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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76 추천 : 0 글자수 : 4,157 자 2025-05-13
단풍이 곱게 물든 늦가을의 주말 오후, 현우가 운영하는 유소년 유도 클럽 체육관에는 평소보다 더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아이들의 거친 숨소리가 가득했다. 다음 달로 다가온 지역 유소년 유도 대회를 앞두고 특별 훈련이 한창이었기 때문이다. 현우는 매트 위를 끊임없이 오가며 아이들의 자세를 잡아주고, 격려의 말과 함께 때로는 날카로운 지적도 잊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유독 한 아이에게 자주 머물렀다. 시우였다.
이전보다 눈에 띄게 표정이 밝아지고 훈련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시우였지만, 현우는 그 변화가 온전히 아이 스스로의 즐거움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코치인 자신과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노력 때문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특히 대련 훈련 시간이 되자, 시우의 얼굴에는 다시 옅은 불안감이 스쳤다. 현우는 시우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시우야, 오늘 컨디션 좋아 보이는데? 지난번에 연습했던 발기술, 오늘 한번 제대로 써먹어 보자. 결과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네가 배운 거 한번 해보는 거야. 넘어져도 괜찮아. 아빠가… 아니, 코치님이 딱 잡아줄게.”
순간적으로 ‘아빠’라는 말이 튀어나왔지만, 현우는 애써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시우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현우는 아이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두려움의 벽을 어떻게 허물어줘야 할지, 그리고 대회라는 목표가 아이에게 혹시 과도한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닌지 깊은 고민에 잠겼다. 지도자의 길은 정답이 없는 문제지를 푸는 것과 같았다.
같은 시간, 모처럼 집에서 여유로운 주말을 보내던 진수에게 전화벨이 울렸다. 병원 응급실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진수가 오랫동안 담당해왔던 만성 질환 환자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되어 위급한 상황이라는 다급한 보고였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당장이라도 병원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오늘은 자신이 당직이 아니었고, 믿을 만한 후배 전문의가 응급실을 지키고 있었다. 과장으로서 모든 상황에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후배들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그들의 성장을 지지해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그는 믿었다.
“김 선생, 당황하지 말고 내 말 잘 들어요.”
진수는 휴대폰을 귀에 댄 채, 최대한 차분하고 명료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환자의 상태, 필요한 검사, 우선적으로 시행해야 할 처치, 그리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수술 준비까지. 그의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갔고, 목소리에는 외과 과장으로서의 냉철함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진수는 한동안 소파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환자에 대한 걱정과 함께, 자신이 내린 결정과 지시가 최선이었는지 끊임없이 되짚어보았다. 리더의 자리는 때로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무거운 책임감과 씨름해야 하는 고독한 자리였다.
한편, 거실 한쪽에서는 민재가 그림 숙제를 하다가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을 풍경’이라는 주제였는데, 알록달록한 단풍잎을 표현하는 것이 마음처럼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색연필을 몇 번이나 고쳐 잡고 끙끙거리던 민재는 결국 짜증이 난 듯 색연필을 바닥에 탁 내려놓았다.
“에이! 어려워! 나 이거 안 해!”
때마침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현우가 민재의 투정을 들었다. 그는 민재 옆에 털썩 주저앉아 도화지를 들여다보았다.
“어쭈, 우리 화가 선생님 왜 이렇게 심통이 나셨나? 뭐가 그렇게 어려워?”
“단풍잎 색깔이 이상해요! 빨간색도 아니고 노란색도 아니고… 예쁘게 안 칠해져요!” 민재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현우는 잠시 고민하더니, 씨익 웃으며 색연필 몇 자루를 집어 들었다.
“음… 가을 단풍잎은 원래 한 가지 색깔이 아니잖아. 빨간색, 노란색, 주황색, 갈색… 이 색깔들을 살살 섞어서 칠하면 더 진짜 같지 않을까? 아빠가 한번 해볼게. 봐봐.”
현우는 서툴지만 조심스러운 손길로 여러 색깔을 겹쳐 칠하며 시범을 보였다. 그의 커다랗고 투박한 손이 작은 색연필을 쥐고 집중하는 모습이 어딘가 어색하면서도 다정했다. 민재는 현우의 손놀림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더니, 이내 자신도 다시 색연필을 잡고 따라 하기 시작했다. 두 남자는 머리를 맞대고 한참 동안 알록달록한 가을 풍경을 함께 그려나갔다.
저녁 시간이 되어, 세 사람은 각자의 하루를 갈무리하고 다시 따뜻한 식탁 앞에 모였다. 현우는 오늘 훈련 중에 있었던 일, 특히 시우와의 대화에서 느꼈던 점들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시우가 그러더라. 자기는 유도가 싫은 게 아니라, 잘 못해서 친구들 앞에서 창피당하는 게 무섭다고. 대회 나가는 것도… 혹시 실수할까 봐 너무 긴장된다고.” 현우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이 마음을 좀 더 일찍 헤아려주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고… 어떻게 용기를 줘야 할지 고민이야.”
“그랬구나…” 진수가 현우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말했다.
“그래도 시우가 당신한테 그런 속마음을 털어놓았다는 건, 당신을 많이 믿고 의지한다는 증거 아닐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 결과보다는 과정을 즐길 수 있도록, 실수해도 괜찮다는 걸 계속 이야기해주고 믿어주는 게 중요할 것 같아. 당신이라면 충분히 잘 할 수 있을 거야.”
진수의 따뜻한 위로와 지지가 현우의 무거웠던 마음에 작은 빛을 비춰주었다.
진수 역시 오늘 병원에서 있었던 긴박했던 상황과, 환자의 상태가 다행히 안정을 찾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후배 의사를 믿고 지켜보는 과정에서 느꼈던 리더로서의 고민과 책임감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직접 처치하는 것보다 어쩌면 더 어려운 것 같아. 믿고 맡기는 거. 혹시 잘못될까 봐 불안하면서도, 그 과정을 통해 후배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지해줘야 하니까.”
“당신 정말 대단하다.” 현우가 진심으로 감탄하며 말했다.
“나는 아직도 내가 직접 뛰는 게 더 편한데… 사람을 키우고 이끌어가는 건 정말 다른 차원의 일인 것 같아. 당신 진짜 멋진 의사고, 훌륭한 리더야.” 현우의 칭찬에 진수는 쑥스러운 듯 웃으며 그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민재도 질세라 오늘 숙제를 하다가 겪었던 어려움과, 현우 아빠 덕분에 멋진 단풍잎을 완성할 수 있었던 이야기를 신나게 늘어놓았다. 세 사람은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함께 웃고, 때로는 진지하게 조언을 건네며 서로의 하루를 공유했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저녁 식사 시간이었지만, 그 안에서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통해 위로받고 다시 나아갈 힘을 얻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 당번을 정하는 가위바위보에서 진 현우가 투덜거리며 고무장갑을 끼는 동안, 진수와 민재는 거실에서 함께 보드 게임을 펼쳤다. 웃음소리와 함께 가끔씩 들려오는 현우의 잔소리 섞인 투덜거림이 정겨운 배경음악처럼 집안을 채웠다.
밤이 깊어지고, 민재가 자신의 방으로 잠자리에 든 후, 현우와 진수는 다시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현우는 자연스럽게 진수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했고, 진수는 그의 품 안에서 편안하게 숨을 골랐다.
“오늘 하루도… 참 길었다, 그치?” 진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피로감이 남아 있었다.
“응. 그래도… 이렇게 당신이랑 민재랑 같이 있으니까 다 괜찮아지는 것 같아.” 현우는 진수의 손을 찾아 부드럽게 잡았다.
“가끔은 다 때려치우고 싶을 만큼 힘들 때도 있는데, 당신이랑 민재 얼굴 보면… 내가 왜 이 힘든 길을 가고 있는지 다시 깨닫게 돼. 당신들이 내 전부니까.”
“나도 마찬가지야, 현우야.” 진수는 현우의 손을 마주 잡으며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병원 일이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집에 돌아와 당신이랑 민재 웃는 모습 보면… 나도 모르게 힘이 나.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이 평범한 행복이 나에게는 가장 큰 에너지야. 그러니까… 힘들면 혼자 끙끙 앓지 말고 나한테 기대. 내가 당신 힘든 거 다 들어줄게. 당신도… 나한테 그래 줄 거지?”
“당연하지.” 현우는 진수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며 대답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그런 존재잖아.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내 편.”
깊어가는 가을밤, 서로의 어깨에 기댄 채 그들은 말없이 서로의 온기를 나누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겪는 어려움과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았지만, 서로를 향한 깊은 사랑과 변함없는 지지가 있기에 그들은 다시 내일을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나무들이 더욱 단단해지듯, 그들의 사랑과 가족의 유대 또한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깊고 견고해지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따뜻하고 희망찬 가을의 색깔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이전보다 눈에 띄게 표정이 밝아지고 훈련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시우였지만, 현우는 그 변화가 온전히 아이 스스로의 즐거움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코치인 자신과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노력 때문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특히 대련 훈련 시간이 되자, 시우의 얼굴에는 다시 옅은 불안감이 스쳤다. 현우는 시우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시우야, 오늘 컨디션 좋아 보이는데? 지난번에 연습했던 발기술, 오늘 한번 제대로 써먹어 보자. 결과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네가 배운 거 한번 해보는 거야. 넘어져도 괜찮아. 아빠가… 아니, 코치님이 딱 잡아줄게.”
순간적으로 ‘아빠’라는 말이 튀어나왔지만, 현우는 애써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시우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현우는 아이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두려움의 벽을 어떻게 허물어줘야 할지, 그리고 대회라는 목표가 아이에게 혹시 과도한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닌지 깊은 고민에 잠겼다. 지도자의 길은 정답이 없는 문제지를 푸는 것과 같았다.
같은 시간, 모처럼 집에서 여유로운 주말을 보내던 진수에게 전화벨이 울렸다. 병원 응급실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진수가 오랫동안 담당해왔던 만성 질환 환자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되어 위급한 상황이라는 다급한 보고였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당장이라도 병원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오늘은 자신이 당직이 아니었고, 믿을 만한 후배 전문의가 응급실을 지키고 있었다. 과장으로서 모든 상황에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후배들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그들의 성장을 지지해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그는 믿었다.
“김 선생, 당황하지 말고 내 말 잘 들어요.”
진수는 휴대폰을 귀에 댄 채, 최대한 차분하고 명료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환자의 상태, 필요한 검사, 우선적으로 시행해야 할 처치, 그리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수술 준비까지. 그의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갔고, 목소리에는 외과 과장으로서의 냉철함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진수는 한동안 소파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환자에 대한 걱정과 함께, 자신이 내린 결정과 지시가 최선이었는지 끊임없이 되짚어보았다. 리더의 자리는 때로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무거운 책임감과 씨름해야 하는 고독한 자리였다.
한편, 거실 한쪽에서는 민재가 그림 숙제를 하다가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을 풍경’이라는 주제였는데, 알록달록한 단풍잎을 표현하는 것이 마음처럼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색연필을 몇 번이나 고쳐 잡고 끙끙거리던 민재는 결국 짜증이 난 듯 색연필을 바닥에 탁 내려놓았다.
“에이! 어려워! 나 이거 안 해!”
때마침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현우가 민재의 투정을 들었다. 그는 민재 옆에 털썩 주저앉아 도화지를 들여다보았다.
“어쭈, 우리 화가 선생님 왜 이렇게 심통이 나셨나? 뭐가 그렇게 어려워?”
“단풍잎 색깔이 이상해요! 빨간색도 아니고 노란색도 아니고… 예쁘게 안 칠해져요!” 민재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현우는 잠시 고민하더니, 씨익 웃으며 색연필 몇 자루를 집어 들었다.
“음… 가을 단풍잎은 원래 한 가지 색깔이 아니잖아. 빨간색, 노란색, 주황색, 갈색… 이 색깔들을 살살 섞어서 칠하면 더 진짜 같지 않을까? 아빠가 한번 해볼게. 봐봐.”
현우는 서툴지만 조심스러운 손길로 여러 색깔을 겹쳐 칠하며 시범을 보였다. 그의 커다랗고 투박한 손이 작은 색연필을 쥐고 집중하는 모습이 어딘가 어색하면서도 다정했다. 민재는 현우의 손놀림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더니, 이내 자신도 다시 색연필을 잡고 따라 하기 시작했다. 두 남자는 머리를 맞대고 한참 동안 알록달록한 가을 풍경을 함께 그려나갔다.
저녁 시간이 되어, 세 사람은 각자의 하루를 갈무리하고 다시 따뜻한 식탁 앞에 모였다. 현우는 오늘 훈련 중에 있었던 일, 특히 시우와의 대화에서 느꼈던 점들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시우가 그러더라. 자기는 유도가 싫은 게 아니라, 잘 못해서 친구들 앞에서 창피당하는 게 무섭다고. 대회 나가는 것도… 혹시 실수할까 봐 너무 긴장된다고.” 현우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이 마음을 좀 더 일찍 헤아려주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고… 어떻게 용기를 줘야 할지 고민이야.”
“그랬구나…” 진수가 현우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말했다.
“그래도 시우가 당신한테 그런 속마음을 털어놓았다는 건, 당신을 많이 믿고 의지한다는 증거 아닐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 결과보다는 과정을 즐길 수 있도록, 실수해도 괜찮다는 걸 계속 이야기해주고 믿어주는 게 중요할 것 같아. 당신이라면 충분히 잘 할 수 있을 거야.”
진수의 따뜻한 위로와 지지가 현우의 무거웠던 마음에 작은 빛을 비춰주었다.
진수 역시 오늘 병원에서 있었던 긴박했던 상황과, 환자의 상태가 다행히 안정을 찾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후배 의사를 믿고 지켜보는 과정에서 느꼈던 리더로서의 고민과 책임감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직접 처치하는 것보다 어쩌면 더 어려운 것 같아. 믿고 맡기는 거. 혹시 잘못될까 봐 불안하면서도, 그 과정을 통해 후배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지해줘야 하니까.”
“당신 정말 대단하다.” 현우가 진심으로 감탄하며 말했다.
“나는 아직도 내가 직접 뛰는 게 더 편한데… 사람을 키우고 이끌어가는 건 정말 다른 차원의 일인 것 같아. 당신 진짜 멋진 의사고, 훌륭한 리더야.” 현우의 칭찬에 진수는 쑥스러운 듯 웃으며 그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민재도 질세라 오늘 숙제를 하다가 겪었던 어려움과, 현우 아빠 덕분에 멋진 단풍잎을 완성할 수 있었던 이야기를 신나게 늘어놓았다. 세 사람은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함께 웃고, 때로는 진지하게 조언을 건네며 서로의 하루를 공유했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저녁 식사 시간이었지만, 그 안에서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통해 위로받고 다시 나아갈 힘을 얻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 당번을 정하는 가위바위보에서 진 현우가 투덜거리며 고무장갑을 끼는 동안, 진수와 민재는 거실에서 함께 보드 게임을 펼쳤다. 웃음소리와 함께 가끔씩 들려오는 현우의 잔소리 섞인 투덜거림이 정겨운 배경음악처럼 집안을 채웠다.
밤이 깊어지고, 민재가 자신의 방으로 잠자리에 든 후, 현우와 진수는 다시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현우는 자연스럽게 진수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했고, 진수는 그의 품 안에서 편안하게 숨을 골랐다.
“오늘 하루도… 참 길었다, 그치?” 진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피로감이 남아 있었다.
“응. 그래도… 이렇게 당신이랑 민재랑 같이 있으니까 다 괜찮아지는 것 같아.” 현우는 진수의 손을 찾아 부드럽게 잡았다.
“가끔은 다 때려치우고 싶을 만큼 힘들 때도 있는데, 당신이랑 민재 얼굴 보면… 내가 왜 이 힘든 길을 가고 있는지 다시 깨닫게 돼. 당신들이 내 전부니까.”
“나도 마찬가지야, 현우야.” 진수는 현우의 손을 마주 잡으며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병원 일이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집에 돌아와 당신이랑 민재 웃는 모습 보면… 나도 모르게 힘이 나.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이 평범한 행복이 나에게는 가장 큰 에너지야. 그러니까… 힘들면 혼자 끙끙 앓지 말고 나한테 기대. 내가 당신 힘든 거 다 들어줄게. 당신도… 나한테 그래 줄 거지?”
“당연하지.” 현우는 진수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며 대답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그런 존재잖아.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내 편.”
깊어가는 가을밤, 서로의 어깨에 기댄 채 그들은 말없이 서로의 온기를 나누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겪는 어려움과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았지만, 서로를 향한 깊은 사랑과 변함없는 지지가 있기에 그들은 다시 내일을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나무들이 더욱 단단해지듯, 그들의 사랑과 가족의 유대 또한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깊고 견고해지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따뜻하고 희망찬 가을의 색깔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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