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어둠으로 물든 세상
조회 : 2,581 추천 : 1 글자수 : 1.1만 자 2024-03-25
...
[후퇴하세요! 더 이상은 무리 입니다!]
무전기에서 다급한 소리가 들려온다. 뭔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왜 인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러다가 정말 죽어요!! 빨리 후퇴하세요!!]
시끄러워..
나는 들고 있던 무전기를 바닥에 툭 내려놓고 앞을 바라봤다.
다시 생각해 봐도 뭔가 잘못 됐다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내 손에 들린 검만 봐도 알 수 있으니까.
이제는 검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해졌다.
날은 반 정도 부러지고, 남은 반쪽조차 너덜너덜 해졌다.
부러졌는데도 푸른색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검을 보고 있으니, 뭔가 허탈감이 올라왔다.
정말 이대로 끝인가 하고.
"..."
나는 주변을 둘러 보았다.
붉게 물든 하늘, 척박하게 갈라진 땅, 시체가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산.
그 중에는 내 동료들도 있었다.
압사 되고, 먹히고, 찔리고, 찢기고. 전부 죽었다.
내가 지키겠다고 다짐한 모든 존재가.
이젠 끝까지 지키겠다 던 검마저 잃고 말았다.
모두가 나를 믿고 떠나갔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다니..
한심한 마음에 잘못 없는 가슴만 계속해서 때렸다.
그런 상황에도 내 앞의 괴물은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모두를 죽이고 이제 나만 죽이면 끝나는데, 왜 죽이지 않는 지가 의문이었다.
바보 같은 소리에 다, 이제 들을 사람은 일도 없는 말이겠지만..
"이야기가 하고 싶은 거냐..?"
"... 그렇다."
그제서야 그 괴물은 입을 열었다.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불쾌하고 기분 나쁜 목소리.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정신줄을 놓아버리면 당장이라도 튕겨져 나갈 것 같았다
".. 이미 다 죽여 놨으면서. 무슨 할 말이."
괴물이 원망스럽다.
내 동료들을 죽인 괴물이 원망스럽다.
내 친구를 죽인 괴물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괴물이.
내 가족을 죽인 괴물이..!
죽도록 원망스럽다.
당장이라도 괴물에게 달려들고 싶은 마음이지만, 최대한 참았다.
어차피 나는 괴물을 죽이지 못하기에.
괴물이 시간을 주는 것은 잠깐 죽음을 늦추는 것 뿐이다.
아마 이 이야기가 끝나면 나도 죽게 되겠지. 나는 괴물의 앞에 털썩 주저 앉았다.
"넌.. 이 행성이 자신들의 것이라 믿는가?"
괴물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행성이 우리 것이라 믿는다니?
"만약 그렇게 믿는다면, 도대체 너희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 거지? 힘? 거대한 몸집? 고도의 기술력? 아무것도 없다."
인정하긴 싫지만 괴물의 말이 맞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죽어나가고 있을테니까.
내게 무전을 보낸 자는 인공지능이라 어떻게 될 지는 잘 모르지만..
이렇게 몇 초 동안에도 사람은 죽어나가고 있다.
"도대체 너희가 가진 건 무엇이란 말이냐. 도대체 무엇이 있길래 이 행성이 너희들의 것이라고 믿는 것이냐."
괴물은 나를 집어 들었다.
괴물에게는 내가 개미 수준이겠지.
크기 차이도, 힘의 차이도 압도적으로 괴물이 더 강하니까.
매일 괴물들을 잡으며 이제는 나도 좀 강해진 것 같다 생각한 내 자신이 한심스러워 졌다.
강해지면 뭐해, 내 주변 사람들을 지키지도 못하는데.
그렇다. 나는 아직도 약했다.
강해졌다고 말 할 경지에는 도달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괴물은 나를 손에 집어 든 채, 입을 크게 벌렸다.
"후회해라. 약한 너 자신을."
괴물에게 먹히기 직전, 문득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해보지 못했던 생각이다.
"나.. 뭐하고 있던 걸까."
1화 - 어둠으로 물든 세상
그 일이 있기까지 아직은 너무나도 약했던 시절이었다.
3519년. 세상은 이제 완전히 달라졌다.
나라 전쟁이라던지, 식민 지배라던지, 혁명이라던지, 그것보다 더 큰일이 일어났기에.
몇 천년전에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 지는 몰라도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지금 세계는 멸망에 가까워 졌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잠시 500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3000년, 그때까지만 해도 평범하던 지구에 우주의 생명체들이 쳐들어왔다.
당연히 그걸 알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지구인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 우주의 생명체들은 하나하나 나라를 점령하기 시작했고, 미국이나 러시아가 그들을 향해 핵까지 사용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직 점령 당하지 않은 나라들이 미친 듯이 연구를 시작했고, 그들에게 대적할 무기를 만들어냈다.
이미 1900년대에도 있던 것이긴 하지만, 그건 바로 총이었다.
하지만 일반 총이 아니었다.
핵도 통하지 않는 우주의 생명체에게 일반 총이 통하기나 할까.
과학자들은 일명 MS(Master Striker)라는 총을 만들어 냈고, 유일하게 우주의 생명체들에게 해를 입힐 수 있게 된 무기였다.
하지만 그 무기의 개발로 검이나 창 같은 무기들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고, 사람들의 인식에도 나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다행이도,
정말 다행이도 그 우주의 생명체가 소설이나 만화에나 나올 법한 초고속 재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우리는 그런 것들한테 희생된 사람이 많아 '새크리파이스' 라 부르고 있다.
그 일을 중심으로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는 그들에 대항하고 있다.
솔직히 왜 그들이 쳐들어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직 어떤 과학자들도 그 사실을 밝혀내진 못했으니까.
"늦은 거 아니겠지.."
오늘은 내가 학교에서 졸업을 하는 날이다.
이런 세상에 아직도 학교가 있다는 게 난 이해가 안 가지만. 뭐 용병을 키우는 곳이니 별 수 있나.
용병. 뭐 줄여서 설명하자면 우주인들과 싸우는 사람들을 말한다. 500년 동안이나 싸우고 전사 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 용병을 키우는 학교. 국제위성 용병학교. 이름 되게 구린데 아직도 안 바꿨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나는 옷을 갖추고 졸업식이 열리는 강당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수 많은 총들과 그 외에 무기, 졸업하는 학생들과 용병 중에서도 실력자인 사람들도 보였다.
아, 꿈만 같다. 졸업이라니. 얼마나 힘든 생활이었던 가.
몇 년 동안 굴러다닌 보람이 있구나.
"곧 교장 선생님께서 연설을 시작하니 졸업 학생들은 자리에 모두 앉아주십시오."
강당에 들어가니 어떤 한 사람이 마이크를 들고 서 있었다.
졸업식을 시작하기 일보 직전이었나 보다.
나는 내 자리를 찾아 털썩 주저 앉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학교에서 만났던 애들도 몇 명 보였다.
그리고 내 옆자리에서 뭔가 두드리는 소리가 나길래 그쪽을 보니 어떤 여자애가 앉아있었는데,
벌써부터 무슨 총을 살지 고민 중이었다.
그래 하긴, 졸업한 이후에 본격적으로 우주인에게 맞서야 하니 빨리 고를 필요도 있겠네.
어차피 난 총을 고를 일은 없을 테지만..
그때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렸다.
"교장 선생님의 연설이 있겠습니다."
이 지루한 연설만 들으면 드디어 졸업이구나.
들뜬 마음과 달리 연설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지루해 5초 만에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시 깨어나게 됐을 땐, 벌써 교장 선생님의 연설이 끝나고 학생들은 자신이 사용할 무기들을 고르고 있었다.
"이..이런 너무 많이 잤나?"
"걱정 마. 아직 너 차례 아니니까."
내가 당황하고 있던 때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건들었다.
"뭐야.. 세라잖아.."
나는 기지개를 펴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아이고 지현아. 잠은 제발 집에 가서 자."
세라는 장난 식으로 고개를 저었다.
"안세라. 너 벌써 무기 선택했냐?"
"어. 너가 보기엔 별로야?"
세라는 나에게 옆에 세워둔 총을 보여줬다.
기종을 보아하니, MS-4인가.
"아니 싫어하는 건 아닌데.."
세라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뭔가 나를 말리려는 눈빛이었다.
그때 교장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불렀다.
드디어 내 차례구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장 선생님 앞으로 걸어갔다.
앞으로 가니 교장 선생님이 무기를 보여주셨다.
하지만, 내가 고를 선택지는 단 하나도 없었다.
전부 총.. 이건 저격, 이건 돌격소총.. 왜 그게 안 보이는 거지?
"뭔가 찾는 게 있습니까?"
교장 선생님은 내가 뭔가 찾는 걸 알았는지 내게 물으셨다.
"검이.. 안보이네요?"
".. 검이라고?"
교장 선생님의 말을 끝으로 시끄러웠던 강당이 순식간에 조용해 졌다. 유명한 용병들도, 이미 총을 선택한 학생들도, 전부 나를 쳐다봤다.
교장 선생님까지 말이다.
왜? 검 고른다는 게 그렇게 큰일이야?
"자네 이름이.. 아, 김지현인가."
"왜 검은 없죠? 총은 종류 별로 다 있는데."
근처에 있던 용병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얘기를 나누다 전부 나를 바라보았다.
"김지현 학생.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검은 쓸 수 없네."
"왜죠? 검을 쓰는 게 불법인가요?"
내가 대항하면 대항할 수록 사람들의 눈빛은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뀌어갔다.
유명한 용병들도 전부 내게 총을 겨눴다.
"제가 뭘 잘못했죠? 검을 선택하고 싶은 게 그렇게 큰일인가요?"
그때 누군가 뒤에서 말을 걸었다.
"검을 쓰는 건 불법도 큰일도 아니지."
뒤를 돌아보니 건장한 남자 용병 한 명이 서있었다.
"그럼 왜..!"
"넌 검으로 새크리 파이스를 죽일 수 있나?"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넌 총을 쓰는 사람보다 강해질 수 있나?"
두 번째 질문에도 나는 똑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대답 할 가치가 없었다.
교장 선생님을 보며 다시 말했다.
"전 검이 좋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전 검을 선택하겠습니다."
내 마음을 알아준 걸까. 교장 선생님은 용병들에게 총을 내리라는 손짓을 했다.
진작 그럴 것이지. 검이 약한 도구도 아니고.
"김지현 학생."
"네!"
자신감 있게 대답했지만, 돌아 오는 건 전혀 예상 밖에 결과였다.
"학생 말대로 검을 주마. 그러나 학생은 졸업을 할 수 없을 것이네."
뭐..?
"그게 무슨 말이죠?"
"말 그대로다. 검을 쓰는 사람을 어떻게 용병으로 쓰겠나."
교장 선생님은 내 발밑에 낡은 검 하나를 툭 던졌다.
두세 번 더 내리치면 부서질 듯한 검을.
"자리로 돌아가게."
이게.. 어떻게 된..
나는 결국 아무 말도 못하고 내 자리로 돌아갔다.
자리에 앉고 나니 뒤에서 누군가 다급하게 어깨를 툭툭 쳤다.
"너 제정신이야? 뭘 믿고 검을 골라?!"
세라였다. 도대체 다들 왜 그러는 건데. 검이 무슨 죄인데.
".. 신경 쓰지 마."
검이 쓸모 없다고? 하!
보여줄게. 검이 절대 쓸모 없지 않다고.
그렇게 다짐하고 나는 강당에서 나왔다.
그건 그렇고 어떤 소속에도 들어갈 수 없다니..
혼자서 새크리 파이스에게 맞서라는 거야?
한숨이 절로 나온다. 심지어 이 낡은 검으로 싸우라니. 적어도 철 검을 줘야 할 거 아냐?
...
한숨을 쉬며 학교 근처에 앉아 있었다.
"저기.."
"응?"
뒤를 돌아보니 저격 총을 든 여자애 한 명이 서 있었다.
졸업생인가?
"어? 왜?"
"아까 교장 선생님이 하신 얘기 들었는데, 어떤 소속에도 못 들어 간다며."
뭐야, 시비 걸러 온 건가.
"그런데, 뭐."
"나랑 둘이서 사냥 하지 않을래?"
사냥?
사냥은 기본적으로 정식 용병이 아니면 불법이다.
"괜찮겠어? 난 이 낡은 검으로 싸워야 한다고."
"괜찮아. 내가 뒤에서 지원 사격 해줄게. 어때?"
저격 총이라.. 나쁘지 않은 거 같긴 한데.
"그래, 뭐.. 하자."
"그래! 그럼 바로 시작할까?"
그 여자는 들뜬 거 같았다. 근데 뭘..?
"뭘 시작해?"
"새크리 파이스 잡아야지. 뭐가 또 있겠어?"
뭐? 벌써? 이제 막 졸업했는데..?
보통은 소속에 들어가고 나서 천천히 하는데.
심지어 난 졸업도 못하는데..
"작은 애들부터 해치우자. 큰 녀석은 우리에겐 좀 무리니까."
아, 그럼 할만하지.
"기차역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어. 알았어."
그 여자는 가버렸다.
그래도.. 나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있긴 하네. 아직 세상은 좀 살만한가.
나는 내 손에 들린 낡은 검을 보고 피식 웃었다.
...
"여기서 기다린다고 했는데.."
준비를 끝내고 기차역으로 왔지만, 그 여자애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뭐야, 아직 안 왔나?
내가 일찍 온 건가..
나는 덜그럭 거리는 방어구를 조금 고쳐 입었다. 기초 방어구 이긴 하지만, 맨몸으로 가는 것보단 나으니까.
그때 그 여자애가 나에게 달려왔다.
"미안! 늦었지?"
"어? 아냐. 나도 방금 왔어."
나는 그 여자에게 미소를 지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행동하자. 그래도 내게 사냥 하자고 신청한 애니까.
우리는 도시 바깥으로 향했다.
도시와는 다르게 바깥은 새크리파이스가 우글거리는 곳이니까.
"우리 목표는 9급 일반형 '미르트' 야."
여자애가 한 말처럼 새크리파이스에는 급과 형이 있다.
9급부터 1급까지. 1급이 가장 강력한 놈들인데, 용병 1000명이 싸워도 이길까 말까 할 만큼 강하다.
그리고 9급은 반대로 가장 낮은 놈들로, 막 졸업했거나, 수업을 배우는 학생들도 쉽게 잡을 수 있다.
형은 총 9형이 있는데 각 형마다 9급부터 1급까지 있다.
종류가 왜 그렇게 많은 지 외우는데 애를 먹을 정도 였다.
도시 바깥으로 나가니 모래 먼지 바람이 내 얼굴을 스쳤다.
도시를 보다 가도 이곳을 보면 정말 지구가 맞나 싶다.
그렇게 몇 분 후 우리는 9급 미르트를 만나게 되었다.
수업에서 배웠던 대로 긴장한 상태였지만 미르트를 똑똑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검을 힘껏 미르트에게 날렸지만, 얼마나 낡은 검이었는지 미르트를 한 대 때리자 마자 바로 부서졌다.
"뭐.."
탕!
내가 부러진 검을 들고 있을 때 뒤에서 그 여자애가 저격 총으로 미르트를 죽였다.
"뭐야? 벌써 검이 부러진 거야?"
"어.. 그런 거 같아.. 얼마나 낡은 검을 준거야?"
여자애는 내게 일단 도시로 돌아가서 무기를 바꾸자고 말했고, 나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렇게 급히 다시 도시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콰앙!!
돌아가던 도중 뭔가 우리 앞에 떨어졌다.
연기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뭐..뭐야?"
"안 좋은 예감이 들어. 그냥 가자."
나는 그 여자애에게 돌아가자고 재촉 했지만 그 여자애는 그 자리에 멈춰있었다.
왜 안 가는 거지? 뭔가 확인해 보려고 그러는 건가?
그때 연기 속에서 거대한 발톱 같은 게 날아왔다.
"..!"
간신히 허리를 숙여 그 발톱을 피하고 앞을 봤더니..
교과서에서 그림과 글로만 봤던 그 괴물이 내 앞에 서 있었다.
"진짜 말도 안돼.. 5급이잖아.."
교과서로 봤었다.
덩치가 조금 있고, 양 쪽 어깨에 뿔이 나 있으며 고릴라와 사자의 형태를 교묘하게 결합한 형태..
히스탄..!
저런 걸 어떻게 이겨! 심지어 검도 부러졌는데..!
내가 그 자리에서 벗어 날려고 할 때였다.
탁.
그 여자애가 나를 그 괴물 쪽으로 밀쳤다.
"어..?"
나는 중심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 여자애는 나에게 미소를 지었다.
"안됐네. 그러니까 왜 검을 선택했어."
뭐..?
그 여자애는 그렇게 말하고 나를 버리고 뒤도 안 돌아 보고는 뛰어갔다.
"잠.. 잠시만..!!"
내가 일어 날려고 할 때 뒤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이런.. 미친..
그때 깨달았다.
검을 쓰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방해이며, 불필요한 존재라고.
"크아아아!!"
히스탄은 괴성을 지르며 다시 발톱으로 공격해왔고, 나는 부러진 검으로 그 발톱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그 검은 발톱에 맞고 완전히 부서져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됐으며 나는 그 발톱에 맞아 멀리 날아갔다.
"쿨럭..!"
입에서는 피가 나오기 시작했고, 나는 손으로 피를 닦아냈다.
"젠장.. 5급은 커녕 6급도 상대 안 해봤는데..!"
나는 뒤를 돌아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쪽은 더 깊숙이 들어가는 쪽.
히스탄이 도시 쪽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어 도시로는 갈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더 안쪽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히스탄 말고 또 다른 새크리 파이스들도 만나겠지만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내 첫 사냥을 이딴 식으로 시작할 줄이야.."
나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검을 무시하는 사람들, 내가 그 생각 베어 버리겠어.. 모두가 검을 다시 볼 수 있도록."
달리고 달려 나는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워서 앞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뒤에서 덤프트럭 같은 놈이 쫓아오는 데 달리 방법이 있겠는가.
앞이 잘 보이지 않았던 탓인지 밑을 미처 못 봐서, 나는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높은 곳은 아니어서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젠장, 오른쪽 팔이.."
발톱에 맞은 충격에 모자라 떨어진 충격으로 오른쪽 팔을 잃었다.
부러진 것은 아니지만 움직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것보다 절망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동굴의 벽면에 몸을 기대었다.
"검이 좋아서.. 그냥 단지 좋아서 검을 고른 거 뿐인데.. 도대체 다들 왜 그래..?"
내 눈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흘렀다. 억울해서, 나를 무시했던 사람들이 너무 미워서.
[정말 당신은 검을 좋아하시는군요.]
그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뭔.."
[아, 놀라셨나요? 죄송합니다.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뭐야, 어디서 들리는 거지? 머리 속에서 그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은데..
[저는 희성이라고 해요. 이 동굴에 봉인되어 있었죠. 사람을 보는 건 오랜만 이네요.]
"여기가 무슨 판타지 세계야?"
희성 이라고 하는 애는 피식 웃었다. 뭐가 웃겨서?
[하하, 판타지 세계라. 그럼 저 외계인은 어떻게 설명 할 거죠?]
어라, 그렇긴 한데.. 이걸 뭐라 하지..
[새크리 파이스.. 저는 그들이 지구에 오기 전부터 이곳에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이곳에 떨어진 것이지만.]
떨어졌다고? 나랑 비슷하게 동굴에 떨어진 느낌인가..
[절 못 믿는 것은 이해를 합니다. 하지만 전 500년 때부터 지구의 역사를 봐 왔습니다.]
"그래서? 너가 나한테 말을 건 이유가 있을 거 아냐."
[네. 당신이 제 봉인을 풀어 줬으면 좋겠습니다.]
뭐? 내가? 그 봉인을 어떻게..
[앞을 보세요. 바닥에 꽂혀있는 검이 하나 있을 겁니다.]
희성의 말대로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진짜 땅에 검 한 자루가 박혀 있었다.
푸른색으로 빛나는 검이었다.
[검을 잡으세요.]
나는 반신반의 하며 검을 잡았다.
"이거 안 빠지는데..?"
[마음 속으로 '위칼리오스' 라 말하면 뽑힐 거에요.]
위칼리오스? 진짜 무슨 마법이냐..
일단 어떻게 하든 죽을 테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손을 뻗고 위칼리오스 라고 외쳤다.
그러더니 손에서 번쩍하는 빛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강한 빛에 눈을 감아버렸다.
빛이 사라지고 나는 천천히 눈을 떠 손을 확인해보았다.
내 손에는 어느새 사슬로 감긴 검이 하나 들려있었다.
"뭐..뭐야.. 이게 어떻게 된.."
[제대로 됐나 보네요. 당신이 들고 있는 검이 바로 저입니다. 정확히는 제 영혼이 갇혀 있는 검이지만.]
응? 영혼?
[봉인을 해제하기 전에 한 가지 말해 둘 게 있습니다.]
"뭔데?"
[전 봉인이 풀리자 마자 본래 제 몸으로 돌아갈 거에요. 그리고 그 검은 완전히 당신의 검이 되겠죠.]
어라, 잠시만.
[이미 당신이 이 검을 뽑았을 때부터 봉인은 풀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10초 정도 남았네요.]
"잠깐! 난 아직 물어볼 게..!"
검에 갇힌 영혼은 또 다시 웃음을 지었다.
[검을 사랑하고 아끼는 분은 정말 오랜만이네요. 제가 본래 몸으로 돌아가면, 그 몸으로 지구에 찾아 뵙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사슬이 감긴 검이 빛이 나며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물론 검에 감아져 있던 사슬도 전부 사라졌고.
"정말 이게 어떻게 된 건지.."
내가 당황하며 검을 보고 있을 때, 위에서 히스탄이 떨어졌다.
"쳇! 여기까지 쫓아 온 건가..!"
히스탄은 괴성을 지르며 내게 달려왔다.
"이제 검도 생겼고, 어디 한번 해보지 뭐."
나는 검을 들고 달려오는 히스탄을 벴다.
그 검은 신기하게도, 크기에 맞지 않게 묵직했고, 날도 잘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총 외에 어떤 무기도 새크리파이스에게 해를 입힐 수 없었는데, 검이 그에게 상처를 냈으니 나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아마 이 광경을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놀랐을 것이다.
"말도 안돼.. 이 검.. 도대체.."
검은 내 마음을 알아 주듯 내 손을 따랐다.
나는 검을 믿고 한 손으로 히스탄에게 달려 들었다.
"캬오오!"
30분 간 치고 받고 한 끝에 히스탄이 먼저 땅에 쓰러졌다.
"헉.. 허억.."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그리고 총으로도 잡지 못했던 그 괴물을, 내가 잡았다.
그것도 혼자서.
솔직히 말해서 불가능 할 줄 알았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고, 나 또한 그런 사람들 곁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쓸데없는 걱정일 뿐이었다.
검은 절대 약한 도구가 아니다.
".. 아냐, 도구가 아니지."
나는 푸른색으로 빛나는 검을 바라보았다.
검도 하나의 '무기' 다.
이 세계는 멸망했다.
모든 무기가 쓸모 없어지고 총만 사용하게 된 세상에서,
검으로 성공하는 조건을 얻었다.
[후퇴하세요! 더 이상은 무리 입니다!]
무전기에서 다급한 소리가 들려온다. 뭔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왜 인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러다가 정말 죽어요!! 빨리 후퇴하세요!!]
시끄러워..
나는 들고 있던 무전기를 바닥에 툭 내려놓고 앞을 바라봤다.
다시 생각해 봐도 뭔가 잘못 됐다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내 손에 들린 검만 봐도 알 수 있으니까.
이제는 검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해졌다.
날은 반 정도 부러지고, 남은 반쪽조차 너덜너덜 해졌다.
부러졌는데도 푸른색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검을 보고 있으니, 뭔가 허탈감이 올라왔다.
정말 이대로 끝인가 하고.
"..."
나는 주변을 둘러 보았다.
붉게 물든 하늘, 척박하게 갈라진 땅, 시체가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산.
그 중에는 내 동료들도 있었다.
압사 되고, 먹히고, 찔리고, 찢기고. 전부 죽었다.
내가 지키겠다고 다짐한 모든 존재가.
이젠 끝까지 지키겠다 던 검마저 잃고 말았다.
모두가 나를 믿고 떠나갔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다니..
한심한 마음에 잘못 없는 가슴만 계속해서 때렸다.
그런 상황에도 내 앞의 괴물은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모두를 죽이고 이제 나만 죽이면 끝나는데, 왜 죽이지 않는 지가 의문이었다.
바보 같은 소리에 다, 이제 들을 사람은 일도 없는 말이겠지만..
"이야기가 하고 싶은 거냐..?"
"... 그렇다."
그제서야 그 괴물은 입을 열었다.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불쾌하고 기분 나쁜 목소리.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정신줄을 놓아버리면 당장이라도 튕겨져 나갈 것 같았다
".. 이미 다 죽여 놨으면서. 무슨 할 말이."
괴물이 원망스럽다.
내 동료들을 죽인 괴물이 원망스럽다.
내 친구를 죽인 괴물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괴물이.
내 가족을 죽인 괴물이..!
죽도록 원망스럽다.
당장이라도 괴물에게 달려들고 싶은 마음이지만, 최대한 참았다.
어차피 나는 괴물을 죽이지 못하기에.
괴물이 시간을 주는 것은 잠깐 죽음을 늦추는 것 뿐이다.
아마 이 이야기가 끝나면 나도 죽게 되겠지. 나는 괴물의 앞에 털썩 주저 앉았다.
"넌.. 이 행성이 자신들의 것이라 믿는가?"
괴물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행성이 우리 것이라 믿는다니?
"만약 그렇게 믿는다면, 도대체 너희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 거지? 힘? 거대한 몸집? 고도의 기술력? 아무것도 없다."
인정하긴 싫지만 괴물의 말이 맞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죽어나가고 있을테니까.
내게 무전을 보낸 자는 인공지능이라 어떻게 될 지는 잘 모르지만..
이렇게 몇 초 동안에도 사람은 죽어나가고 있다.
"도대체 너희가 가진 건 무엇이란 말이냐. 도대체 무엇이 있길래 이 행성이 너희들의 것이라고 믿는 것이냐."
괴물은 나를 집어 들었다.
괴물에게는 내가 개미 수준이겠지.
크기 차이도, 힘의 차이도 압도적으로 괴물이 더 강하니까.
매일 괴물들을 잡으며 이제는 나도 좀 강해진 것 같다 생각한 내 자신이 한심스러워 졌다.
강해지면 뭐해, 내 주변 사람들을 지키지도 못하는데.
그렇다. 나는 아직도 약했다.
강해졌다고 말 할 경지에는 도달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괴물은 나를 손에 집어 든 채, 입을 크게 벌렸다.
"후회해라. 약한 너 자신을."
괴물에게 먹히기 직전, 문득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해보지 못했던 생각이다.
"나.. 뭐하고 있던 걸까."
1화 - 어둠으로 물든 세상
그 일이 있기까지 아직은 너무나도 약했던 시절이었다.
3519년. 세상은 이제 완전히 달라졌다.
나라 전쟁이라던지, 식민 지배라던지, 혁명이라던지, 그것보다 더 큰일이 일어났기에.
몇 천년전에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 지는 몰라도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지금 세계는 멸망에 가까워 졌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잠시 500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3000년, 그때까지만 해도 평범하던 지구에 우주의 생명체들이 쳐들어왔다.
당연히 그걸 알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지구인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 우주의 생명체들은 하나하나 나라를 점령하기 시작했고, 미국이나 러시아가 그들을 향해 핵까지 사용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직 점령 당하지 않은 나라들이 미친 듯이 연구를 시작했고, 그들에게 대적할 무기를 만들어냈다.
이미 1900년대에도 있던 것이긴 하지만, 그건 바로 총이었다.
하지만 일반 총이 아니었다.
핵도 통하지 않는 우주의 생명체에게 일반 총이 통하기나 할까.
과학자들은 일명 MS(Master Striker)라는 총을 만들어 냈고, 유일하게 우주의 생명체들에게 해를 입힐 수 있게 된 무기였다.
하지만 그 무기의 개발로 검이나 창 같은 무기들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고, 사람들의 인식에도 나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다행이도,
정말 다행이도 그 우주의 생명체가 소설이나 만화에나 나올 법한 초고속 재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우리는 그런 것들한테 희생된 사람이 많아 '새크리파이스' 라 부르고 있다.
그 일을 중심으로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는 그들에 대항하고 있다.
솔직히 왜 그들이 쳐들어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직 어떤 과학자들도 그 사실을 밝혀내진 못했으니까.
"늦은 거 아니겠지.."
오늘은 내가 학교에서 졸업을 하는 날이다.
이런 세상에 아직도 학교가 있다는 게 난 이해가 안 가지만. 뭐 용병을 키우는 곳이니 별 수 있나.
용병. 뭐 줄여서 설명하자면 우주인들과 싸우는 사람들을 말한다. 500년 동안이나 싸우고 전사 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 용병을 키우는 학교. 국제위성 용병학교. 이름 되게 구린데 아직도 안 바꿨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나는 옷을 갖추고 졸업식이 열리는 강당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수 많은 총들과 그 외에 무기, 졸업하는 학생들과 용병 중에서도 실력자인 사람들도 보였다.
아, 꿈만 같다. 졸업이라니. 얼마나 힘든 생활이었던 가.
몇 년 동안 굴러다닌 보람이 있구나.
"곧 교장 선생님께서 연설을 시작하니 졸업 학생들은 자리에 모두 앉아주십시오."
강당에 들어가니 어떤 한 사람이 마이크를 들고 서 있었다.
졸업식을 시작하기 일보 직전이었나 보다.
나는 내 자리를 찾아 털썩 주저 앉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학교에서 만났던 애들도 몇 명 보였다.
그리고 내 옆자리에서 뭔가 두드리는 소리가 나길래 그쪽을 보니 어떤 여자애가 앉아있었는데,
벌써부터 무슨 총을 살지 고민 중이었다.
그래 하긴, 졸업한 이후에 본격적으로 우주인에게 맞서야 하니 빨리 고를 필요도 있겠네.
어차피 난 총을 고를 일은 없을 테지만..
그때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렸다.
"교장 선생님의 연설이 있겠습니다."
이 지루한 연설만 들으면 드디어 졸업이구나.
들뜬 마음과 달리 연설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지루해 5초 만에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시 깨어나게 됐을 땐, 벌써 교장 선생님의 연설이 끝나고 학생들은 자신이 사용할 무기들을 고르고 있었다.
"이..이런 너무 많이 잤나?"
"걱정 마. 아직 너 차례 아니니까."
내가 당황하고 있던 때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건들었다.
"뭐야.. 세라잖아.."
나는 기지개를 펴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아이고 지현아. 잠은 제발 집에 가서 자."
세라는 장난 식으로 고개를 저었다.
"안세라. 너 벌써 무기 선택했냐?"
"어. 너가 보기엔 별로야?"
세라는 나에게 옆에 세워둔 총을 보여줬다.
기종을 보아하니, MS-4인가.
"아니 싫어하는 건 아닌데.."
세라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뭔가 나를 말리려는 눈빛이었다.
그때 교장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불렀다.
드디어 내 차례구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장 선생님 앞으로 걸어갔다.
앞으로 가니 교장 선생님이 무기를 보여주셨다.
하지만, 내가 고를 선택지는 단 하나도 없었다.
전부 총.. 이건 저격, 이건 돌격소총.. 왜 그게 안 보이는 거지?
"뭔가 찾는 게 있습니까?"
교장 선생님은 내가 뭔가 찾는 걸 알았는지 내게 물으셨다.
"검이.. 안보이네요?"
".. 검이라고?"
교장 선생님의 말을 끝으로 시끄러웠던 강당이 순식간에 조용해 졌다. 유명한 용병들도, 이미 총을 선택한 학생들도, 전부 나를 쳐다봤다.
교장 선생님까지 말이다.
왜? 검 고른다는 게 그렇게 큰일이야?
"자네 이름이.. 아, 김지현인가."
"왜 검은 없죠? 총은 종류 별로 다 있는데."
근처에 있던 용병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얘기를 나누다 전부 나를 바라보았다.
"김지현 학생.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검은 쓸 수 없네."
"왜죠? 검을 쓰는 게 불법인가요?"
내가 대항하면 대항할 수록 사람들의 눈빛은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뀌어갔다.
유명한 용병들도 전부 내게 총을 겨눴다.
"제가 뭘 잘못했죠? 검을 선택하고 싶은 게 그렇게 큰일인가요?"
그때 누군가 뒤에서 말을 걸었다.
"검을 쓰는 건 불법도 큰일도 아니지."
뒤를 돌아보니 건장한 남자 용병 한 명이 서있었다.
"그럼 왜..!"
"넌 검으로 새크리 파이스를 죽일 수 있나?"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넌 총을 쓰는 사람보다 강해질 수 있나?"
두 번째 질문에도 나는 똑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대답 할 가치가 없었다.
교장 선생님을 보며 다시 말했다.
"전 검이 좋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전 검을 선택하겠습니다."
내 마음을 알아준 걸까. 교장 선생님은 용병들에게 총을 내리라는 손짓을 했다.
진작 그럴 것이지. 검이 약한 도구도 아니고.
"김지현 학생."
"네!"
자신감 있게 대답했지만, 돌아 오는 건 전혀 예상 밖에 결과였다.
"학생 말대로 검을 주마. 그러나 학생은 졸업을 할 수 없을 것이네."
뭐..?
"그게 무슨 말이죠?"
"말 그대로다. 검을 쓰는 사람을 어떻게 용병으로 쓰겠나."
교장 선생님은 내 발밑에 낡은 검 하나를 툭 던졌다.
두세 번 더 내리치면 부서질 듯한 검을.
"자리로 돌아가게."
이게.. 어떻게 된..
나는 결국 아무 말도 못하고 내 자리로 돌아갔다.
자리에 앉고 나니 뒤에서 누군가 다급하게 어깨를 툭툭 쳤다.
"너 제정신이야? 뭘 믿고 검을 골라?!"
세라였다. 도대체 다들 왜 그러는 건데. 검이 무슨 죄인데.
".. 신경 쓰지 마."
검이 쓸모 없다고? 하!
보여줄게. 검이 절대 쓸모 없지 않다고.
그렇게 다짐하고 나는 강당에서 나왔다.
그건 그렇고 어떤 소속에도 들어갈 수 없다니..
혼자서 새크리 파이스에게 맞서라는 거야?
한숨이 절로 나온다. 심지어 이 낡은 검으로 싸우라니. 적어도 철 검을 줘야 할 거 아냐?
...
한숨을 쉬며 학교 근처에 앉아 있었다.
"저기.."
"응?"
뒤를 돌아보니 저격 총을 든 여자애 한 명이 서 있었다.
졸업생인가?
"어? 왜?"
"아까 교장 선생님이 하신 얘기 들었는데, 어떤 소속에도 못 들어 간다며."
뭐야, 시비 걸러 온 건가.
"그런데, 뭐."
"나랑 둘이서 사냥 하지 않을래?"
사냥?
사냥은 기본적으로 정식 용병이 아니면 불법이다.
"괜찮겠어? 난 이 낡은 검으로 싸워야 한다고."
"괜찮아. 내가 뒤에서 지원 사격 해줄게. 어때?"
저격 총이라.. 나쁘지 않은 거 같긴 한데.
"그래, 뭐.. 하자."
"그래! 그럼 바로 시작할까?"
그 여자는 들뜬 거 같았다. 근데 뭘..?
"뭘 시작해?"
"새크리 파이스 잡아야지. 뭐가 또 있겠어?"
뭐? 벌써? 이제 막 졸업했는데..?
보통은 소속에 들어가고 나서 천천히 하는데.
심지어 난 졸업도 못하는데..
"작은 애들부터 해치우자. 큰 녀석은 우리에겐 좀 무리니까."
아, 그럼 할만하지.
"기차역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어. 알았어."
그 여자는 가버렸다.
그래도.. 나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있긴 하네. 아직 세상은 좀 살만한가.
나는 내 손에 들린 낡은 검을 보고 피식 웃었다.
...
"여기서 기다린다고 했는데.."
준비를 끝내고 기차역으로 왔지만, 그 여자애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뭐야, 아직 안 왔나?
내가 일찍 온 건가..
나는 덜그럭 거리는 방어구를 조금 고쳐 입었다. 기초 방어구 이긴 하지만, 맨몸으로 가는 것보단 나으니까.
그때 그 여자애가 나에게 달려왔다.
"미안! 늦었지?"
"어? 아냐. 나도 방금 왔어."
나는 그 여자에게 미소를 지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행동하자. 그래도 내게 사냥 하자고 신청한 애니까.
우리는 도시 바깥으로 향했다.
도시와는 다르게 바깥은 새크리파이스가 우글거리는 곳이니까.
"우리 목표는 9급 일반형 '미르트' 야."
여자애가 한 말처럼 새크리파이스에는 급과 형이 있다.
9급부터 1급까지. 1급이 가장 강력한 놈들인데, 용병 1000명이 싸워도 이길까 말까 할 만큼 강하다.
그리고 9급은 반대로 가장 낮은 놈들로, 막 졸업했거나, 수업을 배우는 학생들도 쉽게 잡을 수 있다.
형은 총 9형이 있는데 각 형마다 9급부터 1급까지 있다.
종류가 왜 그렇게 많은 지 외우는데 애를 먹을 정도 였다.
도시 바깥으로 나가니 모래 먼지 바람이 내 얼굴을 스쳤다.
도시를 보다 가도 이곳을 보면 정말 지구가 맞나 싶다.
그렇게 몇 분 후 우리는 9급 미르트를 만나게 되었다.
수업에서 배웠던 대로 긴장한 상태였지만 미르트를 똑똑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검을 힘껏 미르트에게 날렸지만, 얼마나 낡은 검이었는지 미르트를 한 대 때리자 마자 바로 부서졌다.
"뭐.."
탕!
내가 부러진 검을 들고 있을 때 뒤에서 그 여자애가 저격 총으로 미르트를 죽였다.
"뭐야? 벌써 검이 부러진 거야?"
"어.. 그런 거 같아.. 얼마나 낡은 검을 준거야?"
여자애는 내게 일단 도시로 돌아가서 무기를 바꾸자고 말했고, 나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렇게 급히 다시 도시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콰앙!!
돌아가던 도중 뭔가 우리 앞에 떨어졌다.
연기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뭐..뭐야?"
"안 좋은 예감이 들어. 그냥 가자."
나는 그 여자애에게 돌아가자고 재촉 했지만 그 여자애는 그 자리에 멈춰있었다.
왜 안 가는 거지? 뭔가 확인해 보려고 그러는 건가?
그때 연기 속에서 거대한 발톱 같은 게 날아왔다.
"..!"
간신히 허리를 숙여 그 발톱을 피하고 앞을 봤더니..
교과서에서 그림과 글로만 봤던 그 괴물이 내 앞에 서 있었다.
"진짜 말도 안돼.. 5급이잖아.."
교과서로 봤었다.
덩치가 조금 있고, 양 쪽 어깨에 뿔이 나 있으며 고릴라와 사자의 형태를 교묘하게 결합한 형태..
히스탄..!
저런 걸 어떻게 이겨! 심지어 검도 부러졌는데..!
내가 그 자리에서 벗어 날려고 할 때였다.
탁.
그 여자애가 나를 그 괴물 쪽으로 밀쳤다.
"어..?"
나는 중심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 여자애는 나에게 미소를 지었다.
"안됐네. 그러니까 왜 검을 선택했어."
뭐..?
그 여자애는 그렇게 말하고 나를 버리고 뒤도 안 돌아 보고는 뛰어갔다.
"잠.. 잠시만..!!"
내가 일어 날려고 할 때 뒤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이런.. 미친..
그때 깨달았다.
검을 쓰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방해이며, 불필요한 존재라고.
"크아아아!!"
히스탄은 괴성을 지르며 다시 발톱으로 공격해왔고, 나는 부러진 검으로 그 발톱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그 검은 발톱에 맞고 완전히 부서져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됐으며 나는 그 발톱에 맞아 멀리 날아갔다.
"쿨럭..!"
입에서는 피가 나오기 시작했고, 나는 손으로 피를 닦아냈다.
"젠장.. 5급은 커녕 6급도 상대 안 해봤는데..!"
나는 뒤를 돌아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쪽은 더 깊숙이 들어가는 쪽.
히스탄이 도시 쪽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어 도시로는 갈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더 안쪽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히스탄 말고 또 다른 새크리 파이스들도 만나겠지만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내 첫 사냥을 이딴 식으로 시작할 줄이야.."
나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검을 무시하는 사람들, 내가 그 생각 베어 버리겠어.. 모두가 검을 다시 볼 수 있도록."
달리고 달려 나는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워서 앞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뒤에서 덤프트럭 같은 놈이 쫓아오는 데 달리 방법이 있겠는가.
앞이 잘 보이지 않았던 탓인지 밑을 미처 못 봐서, 나는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높은 곳은 아니어서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젠장, 오른쪽 팔이.."
발톱에 맞은 충격에 모자라 떨어진 충격으로 오른쪽 팔을 잃었다.
부러진 것은 아니지만 움직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것보다 절망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동굴의 벽면에 몸을 기대었다.
"검이 좋아서.. 그냥 단지 좋아서 검을 고른 거 뿐인데.. 도대체 다들 왜 그래..?"
내 눈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흘렀다. 억울해서, 나를 무시했던 사람들이 너무 미워서.
[정말 당신은 검을 좋아하시는군요.]
그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뭔.."
[아, 놀라셨나요? 죄송합니다.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뭐야, 어디서 들리는 거지? 머리 속에서 그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은데..
[저는 희성이라고 해요. 이 동굴에 봉인되어 있었죠. 사람을 보는 건 오랜만 이네요.]
"여기가 무슨 판타지 세계야?"
희성 이라고 하는 애는 피식 웃었다. 뭐가 웃겨서?
[하하, 판타지 세계라. 그럼 저 외계인은 어떻게 설명 할 거죠?]
어라, 그렇긴 한데.. 이걸 뭐라 하지..
[새크리 파이스.. 저는 그들이 지구에 오기 전부터 이곳에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이곳에 떨어진 것이지만.]
떨어졌다고? 나랑 비슷하게 동굴에 떨어진 느낌인가..
[절 못 믿는 것은 이해를 합니다. 하지만 전 500년 때부터 지구의 역사를 봐 왔습니다.]
"그래서? 너가 나한테 말을 건 이유가 있을 거 아냐."
[네. 당신이 제 봉인을 풀어 줬으면 좋겠습니다.]
뭐? 내가? 그 봉인을 어떻게..
[앞을 보세요. 바닥에 꽂혀있는 검이 하나 있을 겁니다.]
희성의 말대로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진짜 땅에 검 한 자루가 박혀 있었다.
푸른색으로 빛나는 검이었다.
[검을 잡으세요.]
나는 반신반의 하며 검을 잡았다.
"이거 안 빠지는데..?"
[마음 속으로 '위칼리오스' 라 말하면 뽑힐 거에요.]
위칼리오스? 진짜 무슨 마법이냐..
일단 어떻게 하든 죽을 테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손을 뻗고 위칼리오스 라고 외쳤다.
그러더니 손에서 번쩍하는 빛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강한 빛에 눈을 감아버렸다.
빛이 사라지고 나는 천천히 눈을 떠 손을 확인해보았다.
내 손에는 어느새 사슬로 감긴 검이 하나 들려있었다.
"뭐..뭐야.. 이게 어떻게 된.."
[제대로 됐나 보네요. 당신이 들고 있는 검이 바로 저입니다. 정확히는 제 영혼이 갇혀 있는 검이지만.]
응? 영혼?
[봉인을 해제하기 전에 한 가지 말해 둘 게 있습니다.]
"뭔데?"
[전 봉인이 풀리자 마자 본래 제 몸으로 돌아갈 거에요. 그리고 그 검은 완전히 당신의 검이 되겠죠.]
어라, 잠시만.
[이미 당신이 이 검을 뽑았을 때부터 봉인은 풀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10초 정도 남았네요.]
"잠깐! 난 아직 물어볼 게..!"
검에 갇힌 영혼은 또 다시 웃음을 지었다.
[검을 사랑하고 아끼는 분은 정말 오랜만이네요. 제가 본래 몸으로 돌아가면, 그 몸으로 지구에 찾아 뵙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사슬이 감긴 검이 빛이 나며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물론 검에 감아져 있던 사슬도 전부 사라졌고.
"정말 이게 어떻게 된 건지.."
내가 당황하며 검을 보고 있을 때, 위에서 히스탄이 떨어졌다.
"쳇! 여기까지 쫓아 온 건가..!"
히스탄은 괴성을 지르며 내게 달려왔다.
"이제 검도 생겼고, 어디 한번 해보지 뭐."
나는 검을 들고 달려오는 히스탄을 벴다.
그 검은 신기하게도, 크기에 맞지 않게 묵직했고, 날도 잘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총 외에 어떤 무기도 새크리파이스에게 해를 입힐 수 없었는데, 검이 그에게 상처를 냈으니 나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아마 이 광경을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놀랐을 것이다.
"말도 안돼.. 이 검.. 도대체.."
검은 내 마음을 알아 주듯 내 손을 따랐다.
나는 검을 믿고 한 손으로 히스탄에게 달려 들었다.
"캬오오!"
30분 간 치고 받고 한 끝에 히스탄이 먼저 땅에 쓰러졌다.
"헉.. 허억.."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그리고 총으로도 잡지 못했던 그 괴물을, 내가 잡았다.
그것도 혼자서.
솔직히 말해서 불가능 할 줄 알았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고, 나 또한 그런 사람들 곁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쓸데없는 걱정일 뿐이었다.
검은 절대 약한 도구가 아니다.
".. 아냐, 도구가 아니지."
나는 푸른색으로 빛나는 검을 바라보았다.
검도 하나의 '무기' 다.
이 세계는 멸망했다.
모든 무기가 쓸모 없어지고 총만 사용하게 된 세상에서,
검으로 성공하는 조건을 얻었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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