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알겠어요. 우선 여기서 나가요. 이 일은 그 다음에 생각래도 되니까."
그 여자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길래 나를 돕는거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 기억엔 없는 사람.
친구도, 가족도, 아는 동생도 전부 죽었을 텐데.
갑작스럽게 이곳을 찾아와 나를 살리려 한다니.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싶었다.
"조심해야 하는 게… 여기 강한 사람 많아ㅅ…"
감옥 밖으로 나가면서, 이 여자도 분명 몰래 들어왔을 거라 생각했다.
그야 당연히 실험실까지 가는 데도 40명 정도 사람들을 봤으니까 말이다.
나는 당연히 이 사람이 그 40명의 눈을 띄지 않고 들어온 줄 알았다.
"후훗. 이미 다 끝냈어요."
그 여자는 강했다.
40여 명 되는 사람들을 전부 끝내놓다니.
도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무엇을 위해 나를 구하려하는 걸까.
나는 쓰러진 사람들 옆으로 조심히 지나갔다.
죽지는 않았다.
그저 기절했을 뿐.
E계층은 실험체를 감시하는 공간이라 약한 사람은 한 명도 없을텐데.
"잠시만요…."
"네?"
나를 구하러 온 건 고맙지만, 한 편으로 그녀가 무서워 지기 시작했다.
만약 그녀를 따라가, 또 다시 실험체로 쓰일까봐.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였다.
그녀도 자신을 향해 떨고있는 몸과 흔들리는 눈을 본 것일까.
나를 바라봤다.
"절 찾으러 오셨다면 제가 영생을 사는 것도 알고 있으시겠죠…."
"…네."
영생의 단어를 꺼내자 표정이 굳어지는 그녀.
정말로 이 사람은 나를 실험에 쓰기위해 여기서 구출하려는 걸까?
마스터라는 건 그냥 나를 속이기 위한 거짓이 아니었을까?
"마스터, 일단 하나만 짚고 넘어갈께요."
"네…?"
"마스터는 제가 두려우신 건가요?"
은색으로 반짝이는 검과 총, 쓰러져있는 사람들과, 그녀의 굳은 표정을 보고
조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요. 마스터… 전 그저 마스터와 다시 웃으며 얘기하고 싶어서…."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 사람의 표정이 굳은표정이 아니라, 슬픈 표정이었다는 것을.
난 기억을 잃은 걸까?
난 정말로 마스터라는 이름을 갖고 있던 사람일까?
아무것도 모르겠다.
혼란스럽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숙였다.
몇년 동안 이곳에 갇혀있다 보니 기억에 왜곡이 생긴 것인지.
아니면 기억을 잃어버린 것인지.
지금의 나로썬 알 수 없었다.
"마스터, 아니 신현님."
"어? 어떻게 제 이름을…."
"어차피 E계층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쓰러트렸으니, 잠시 쉬었다 갈까요?"
"아… 네."
E계층의 모든 사람…?
그러고보니 대놓고 걷는데도 마주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다시 한번 이 사람이 얼마나 강한 지를 깨닫고 조용히 그녀를 따라갔다.
"일단 여기가 제일 안전하겠네요."
그렇게 도착한 곳은 상자들이 가득한 창고였다.
이곳도 피냄새는 났지만, 다른 곳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사람들의 시체도 안 보이고.
"후우…."
그녀는 검과 총을 내려놨다.
이곳이 어둡기도 하고 뭔가를 둘러 볼 상황이 아니었어서
그녀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찰랑이는 은색 머리카락, 진실만을 얘기할 것 같은 초록색 눈.
도톰한 입술과 매끄러운 뺨.
세계제일의 미인이라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이런 사람이 나를 왜?
"마스터. 그럼 제 능력도 기억하지 못하시겠네요?"
"네? 뭐… 그렇죠?"
신인류로 태어나 고유 능력을 가지고 스피릿에 맞서 싸운다.
능력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없다.
무조건 하나는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영생이란 능력을 가진 나 처럼 쓸데없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제 능력은 영혼의 결속과 화염저항이에요."
"두가지…?!"
능력을 하나만 가지는 게 보통 신인류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능력을 두개씩 가지고 태어나는 신인류들이 있다.
아마 1000명 중에 한명 꼴이었지.
그렇게 1000명 중 한 명으로 당첨된 사람들은 '이터니티' 라고 불린다.
전세계에 이터니티는 100명을 넘지 않으며 신인류 50명도 혼자서 가뿐히 해치워 버릴 정도로 강하다고 알려져있다.
"실제로 이터니티를 뵐 수 있다니… 좀 영광이네요."
"마스터…"
영생이란 쓸데없는 능력을 가져 고통 받는 반면, 세상에게 보호받으며 살 수 있는 게 나는 부러웠다.
나도 영생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됐을 수도.
"그나저나 영혼의 결속은 뭐죠?"
"아, 영혼의 결속…"
순간 그 여자의 볼이 조금 빨개졌다.
무엇 때문에 볼이 빨개진걸까?
"영혼의 결속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능력이에요."
"음… 그게 무슨 말인지."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그러니까… 저와 영혼의 결속을 맺은 상대는 서로의 감정과 감각을 공유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높히고, 딱히 치료를 하지않아도 금방 회복 된다는 거죠."
"헤… 좋은 능력인데요? 그럼 영혼의 결속을 맺은 사람은 있나요?"
그녀는 조심히 고개를 저었다.
아직 없는 모양인건가.
그래도 능력을 높히고 자연스럽게 치유도 된다면 이터니티에겐 좋은 조건이 아닌가?
"역시 기억이 없는 것 같네요. 마스터…."
그녀는 내 손을 잡았다.
상처로 가득하고 굳은 살이 생긴 못생긴 내 손을.
"아…."
"걱정마세요. 이곳에서 나가면 기억을 되찾게 해줄께요."
그녀는 진심이었다.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닌 것 같았다.
내 이름도 알고, 능력도 알고 있으니 당연하겠지.
"그전에… 이름 좀 알 수 있을까요? 제가 기억을 잃었는 지 안 잃었는 지는 모르지만 이름을 모르니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어서…."
"아! 그렇네요. 제 이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