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놀란 얼굴로 앉아서 막 들어온 아줌마인지 아가씨인지 헷갈리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어머. 수한아..."
여자는 소파에 앉아서 멍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를 보고는 살며시 눈 웃음을 치며 다가갔다.
"왜 그래. 누나?"
난 정색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섰다.
"야! 누나 보고 인사도 안 하네? 이게.. 혼날래"
살며시 왼손 주먹을 쥐고 얼굴 위로 올려 든다.
"아니. 언제는 나랑 동갑이라며? 왜? 왜 그러는 데? "
누나가 수한이를 쫓아간다. 한동안 둘은 숨바꼭질 놀이를 한다.
"(살다가)-sg워너비. 좀 불러 봐."
"싫어. 힘들어." 수한이는 고개를 젖는다. 괜히 과자를 집어 입에 넣는다. 일부러 소리 내어 씹는다. 그녀의 애처로운 눈빛을 바라보지 않는다. 묵묵히 맞은 편에 벽을 응시한다.
"좀 불러줘. 듣고 싶다. 누나가. 응?" 음료수를 마시며 그의 눈을 보며 말해 본다. 그녀의 입술이 떨려온다. 손도 다리도 떨린다. 갑자기 겨울을 맞은 사시나무처럼 ....
"싫은 데?" 차갑게 답하는 수한의 눈가가 촉촉하다.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어 보인다. 그의 입술이 가지런히 벌어지며 말한다.
"내가 그 노래를 왜 해야 하는데?" 이제 분위기가 차가워졌다. 누나는 화가 난다.
"그래. 하지마. 내가 할께." 갑자기 그가 리모컨을 낚아챈다.
"알았어. 그렇게 듣고 싶다면.... 귀 막어.. 누나."
노래가 시작된다. 수한이가 반주를 들으며 분위기를 잡는다. 그의 얼굴은 우수에 가득 젖어 비가 내리는 듯 하고 그 몸짓은 작은 새와 같이 날아오른다.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배를 손으로 누르며 가성을 끌어올린다. 노래의 하이라이트가 되어 그의 몸이 위아래로 흔들린다. 노래 소리에 그녀가 잠깐 정신을 놓는다.
'그래. 넌 나의 사랑... 그이와 너무 닮았어. 그 감성... 노래들.. 그리고 말투까지....'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는 뜨거운 아스팔트에 누운 고양이처럼 그녀는 긴장이 풀린다. 그리고 그의 노래가 그녀를 감싸 안고 있음을 느끼며 그 짧은 순간에 울컥하고 슬픔이 올라온다. 끝없이 뜨거운 그것이 볼 위로 흘러내렸다.
"누나?"
수한이 누나를 부른다. 그의 눈이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촉촉히 젖어있다.
누나는 도망가듯이 방을 나가서 화장실로 달려나갔다. 사장누나가 다급히 소리지르며 쫓아간다. "야. 왜 그랭?"
얼마 후에 다시 방에 들어 온 누나가 수한의 옆에 앉으면서 나직한 목소리로 물어본다.
"수한아. 누나 못 생겼어?"
그녀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이미 몸이 반 쯤 그에게 기울어져 있다. 그러나 그는 전혀 반응이 없다. 여전히 그의 태도는 차갑다. 마치 남극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누난.. 음.. 아주 예뻐!" 그녀가 웃었다. 잠깐 그녀의 뇌리에 희망이 생겼다. 이내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본다.
"너.. 나랑 만나 볼래?"
그 말을 듣자 마자. 수한이 일어선다. 차가운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 본다. 누나가 놀란 눈으로 그를 본다.
"미쳤어? 나 미친 놈이야. 내 별명이 뭔지 알아? 노래하는 술꾼이라고.. 이 동네에서 나 모르는 경찰이 없는데.."
가시 돋힌 그의 말에 그녀가 흠칫 놀란다. 그녀가 이렇게 말했을 때 아무도 '노' 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최근 몇 년동안 수많은 남자들에게 대시 만을 받아왔지. 그 어떤 남자에게도 자신과 만나자고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상사병이 걸린 놈들이 떼로 덤벼들어서 피곤한 상황이었다. 도대체 얘는 왜 그럴까? 어떤 사연이 있을 까? 얼마나 슬펐길래 이렇게.. 이렇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수한이가 이 동네에서 수 년 동안 찾아 헤맨 한 사람이 있음을 소문으로 들었었다.
처음에 친하지도 않은 동생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녀가 웃으며 이렇게 말을 했었다.
"야! 죽을래? 어디서 소설쓰냐? 내 50평생에 그럼 남자 없었거든... 내 전 남편 빼고..."
그러자 그 동생은 깜짝 놀라며 그런 남자가 또 있었냐며 물어봤었다.
"난 차가워. 그러니까 정주지마."
광역시에서 아니 서울에서도 몇 안되는 1프로에 속하는 나에게 그런 말을 한 남자는 아무도 없었다. 하물며 첫 사랑이었던 전 남편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 남편은 자신과 결혼을 할 수 없다면 극단적 선택을 하겠다고 난리를 쳐서 마지못해 결혼을 승낙한 경험이 있던 여자는 너무 나도 황당해서 말문이 막혀버렸다.
"너... 도대체 누구야?"
그녀는 너무 나도 궁금했다. 어우동 과 같은 클래스 인 나와 같은 여자조차도 탐하지 않게 하는 그 여자가 너무 나도 샘이 났다. 정말 정말 꼭 한 번이라도 어떤 모습 인지를 보고 싶었다.
"뭐가?" 수한이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누구냐고? 널 그렇게 만든 사람?" 누나는 심각했다.진심이었다.
수한이는 음료수를 마시며 가글을 했다.
"왜 궁금해?"
자꾸만 채근 하는 누나를 향해 수한이의 입이 조금씩 열려갔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그녀의 가슴에 비수가 꽂혀 왔다.
그의 이야기는 이 세상의 사람 이야기가 아니었다.
조선 시대에 풍랑 시인 김삿갓 과 같은 사람이 시를 쓰는 것과 같았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시어였으며 아름다웠다.
심지어 어느 대목에서는 폭풍 같은 사랑의 감정과 슬픔이 묻어 났다.
한참을 떠들던 수한이가 마이크를 들었다.
"에잇. 오늘은 효신이닷."
그가 박효신의 '바보'를 선곡했다.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누나의 얼굴이 떨구어졌다.
그 엄청난 감정에 눈물이 멈출 수 없었다.
그녀는 그 망할 여자에게 찾아가 따지고 싶었다.
만약 지금. 자신의 앞에 있다면 귀싸대기를 아주 신나게 날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