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 영웅
조회 : 10 추천 : 1 글자수 : 1.0만 자 2026-10-12
"응? 박혈용은 그 후로 어떻게 됐냐고?"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오자 가장 궁금했던 박혈용에 대해 전유화에게 물었다.
솔직히 살인 미수 죄가 아닐까?
사람의 목을 부러트리고도 무사할 수 있을까.
"뭐.. 걔는 뒤 안 돌아 보고 가더라고."
"네..?"
믿기지 않았다.
왜? 도대체 왜?
전유화는 그렇다 쳐도, 아무도 그 상황을 보고도 신고를 안 했다는 말인가?
"6강회.. 알지? 그 사람들은 무슨 잘못을 하든 지구의 기둥 같은 존재라 대 학살 정도를 일으키지 않으면 어느 정도는 그냥 넘기고 있어.."
6강회가 뭐길래.. 사람을 죽여도 아무런 형벌도 없단 말인가?
끓어오르는 화에 입술을 깨물었더니 약간 짭짤하고 비린 맛이 나는 피가 내 혀를 타고 목구멍 안으로 들어왔다.
피를 삼킬 때마다 목이 아파왔지만 그건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리고 말 안 한 게 있는데.."
전유화는 머리를 긁적였다.
"나도 6강회 거든.."
그 말을 듣자마자 목 안으로 들어갔던 피가 전부 역류하는 느낌이 들었다.
"콜록! 콜록..!"
덕분에 기침까지 덤으로 났다.
"괜찮아..?"
목이 부러지기 직전부터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설마 이 정도로 일 줄은 몰랐다.
사람을 함부로 다뤄도, 무슨 짓으로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니,
그것도 단 6명의 사람들만.
그렇다면 전유화도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아닌가.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계속 믿어야 되는 건지, 진실을 안 이상 믿지 말아야 하는지.
고마운 마음은 있지만, 또 뭔가를 잃어야 하는지.
6강회, 그 한 단어 때문에 내 생각들이 하나 하나의 실처럼 엮이고 꼬이기 시작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잠깐.. 혼자 있게 해주세요.."
자리를 지켜준 전유화에게는 고마웠지만, 지금은 혼자 시간을 가질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유화는 아무 말 없이 병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고 몇 초가 지난 후에야 긴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리고 곧 과거, 부모님의 말이 떠올랐다.
왜 떠오른 건지는 모르겠지만.
...
"지현아,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단다."
"뭔데요?"
어릴 적, 총알 없는 총을 가지고 놀던 나이에,
문득 아버지가 내게 이 말을 하셨다.
"사람들을 위해 싸우고, 배려하는 사람들과, 자기 욕심에 먹혀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들로 나뉜 단다."
"음.. 너무 어려워요.."
그 나이 때는 이익이 뭔지, 추구가 뭔지도 몰라서, 아버지의 말을 이해할 수도 대답도 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어려운 말을 하면 어떻게 알아 들어요. 좀 쉽게 설명해 줘야지."
"하하, 그런가? 하긴, 아직 6살 밖에 안 됐으니."
그때는 분명 화목한 가족 이었다.
웃을 수 있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화목한 가정.
하지만 그것도 한 순간이었다.
털썩.
고작 내가 8살 이었을 때 부모님의 피를 보았다.
넘어지시거나, 어디에 베여 나온 그런 작은 피 말고.
나를 완전히 덮어버릴 피를 말이다.
피로 물든 빨간 바닥, 사방에 흩어져 벽까지 묻은 어머니의 피.
그때의 내가 고개를 살짝 내렸을 땐,
어머니가 축 늘어지신 채, 일어나지 않으셨다.
그리고 다시 앞을 보니, 아버지가 총을 들고 서 있었다.
그것도 아주 차갑고, 사람을 잡아 먹을 듯한 총을.
어릴 때는 그 총이 트라우마로 남았던 거 같다.
"..."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몇 분 동안 어머니와 나를 번갈아 보시더니, 그냥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한 순간 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이렇게 된 건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확실하게, 정말 확실하게 기억나는 거라면 하나 있다.
그건,
내 앞에 쓰러지기 직전, 어머니의 마지막 말씀 이었다.
"미안해, 아들. 어른이 되는 거, 보고 싶었는데.."
그 말을 끝으로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장례식이 있었지만, 아버지는 오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왜 어머니를 죽이신 건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그때만 해도 아버지를 죽도록, 아니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마음 뿐이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막 화나거나 그러지 않는다.
단지, 자초지종을 설명해 줬으면 했을 뿐.
아버지는 현재까지도 감옥에 갇혀 계신다.
한번도 간 적이 없어 13년 동안 아버지를 뵙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의 얼굴을 까먹을 수 있을까 싶었다.
과거를 생각하니 다시금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나 지금 복잡한 상태였지."
목은 아직도 통증이 느껴졌지만 신기하게도 다른 곳은 잘 움직여 졌다.
손만 빼고.
좋아. 천천히 생각을 정리해 보자.
지금 꼬인 생각들은, 6강회에 대한 내 생각,
그리고 6강회에 있는 전유화에 대한 내 내적 갈등.
이 큰 두 가지만 풀면 다른 것들은 그냥 잡아 당기면 스르륵 하고 풀릴 것 같았다.
6강회.. 솔직히 말해서 말도 안된다.
기둥이라 해서 사람을 함부로 대하다니.
뭐 그건 박혈용만 그럴지도 모른다.
정작 전유화는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않았으니.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도 안 그럴 가능성은 있다.
단지, 확률이 50%라는 것.
그 확률이 80%였다고 해도 의심 했을 것이다.
왜냐고?
자기 이기심에 먹혀 자기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야 이미 지금 본 사람들로도 충분히 그걸 증명해 주고 있으니까.
결론은.. 6강회가 나쁘지만은 않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믿을 수는 없다.
정도 인가.
그리고 남은 한 가지.
전유화가 6강회에 포함된 것에 대해서.
솔직히 처음 결론을 내린 거를 여기에 대입해 보면 그렇게 어려운 부분은 아니다.
똑같이 나쁜 사람은 아니나, 완전히 믿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나를 걱정해주고 슬퍼해 주는 모습을 보면 나를 배신하거나 그럴 것 같지는 않다.
환용철도 이런 말을 했었지.
검을 고른 이상 운은 제로라고.
나는 벽면에 세워진 천으로 둘둘 말린 검을 보았다.
그리고 잠깐 이었지만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제로까지는 아니였구나 하고.
의외로 금방 정리 되었다.
이 생각들을 전부 정리하는데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적어도 4시간은 걸릴 줄 알았는데.
역시 사람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구나.
나는 생각을 다 정리 한 채, 전유화가 다시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
툭.
가볍게 걷어 찬 작고 작은 돌맹이가 땅에 몇 번 부딪치더니 곧 잠잠해 졌다.
"... 역시 말하지 말걸 그랬나."
전유화였다.
병실을 나온 뒤로 바람을 쐬고 있던 것이다.
날씨도 점점 추워져 만 가 전유화에게는 버티기 어려웠다.
"패딩이라도 가지고 나올 걸 그랬나.."
으슬으슬 떨리는 몸을 부여잡고 전유화는 다시 들어갈 생각 이었다.
그때 뒤에서 여러 명의 발 소리가 전유화의 귀로 들어갔다.
"음?"
전유화가 뒤를 돌아보자, 4명의 사람들이 서있었다.
그 중에서는 전유화가 잘 아는 사람도 있었다.
"..!"
"뭘 그렇게 놀라고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 어색하게."
헤라토나 도시 '플라이 휠' 소속 리더, 황안수.
그리고 그를 따르는 3명의 팀원들.
"여긴 무슨 일.. 분명 리더 간의 회의가 있었을 텐데..?"
"아아, 그거? 진작에 끝내고 돌아왔지."
황안수는 자신의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어 곧 구겨진 한 종이를 빼내었다.
그리고 바로 전유화에게 건냈다.
".. 이 사람은..!"
"이번 리더 회의에서 사살 명령이 내려졌다."
사진의 얼굴을 본 전유화는 금새 얼굴이 굳어지더니 곧, 자신의 등에서 총을 꺼냈다.
"이러면 곤란한데. 아무리 6강회라도 6강이면 살인 정도면 감옥에는 가겠지?"
"못 가.. 이 뒤로는. 절대로."
그 차가운 총구는 정확히 황안수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황안수가 손가락 하나를 까딱 하자, 뒤에 있던 플라이 휠의 용병들이 서로 흩어져 병원 안으로 한 명씩 들어가기 시작했다.
"정부의 명령에 거역할 생각이라면, 나를 쏴라."
황안수는 천천히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전유화를 향해 걸어갔다.
"오.. 오지 마!"
전유화가 더 거세게 총구를 들이밀었지만, 황안수는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1m 가량 남겨 놨을 때도, 전유화는 쏘지 못했다.
"협조 고맙군."
황안수는 그대로 전유화를 지나쳐 버렸다.
털썩.
전유화는 그대로 주저 앉았다.
"미안해.. 지현.. 이번에는 꼭 지키고 싶었는데.."
전유화는 주저 앉은 채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
"병실이 어디지?"
"3층의 104호 실 입니다."
황안수와 팀원 한 명이 3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시각.
아무 것도 모르던 나는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쓸데없이 화창은 하네.."
그때, 병실의 문이 열렸다.
"전유화..씨..?"
전유화가 아니었다.
병실로 들어온 건 의외에 사람 이었다.
분명 나도 잘 알고 있는 사람.
"역시 여기 계셨군요..!"
용병도, 회장도 아닌, 이무호씨 였다.
"이무호씨?? 여긴 어떻게..?"
"지금 그걸 신경 쓸 시간이 없습니다! 몸은 좀 움직이실 수 있나요?"
이무호씨는 다급해 보였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길래..?
병원이 붕괴되려고 하는 건가?
"용병들이 병원 안으로 들이닥쳤습니다..! 분명 지현씨를 죽이러 온다고 들어서..!"
뭐..? 나를 죽이러 온다고..? 왜?
이제 하다 하다 사살 명령까지 떨어진 건가.
웬만해서 사살 명령은 안 떨어지는 걸로 아는데.
에르니아의 회장님이 진짜 명령을 내리신 걸까?
나는 이무호씨의 부축으로 104호 실을 빠져 나왔다.
"이런.. 내려가기에는 계단과 엘레베이터가 멀리 있는데.."
이무호씨는 주변을 둘러보다 나를 당겼다.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105호 실이라고 써져 있는 방이었다.
우리는 급히 그곳으로 들어갔다.
105호 병실 안은 다행히 아무도 없었고, 병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밖에서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104호 실, 아 여기군."
처음 듣는 목소리다.
환용철 이랑 살짝 비슷한 목소리 면서도, 미세하게 달랐다.
"아무래도 이곳에만 있다가는 분명 들킬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떡해요?"
우리들의 목소리는 개미보다 작은 목소리였다.
그리고 곧 옆방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사람이 들어간 모양이다.
발 소리로 보면 많아도 2명.. 정도 인가.
"제가 그 사람의 발을 묶어 놓고 있겠습니다. 그때 탈출 하시죠."
"네?"
이무호씨도 그렇고 전유화도 그렇고 왜 나를 도와주는 거지..?
"그러다 다치시면.."
"하하. 이미 나이 먹을 때로 먹은 아저씨 입니다. 그리고 저보다는 지현씨가 더 살 날이 많겠죠."
이무호씨는 문을 당겨 조심히 나갔다.
그리고 곧 104호로 들어갔다.
"병실을 착각한 건가. 왜 아무도 없는 거지?"
"아무래도 미리 알고, 도망간 것 같습니다."
그때 딱, 이무호씨가 들어갔다. 104호로.
"당신은..?"
"아아, 죄송합니다. 여기가 제 병실이라 서요."
"아아, 그러셨군요. 죄송합니다."
황안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104호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나오자 마자 본 것은, 105호의 열려져 있는 문이었다.
"..!"
황안수는 급히 무전기를 들어 다른 팀원들에게 연락했다.
"병원 입구 막아. 지금 김지현이 이 병원 안에 있다. 입구 쪽으로 나오면 그냥 쏴 버려."
무전기에서 치직 소리가 들리고 황안수는 105호 실 문을 쾅 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도망친 후였다.
"설마 얼굴도 안 비추고 갈 줄이야. 뭐, 곧 보겠지만."
"헉..헉.."
나는 105호 실을 나와 옥상으로 도망쳤다.
왜 병원 입구로 가지 않고, 옥상으로 왔냐고 물으면, 누가 멍청하게 입구로 당당하게 나가겠냐는 말이 먼저 나올 것이다.
그렇게 옥상 문을 열고 옥상으로 나가니, 차가운 바람이 내 귓가를 스쳤다.
"윽.. 추워.."
과거, 어렸을 때, 눈을 본 적이 몇 번 있다.
새하얗고 차가운 눈을.
눈이 내릴 때마다 밖에 나가서 뒹굴고,
눈덩이도 만들어 보고, 부모님과 함께 이글루를 짓기도 했다.
뭐.. 그것도 부모님이 거의 다 하신 거지만.
글에서 이런 문장을 본 적이 있다.
'[눈]이라는 소재는 시련과 고난을 의미한다.'
라는 문장을.
하지만 그렇지 만도 않다.
나에게 있어 눈은,
행복의 계기가 되는 것 중 하나였다.
눈은 내 안 좋은 기억을 하나도 빠짐 없이 전부 덮어버리고,
그 위로가 좋은 기억을 남게 해주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겨울이 좋다.
"이번 겨울에는.. 눈 좀 많이 내렸으면 좋겠네."
잠시 옥상에서 그런 잔 생각을 하며 쉬고 있을 때였다.
밑에서 들리는 총 소리.
탕.
탕.
두 번이 들렸다. 이건 신호도 위헙도 아니다.
확실하게 누구를 죽였다는 뜻.
"..제발 아무도 안 죽었으면 좋겠는데.."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이무호씨, 전유화, 다 살아 있어 달라고.
다행히 검을 챙겨와서, 나는 쉽게 죽을 일이 없을 것 같지만,
목이 이러니,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들리는 두 번의 총 소리.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닌가..?
그럼 도대체 저 총 소리는 무슨..
나는 조심히 계단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먼저 3층 문을 조심히 열어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104호 실에 들어간 이무호씨를 데리러 갔는데.
들어가기도 전에 문을 타고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욱.."
토할 것 같았지만 참았다.
나를 위해 희생한 이무호씨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무호씨.."
그래도 몇 일 동안 정이 든 사람 이었는데..
"그곳에서는 아내와 마음껏 해변을 걷길 바래요.."
나는 두꺼운 철문에 간신히 기대며, 다시 계단으로 향했다.
용병들은 엘레베이터를 타고 이동 하겠지, 하고 계단으로 조심히 1층 까지 내려갔다.
내 예상대로 1층에는 입구를 막고 있는 용병 2명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말은.. 저 용병들만 어떻게 하면 병원을 탈출 할 수 있는 건가..
"그건 그렇고 이 병원에는 왜 뒷문도 없어?"
어이가 없었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다 조심히 밖으로 나가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병실은 102호 실 이었는데,
다행히 용병들은 나를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럼 이제.. 어떡하지?
창문으로 탈출 하려 시도 해봤지만, 창문이 너무 작아 불가능 했다.
"그럼.."
그때 병실 안에서 다른 사람의 옷과 모자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죄송합니다. 잠깐만 빌려 쓸게요."
나는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는 옷을 입었다.
모자까지 꾹 눌러 쓰니,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뭔가 확실하게 따돌릴 만한 뭔가 가 필요한데.."
그리고 또 한 쪽에서 안경 하나가 놓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오늘 좀 많이 죄를 지을 거 같네."
안경까지 쓰고 나니, 내가 누군지도 알아 볼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조심히 병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구를 지키고 있는 용병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음?"
입구까지 걸어오자, 입구를 지키던 용병 중 한 명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저 좀 지나가려고 하는데.."
"아아, 죄송합니다."
내 예상대로 용병들은 내가 누구인 지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게 걸어 나갈 때쯤.
용병의 무전기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나가려고 하는 사람, 김지현이다. 쏴버려."
"..?!"
어떻게? 분명 이 두 용병 빼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는데..?
나는 그리고 그제서야 깨달았다.
건물 안에, cctv가 존재 한다는 것을.
설마 cctv로 보고 있었을 줄이야..
용병들은 나를 향해 총구를 들이밀었다.
이렇게 끝나는 건가..
하고 생각했을 때.
갑자기 머리 속에서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인물은 다름 아닌 아버지, 어머니를 살해한 아버지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 사람이 왜 생각 나는 걸까.
그래도 가족이라고 생각나는 건가.
나는 조심히 눈을 감았다.
죽음을 각오했다. 어차피 이전에도 이미 죽었어야 하는 거, 좀 더 수명을 연장 했다고 봐야겠네.
하지만, 몇 초가 지났음에도 총 소리는 커녕, 방아쇠를 당기는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눈을 살짝 떠 보니, 용병들은 아무데도 없었다.
이번에도 희성이 도와준 건가..?
내가 죽지 않기 하기 위해서..?
정말 신의 힘은 대단하다고, 뼈 저리게 느꼈다.
...
"크악!"
"큭.."
김지현을 쏘려고 했던 용병 두 명은 어느 방에 내동댕이 쳐졌다.
김지현을 구한 것은 희성이 아니었다.
"사람의 목숨을.. 너희들은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팔에 걸려 있는 두꺼운 쇠사슬.
얼굴에는 성한 데가 없이 상처로 가득 차 있고,
다리 또한 흉터가 가득했다.
용병들은 그 얼굴을 보자마자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cctv로 보고 있던 황안수도 그를 보더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말도 안돼.. 이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그 사람은 쇠사슬이 걸려 있는 팔로 목을 긁적였다.
"한낱 용병들이, 어디 감히 사람을, 그것도 저 애를 죽이려는 것이냐."
"...으.."
용병들은 겁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를 그래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니 말해 주지."
쇠사슬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자, 그 공간은 더욱 섬뜩하게 변했다.
"내가 지금껏 너희 같은 용병들만 40명은 넘게 죽였다. 잘 알아두도록. 너희의 목은 내가 쥐고 있다는 것을."
용병 두 명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잘 가거라. 나중에 또 만날 일이 있으면 좋겠구나."
...
나는 뛰고 뛰어서 병원 멀리 까지 도망쳤다.
그리고 얼마나 오래 뛰었는지, 목이 따가웠다.
"그러고 보니.. 전유화도 못 데리고 왔네.."
솔직히 내가 아니더라도 더 좋은 사람을 만날 것이다.
더 강하고, 더 팀원을 생각하는 그런 사람을.
"이제 또 혼자가 됐네.."
아직도 천이 말아진 검을 보니,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나는 그렇게 고생하는데, 검은 천이 풀어질 생각을 안 하니.
"나는 나대로 바쁘고, 너는 너대로 편하구나."
영웅을 동경했던 내가 참 한심했는데.
이무호씨를 보니 그 생각이 바뀌게 됐다.
사람을 위해 싸우고, 희생할 수 있는 영웅.
실제로 존재한다면 딱 그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이무호씨가 105호 실을 빠져 나가기 전,
나에게 살짝 미소를 짓는 것을 보았다.
그 미소는 마치, 걱정하지 말라고, 당신은 꼭 살아 남을 수 있을 거라는 것처럼 보였다.
105호 실을 나오면서, 옥상에 올라가면서.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심해도, 다시 한 번은 영웅을 동경해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소속 이름.. 뭐로 할 지 정한 것 같네."
사람을 지키기 위해 가장 먼저 나서고,
죽음을 무릅쓰지 않는 소속.
히어로즈.
그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 됐을 뿐이다.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오자 가장 궁금했던 박혈용에 대해 전유화에게 물었다.
솔직히 살인 미수 죄가 아닐까?
사람의 목을 부러트리고도 무사할 수 있을까.
"뭐.. 걔는 뒤 안 돌아 보고 가더라고."
"네..?"
믿기지 않았다.
왜? 도대체 왜?
전유화는 그렇다 쳐도, 아무도 그 상황을 보고도 신고를 안 했다는 말인가?
"6강회.. 알지? 그 사람들은 무슨 잘못을 하든 지구의 기둥 같은 존재라 대 학살 정도를 일으키지 않으면 어느 정도는 그냥 넘기고 있어.."
6강회가 뭐길래.. 사람을 죽여도 아무런 형벌도 없단 말인가?
끓어오르는 화에 입술을 깨물었더니 약간 짭짤하고 비린 맛이 나는 피가 내 혀를 타고 목구멍 안으로 들어왔다.
피를 삼킬 때마다 목이 아파왔지만 그건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리고 말 안 한 게 있는데.."
전유화는 머리를 긁적였다.
"나도 6강회 거든.."
그 말을 듣자마자 목 안으로 들어갔던 피가 전부 역류하는 느낌이 들었다.
"콜록! 콜록..!"
덕분에 기침까지 덤으로 났다.
"괜찮아..?"
목이 부러지기 직전부터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설마 이 정도로 일 줄은 몰랐다.
사람을 함부로 다뤄도, 무슨 짓으로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니,
그것도 단 6명의 사람들만.
그렇다면 전유화도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아닌가.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계속 믿어야 되는 건지, 진실을 안 이상 믿지 말아야 하는지.
고마운 마음은 있지만, 또 뭔가를 잃어야 하는지.
6강회, 그 한 단어 때문에 내 생각들이 하나 하나의 실처럼 엮이고 꼬이기 시작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잠깐.. 혼자 있게 해주세요.."
자리를 지켜준 전유화에게는 고마웠지만, 지금은 혼자 시간을 가질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유화는 아무 말 없이 병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고 몇 초가 지난 후에야 긴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리고 곧 과거, 부모님의 말이 떠올랐다.
왜 떠오른 건지는 모르겠지만.
...
"지현아,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단다."
"뭔데요?"
어릴 적, 총알 없는 총을 가지고 놀던 나이에,
문득 아버지가 내게 이 말을 하셨다.
"사람들을 위해 싸우고, 배려하는 사람들과, 자기 욕심에 먹혀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들로 나뉜 단다."
"음.. 너무 어려워요.."
그 나이 때는 이익이 뭔지, 추구가 뭔지도 몰라서, 아버지의 말을 이해할 수도 대답도 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어려운 말을 하면 어떻게 알아 들어요. 좀 쉽게 설명해 줘야지."
"하하, 그런가? 하긴, 아직 6살 밖에 안 됐으니."
그때는 분명 화목한 가족 이었다.
웃을 수 있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화목한 가정.
하지만 그것도 한 순간이었다.
털썩.
고작 내가 8살 이었을 때 부모님의 피를 보았다.
넘어지시거나, 어디에 베여 나온 그런 작은 피 말고.
나를 완전히 덮어버릴 피를 말이다.
피로 물든 빨간 바닥, 사방에 흩어져 벽까지 묻은 어머니의 피.
그때의 내가 고개를 살짝 내렸을 땐,
어머니가 축 늘어지신 채, 일어나지 않으셨다.
그리고 다시 앞을 보니, 아버지가 총을 들고 서 있었다.
그것도 아주 차갑고, 사람을 잡아 먹을 듯한 총을.
어릴 때는 그 총이 트라우마로 남았던 거 같다.
"..."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몇 분 동안 어머니와 나를 번갈아 보시더니, 그냥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한 순간 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이렇게 된 건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확실하게, 정말 확실하게 기억나는 거라면 하나 있다.
그건,
내 앞에 쓰러지기 직전, 어머니의 마지막 말씀 이었다.
"미안해, 아들. 어른이 되는 거, 보고 싶었는데.."
그 말을 끝으로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장례식이 있었지만, 아버지는 오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왜 어머니를 죽이신 건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그때만 해도 아버지를 죽도록, 아니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마음 뿐이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막 화나거나 그러지 않는다.
단지, 자초지종을 설명해 줬으면 했을 뿐.
아버지는 현재까지도 감옥에 갇혀 계신다.
한번도 간 적이 없어 13년 동안 아버지를 뵙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의 얼굴을 까먹을 수 있을까 싶었다.
과거를 생각하니 다시금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나 지금 복잡한 상태였지."
목은 아직도 통증이 느껴졌지만 신기하게도 다른 곳은 잘 움직여 졌다.
손만 빼고.
좋아. 천천히 생각을 정리해 보자.
지금 꼬인 생각들은, 6강회에 대한 내 생각,
그리고 6강회에 있는 전유화에 대한 내 내적 갈등.
이 큰 두 가지만 풀면 다른 것들은 그냥 잡아 당기면 스르륵 하고 풀릴 것 같았다.
6강회.. 솔직히 말해서 말도 안된다.
기둥이라 해서 사람을 함부로 대하다니.
뭐 그건 박혈용만 그럴지도 모른다.
정작 전유화는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않았으니.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도 안 그럴 가능성은 있다.
단지, 확률이 50%라는 것.
그 확률이 80%였다고 해도 의심 했을 것이다.
왜냐고?
자기 이기심에 먹혀 자기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야 이미 지금 본 사람들로도 충분히 그걸 증명해 주고 있으니까.
결론은.. 6강회가 나쁘지만은 않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믿을 수는 없다.
정도 인가.
그리고 남은 한 가지.
전유화가 6강회에 포함된 것에 대해서.
솔직히 처음 결론을 내린 거를 여기에 대입해 보면 그렇게 어려운 부분은 아니다.
똑같이 나쁜 사람은 아니나, 완전히 믿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나를 걱정해주고 슬퍼해 주는 모습을 보면 나를 배신하거나 그럴 것 같지는 않다.
환용철도 이런 말을 했었지.
검을 고른 이상 운은 제로라고.
나는 벽면에 세워진 천으로 둘둘 말린 검을 보았다.
그리고 잠깐 이었지만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제로까지는 아니였구나 하고.
의외로 금방 정리 되었다.
이 생각들을 전부 정리하는데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적어도 4시간은 걸릴 줄 알았는데.
역시 사람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구나.
나는 생각을 다 정리 한 채, 전유화가 다시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
툭.
가볍게 걷어 찬 작고 작은 돌맹이가 땅에 몇 번 부딪치더니 곧 잠잠해 졌다.
"... 역시 말하지 말걸 그랬나."
전유화였다.
병실을 나온 뒤로 바람을 쐬고 있던 것이다.
날씨도 점점 추워져 만 가 전유화에게는 버티기 어려웠다.
"패딩이라도 가지고 나올 걸 그랬나.."
으슬으슬 떨리는 몸을 부여잡고 전유화는 다시 들어갈 생각 이었다.
그때 뒤에서 여러 명의 발 소리가 전유화의 귀로 들어갔다.
"음?"
전유화가 뒤를 돌아보자, 4명의 사람들이 서있었다.
그 중에서는 전유화가 잘 아는 사람도 있었다.
"..!"
"뭘 그렇게 놀라고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 어색하게."
헤라토나 도시 '플라이 휠' 소속 리더, 황안수.
그리고 그를 따르는 3명의 팀원들.
"여긴 무슨 일.. 분명 리더 간의 회의가 있었을 텐데..?"
"아아, 그거? 진작에 끝내고 돌아왔지."
황안수는 자신의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어 곧 구겨진 한 종이를 빼내었다.
그리고 바로 전유화에게 건냈다.
".. 이 사람은..!"
"이번 리더 회의에서 사살 명령이 내려졌다."
사진의 얼굴을 본 전유화는 금새 얼굴이 굳어지더니 곧, 자신의 등에서 총을 꺼냈다.
"이러면 곤란한데. 아무리 6강회라도 6강이면 살인 정도면 감옥에는 가겠지?"
"못 가.. 이 뒤로는. 절대로."
그 차가운 총구는 정확히 황안수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황안수가 손가락 하나를 까딱 하자, 뒤에 있던 플라이 휠의 용병들이 서로 흩어져 병원 안으로 한 명씩 들어가기 시작했다.
"정부의 명령에 거역할 생각이라면, 나를 쏴라."
황안수는 천천히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전유화를 향해 걸어갔다.
"오.. 오지 마!"
전유화가 더 거세게 총구를 들이밀었지만, 황안수는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1m 가량 남겨 놨을 때도, 전유화는 쏘지 못했다.
"협조 고맙군."
황안수는 그대로 전유화를 지나쳐 버렸다.
털썩.
전유화는 그대로 주저 앉았다.
"미안해.. 지현.. 이번에는 꼭 지키고 싶었는데.."
전유화는 주저 앉은 채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
"병실이 어디지?"
"3층의 104호 실 입니다."
황안수와 팀원 한 명이 3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시각.
아무 것도 모르던 나는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쓸데없이 화창은 하네.."
그때, 병실의 문이 열렸다.
"전유화..씨..?"
전유화가 아니었다.
병실로 들어온 건 의외에 사람 이었다.
분명 나도 잘 알고 있는 사람.
"역시 여기 계셨군요..!"
용병도, 회장도 아닌, 이무호씨 였다.
"이무호씨?? 여긴 어떻게..?"
"지금 그걸 신경 쓸 시간이 없습니다! 몸은 좀 움직이실 수 있나요?"
이무호씨는 다급해 보였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길래..?
병원이 붕괴되려고 하는 건가?
"용병들이 병원 안으로 들이닥쳤습니다..! 분명 지현씨를 죽이러 온다고 들어서..!"
뭐..? 나를 죽이러 온다고..? 왜?
이제 하다 하다 사살 명령까지 떨어진 건가.
웬만해서 사살 명령은 안 떨어지는 걸로 아는데.
에르니아의 회장님이 진짜 명령을 내리신 걸까?
나는 이무호씨의 부축으로 104호 실을 빠져 나왔다.
"이런.. 내려가기에는 계단과 엘레베이터가 멀리 있는데.."
이무호씨는 주변을 둘러보다 나를 당겼다.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105호 실이라고 써져 있는 방이었다.
우리는 급히 그곳으로 들어갔다.
105호 병실 안은 다행히 아무도 없었고, 병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밖에서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104호 실, 아 여기군."
처음 듣는 목소리다.
환용철 이랑 살짝 비슷한 목소리 면서도, 미세하게 달랐다.
"아무래도 이곳에만 있다가는 분명 들킬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떡해요?"
우리들의 목소리는 개미보다 작은 목소리였다.
그리고 곧 옆방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사람이 들어간 모양이다.
발 소리로 보면 많아도 2명.. 정도 인가.
"제가 그 사람의 발을 묶어 놓고 있겠습니다. 그때 탈출 하시죠."
"네?"
이무호씨도 그렇고 전유화도 그렇고 왜 나를 도와주는 거지..?
"그러다 다치시면.."
"하하. 이미 나이 먹을 때로 먹은 아저씨 입니다. 그리고 저보다는 지현씨가 더 살 날이 많겠죠."
이무호씨는 문을 당겨 조심히 나갔다.
그리고 곧 104호로 들어갔다.
"병실을 착각한 건가. 왜 아무도 없는 거지?"
"아무래도 미리 알고, 도망간 것 같습니다."
그때 딱, 이무호씨가 들어갔다. 104호로.
"당신은..?"
"아아, 죄송합니다. 여기가 제 병실이라 서요."
"아아, 그러셨군요. 죄송합니다."
황안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104호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나오자 마자 본 것은, 105호의 열려져 있는 문이었다.
"..!"
황안수는 급히 무전기를 들어 다른 팀원들에게 연락했다.
"병원 입구 막아. 지금 김지현이 이 병원 안에 있다. 입구 쪽으로 나오면 그냥 쏴 버려."
무전기에서 치직 소리가 들리고 황안수는 105호 실 문을 쾅 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도망친 후였다.
"설마 얼굴도 안 비추고 갈 줄이야. 뭐, 곧 보겠지만."
"헉..헉.."
나는 105호 실을 나와 옥상으로 도망쳤다.
왜 병원 입구로 가지 않고, 옥상으로 왔냐고 물으면, 누가 멍청하게 입구로 당당하게 나가겠냐는 말이 먼저 나올 것이다.
그렇게 옥상 문을 열고 옥상으로 나가니, 차가운 바람이 내 귓가를 스쳤다.
"윽.. 추워.."
과거, 어렸을 때, 눈을 본 적이 몇 번 있다.
새하얗고 차가운 눈을.
눈이 내릴 때마다 밖에 나가서 뒹굴고,
눈덩이도 만들어 보고, 부모님과 함께 이글루를 짓기도 했다.
뭐.. 그것도 부모님이 거의 다 하신 거지만.
글에서 이런 문장을 본 적이 있다.
'[눈]이라는 소재는 시련과 고난을 의미한다.'
라는 문장을.
하지만 그렇지 만도 않다.
나에게 있어 눈은,
행복의 계기가 되는 것 중 하나였다.
눈은 내 안 좋은 기억을 하나도 빠짐 없이 전부 덮어버리고,
그 위로가 좋은 기억을 남게 해주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겨울이 좋다.
"이번 겨울에는.. 눈 좀 많이 내렸으면 좋겠네."
잠시 옥상에서 그런 잔 생각을 하며 쉬고 있을 때였다.
밑에서 들리는 총 소리.
탕.
탕.
두 번이 들렸다. 이건 신호도 위헙도 아니다.
확실하게 누구를 죽였다는 뜻.
"..제발 아무도 안 죽었으면 좋겠는데.."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이무호씨, 전유화, 다 살아 있어 달라고.
다행히 검을 챙겨와서, 나는 쉽게 죽을 일이 없을 것 같지만,
목이 이러니,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들리는 두 번의 총 소리.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닌가..?
그럼 도대체 저 총 소리는 무슨..
나는 조심히 계단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먼저 3층 문을 조심히 열어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104호 실에 들어간 이무호씨를 데리러 갔는데.
들어가기도 전에 문을 타고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욱.."
토할 것 같았지만 참았다.
나를 위해 희생한 이무호씨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무호씨.."
그래도 몇 일 동안 정이 든 사람 이었는데..
"그곳에서는 아내와 마음껏 해변을 걷길 바래요.."
나는 두꺼운 철문에 간신히 기대며, 다시 계단으로 향했다.
용병들은 엘레베이터를 타고 이동 하겠지, 하고 계단으로 조심히 1층 까지 내려갔다.
내 예상대로 1층에는 입구를 막고 있는 용병 2명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말은.. 저 용병들만 어떻게 하면 병원을 탈출 할 수 있는 건가..
"그건 그렇고 이 병원에는 왜 뒷문도 없어?"
어이가 없었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다 조심히 밖으로 나가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병실은 102호 실 이었는데,
다행히 용병들은 나를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럼 이제.. 어떡하지?
창문으로 탈출 하려 시도 해봤지만, 창문이 너무 작아 불가능 했다.
"그럼.."
그때 병실 안에서 다른 사람의 옷과 모자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죄송합니다. 잠깐만 빌려 쓸게요."
나는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는 옷을 입었다.
모자까지 꾹 눌러 쓰니,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뭔가 확실하게 따돌릴 만한 뭔가 가 필요한데.."
그리고 또 한 쪽에서 안경 하나가 놓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오늘 좀 많이 죄를 지을 거 같네."
안경까지 쓰고 나니, 내가 누군지도 알아 볼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조심히 병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구를 지키고 있는 용병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음?"
입구까지 걸어오자, 입구를 지키던 용병 중 한 명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저 좀 지나가려고 하는데.."
"아아, 죄송합니다."
내 예상대로 용병들은 내가 누구인 지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게 걸어 나갈 때쯤.
용병의 무전기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나가려고 하는 사람, 김지현이다. 쏴버려."
"..?!"
어떻게? 분명 이 두 용병 빼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는데..?
나는 그리고 그제서야 깨달았다.
건물 안에, cctv가 존재 한다는 것을.
설마 cctv로 보고 있었을 줄이야..
용병들은 나를 향해 총구를 들이밀었다.
이렇게 끝나는 건가..
하고 생각했을 때.
갑자기 머리 속에서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인물은 다름 아닌 아버지, 어머니를 살해한 아버지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 사람이 왜 생각 나는 걸까.
그래도 가족이라고 생각나는 건가.
나는 조심히 눈을 감았다.
죽음을 각오했다. 어차피 이전에도 이미 죽었어야 하는 거, 좀 더 수명을 연장 했다고 봐야겠네.
하지만, 몇 초가 지났음에도 총 소리는 커녕, 방아쇠를 당기는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눈을 살짝 떠 보니, 용병들은 아무데도 없었다.
이번에도 희성이 도와준 건가..?
내가 죽지 않기 하기 위해서..?
정말 신의 힘은 대단하다고, 뼈 저리게 느꼈다.
...
"크악!"
"큭.."
김지현을 쏘려고 했던 용병 두 명은 어느 방에 내동댕이 쳐졌다.
김지현을 구한 것은 희성이 아니었다.
"사람의 목숨을.. 너희들은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팔에 걸려 있는 두꺼운 쇠사슬.
얼굴에는 성한 데가 없이 상처로 가득 차 있고,
다리 또한 흉터가 가득했다.
용병들은 그 얼굴을 보자마자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cctv로 보고 있던 황안수도 그를 보더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말도 안돼.. 이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그 사람은 쇠사슬이 걸려 있는 팔로 목을 긁적였다.
"한낱 용병들이, 어디 감히 사람을, 그것도 저 애를 죽이려는 것이냐."
"...으.."
용병들은 겁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를 그래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니 말해 주지."
쇠사슬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자, 그 공간은 더욱 섬뜩하게 변했다.
"내가 지금껏 너희 같은 용병들만 40명은 넘게 죽였다. 잘 알아두도록. 너희의 목은 내가 쥐고 있다는 것을."
용병 두 명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잘 가거라. 나중에 또 만날 일이 있으면 좋겠구나."
...
나는 뛰고 뛰어서 병원 멀리 까지 도망쳤다.
그리고 얼마나 오래 뛰었는지, 목이 따가웠다.
"그러고 보니.. 전유화도 못 데리고 왔네.."
솔직히 내가 아니더라도 더 좋은 사람을 만날 것이다.
더 강하고, 더 팀원을 생각하는 그런 사람을.
"이제 또 혼자가 됐네.."
아직도 천이 말아진 검을 보니,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나는 그렇게 고생하는데, 검은 천이 풀어질 생각을 안 하니.
"나는 나대로 바쁘고, 너는 너대로 편하구나."
영웅을 동경했던 내가 참 한심했는데.
이무호씨를 보니 그 생각이 바뀌게 됐다.
사람을 위해 싸우고, 희생할 수 있는 영웅.
실제로 존재한다면 딱 그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이무호씨가 105호 실을 빠져 나가기 전,
나에게 살짝 미소를 짓는 것을 보았다.
그 미소는 마치, 걱정하지 말라고, 당신은 꼭 살아 남을 수 있을 거라는 것처럼 보였다.
105호 실을 나오면서, 옥상에 올라가면서.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심해도, 다시 한 번은 영웅을 동경해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소속 이름.. 뭐로 할 지 정한 것 같네."
사람을 지키기 위해 가장 먼저 나서고,
죽음을 무릅쓰지 않는 소속.
히어로즈.
그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 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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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으로 성공하는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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