만나러 가려 합니다.”
할머니는 대충 상황을 이해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초면이지만, 내가 부탁 좀 해도 되겠나?”
미르는 그 부탁이 자신을 난처하게 할 것이라는 걸 직감했다.
##
“그럼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강이 미리내에게 고개를 숙였다.
“부단장님도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미리내가 고개를 숙였다.
주위에 있던 의원과 시종, 기루마을 촌장이 부단장 강에게 고개를 숙였다.
말에 올라타려던 강이 뭔가를 주저하더니, 다시 미리내의 앞으로 왔다.
“뭐 전할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그게 아니라... 외람된 말씀이지만, 제게 행운의 부적 좀 주실 수 있으십니까?”
“행운의 부적이요?”
“예. 몸에 지니셨던 거면 아무거나 상관없습니다.”
미리내는 잠시 망설였다. 강이 부단장이 자신을 흠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소였다면 매몰차게 거절했겠지만, 지금은 무사단의 활약이 절실히 필요한 때였다. 미리내는 갑자기 치마를 걷어 올렸다. 그녀의 하얀 맨다리가 드러났다.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속치마를 찢었다. 그리고 강의 팔목에 매어주었다.
“이거면 되겠습니까?”
강은 감격스러운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강은 기쁜 듯 환하게 웃으며 날쌔게 말에 올라탔다. 그리고 말의 앞다리를 들어 올리는 묘기를 부리더니, 힘차게 달려 나갔다. 미리내는 강이 참으로 단순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때, 시종이 다가왔다.
“아가씨, 굳이 그럴 필요가 있으셨습니까? 구설수라도 생기면 어쩌시려고요?”
“해치가를 위해서라면, 그깟 구설수가 문제겠느냐? 속곳이라도 벗어 달라면 벗어줄 판에.”
“네? 아니 그런 망측한 말씀을.”
“지금 뭐 하시는 것입니까?”
미리내는 슬며시 광에 다가가려 하는 기루마을 촌장을 불러 세웠다.
“아니, 그냥 어쩌고 있나 좀 살펴보려고... 근데, 지금까지 끼니도 못 먹고 심지어 물도 못 먹은 것 같은데 제가 물과 음식 좀 갖다 줄 깝쇼?”
“제가 알아서 합니다. 촌장님은 신경 끄세요.”
“아... 넵. 알겠습니다.”
촌장이 찝찝한 얼굴로 마루에 걸터앉았다. 시종이 다시 미리내에게 말했다.
“아까 광에서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왜?”
“아니 저 촌장 말입니다. 아가씨께서 광에 들어가 계실 동안, 계속 엿듣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지 말라고 뭐라 할까 하다가, 그래도 여기 마을 촌장이고, 게다가 지금 신세를 지고 있어서 그냥 못 본 척했는데, 아까는 실성한 사람처럼, 혼자서 자꾸 뭐라 중얼거리지, 뭡니까?”
“뭐라고?”
“그게 소리가 작아서 정확하진 않은데, 수첩 어쩌고 미래가 저쩌고 그랬습니다.”
순간, 미리내는 촌장을 쳐다보았다. 미리내와 시선이 마주친 촌장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시선을 피했다. 미리내의 표정이 굳어졌다.
##
미르와 청의동자가 옷 수선가게에서 나오자, 할머니와 손녀딸이 따라 나왔다.
청의동자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깊이 생각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미르는 할머니의 손녀를 쳐다보았다. 소녀가 아까부터 호기심 어린 얼굴로 미르를 응시하고 있었다. 청의동자는 그 모습이 몹시 불편해 보였다.
그때 땅이 울릴 정도의 진동이 느껴졌다.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강이 이끄는 무사단이었다.
강의 시선이 미르와 맞닿았다.
“조심해. 쓸데없이 나서지 말고. 알았어?”
미르가 소리쳤지만, 강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쳐다보지도 않고 내달렸다.
무사단이 일으킨 먼지가 가라앉자, 미르와 청의동자는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발길을 옮겼다.
“자, 이제 가봐야지?”
“누나가 부를 때까지는 오지 말라고 그랬는데요.”
“언제? 왜?”
이 형아는 왜 누나 이야기만 나오면 저리 호들갑이지라고 청의동자는 생각했다.
“원래 그랬어요. 항상.”
“지금 네 누나가 어떤 상황인지 알아? 붙잡혔다고. 내 동생한테. 그 애가 어떤 애인 줄 알아? 알아야겠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아이란 말이야. 자칫하다간 네 누나의 비밀이 다 까발려질지도 모른다고.”
“비밀? 누난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냥요. 제가 물어볼 때도, 바로 다 말해주던데요.”
“그거야 네가 사람이 아니... 아니다. 됐다.”
“치이. 원래 물어보면 그냥 말해 준다니까요, 몰라서 못 물어보지.”
“그래?”
미르는 통나무집에서 직접 물어보지 않았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럼, 누나한테 안 가는 거예요?”
“아니. 가야지.”
“왜요?”
“보고 싶으니까.”
미르의 눈빛을 보자, 이건 뭐지라는 표정을 지었다.
##
해가 기울어진 깊은 산속, 작은 움막.
꼬마 도깨비 미안이 두리번거리며 집안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짜증 난 미안이 움막집 문을 발로 뻥 차자, 갑자기 뒤로 튕겨 나갔다. 집주인 허락 없이는 집에 접근할 수 없는 도깨비의 저주였다.
“으, 대체 누구기에 이렇게 꽁꽁 숨겨 놔? 두고 봐. 내가 꼭 보고야 만다, 씨이.”
그때, 나무들이 쿵쿵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냥을 마친 집주인 아야가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휙~
파란 도깨비불로 변한 미안이 소리가 나는 숲속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그때, 거구의 아야가 숲속에서 튀어나왔다.
그이 어깨엔 거대한 멧돼지 한 마리가 매어져 있었다.
마당 한복판에 멧돼지를 떨어뜨리고는 조용히 냄새를 맡더니, 인상을 썼다.
“으, 미안이 녀석. 진짜 결계를 확 쳐버려?”
멧돼지의 가죽을 벗기기 위하여, 옆에 찬 커다란 칼을 꺼냈다. 그 칼은 뭉툭하고 면이 넓었다. 그것으로 나무를 베고 사냥을 해서 그런지, 칼날은 무디었다.
가죽이 잘 안 벗겨지자, 열을 받았는지 그냥 손으로 뜯어내었다. 무서운 괴력이었다.
도살자, 바로 그 모습이었다.
“읍~ 읍~”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아야는 멧돼지를 팽개치고 급히 달려갔다.
드넓은 움막집 안에는 소녀가 능지처참당하는 것처럼 사지가 옴짝달싹 못 하게 침대 모서리에 묶여있었다. 입에도 재갈이 물려있었다.
“왜? 어디가 불편해?”
아야가 걱정되는 얼굴로 물었다.
소녀는 잔뜩 찡그린 얼굴로 고개를 좌우로 마구 흔들었다.
아야가 재갈을 풀어주자, 소녀가 외쳤다.
“나 급해!”
“급해? 뭐가?”
“뭐긴 뭐야? 이 멍청이야.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다고! 어서 풀어줘. 어서!”
소녀가 다급히 외쳤지만, 아야는 느긋한 얼굴이었다.
“그냥 싸.”
“뭐어?”
“내가 나중에 빨면 되니까. 그냥 싸라고.”
“너 진짜 죽여 버린다.”
소녀는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온몸을 비틀었지만, 손발에 묶여있던 탓에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안 돼. 안 돼. 아... 제발. 이거 좀 풀어달라고. 윽~”
푸드득~
고약한 냄새가 실내를 가득 채웠다. 아야는 코를 급히 막았다.
“으... 큰 거였어? 진작 말하지.”
“너 새끼. 내가 진짜 갈기갈기 찢어서 매일매일 씹어준다. 반드시.”
소녀는 이를 갈며 아야를 노려보았다.
아야는 태연히 걸레를 들고 왔다. 뒤처리하려는 듯 소녀에게 다가갔다.
“야! 너 뭐야? 뭐 하려는 거야~”
“뭐하긴. 그럼, 이대로 그냥 있을 거야? 똥독 올라.”
“꺄악~~~~~~~~~”
소녀의 처절한 비명이 숲속에 울려 퍼졌다.
##
마마산 정상에도 저녁이 찾아오고 있었다.
새 떼 한 무리가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그것을 본 늙은 제사가 급히 제단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잠시 후, 고드라마는 제사들과 함께 다시 밖으로 나왔다.
새 떼는 제단 위를 한차례 빙글빙글 돈 후, 갑자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때 무언가가 땅으로 떨어졌다.
쿵~
그것은 배가 갈라져 푸른 피를 흘리고 있는 묘두사였다.
고드라마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이런... 아스리님에게 당한 것입니까?”
묘두사는 힘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입 밖으로 뭔가를 토해냈다.
웬 봇짐이었다.
고드라마가 고갯짓을 하자, 한 제사가 재빨리 봇짐을 주워 고드라마에게 바쳤다.
고드라마는 찝찝한 표정으로 묘두사의 타액이 묻은 봇짐을 열었다.
어디서 본 듯한 여인의 조각상과 옷가지와 여인의 속곳. 그리고 조그만 가죽 수첩.
“뭐야, 이건?”
고드라마는 비릿한 눈으로 속곳을 꺼내어 냄새를 킁킁 맡았다.
그것은 잃어버린 미르의 봇짐이었고, 아미의 속곳이었다.
##
아미의 몸이 움찔거렸다. 아랫도리에서 느껴지는 야릇한 불쾌감 때문에 아미는 당황스러워 헛기침했다.
“흡, 왜 이러지?”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났다. 저녁 시간인 것 같았다.
기루마을엔 식사 준비를 하는지, 집집마다 아궁이의 연기가 오르고 있었다.
기루마을 촌장 집에서도 저녁 준비에 다들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어디선가 송편 냄새가 흘러왔다.
어젯밤 미르를 간호하느라 저녁도 못 먹고, 아침부터 황금돼지를 처리하려고 바삐 움직이느라 지금까지 한 끼도 못 먹어서 그런지 피곤과 함께, 강한 허기를 느꼈다.
이럴 땐 자는 게 최고인데, 그녀에겐 잠을 잔다는 것은 스스로 지옥 불에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눈을 감으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
어딘가 귀에 익은 목소리.
“아~ 하라고.”
목소리가 환청이 아님을 느낀 아미가 눈을 떴다.
미르였다. 그가 빙그레 웃는 얼굴로, 송편을 아미의 입 가까이 들고 있었다. 그 옆에는 청의동자가 울상으로 서 있었다. 아미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배고프지? 어서 먹어.”
아미는 입을 벌려 송편을 받아먹었다.
“누나, 왜 이렇게 하고 있어? 누구야? 내가 혼내줄게.”
아미는 송편을 오물거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됐어. 몸은 괜찮아? 걱정했는데, 다행히 새 옷을 구했구나.”
“응. 형아가 새로 사줬어.”
“고맙습니다. 근데, 여긴 뭐 하러 오셨어요?”
“뭐 하러?”
그녀의 한마디는 그에게 비수 같았다. 실실거리던 그의 얼굴이 일순간 굳어졌다.
아미는 그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왜요? 제가 뭐 잘 못했어요?”
“야, 꼬마. 넌 좀 나가 있어봐. 내가 네 누나랑 좀 얘기할 게 있어서 그래.”
“그냥 여기 있으면 안 돼요. 못 듣는 척할게요.”
“새 옷까지 지어줬는데, 말 좀 듣지?”
청의동자가 아미의 눈치를 살피자, 아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에게 뭐라 하지 마요!”
청의동자는 미르에게 눈을 흘기고는 휙 하고 사라졌다.
“대체 어쩔 셈으로 여기에 잡혀 온 거야?”
“그럼 어찌합니까? 잡아가겠다는데.”
“아까 내가 말했잖아. 원하는 대로 해준다고. 못 들었어?”
“왜요? 같이 도망이라도 가시게요?”
“도망? 허. 내가 도망을? 아까 못 봤어? 내가 도망을 왜 가? 도망을 가면 자기들이 가야지. 자, 아, 해.”
미르는 화를 내는 듯하면서도, 아미를 또 챙겼다.
아미의 입속으로 또 하나의 송편이 들어갔다. 아미가 오물오물하자, 미르는 그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제 어쩔 생각이야?”
“제 의지는 아니지만, 전 본가로 압송될 거예요.”
미르의 눈이 커졌다.
“걱정하지 마. 내가 그렇게 못 하게 막을 거니까.”
“그러지 마세요.”
“아, 진짜 왜 그래? 본가에 압송되면 어떻게 될지 알아? 미리내도 미리내지만, 백산 스승은 더 한 사람이라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별일 없을 거예요.”
너무도 태연한 아미를 보며, 미르는 청의동자가 한 말을 떠올렸다.
‘치이. 원래 물어보면 그냥 말해 준다니까요, 몰라서 못 물어보지.’
“진짜, 앞날을 내다보는 거야?”
미르가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아미가 피식 웃었다.
“뭐에요? 아직 모르고 계셨던 거예요? 그날은 그렇게 자신하시더니? 아.”
이번엔 아미가 스스로 입을 벌렸다. 미르는 다시 송편을 그녀의 입안에 넣어주었다.
“진짜구나.”
“저도 궁금한 게 있어요. 저는 왜 따라오신 거예요? 앙갚음은 아닌 것 같아서.”
“확인해 보고 싶어서.”
“이번엔 또 뭘 확인하시려고요?”
“날 독살하려 했던 여인을 다시 보면, 그때도 운명이니 뭐니 떠들어댈 수 있을까 하고.”
미르가 갑자기 훅 들어왔다. 아미가 정색하며 물었다.
“어떤 데요?”
“그 물음에 답하기 전에 먼저 알아야겠어. 왜 날 죽이려고 한 거야?”
그의 말에, 아미는 얼굴이 어두워졌다.
##
마마산 제단안.
원탁 위에서 고드라마가 키득거리며 뭔가를 보고 있었다.
크리스탈 수정구, 그 안에 아미와 미르의 모습이 보였다. 고드라마의 손엔 아미의 속곳이 들려져 있었다.
“이게 뭔 조화일까? 해치가의 망니니와 정체불명의 여인이라... 앞날을 내다봐? 크크크. 이거 정말 환장하겠군. 대체 일이 어떻게 되는 거야? 돌아가시겠다. 정말. 크크크.”
손에 들고 있던 아미의 속곳을 보며 그는 미친 사람처럼 계속 키득거렸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공간의 한가운데에는 낡은 베틀이 놓여 있었고, 할머니가 앉아 있었는데, 등이 구부정하게 굽어 거의 베틀에 닿을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할머니의 눈은 이미 백내장이 심해 흐릿했고, 숨소리는 마치 풀무처럼 골골거렸다. 그런 할머니가 어떻게 옷을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주름지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베틀을 움직이며 천을 짜고 있었다.
“저, 할머니. 옷 좀 지으러 왔습니다.”
“누구 옷이오? 총각 자네가 입을 것인가?”
“아닙니다. 이 꼬마가 입을 것입니다.”
할머니가 물끄러미 청의동자를 쳐다보았다.
청의동자는 할머니의 시선에 의아함을 느꼈다.
“아주 귀한 손님이 찾아오셨구먼. 근데, 왜 여자 옷을 입혀놨어? 에구 속상했겠구먼. 걱정 마시오. 금방 지어줄 테니.”
할머니가 미르를 나무라자, 뾰로통해졌던 청의동자는 금세 해맑아졌다.
미르는 천을 할머니에게 건넸다.
“얼마나 걸릴까요? 저 앞에 포목점 주인이 여기선 금방 짓는다고 하던데...”
“그건 우리 손녀에게 물어보게. 옷 짓는 거는 그 아이의 담당이라. 홍의야~”
홍의? 손녀인 듯한 그 아이는 아까 계속 청의동자를 노려보더니, 어디론가 휙 가버렸다.
“할머니, 그 손녀는 아까 어디로 가던데요?”
“왜요, 할머니.”
헉~
손녀가 가림막을 젖히고 나왔다.
“다 들었으면서 모른척하기는. 쯧쯧. 왜 그렇게 심통이야? 어서 네 낭군님 옷 좀 지어라.”
“몰라요.”
손녀는 다시 가림막으로 들어가 버렸다.
“너 그러면 할머니가 속상해.”
할머니가 말했다.
“천 들고 일로 와.”
손녀가 뚱한 소리로 말했다.
할머니가 천을 청의동자에게 안기고 어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청의동자는 왠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가림막 안으로 들어갔다.
“벗어.”
“왜?”
“벗어야 치수를 잴 거 아냐.”
“내 치수 몰라?”
“세월이 얼마나 지났는데, 지금까지 그걸 기억해?”
“알았어. 아, 아파.”
“가만히 있어. 바늘로 찌르기 전에.”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꼬마들의 말에, 미르가 피식 웃었다.
할머니는 인자한 눈빛으로 미르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같이 한 지는 얼마나 되었나?”
“아, 저와의 인연이 아닙니다. 전 단지 대신해서 옷을 지어주러 왔을 뿐입니다.”
“그럼 저 아이의 인연은 어딜 가고?”
“잠시 곤경에 빠져서... 제가 곧 만나러 가려 합니다.”
할머니는 대충 상황을 이해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초면이지만, 내가 부탁 좀 해도 되겠나?”
미르는 그 부탁이 자신을 난처하게 할 것이라는 걸 직감했다.
##
“그럼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강이 미리내에게 고개를 숙였다.
“부단장님도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미리내가 고개를 숙였다.
주위에 있던 의원과 시종, 기루마을 촌장이 부단장 강에게 고개를 숙였다.
말에 올라타려던 강이 뭔가를 주저하더니, 다시 미리내의 앞으로 왔다.
“뭐 전할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그게 아니라... 외람된 말씀이지만, 제게 행운의 부적 좀 주실 수 있으십니까?”
“행운의 부적이요?”
“예. 몸에 지니셨던 거면 아무거나 상관없습니다.”
미리내는 잠시 망설였다. 강이 부단장이 자신을 흠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소였다면 매몰차게 거절했겠지만, 지금은 무사단의 활약이 절실히 필요한 때였다. 미리내는 갑자기 치마를 걷어 올렸다. 그녀의 하얀 맨다리가 드러났다.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속치마를 찢었다. 그리고 강의 팔목에 매어주었다.
“이거면 되겠습니까?”
강은 감격스러운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강은 기쁜 듯 환하게 웃으며 날쌔게 말에 올라탔다. 그리고 말의 앞다리를 들어 올리는 묘기를 부리더니, 힘차게 달려 나갔다. 미리내는 강이 참으로 단순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때, 시종이 다가왔다.
“아가씨, 굳이 그럴 필요가 있으셨습니까? 구설수라도 생기면 어쩌시려고요?”
“해치가를 위해서라면, 그깟 구설수가 문제겠느냐? 속곳이라도 벗어 달라면 벗어줄 판에.”
“네? 아니 그런 망측한 말씀을.”
“지금 뭐 하시는 것입니까?”
미리내는 슬며시 광에 다가가려 하는 기루마을 촌장을 불러 세웠다.
“아니, 그냥 어쩌고 있나 좀 살펴보려고... 근데, 지금까지 끼니도 못 먹고 심지어 물도 못 먹은 것 같은데 제가 물과 음식 좀 갖다 줄 깝쇼?”
“제가 알아서 합니다. 촌장님은 신경 끄세요.”
“아... 넵. 알겠습니다.”
촌장이 찝찝한 얼굴로 마루에 걸터앉았다. 시종이 다시 미리내에게 말했다.
“아까 광에서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왜?”
“아니 저 촌장 말입니다. 아가씨께서 광에 들어가 계실 동안, 계속 엿듣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지 말라고 뭐라 할까 하다가, 그래도 여기 마을 촌장이고, 게다가 지금 신세를 지고 있어서 그냥 못 본 척했는데, 아까는 실성한 사람처럼, 혼자서 자꾸 뭐라 중얼거리지, 뭡니까?”
“뭐라고?”
“그게 소리가 작아서 정확하진 않은데, 수첩 어쩌고 미래가 저쩌고 그랬습니다.”
순간, 미리내는 촌장을 쳐다보았다. 미리내와 시선이 마주친 촌장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시선을 피했다. 미리내의 표정이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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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와 청의동자가 옷 수선가게에서 나오자, 할머니와 손녀딸이 따라 나왔다.
청의동자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깊이 생각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미르는 할머니의 손녀를 쳐다보았다. 소녀가 아까부터 호기심 어린 얼굴로 미르를 응시하고 있었다. 청의동자는 그 모습이 몹시 불편해 보였다.
그때 땅이 울릴 정도의 진동이 느껴졌다.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강이 이끄는 무사단이었다.
강의 시선이 미르와 맞닿았다.
“조심해. 쓸데없이 나서지 말고. 알았어?”
미르가 소리쳤지만, 강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쳐다보지도 않고 내달렸다.
무사단이 일으킨 먼지가 가라앉자, 미르와 청의동자는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발길을 옮겼다.
“자, 이제 가봐야지?”
“누나가 부를 때까지는 오지 말라고 그랬는데요.”
“언제? 왜?”
이 형아는 왜 누나 이야기만 나오면 저리 호들갑이지라고 청의동자는 생각했다.
“원래 그랬어요. 항상.”
“지금 네 누나가 어떤 상황인지 알아? 붙잡혔다고. 내 동생한테. 그 애가 어떤 애인 줄 알아? 알아야겠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아이란 말이야. 자칫하다간 네 누나의 비밀이 다 까발려질지도 모른다고.”
“비밀? 누난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냥요. 제가 물어볼 때도, 바로 다 말해주던데요.”
“그거야 네가 사람이 아니... 아니다. 됐다.”
“치이. 원래 물어보면 그냥 말해 준다니까요, 몰라서 못 물어보지.”
“그래?”
미르는 통나무집에서 직접 물어보지 않았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럼, 누나한테 안 가는 거예요?”
“아니. 가야지.”
“왜요?”
“보고 싶으니까.”
미르의 눈빛을 보자, 이건 뭐지라는 표정을 지었다.
##
해가 기울어진 깊은 산속, 작은 움막.
꼬마 도깨비 미안이 두리번거리며 집안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짜증 난 미안이 움막집 문을 발로 뻥 차자, 갑자기 뒤로 튕겨 나갔다. 집주인 허락 없이는 집에 접근할 수 없는 도깨비의 저주였다.
“으, 대체 누구기에 이렇게 꽁꽁 숨겨 놔? 두고 봐. 내가 꼭 보고야 만다, 씨이.”
그때, 나무들이 쿵쿵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냥을 마친 집주인 아야가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휙~
파란 도깨비불로 변한 미안이 소리가 나는 숲속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그때, 거구의 아야가 숲속에서 튀어나왔다.
그이 어깨엔 거대한 멧돼지 한 마리가 매어져 있었다.
마당 한복판에 멧돼지를 떨어뜨리고는 조용히 냄새를 맡더니, 인상을 썼다.
“으, 미안이 녀석. 진짜 결계를 확 쳐버려?”
멧돼지의 가죽을 벗기기 위하여, 옆에 찬 커다란 칼을 꺼냈다. 그 칼은 뭉툭하고 면이 넓었다. 그것으로 나무를 베고 사냥을 해서 그런지, 칼날은 무디었다.
가죽이 잘 안 벗겨지자, 열을 받았는지 그냥 손으로 뜯어내었다. 무서운 괴력이었다.
도살자, 바로 그 모습이었다.
“읍~ 읍~”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아야는 멧돼지를 팽개치고 급히 달려갔다.
드넓은 움막집 안에는 소녀가 능지처참당하는 것처럼 사지가 옴짝달싹 못 하게 침대 모서리에 묶여있었다. 입에도 재갈이 물려있었다.
“왜? 어디가 불편해?”
아야가 걱정되는 얼굴로 물었다.
소녀는 잔뜩 찡그린 얼굴로 고개를 좌우로 마구 흔들었다.
아야가 재갈을 풀어주자, 소녀가 외쳤다.
“나 급해!”
“급해? 뭐가?”
“뭐긴 뭐야? 이 멍청이야.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다고! 어서 풀어줘. 어서!”
소녀가 다급히 외쳤지만, 아야는 느긋한 얼굴이었다.
“그냥 싸.”
“뭐어?”
“내가 나중에 빨면 되니까. 그냥 싸라고.”
“너 진짜 죽여 버린다.”
소녀는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온몸을 비틀었지만, 손발에 묶여있던 탓에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안 돼. 안 돼. 아... 제발. 이거 좀 풀어달라고. 윽~”
푸드득~
고약한 냄새가 실내를 가득 채웠다. 아야는 코를 급히 막았다.
“으... 큰 거였어? 진작 말하지.”
“너 새끼. 내가 진짜 갈기갈기 찢어서 매일매일 씹어준다. 반드시.”
소녀는 이를 갈며 아야를 노려보았다.
아야는 태연히 걸레를 들고 왔다. 뒤처리하려는 듯 소녀에게 다가갔다.
“야! 너 뭐야? 뭐 하려는 거야~”
“뭐하긴. 그럼, 이대로 그냥 있을 거야? 똥독 올라.”
“꺄악~~~~~~~~~”
소녀의 처절한 비명이 숲속에 울려 퍼졌다.
##
마마산 정상에도 저녁이 찾아오고 있었다.
새 떼 한 무리가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그것을 본 늙은 제사가 급히 제단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잠시 후, 고드라마는 제사들과 함께 다시 밖으로 나왔다.
새 떼는 제단 위를 한차례 빙글빙글 돈 후, 갑자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때 무언가가 땅으로 떨어졌다.
쿵~
그것은 배가 갈라져 푸른 피를 흘리고 있는 묘두사였다.
고드라마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이런... 아스리님에게 당한 것입니까?”
묘두사는 힘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입 밖으로 뭔가를 토해냈다.
웬 봇짐이었다.
고드라마가 고갯짓을 하자, 한 제사가 재빨리 봇짐을 주워 고드라마에게 바쳤다.
고드라마는 찝찝한 표정으로 묘두사의 타액이 묻은 봇짐을 열었다.
어디서 본 듯한 여인의 조각상과 옷가지와 여인의 속곳. 그리고 조그만 가죽 수첩.
“뭐야, 이건?”
고드라마는 비릿한 눈으로 속곳을 꺼내어 냄새를 킁킁 맡았다.
그것은 잃어버린 미르의 봇짐이었고, 아미의 속곳이었다.
##
아미의 몸이 움찔거렸다. 아랫도리에서 느껴지는 야릇한 불쾌감 때문에 아미는 당황스러워 헛기침했다.
“흡, 왜 이러지?”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났다. 저녁 시간인 것 같았다.
기루마을엔 식사 준비를 하는지, 집집마다 아궁이의 연기가 오르고 있었다.
기루마을 촌장 집에서도 저녁 준비에 다들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어디선가 송편 냄새가 흘러왔다.
어젯밤 미르를 간호하느라 저녁도 못 먹고, 아침부터 황금돼지를 처리하려고 바삐 움직이느라 지금까지 한 끼도 못 먹어서 그런지 피곤과 함께, 강한 허기를 느꼈다.
이럴 땐 자는 게 최고인데, 그녀에겐 잠을 잔다는 것은 스스로 지옥 불에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눈을 감으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
어딘가 귀에 익은 목소리.
“아~ 하라고.”
목소리가 환청이 아님을 느낀 아미가 눈을 떴다.
미르였다. 그가 빙그레 웃는 얼굴로, 송편을 아미의 입 가까이 들고 있었다. 그 옆에는 청의동자가 울상으로 서 있었다. 아미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배고프지? 어서 먹어.”
아미는 입을 벌려 송편을 받아먹었다.
“누나, 왜 이렇게 하고 있어? 누구야? 내가 혼내줄게.”
아미는 송편을 오물거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됐어. 몸은 괜찮아? 걱정했는데, 다행히 새 옷을 구했구나.”
“응. 형아가 새로 사줬어.”
“고맙습니다. 근데, 여긴 뭐 하러 오셨어요?”
“뭐 하러?”
그녀의 한마디는 그에게 비수 같았다. 실실거리던 그의 얼굴이 일순간 굳어졌다.
아미는 그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왜요? 제가 뭐 잘 못했어요?”
“야, 꼬마. 넌 좀 나가 있어봐. 내가 네 누나랑 좀 얘기할 게 있어서 그래.”
“그냥 여기 있으면 안 돼요. 못 듣는 척할게요.”
“새 옷까지 지어줬는데, 말 좀 듣지?”
청의동자가 아미의 눈치를 살피자, 아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에게 뭐라 하지 마요!”
청의동자는 미르에게 눈을 흘기고는 휙 하고 사라졌다.
“대체 어쩔 셈으로 여기에 잡혀 온 거야?”
“그럼 어찌합니까? 잡아가겠다는데.”
“아까 내가 말했잖아. 원하는 대로 해준다고. 못 들었어?”
“왜요? 같이 도망이라도 가시게요?”
“도망? 허. 내가 도망을? 아까 못 봤어? 내가 도망을 왜 가? 도망을 가면 자기들이 가야지. 자, 아, 해.”
미르는 화를 내는 듯하면서도, 아미를 또 챙겼다.
아미의 입속으로 또 하나의 송편이 들어갔다. 아미가 오물오물하자, 미르는 그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제 어쩔 생각이야?”
“제 의지는 아니지만, 전 본가로 압송될 거예요.”
미르의 눈이 커졌다.
“걱정하지 마. 내가 그렇게 못 하게 막을 거니까.”
“그러지 마세요.”
“아, 진짜 왜 그래? 본가에 압송되면 어떻게 될지 알아? 미리내도 미리내지만, 백산 스승은 더 한 사람이라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별일 없을 거예요.”
너무도 태연한 아미를 보며, 미르는 청의동자가 한 말을 떠올렸다.
‘치이. 원래 물어보면 그냥 말해 준다니까요, 몰라서 못 물어보지.’
“진짜, 앞날을 내다보는 거야?”
미르가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아미가 피식 웃었다.
“뭐에요? 아직 모르고 계셨던 거예요? 그날은 그렇게 자신하시더니? 아.”
이번엔 아미가 스스로 입을 벌렸다. 미르는 다시 송편을 그녀의 입안에 넣어주었다.
“진짜구나.”
“저도 궁금한 게 있어요. 저는 왜 따라오신 거예요? 앙갚음은 아닌 것 같아서.”
“확인해 보고 싶어서.”
“이번엔 또 뭘 확인하시려고요?”
“날 독살하려 했던 여인을 다시 보면, 그때도 운명이니 뭐니 떠들어댈 수 있을까 하고.”
미르가 갑자기 훅 들어왔다. 아미가 정색하며 물었다.
“어떤 데요?”
“그 물음에 답하기 전에 먼저 알아야겠어. 왜 날 죽이려고 한 거야?”
그의 말에, 아미는 얼굴이 어두워졌다.
##
마마산 제단안.
원탁 위에서 고드라마가 키득거리며 뭔가를 보고 있었다.
크리스탈 수정구, 그 안에 아미와 미르의 모습이 보였다. 고드라마의 손엔 아미의 속곳이 들려져 있었다.
“이게 뭔 조화일까? 해치가의 망니니와 정체불명의 여인이라... 앞날을 내다봐? 크크크. 이거 정말 환장하겠군. 대체 일이 어떻게 되는 거야? 돌아가시겠다. 정말. 크크크.”
손에 들고 있던 아미의 속곳을 보며 그는 미친 사람처럼 계속 키득거렸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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