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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793 추천 : 0 글자수 : 4,337 자 2024-10-13
이현우의 세상은 매트 위에서 시작되고 끝났다. 질끈 동여맨 검은 띠, 목덜미를 간질이는 빳빳한 유도복 깃, 그리고 온몸으로 부딪혀 오는 상대의 숨결과 무게. 고등학교 유도부의 에이스, 전국 대회 우승자라는 화려한 수식어는 그에게 익숙한 공기와 같았다. 해 질 녘 체육관 창문으로 스며드는 주황빛 노을 아래, 거친 숨을 몰아쉬며 땀방울을 쏟아내는 순간이야말로 현우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그의 근육은 고된 훈련으로 다져진 단단한 갑옷이었고, 매서운 눈빛은 오직 승리를 향한 집념으로 불타올랐다. 주변의 시선이나 환호는 배경 소음일 뿐, 현우의 목표는 언제나 다음 경기, 더 강한 상대, 그리고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친구들과 떠들썩하게 몰려다니기보다는 묵묵히 개인 훈련에 몰두했고, 그의 세계는 유도라는 단단한 벽 안에서 완벽하게 구축되어 있었다.
반면 김진수의 세계는 책갈피 사이에 존재했다. 사각거리는 종이 넘기는 소리, 희미한 잉크 냄새, 그리고 지식의 바다를 유영하는 고요한 즐거움. 그는 교실 창가 맨 앞자리에서 늘 조용히 허리를 펴고 앉아 수업에 집중했다. 칠판 위 분필 소리와 선생님의 목소리가 그의 세상 대부분을 차지했고, 쉬는 시간에도 두꺼운 전공 서적이나 문제집에서 눈을 떼는 법이 없었다. '범생이', '공부벌레'.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들은 진수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는 타인의 평가보다는 스스로 설정한 학업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서 더 큰 만족감을 느꼈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먼저 다가가 말을 거는 법이 드물었고, 시끄럽고 활동적인 것은 본능적으로 피하는 편이었다. 특히 땀 흘리고 부딪히는 운동은 그에게 가장 낯설고 어려운 영역이었다. 그의 관심사는 오직 논리적인 사고와 명확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었다.
이렇듯 전혀 다른 궤도를 돌던 두 행성, 현우와 진수가 충돌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워 보였다. 한 명은 뜨거운 태양 아래 힘차게 뛰어노는 존재였고, 다른 한 명은 서늘한 도서관 그늘 아래 사색에 잠기는 존재였다.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을 것 같던 두 사람의 일상에 예상치 못한 균열이 생긴 것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어느 체육 시간이었다.
"자, 이번 학기 체육 수행평가는 2인 1조 유도 기본기 익히기다. 조는… 여기 명단대로. 이현우, 김진수. 둘이 한 조."
체육 선생님의 무심한 발표는 조용하던 체육관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몇몇 아이들이 놀란 듯 수군거렸고, 그 소란 속에서 진수는 숨을 헙 들이켰다. 심장이 바닥까지 쿵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현우라니. 학교의 아이돌이자,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 진수는 현우를 멀리서 몇 번 본 적은 있었다. 운동장에서 훈련하는 모습, 복도에서 친구들과 웃으며 지나가는 모습. 그때마다 느꼈던 것은 막연한 거리감과, 어쩌면 약간의 위축감이었다. 저렇게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과 자신이 짝이 되어 유도복을 입고 땀을 흘려야 한다니, 상상만으로도 온몸이 뻣뻣하게 굳는 것 같았다. 체력적으로 약한 자신을 배려한 선생님의 결정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부담감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현우 역시 의외라는 듯 잠시 눈썹을 찌푸렸다. 김진수. 이름은 들어본 적 있었다.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다는, 안경 너머로 늘 책만 들여다본다는 그 조용한 아이. 유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였다. 하지만 현우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저 체육 시간 동안 잠시 맡게 된 파트너일 뿐이었다. 자신의 훈련 스케줄에 비하면 체육 수업은 가벼운 몸풀기 정도였고, 누구와 짝이 되든 크게 상관없었다. 그는 무심하게 진수 쪽을 한번 흘깃 보고는 다시 스트레칭에 집중했다.
첫 훈련 날, 넓은 체육관은 유도복을 입은 학생들의 활기와 기합 소리로 가득 찼다. 진수는 어색하게 빌려 입은, 몸에 맞지 않아 헐렁한 유도복 자락을 만지작거리며 현우의 곁에 섰다.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현우의 단단한 기운과 은은하게 풍기는 땀 냄새에 진수는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먼저 말을 걸어야 할지, 가만히 있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사이, 현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준비 운동부터 하자."
낮고 담담한 목소리였다. 현우는 익숙한 동작으로 몸을 풀기 시작했고, 진수는 서툴게 그의 동작을 따라 했다. 팔을 뻗고, 다리를 늘리고, 허리를 돌리는 기본적인 동작조차 진수에게는 삐걱거리는 기계처럼 부자연스러웠다. 현우는 그런 진수를 곁눈질로 슬쩍 보았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루틴을 이어갈 뿐이었다. 진수는 현우의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태도가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너무 형편없어 보일까 봐 조바심이 났다.
준비 운동이 끝나고, 드디어 유도 기본 자세를 배울 차례가 되었다. 현우는 진수의 앞에 마주 서서 시범을 보였다.
"유도는 기본 자세가 중요해. 다리는 어깨너비보다 조금 넓게 벌리고, 무릎은 살짝 굽혀서 무게 중심을 낮춰야 해. 허리는 꼿꼿하게 펴고. 시선은 정면. 자, 이렇게."
현우의 설명은 군더더기 없이 명료했다. 그의 몸은 마치 오랫동안 길들여진 것처럼 자연스럽게 자세를 취했다. 낮게 중심을 잡은 안정적인 자세, 힘이 실린 어깨와 등 근육의 움직임이 진수의 눈앞에서 펼쳐졌다. 진수는 숨을 가다듬고 현우의 설명과 시범을 따라 해 보려 애썼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몸은 제멋대로였다. 다리는 후들거렸고, 중심은 자꾸만 한쪽으로 쏠렸다. 몇 번이나 휘청거리며 넘어질 뻔하자, 옆에서 지켜보던 현우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번졌다. 악의 없는, 그저 어설픈 모습이 귀엽다는 듯한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그 웃음소리에 진수의 얼굴이 화르르 달아올랐다. 창피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자… 잘 안 되네. 미안해."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예상과 달리 현우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괜찮아. 처음엔 다 그래. 넘어지는 걸 두려워하면 안 돼. 유도는 넘어지는 것부터 배우는 거야. 다시 해보자. 천천히."
현우는 진수의 자세를 바로잡아주기 위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의 손이 진수의 어깨와 허리에 가볍게 닿았다. 예상치 못한 접촉에 진수는 움찔했지만, 현우의 손길은 단호하면서도 섬세했다.
"어깨에 힘 빼고. 허리를 좀 더 세워봐. 그렇지."
현우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진수는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그의 말에 집중하려 애썼다. 현우의 지도 아래 몇 번 더 자세를 연습하자, 아까보다는 조금 더 안정적으로 서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아주 작은 발전이었지만, 진수에게는 큰 성취처럼 느껴졌다.
그날 이후, 체육 시간은 진수에게 더 이상 피하고 싶은 시간이 아니었다. 여전히 긴장되고 어색했지만, 그 속에는 이전에는 없던 미묘한 설렘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매주 현우와 마주하고, 그의 지도를 받고, 아주 조금씩이나마 유도 기술을 익혀가는 과정은 낯설지만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현우는 생각보다 훨씬 인내심이 강했고, 가르치는 데에도 소질이 있었다. 진수가 이해하기 쉬운 말로 설명해주었고, 잘 되지 않을 때도 다그치거나 비웃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진수가 작은 동작 하나라도 성공하면,
"오, 방금 좋았어!"
하고 칭찬해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진수는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느꼈다.
현우 역시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체육 시간에 잠시 맡은 파트너'였던 김진수가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운동 신경은 젬병이었지만, 한번 가르쳐준 것은 어떻게든 해내려고 노력하는 진지한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현우는 진수가 무언가에 집중할 때 보이는 깊은 눈빛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평소에는 안경 너머로 조용히 가라앉아 있는 듯한 눈동자가, 유도 자세를 익히거나 현우의 설명을 들을 때는 놀라울 정도로 반짝였다. 그 눈빛 속에는 현우가 경험해보지 못한 지적인 세계, 섬세하고 조용한 열정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땀과 함성으로 가득 찬 자신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고요하지만 단단한 진수만의 세계가 그를 끌어당겼다.
어느덧 두 사람은 체육 시간 외에도 복도에서 마주치면 어색하게나마 눈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현우는 가끔 진수가 도서관 창가에 앉아 책에 몰두해 있는 모습을 보았고, 진수는 운동장에서 땀 흘리는 현우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곤 했다. 전혀 다른 두 세계가 체육관 매트 위에서 만나, 서로에게 아주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유도복의 빳빳한 감촉 대신, 서로를 향한 낯설고도 풋풋한 감정이 마음속에서 조심스럽게 피어나고 있었다. 아직은 형태를 알 수 없는 설렘이었다.
반면 김진수의 세계는 책갈피 사이에 존재했다. 사각거리는 종이 넘기는 소리, 희미한 잉크 냄새, 그리고 지식의 바다를 유영하는 고요한 즐거움. 그는 교실 창가 맨 앞자리에서 늘 조용히 허리를 펴고 앉아 수업에 집중했다. 칠판 위 분필 소리와 선생님의 목소리가 그의 세상 대부분을 차지했고, 쉬는 시간에도 두꺼운 전공 서적이나 문제집에서 눈을 떼는 법이 없었다. '범생이', '공부벌레'.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들은 진수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는 타인의 평가보다는 스스로 설정한 학업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서 더 큰 만족감을 느꼈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먼저 다가가 말을 거는 법이 드물었고, 시끄럽고 활동적인 것은 본능적으로 피하는 편이었다. 특히 땀 흘리고 부딪히는 운동은 그에게 가장 낯설고 어려운 영역이었다. 그의 관심사는 오직 논리적인 사고와 명확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었다.
이렇듯 전혀 다른 궤도를 돌던 두 행성, 현우와 진수가 충돌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워 보였다. 한 명은 뜨거운 태양 아래 힘차게 뛰어노는 존재였고, 다른 한 명은 서늘한 도서관 그늘 아래 사색에 잠기는 존재였다.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을 것 같던 두 사람의 일상에 예상치 못한 균열이 생긴 것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어느 체육 시간이었다.
"자, 이번 학기 체육 수행평가는 2인 1조 유도 기본기 익히기다. 조는… 여기 명단대로. 이현우, 김진수. 둘이 한 조."
체육 선생님의 무심한 발표는 조용하던 체육관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몇몇 아이들이 놀란 듯 수군거렸고, 그 소란 속에서 진수는 숨을 헙 들이켰다. 심장이 바닥까지 쿵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현우라니. 학교의 아이돌이자,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 진수는 현우를 멀리서 몇 번 본 적은 있었다. 운동장에서 훈련하는 모습, 복도에서 친구들과 웃으며 지나가는 모습. 그때마다 느꼈던 것은 막연한 거리감과, 어쩌면 약간의 위축감이었다. 저렇게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과 자신이 짝이 되어 유도복을 입고 땀을 흘려야 한다니, 상상만으로도 온몸이 뻣뻣하게 굳는 것 같았다. 체력적으로 약한 자신을 배려한 선생님의 결정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부담감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현우 역시 의외라는 듯 잠시 눈썹을 찌푸렸다. 김진수. 이름은 들어본 적 있었다.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다는, 안경 너머로 늘 책만 들여다본다는 그 조용한 아이. 유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였다. 하지만 현우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저 체육 시간 동안 잠시 맡게 된 파트너일 뿐이었다. 자신의 훈련 스케줄에 비하면 체육 수업은 가벼운 몸풀기 정도였고, 누구와 짝이 되든 크게 상관없었다. 그는 무심하게 진수 쪽을 한번 흘깃 보고는 다시 스트레칭에 집중했다.
첫 훈련 날, 넓은 체육관은 유도복을 입은 학생들의 활기와 기합 소리로 가득 찼다. 진수는 어색하게 빌려 입은, 몸에 맞지 않아 헐렁한 유도복 자락을 만지작거리며 현우의 곁에 섰다.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현우의 단단한 기운과 은은하게 풍기는 땀 냄새에 진수는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먼저 말을 걸어야 할지, 가만히 있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사이, 현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준비 운동부터 하자."
낮고 담담한 목소리였다. 현우는 익숙한 동작으로 몸을 풀기 시작했고, 진수는 서툴게 그의 동작을 따라 했다. 팔을 뻗고, 다리를 늘리고, 허리를 돌리는 기본적인 동작조차 진수에게는 삐걱거리는 기계처럼 부자연스러웠다. 현우는 그런 진수를 곁눈질로 슬쩍 보았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루틴을 이어갈 뿐이었다. 진수는 현우의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태도가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너무 형편없어 보일까 봐 조바심이 났다.
준비 운동이 끝나고, 드디어 유도 기본 자세를 배울 차례가 되었다. 현우는 진수의 앞에 마주 서서 시범을 보였다.
"유도는 기본 자세가 중요해. 다리는 어깨너비보다 조금 넓게 벌리고, 무릎은 살짝 굽혀서 무게 중심을 낮춰야 해. 허리는 꼿꼿하게 펴고. 시선은 정면. 자, 이렇게."
현우의 설명은 군더더기 없이 명료했다. 그의 몸은 마치 오랫동안 길들여진 것처럼 자연스럽게 자세를 취했다. 낮게 중심을 잡은 안정적인 자세, 힘이 실린 어깨와 등 근육의 움직임이 진수의 눈앞에서 펼쳐졌다. 진수는 숨을 가다듬고 현우의 설명과 시범을 따라 해 보려 애썼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몸은 제멋대로였다. 다리는 후들거렸고, 중심은 자꾸만 한쪽으로 쏠렸다. 몇 번이나 휘청거리며 넘어질 뻔하자, 옆에서 지켜보던 현우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번졌다. 악의 없는, 그저 어설픈 모습이 귀엽다는 듯한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그 웃음소리에 진수의 얼굴이 화르르 달아올랐다. 창피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자… 잘 안 되네. 미안해."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예상과 달리 현우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괜찮아. 처음엔 다 그래. 넘어지는 걸 두려워하면 안 돼. 유도는 넘어지는 것부터 배우는 거야. 다시 해보자. 천천히."
현우는 진수의 자세를 바로잡아주기 위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의 손이 진수의 어깨와 허리에 가볍게 닿았다. 예상치 못한 접촉에 진수는 움찔했지만, 현우의 손길은 단호하면서도 섬세했다.
"어깨에 힘 빼고. 허리를 좀 더 세워봐. 그렇지."
현우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진수는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그의 말에 집중하려 애썼다. 현우의 지도 아래 몇 번 더 자세를 연습하자, 아까보다는 조금 더 안정적으로 서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아주 작은 발전이었지만, 진수에게는 큰 성취처럼 느껴졌다.
그날 이후, 체육 시간은 진수에게 더 이상 피하고 싶은 시간이 아니었다. 여전히 긴장되고 어색했지만, 그 속에는 이전에는 없던 미묘한 설렘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매주 현우와 마주하고, 그의 지도를 받고, 아주 조금씩이나마 유도 기술을 익혀가는 과정은 낯설지만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현우는 생각보다 훨씬 인내심이 강했고, 가르치는 데에도 소질이 있었다. 진수가 이해하기 쉬운 말로 설명해주었고, 잘 되지 않을 때도 다그치거나 비웃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진수가 작은 동작 하나라도 성공하면,
"오, 방금 좋았어!"
하고 칭찬해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진수는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느꼈다.
현우 역시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체육 시간에 잠시 맡은 파트너'였던 김진수가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운동 신경은 젬병이었지만, 한번 가르쳐준 것은 어떻게든 해내려고 노력하는 진지한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현우는 진수가 무언가에 집중할 때 보이는 깊은 눈빛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평소에는 안경 너머로 조용히 가라앉아 있는 듯한 눈동자가, 유도 자세를 익히거나 현우의 설명을 들을 때는 놀라울 정도로 반짝였다. 그 눈빛 속에는 현우가 경험해보지 못한 지적인 세계, 섬세하고 조용한 열정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땀과 함성으로 가득 찬 자신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고요하지만 단단한 진수만의 세계가 그를 끌어당겼다.
어느덧 두 사람은 체육 시간 외에도 복도에서 마주치면 어색하게나마 눈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현우는 가끔 진수가 도서관 창가에 앉아 책에 몰두해 있는 모습을 보았고, 진수는 운동장에서 땀 흘리는 현우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곤 했다. 전혀 다른 두 세계가 체육관 매트 위에서 만나, 서로에게 아주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유도복의 빳빳한 감촉 대신, 서로를 향한 낯설고도 풋풋한 감정이 마음속에서 조심스럽게 피어나고 있었다. 아직은 형태를 알 수 없는 설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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