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욱!
"…! 피해요!"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 여자는 갑작스럽게 날아오는 공격을 나를 밀쳐내며 피했다.
얼마나 반사신경이 뛰어난 것일까.
언제나 주변을 경계할 정도로 강한걸까.
이 생각들이 단 1초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촤악!
"윽…."
"캬하하! 침입자들 발견!"
귀가 찢어질듯히 소름끼치게 웃는 사람.
우리에게 날아온 공격은 단 한발의 총알.
그 사람은 도끼와 칼이 장착된 기계를 등에 짊어 매고 있었기 때문에, 총알을 쏠 무기는 없었다.
"집중해라. 저 여자는 이터니티니까."
그렇다면 그 남자 뒤에 있는 저 사람이겠지.
깔끔한 정장에 반짝이는 은색 손목시계.
누가봐도 격식을 갖춘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봐도 우리의 적.
"마스터! 제 뒤로 오세요!"
"푸핫! 방금 들었어? 마스터래, 마스터!"
나는 서둘러 그녀의 뒤로 갔다.
과연 이 사람 뒤에 있는 다고 안전할까.
오히려 나를 지키며 싸우는 건 그녀의 힘을 더 망칠 뿐인데.
"혼자서 E구역에 들어와 모두를 전멸시킨 건 칭찬하지. 허나 왜 그 실험체를 데려가려는 거지?"
"하…! 마스터는 실험체가 아니에요. 당신들 따위가 함부로 실험체라고 말해선 안되는 분이라고요."
이 여자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나를….
"어차피 이곳이 무덤이 될테니 상관 없잖아? 그냥 죽여버리자고!"
"후… 그래야 할 것 같군."
기계를 짊어매던 남자는 기계를 움직이기 시작했고,
격식을 차리던 남자는 우리를 향해 총을 겨눴다.
그녀도 총과 검을 들었다.
왠지 모를 숨막히는 분위기에 안그래도 숨을 잘 못 쉬던 나에겐 더 가혹했다.
그렇게 만화에서나 볼 법한 정적이 몇 초 동안 흘렀다.
쉬익.
먼저 공격을 시작한 건 기계를 짊어맨 남자였다.
빠른 속도도 도끼와 칼을 휘두르며 그녀에게 공격을 시작했다.
탕!
동시에 격식을 차린 남자도 총을 쏘기 시작했다.
나는 총소리에 겁을 먹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그녀는 겁먹지 않았다.
날아드는 도끼와 칼을 쳐내며, 총알도 피했다.
그리곤 동시에 공격도 가했다.
"캬하하! 좀 하잖아!"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니 눈이 조금은 어둠에 익숙해져, 도끼와 칼을 휘두르던 남자의 명찰이 보이기 시작했다.
[과학자, □□]
이름까지 보이진 않았지만, 과학자라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주저앉아 그저 싸우는 걸 구경할 수 밖에 없었다.
수많은 총성과 칼소리가 오갔다.
동시에, 그녀가 조금씩 밀리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총알에 스치고, 도끼와 칼에 베이는데도 묵묵히 싸우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나를 버리고 간다면 충분히 도망갈 수 있었을 텐데. 어째서….
푹!!
"…윽!"
가장 피하고 싶던 상황이 왔다.
아무리 이터니티 라지만 강한 사람을 동시에 두명을 상대하는 것은 어려웠던 것일까.
그녀의 왼쪽 배가 칼을 허용하고 말았다.
바닥에는 그녀의 피가 흘러내렸다.
"그러고보니 말을 안했군."
손을 얼굴에 가져가는 격식을 차린 남자.
그리곤 손을 왼쪽으로 넘기더니,
그 남성의 표정이 바뀌었다.
"우리 둘다 이터니티라는 사실을!"
남성의 표정은 기쁨이었다.
그리곤 쓰던 총을 버리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검을 들었다.
"이터니티…."
한 명의 이터니티가 두 명의 이터니티를 이긴다니.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얘기다.
"크윽…."
그녀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아직도 그녀의 몸에선 검붉은 피가 흐르는 중이었다.
"기뻐해야 겠구나! 이터니티를 잡았으니!"
표정 뿐만 아니라 표정까지 바뀌었다.
혹시 이 남자는….
"설마 했는데 이중인격인가…."
"이중인격?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그 남자는 다시 손을 얼굴에 갖다 대더니 이번엔 손을 위로 올렸다.
순식간에 또 표정이 바뀌었다.
이번엔 화가난 표정이었다.
"난 다중인격자다. 한낮 이중인격자랑 비교하지 말란 말이다."
그 남자는 무릎을 꿇은 그녀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았다.
그녀가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나를 지키는 데도, 나는 온몸이 떨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잘도 전부 쓰러트렸더구나."
"마스터…."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
순간 기억속의 가장 안쪽에서, 어떤 한가지가 떠올랐다,
'넌 앞으로 실험체다. □□□의 이름을 잊어라. 넌 가족과 함께 이곳에 잡혀 가족만 죽고 혼자 살아남은 거다.'
뭐지? 이 기억은?
순간 들리지 않은 그 단어가 제일 중요한 단어 같은데….
"죽어라."
칼을 그녀의 목에 가져다 대는 남자.
몸과 마음이 나는 따로 놀았다.
아무리 무서워도 구해야 된다는 생각과, 두려움을 기억하는 몸이 내 안에서 갈등을 일으켰다.
심지어 멱살이 잡히면서도 마스터를 부르며 나를 보는 그녀를 더욱 죽게 놔둘 수 없었다.
'움직여.'
고통스럽다.
'움직여'
자츰 다리의 떨림도 조금 줄어들었다.
'움직이란 말이야!'
타악!
떨리는 다리로 순식간에 달려가 그 남자의 손에서 그녀를 떼어냈다.
"푸핫! 지금 실험체한테 뺏긴 거야?"
"설마 실험체아 움직일 줄은 몰랐다. 세뇌가 덜 되었던 건가."
몇년이 지났음에도 고통은 익숙해 지지 않는다.
몇년이 지났음에도 반항하는 것은 두렵다.
하지만 몇년이 지났음에도 인간이란 이름을 포기한 적은 없었다.
나는 남자의 손에서 떼어낸 그녀를 업고 도망쳤다.
그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몰랐지만, 계속 달렸다.
그렇게 내가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질 쯤이었다.
"…푸훗!"
과학자는 웃음을 터트렸다.
"어이어이! 그쪽은 막힌 길이라고!"
"후, 상관없다. 빨리 처리하러 가지."
알고있다.
E구역에서 나갈 길은 D구역으로 올라갈 수 있는 통로 하나뿐이라는 것을.
심지어 그 통로는 그 사람들이 막고 있었다.
그냥 아주 잠깐 목숨을 부지할 뿐이었다.
나는 영원히 이 지옥을 나갈 수 없는 운명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