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벅.
지하 E계층 중앙관리부.
가장 위에 있는 A계층부터, 가장 낮은 F계층까지.
E계층은 가장 아래서 두번째 층이었다.
그곳은 연구를 목적으로 사용되는 실험체들의 층.
가장 중요한 실험체들이 모여있는 곳이라, 적들의 공격에도 쉽게 뚫리지 않는다.
하지만.
"크악!!"
"컥!"
그녀가 E계층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곳은 그저 그곳을 지킬 사람없는 층밖에 되지 않았다.
한 개의 장검과, 한 개의 소총 만으로, E계층의 모든 사람들을 압박하고 거침없이 걸어갔다.
그녀는 마치 거센 폭풍과도 같았다.
몇 백명이 공격해와도 끄덕없는 자연의 태풍처럼.
그만큼 그녀는 강했다.
"…."
하지만 그녀도 사람은 사람이었던 지라, E계층에 가득 차있는 피냄새와, 곰팡이 냄새는 버티기 힘들었다.
E계층은 본래 맨 정신으로는 버틸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코를 찌르는 냄새와, 사람들의 시체, 바닥과 벽에 넓게 퍼져있는 핏자국들.
그런 곳을 그저 무기 두 개만 가지고 온 그녀.
그것만 봐도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발… 살아만 있어줘요."
넓이로 따지자면 작은 마을의 규모정도 되는 계층인데, 그녀는 그 곳에서 누구를 찾으려는 것일까.
A계층부터 D계층까지 한번에 건너뛰고 E계층에 간 그녀는, 오직 한 사람을 찾기위해 이 곳에 발을 들인 것이었다.
사이렌이 울릴 틈도 없이 고요하고 조심스럽게 한 명씩 처리해 나가는 그녀.
그리고 곧, 그녀는 도착할 수 있었다.
가장 어둡고, 쇠사슬이 천장에 매달려 기괴하게 흔들리고, 또 가장 냄새가 짙은 곳에.
"…!"
쇠사슬 사이로 보이는 감옥.
그 안에는 한 남자가 몸을 떨며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E계층에서 영생의 능력을 가져 유일하게 살아남은 실험체, '신현'이었다.
1화 - 고통과 침묵의 지하(1)
몇 년째 실험만 당하던 이 곳엔, 항상 두려운 발소리들이 있었다.
무겁고 잔혹한 발소리가.
항상 그 소리가 들릴 때면 감옥의 구석에 앉아 제발 오지 않기를 빌었다.
아무리 고통을 느껴도, 고통에 익숙해지지는 않았으니까.
"끄아아악!!"
매일 전기로 지지고, 칼로 찌르고 베며, 총알을 온 몸에 박으며, 시도때도 없이 뼈를 부러뜨리고.
1주일에 6번은 실험의 고통을 받았다.
그래서 이젠 발소리만 들려도 온 몸이 경련을 일으키며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무언가 달랐다.
무겁고 잔혹한 발소리가 아니었다.
차분하고, 조용하며, 잔혹함을 담은 발소리가 아니었다.
분명 이곳에 그런 발소리를 가진 사람은 없을텐데.
분명 이곳에 나를 실험체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텐데.
그 생각을 하면서도, 떨리는 몸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발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내 앞에 모습을 들어냈다.
"…마스터…!"
칼 한 자루와 총 한개를 가진 여자였다.
곳곳에 가시가 박혀있는 채찍도, 테이저건도 없었다.
그녀는 눈물을 보이며 감옥의 문을 열며 나를 안았다.
"마스터…! 살아계셨군요! 정말 다행이에요!!"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갑자기 내게 마스터라 하지를 않나, 갑자기 안겨들지를 않나.
그저 혼란할 뿐이었다.
나는 이 여자를 과거에 본 적도 없고, 관련이 1도 없는 사람인데.
"…."
하지만… 오랜만에 따스함을 느꼈다.
뜨거운 불길이 아닌, 사람의 따뜻함을.
눈물을 흘리며 나를 안고있는 여자를 보고 있으니,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이 지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에 걸린 쇠목걸이에, 녹슨 수갑. 온 몸의 잔인한 상처까지… 마스터… 미안해요. 너무 늦게 와서…."
"잠깐…콜록!"
오랫동안 사람들과 얘기하기는 커녕 말을 한적도 없었기에, 목이 굉장히 쓰라렸다.
물도 못 마시고, 3일에 한번씩 딱딱한 빵만 한번씩 나왔으니까.
그래서 항상 감옥 구석에 고여있는 썩은 물을 마시며 목을 축였다.
"여기 물 있어요! 이거밖에 못 챙겨왔지만 이거라도 드세요!"
나는 그 여자가 준 물에 고개를 끄덕여 감사를 표하고 조심스럽게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얼마만에 먹는 물인지, 눈물이 다 나왔다.
16살부터 몇년 동안 먹지 못했던, 깨끗한 물이었으니까.
"흑… 흐윽…."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물을 마셔도 목이 따가웠지만, 그래도 마셨다.
눈물이 나와도 마셨다.
"마스터…."
어느새 물을 다 마셔버렸다.
나는 어찌할 줄을 몰라 고개를 숙였다.
물을 다 마셨으니 화 났겠지….
"아니에요… 오히려 이 정도 물 밖에 준비 못한 제가 미안하죠…."
그 여자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목도 어느 정도 괜찮아졌고, 나는 조금씩 입을 열 수 있게 되었다.
"고마워요… 깨끗한 물을 마신 건 오랜만 이었어요."
"…! 아니에요!"
손사래를 치는 그 여자에게, 나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죄송해요. 전 당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왜 마스터라 불리는 지도 모르겠어서…."
"네…?"
역시 당황한 표정.
구하러 왔다는 건 말을 안해도 알게 됐지만, 왜 마스터라 불리는 지는 알 수 없었다.
내 기억에 이 여자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건가요…"
"네…"
몇 년동안 과거의 일이 기억나지 않는 것들은 많았지만, 내 이름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잊지않고 기억한다.
만약 내가 기억하지 못한 게 있더라면, 그건 그냥 스쳐지나간 사람들의 얼굴 뿐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