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았을 때. 그 사람의 얼굴에서 빛이 났어."
입이 마른 듯 침을 삼키며 음료수를 들어 목에 들어 부었다. 그의 눈은 먼 허공을 응시하듯 하고 마치 다른 차원에서 온 시간여행자와 같았다.
그녀는 그와 같이 있으나 그와 멀리 있는 것 같았다.
조용히 그녀는 경청했다.
"근데... 너무 귀여운 거야. (수한은 고개를 떨구며 잠깐 어깨를 떨며 흐느꼈다.) 그래서 내가.... 만나자고 했어... (수한은 다시 먼 하늘 위에 구름을 응시하듯 시선을 옮겼다. 그는 그 시간 속에... 첫 만남에 그 여자에게 반했던 이야기 속의 그 시공간 속으로 들어가 있는 듯 했다.)
딱 세 번 만... 아주 애절하게... (수한의 두 눈이 젖어온다. 그는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부탁했었어."
누나가 가늘게 떠는 수한의 몸을 살포시 안아준다. 나지막히 그를 위로해준다.
"그래. 그랬구나.... 난 몰랐어. 너가 그렇게 힘들어 하는 지.... 근데 누구야?그 사람이? 이 동네 살아?"
수한이 고개를 젓는다. 촉촉하게 젖은 그의 눈가에는 어느 새 작은 물방울들이 흘러내리고 있다.
"누난 몰라도 돼" 그가 애써 자신의 슬픔을 보듬고 감추려고 한다.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바보야. 나도 다 알아. 사람은 누구나 그런 거야. 난 네가 우리 같은 여자를 그렇게 봐준다는 게 너무 고마워."
누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한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 우리 같은 여자? 누나가 뭐가 어때서? 우리 같은 여자가 도대체 뭔데? 왜..... 왜 그렇게 자신을 비하해! 인간은 누구나 평등해. 알아? 무슨 일을 하든 지 누구나 같은 사람이라구!
누난 그걸 몰라?"
"야... 너 취했어. 술을 도대체 얼마나 먹은 거야.. 오늘은 이만 집에 가서 자. 다음에 이야기 하자."
"아니, 난 안 취했어."
수한이 갑자기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깊게 들이마시는 그의 호흡에서 그 동안의 고단함이 느껴지는 듯 했다.
"나 장실 좀."
누나가 방을 나가 카운터로 향했다. 사장이 누나를 불렀다.
"무슨 일 있어?"
사장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누나를 불러본다.
"아니.. 그게.."
누나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제가 착한 앤데... 방에서 뭔 일 있었냐?"
사장의 채근에 누나가 마지못해 말문을 연다.
"누구야?"
"응?"
사장이 의아한 눈으로 누나를 바라본다.
"누구냐구. 언니. 쟤가 사랑하는 사람."
그제서야 사장이 의문이 풀린 듯 한숨을 쉬며 고쳐 앉는다.
"넌 몰라도 돼. 신경쓰지 말고 그냥 시간이나 떼우다가 가라."
"나 알고 싶어. 어떤 사람인지.."
"몰라도 된다고 했지! 너 여기서 일하기 싫은 거야?"
사장의 불호령에 말없이 방으로 다시 들어 간다. 어느 새 수한이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민경훈씨의 "아프니까 사랑이죠." 라는 곡이었다.
'첨 들어보는데... 엄청나게 슬프다.'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이 가슴이 시릴 정도로 아파왔다. 그 한 마디 한 마디의 박자와 음정에 그의 사랑이 느껴졌다. 너무나 슬픈 그 가사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고 그녀의 마음을 얻겠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노래가 끝나고 누나가 그에게 물었다.
"이거 너의 이야기야?"
수한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누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맞아. 난 그 여자를 처음 보았을 때 이런 감정을 느꼈어. 그리고 그녀에게 말했지. '내가 정말로 잘 할테니 딱 3번만 기회를 달라고 말야.' 하하하. 웃기지 않아?"
"그랬더니. 뭐라고 그랬어?"
"자기는 남편이 있대..... 그리고 빚도 있다고 했어. 옷가게를 하다가 망해서 그렇다고.... 그래서 그냥 깊은 관계는 싫대. 나한테 그랬어. 자기는 그런 사람이 못 된다고 하면서...."
순간 수한이 흐느꼈다. 그의 울음소리에 놀란 누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서 머뭇거리다가 근처에 있는 티슈를 집어 그에게 쥐어주었다.
"그런데 난... 그 여자가 무슨 일을 하든지. 어디서 누구랑 뭘 하든지.. 그런 거..... 다 상관없어.... 난 그냥 너무 좋아하는 데... 난 그냥 첫 눈에 반해서 사랑에 빠진 건데....
내가... 내가 잘 못한 거야? 누나? 응? 그런 거야? 이런 일? 그게 뭔 상관인데.. 그게 뭐 어쩄는데... 한 번만.... 단 한 번만..."
그는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햇다. 그는 무한의 심연에 있는 바다 속에 빠진 것처럼 굳어진 표정으로 방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염 없이 떨어지는 그의 눈물과 슬픔에 잠긴 시인의 얼굴을 들여다 보며 누나는 생각했다.
'아... 아직도 이런 사랑이 있구나. 너무나 아름답다.. 하지만 참으로 슬프구나... 수한아... 넌 너무 순수하구나..... 너의 때묻지 않은 마음을 그 누가 더럽힐 수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