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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모든 게 너무 지쳐서 내려놓으려고 했는데
왜 나는 나아지지가 않는 걸까
오늘도 혼자 우울해하고 있는 나인데
왜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가
나아지지 않는 날 데리고 산다는 건
아파하는 나를 또 달래줘야 하는 것도
나아지지 않는 날 데리고 산다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인 것 같아
너무나 외로운 삶인 것 같아
너무 난 외로운 사람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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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리의 에어팟에서 우울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휴대폰 속 화면에는 카카오톡 안 읽은 메시지 65개 알림이 뜬다.
규리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정신없이 병준이에게 와있는 밀린 연락들을 확인한다.
병준이는 규리의 유일한 11년 지기 친구이다.
카톡 대화
-2023년 10월 02일-
(구병준): 야 너 도대체 무슨 일이야?
(구병준): 걱정되게 연락이 왜 없어???
(구병준): 너 설마 또 자살시도하는 거 아니지? 제발...
(구병준): 전화 좀 받아라 좀!!!!!!
(구병준): 연락 안 돼서 신고했어 너네 집 쪽으로 갈게.
카톡 대화
-2023년 10월 03일-
(구병준):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힘들었구나.. 가족한테 내가 연락드렸어.
(구병준): 중환자실은 가족 한 명 밖에 못 들어간다고 해서 나중에 너 깨어나면 병문안 갈게 그때 보자.
(구병준): 늦었지만 어제 너의 25번째 생일 축하한다.
규리는 병준이와의 채팅방에 들어가 밀린 카톡들을 읽고 답장을 적는다.
(한규리):정신이 없어서 지금 연락하네.. 미안하고 고마워.. 아.. 나 생일이었지... 고맙다.. 역시 너밖에 없네..
(구병준):어 깨어났나 보네.. 몸은 좀 어때? 괜찮아? 걱정했잖아ㅜㅜ
(한규리):좀 많이 나아졌어.. 정신과 선생님이랑 상담도 하고 치료받아야 퇴원 가능하다고 하시더라.
(구병준):너 상담받는 거 죽어도 싫어하잖아...
(한규리):뭐 어쩌겠어.. 다 내 탓이지.. 나중에 연락할게.
(구병준):그래그래. 병문안 가능할 때 연락 줘! 꼭 갈게!!
(한규리):그래 고맙다. 나중에 보자.
잠시 후 지잉 소리와 함께 중환자실 자동문이 열리고 정신과 선생님이 들어오신다.
(정신과 선생님)"안녕하세요 환자분, 정신과 담당 의사입니다."
규리는 에어팟을 빼고 침대에서 힘들게 몸을 일으킨다.
(규리):"안녕하세요. 한규리입니다."
(정신과 선생님):"네 안녕하세요. 환자분이 처음에 상담을 원치 않는다고 하셨더군요.. 무슨 심정인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저희 앞으로 열심히 상담하고 치료받아봅시다!(웃음)
(규리):"과연 제가 달라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잘 부탁드립니다."
(정신과 선생님):"네.. 그럼 처음부터 시작해 볼까요 우리? 최근에 행복하게 웃어본 기억이 언제세요? 자세하게 말고 기억나시는 대로 편하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규리):"글쎄요... 언제인지 기억도 잘 안 나는데요..."
(정신과 선생님):"천천히 생각하셔도 됩니다. 생각 나시면 그때 얘기해 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한참을 지났나.. 드디어 규리가 입을 열었다.
(규리):"아.. 생각났어요..!최근에 20년 넘게 아주 사랑하고 아끼고 친해지고 싶었던 사람이랑 드디어 친해져서 같이 인생 네 컷을 찍었는데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같이 하염없이 웃다가 눈물도 같이 흘렸던 기억이 나네요..."
(정신과 선생님):"오.. 좋은 추억이 생기셨군요.. 혹시 누군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규리):".. 규인이요.. 아.. 제 여동생 이름이에요!"
(정신과 선생님):"상상이외의 인물이었군요 하하. 여동생은 몇 살인가요?"
(규리):"음.. 네 살 차이니까.. 21살이네요.. ᄒᄒ 아기였는데 벌써 성인이 되었더라고요 ᄒᄒ"
규리는 항상 우울했던 모습과 달리 동생 이야기를 하면서 감출 수 없는 미소가 입가에 번졌습니다.
(정신과 선생님):"웃으시는 모습 보니 참 이쁘네요. 동생이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인가 보군요? 보기 좋네요ㅎㅎ..근데 왜 20년이나 걸렸나요...?
규리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잠깐 고민하다 힘들게 입을 열었다.
(규리):"저는 두 살 위 오빠도 있어요. 어릴 적부터 저희는 아주 많이 맞고 자랐어요. 셋 다 가릴 것 없이요. 이유가 뭐였을까 아직도 불명확해요. 아무래도 부모님의 훈육방식이 틀렸겠죠.. 정신적으로 문제도 있었을 거고.. 제가 자존감도 낮고 사랑을 못 받고 자랐다는 생각은 성장 배경에서 겪은 일들로부터 지금까지 깊은 상처들로 남았던 충분한 이유가 되겠죠.."
(규리):"어린 동생은 그 과정 속에 점점 사람을 무서워하고 사람을 피하기 시작하고 모든 사람들과 벽을 치고 살았던 거 같아요.. 동생은 어떤 상처가 있었는지 사실 잘 모르겠는데 어느 순간부터 저희 가족을 모두 사람 취급을 안 하더라고요. 학교도 고등학교 때 적응 못하고 자퇴했어요. 그래도 저는 동생을 아주 좋아했어요 귀엽고 사랑스럽고 왠지 모를 아픈 나의 손가락 같은 느낌이랄까.. 뭐 그런 느낌도 있었죠."
(정신과 선생님):"그렇군요. 동생은 요즘 뭐 하고 지내요? 연락 자주 하시나요?"
(규리):"네 제가 친구가 많이 없어서 그래도 제일 아끼고 의지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에요. 규인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명확하게 알고 아주 현명하고 똑똑한 친구예요. 지금도 사진을 찍는 포토그래퍼가 되었어요. 아주 대견스럽죠? 하하 하하"
(정신과 선생님):"오 아주 대견하겠어요. 동생은 언니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혹시?"
(규리):"네.. 제가 힘들 때 티를 많이 내서 잘 알고 있을 거예요.. 가끔 위로가 되어주고 짜증도 많이 내긴 하죠ㅋㅋㅋ."
(정신과 선생님):"동생의 반응은 어떠던가요?"
(규리):"생각보다 담담했어요. 아마 어렸을 때부터 충분히 예상했겠죠. 그래도 공감되지 않지만 잘해주려 애써 위로해 주는 척, 공감해 주는 척하는 사람들 보다 훨씬 좋아요. 의지도 많이 되고.. 나의 우울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처음에 다들 공감하는 척 위로해 주고 걱정해 주고 정말 나를 위해주는 사람이 있구나 하고 착각하게 만들고 다들 지쳐서 못 버티고 떠나잖아요..그걸 몇 번 겪고 나니까 누군가에게 제 얘기를 하는 게 겁나고 싫고 꺼려지더라고요.. 정신과를 오래 다녔지만 항상 상담은 거부하고 약만 타왔어요. 수면제가 없으면 하루도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고 돌아버릴 거 같아요.."
주저리주저리 한참 얘기를 털어놓는 규리의 모습을 보고 정신과 선생님은 천천히 기다려 주신다.
(정신과 선생님):"네.. 처음보다 많이 나아진 거 같아요.. 힘들었던 얘기도 먼저 꺼내시고 좋은 자세입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면... 그럼 가족 중에 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여동생뿐인 건가요?"
(규리):"아니요. 사실 저는 엄마한테 많이 맞고 상처도 많이 받고 편애도 받고 어쩌면 저한테 상처를 제일 많이 주었던 사람인데 엄마를 미워하지 못하겠어요.
엄마를 아직도 제일 사랑해요. 이유를 설명하라고 하면 못하겠지만.. 암튼 그래요. 그래서 제 스스로도 유기견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아무리 주인이 괴롭히고 미워해도 다시 주인한테 꼬리 흔들면서 좋아하면서 다시 돌아가잖아요. 그게 저인가 봐요.."(애써 웃는다)
(정신과 선생님):"그렇게 생각하지 말기로 약속해요 저희. 규리 님은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고 사랑받아도 마땅해요."
(규리):"글쎄요 그런 말을 가끔 들었는데 그럴 때마다 별로 위로는 안되더라고요.. 제 자신이 더 초라해지고 작아지는 기분만 들어요.. 지금도 그렇지 않다고는 말 못 하겠네요.."
(정신과 선생님):"그럼 어렵겠지만... 음.. 자신을 사랑해 보는 걸 노력을 해보면 어떨까요?"
(정신과 선생님):"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지금 환자분 상태에서는 그게 제일 어려울 거예요. 그만큼 중요하기도 하고요."
(규리):"맞아요. 그게 제일 어려운 거 같아요. 예전에는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요즘은 제 마음속엔 이제 제가 없어진 거 같아요. 그래서 사랑해 볼 조차 시도도 못하죠."
(규리):"예전에는 세상이 나를 버린 거 같고 배신한 거 같고 억울하고 분하기도 했는데 이젠 모든 게 버거워요. 세상이 너무 버거워서 그냥 죽고 싶은 생각 밖에 안 나는데 이젠 어쩌죠... 선생님?"
규리는 얘기가 끝나자마자 한없이 소리 내며 엉엉 울었다.
정신과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규리를 꼬옥 안아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