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비하게 쏟아지는 빗줄기 속 나는 서있다.
몇시간 전까지만 해도 내리쬐는 햇빛 아래 나는 웃고 있었다.
내가 웃을수록 내리쬐던 햇빛은 저물어 갔고, 걸을 수록 먹구름이 햇빛을 집어삼켰다.
얼마 안 가 몰려온 먹구름으로 인해 주변이 어두워졌다.
그건 아마 나의 옆에서 나와 함께 희노애락을 함께 했던 그 사람의 그때의 감정과 닮았던
것 같다.
마침내 먹구름이 햇빛을 모두 집어삼키고, 삼켜진 햇빛의 눈에 눈물이 고였을 때
너가 나에게 말한다. 그 말은 아까의 내가 짓던 표정과 확실하게 상반되는 표정을,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더 상기된 얼굴로 변하게 할 수 있는 말이였다.
“툭.” 그 순간 고여있던 햇빛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얼마 안 가 두 방울이
떨어졌다.
그것은 지금 너의 앞에 서있는 나의 감정과 닮았다. 절망적이게도 지금의 너의 감정과는
닮아있는 것 같지 않았다.
너는 몇분 전 너가 자리를 비웠을 때 기뻐할 너의 모습을 상상하며 급히 주변에 있던
꽃집에서 붉은 장미꽃 세송이를 사고 너를 놀래켜줄 생각에 머리 위에 있는 햇빛보다 더
밝은 웃음을 지었던 나를 알지 못하겠지.
장미꽃을 너와 함께 골랐다면 달라졌을까. 왜 하필 너는 장미꽃을 받기 직전에 나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너가 뱉은 그 말과 어느새 꽤 많이 오고 있는 빗방울들로 인하여 그
붉고 아름다웠던 장미꽃이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시들어 가고 있는 장미꽃을 발견하고 장미꽃을 보기 위해 고개를 떨구었다. 너가
가기 전까지 떨구었던 고개를 들을 순 없었다.
비참하게도 너는 아무렇지 않게 그 말을 뱉고선 조금의 미련도 남아있지 않은 듯한
모습을 하면서 뒤를 돌았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너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날
잡았던 손과 날 담았던 눈이 잡을 수 없을 만큼 멀어졌다.
그 순간 세상이 나를 속이기라도 하듯, 적지 않게 떨어지던 빗방울이 곧 나를 삼킬 수
있을 정도로 무자비하게 쏟아졌다. 오른손에 꼭 쥐고 있었던 장미꽃은 무자비하게
쏟아지던 빗줄기에 제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끝끝내 완전히 시들어버렸다.
빗줄기는 얼굴에도 흘렀다. 이렇게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을 만큼의 마음이였다면, 왜
오늘 나를 만나줬을까, 왜 나에게 햇살 같이 웃어주었을까, 왜 그로 인해 내가 너를 더
사랑하게 만들었을까. 나는 바보같이 너가 다시 돌아와 나를 안아주길 간절히 바랐다.
심하게 시들어 고개가 땅으로 떨어진 장미꽃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나는, 딱히 너를 원망하지 않는다.
원망하기엔 이미 내가 너를 너무 많이 사랑했다.
내가 눈이 부시도록 너를 환히 비출 때, 나를 보며 웃어줬던 너의 미소를 깊이 기억했다.
나는 너를 원망할 수 없었다.
어쩌면 너가 나에게 그만큼 웃어주기엔 내가 이미 시들었었나보다.
시들어버린 장미꽃을 마침내 손에서 떨구었다.
나는 빗줄기에 축축해진 아스팔트에 떨궈진 장미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밟았다.
장미꽃은 나를 정말 닮았다.
제목 : 시든 꽃
I.M - 시든 꽃(flower-ed)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