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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118 추천 : 0 글자수 : 4,531 자 2025-10-21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초겨울의 어느 평일 저녁. 현우는 유도 클럽 마감을 준비하고 있었고, 진수는 병원에서 마지막 환자의 차트를 정리하고 있었다. 민재는 미술 화실에서 늦게까지 그림을 그리다 막 집으로 돌아와 숙제를 펼치고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저녁 풍경 속으로, 아주 뜻밖의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발신자는 진수의 병원 사무실 번호였다.
“네, 김진수입니다.”
진수는 혹시 응급 상황인가 싶어 긴장하며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것은 의외의 목소리였다. 그의 비서였다.
“교수님, 죄송하지만 지금 병원으로 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이… 교수님을 꼭 만나고 싶다고 찾아오셨는데… 제가 함부로 돌려보내기가 좀 그래서요.”
비서의 목소리에는 당혹스러움과 조심스러움이 묻어났다.
“저를요? 누구신데요?”
진수는 의아하게 되물었다. 예약된 면담도 없었고, 개인적으로 자신을 찾아올 만한 사람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게… 성함은 밝히지 않으셨고요… 그냥… 민재 군의 생모라고만…”
“……네?”
진수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는 표현이 이럴 때 쓰는 걸까. 머릿속이 하얗게 비는 것 같았다. 민재의 생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아니 어쩌면 애써 외면하고 싶었을지도 모르는 존재의 등장이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휴대폰을 붙잡고 물었다.
“……그래서… 지금 어디 계신다고요?”
“교수님 연구실 앞 복도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제가 일단 차라도 한 잔 드렸는데…”
“……알겠습니다. 저… 금방 가겠습니다.”
진수는 간신히 대답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듯 다리가 후들거렸다. 예상치 못한 손님의 등장은 그의 평온했던 일상에 던져진 커다란 돌멩이와 같았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우 씨… 지금… 병원으로 와줄 수 있어요? ……민재… 민재 생모가 찾아왔어요.”
전화를 받은 현우 역시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연락이 없었던, 그저 막연하게 존재할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사람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클럽 뒷정리를 다른 코치에게 급히 맡기고 곧장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병원으로 향하는 내내 그의 머릿속은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했다. 왜 이제 와서 나타난 걸까?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혹시 민재를 다시 데려가려는 건 아닐까? 온갖 불안한 상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병원 주차장에서 만난 현우와 진수의 얼굴에는 긴장감과 불안감이 역력했다.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막막함과 함께, ‘우리가 함께라면 괜찮을 거야’ 하는 서로를 향한 무언의 위로와 지지가 담겨 있었다. 그들은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고,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진수의 연구실이 있는 층으로 향했다.
복도 끝, 작은 의자에 한 여자가 초조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마르고 창백한 얼굴, 불안하게 떨리는 손가락. 세월의 흔적이 엿보였지만, 어딘가 민재의 동그란 눈매를 닮은 듯한 인상이었다. 그녀는 현우와 진수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눈빛에는 죄책감과 미안함, 그리고 간절함이 뒤섞여 있었다.
“……혹시… 김진수 교수님, 이현우 코치님… 맞으신가요?”
여자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네, 맞습니다.”
진수가 애써 침착하게 대답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희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여자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눈가가 붉어졌다. 그녀는 두 사람 앞에서 깊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렇게 갑자기 찾아와서… 놀라셨죠… 저는… 민재… 민재를 낳은 사람입니다.”
현우와 진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숨죽인 채 여자의 다음 말을 기다릴 뿐이었다.
“……오랫동안… 정말 오랫동안… 민재가 어떻게 지내는지 너무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염치없어서 차마 연락드릴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여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러다 얼마 전에… 우연히… 민재가 다니는 학교 홈페이지에서… 가족 행사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두 분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는 민재 모습을 보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제 아이가… 이렇게 좋은 분들 만나서… 건강하고 밝게 잘 자라고 있구나… 너무 감사하고… 또 너무 죄송해서…”
여자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현우와 진수의 마음도 복잡하게 흔들렸다. 아이를 떠나보내야만 했던 그녀의 아픔과 죄책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괜찮으시다면… 잠시 제 연구실로 들어가서 이야기 나누시죠.”
진수가 딱딱하게 굳어있던 분위기를 깨고 제안했다. 그는 여자를 자신의 연구실 안으로 안내했고, 현우도 함께 따라 들어갔다.
따뜻한 차를 한 잔씩 앞에 놓고, 세 사람은 한동안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여자는 감정을 추스르려는 듯 애써 눈물을 참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오늘 이렇게 찾아온 것은…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절대로… 민재를 다시 데려가거나, 두 분의 삶에 폐를 끼치려는 것이 아닙니다.”
여자는 간절하게 호소하듯 말했다.
“그저… 멀리서나마… 민재가 잘 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고… 그리고…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제 아이를… 이렇게 훌륭하게 키워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여자는 다시 한번 깊이 고개를 숙였다.
현우와 진수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과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들이 막연하게 두려워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는 안도감과 함께, 그녀가 겪었을 고통과 아이를 향한 그리움에 대한 연민이 동시에 느껴졌다.
“……저희야말로… 민재를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민재는 저희에게 정말 소중한 아들이고, 저희 삶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 저희는 앞으로도 민재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맞습니다.”
진수도 동의하며 말했다.
“그리고… 민재가 자신의 뿌리에 대해 궁금해할 때, 저희는 언제든 당신의 이야기를 존중하며 전해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민재가 당신을 원망하기보다는, 자신을 위해 어려운 결정을 내려주신 당신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진수의 말에 여자는 다시 한번 눈물을 쏟았다. 하지만 이번 눈물은 죄책감이나 미안함보다는, 안도감과 감사함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두 분 같은 분들을 만나서… 민재는 정말… 행운아입니다.”
여자는 떨리는 손으로 가방에서 작은 사진첩 하나를 꺼냈다.
“이건… 민재 어렸을 때 사진 몇 장이에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나중에 민재에게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진수는 조심스럽게 사진첩을 받아들었다. 앳되고 귀여운 아기 민재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었다.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네. 민재가 조금 더 크면… 꼭 전해주겠습니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한번 깊이 인사를 하고 연구실을 나섰다. 그녀의 뒷모습은 여전히 위태롭고 슬퍼 보였지만, 처음 복도에서 기다릴 때보다는 한결 편안해진 듯했다.
여자가 떠나고 난 후, 현우와 진수는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예상치 못했던 손님의 방문은 그들에게 큰 충격과 혼란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민재의 뿌리, 생모의 존재,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온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괜찮아?”
현우가 진수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응. 괜찮아.”
진수는 현우의 손을 마주 잡으며 대답했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오히려… 마음이 좀 더 편안해진 것 같기도 해. 우리가 막연하게 걱정하고 두려워했던 것들이… 조금은 선명해진 느낌이야.”
“나도 그래.”
현우도 동의했다.
“그리고… 그녀를 직접 만나보니… 그녀 역시 자신의 선택에 대해 평생 아파하며 살아왔다는 게 느껴졌어. 민재에게… 언젠가는 꼭 이야기해줘야 할 것 같아. 낳아준 엄마의 사랑에 대해서도.”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현우와 진수는 잠든 민재의 방에 들어가 아이의 얼굴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평화롭게 잠든 아이의 모습은 그들에게 더없는 위안과 사랑을 느끼게 했다. 그들은 민재의 이마에 번갈아 입을 맞추고 조용히 방을 나왔다.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현우는 진수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오늘… 정말 고생 많았어, 당신.”
“당신도.”
진수는 현우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우리… 앞으로도 잘 해낼 수 있겠지?”
“그럼.”
현우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오늘 일을 겪으면서 더 확실해졌어. 우리 가족은… 그 어떤 시련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는 거. 우리는 서로를 믿고, 민재를 사랑하고, 그렇게 함께 나아가면 돼.”
예상치 못한 손님의 방문은 그들의 평온했던 일상에 잠시 파문을 일으켰지만, 그 파문은 오히려 그들의 사랑과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가 서로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고,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함께 헤쳐나갈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그들의 겨울밤은 이전보다 조금 더 깊어졌지만, 그만큼 더 따뜻하고 단단한 온기로 채워지고 있었다.
“네, 김진수입니다.”
진수는 혹시 응급 상황인가 싶어 긴장하며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것은 의외의 목소리였다. 그의 비서였다.
“교수님, 죄송하지만 지금 병원으로 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이… 교수님을 꼭 만나고 싶다고 찾아오셨는데… 제가 함부로 돌려보내기가 좀 그래서요.”
비서의 목소리에는 당혹스러움과 조심스러움이 묻어났다.
“저를요? 누구신데요?”
진수는 의아하게 되물었다. 예약된 면담도 없었고, 개인적으로 자신을 찾아올 만한 사람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게… 성함은 밝히지 않으셨고요… 그냥… 민재 군의 생모라고만…”
“……네?”
진수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는 표현이 이럴 때 쓰는 걸까. 머릿속이 하얗게 비는 것 같았다. 민재의 생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아니 어쩌면 애써 외면하고 싶었을지도 모르는 존재의 등장이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휴대폰을 붙잡고 물었다.
“……그래서… 지금 어디 계신다고요?”
“교수님 연구실 앞 복도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제가 일단 차라도 한 잔 드렸는데…”
“……알겠습니다. 저… 금방 가겠습니다.”
진수는 간신히 대답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듯 다리가 후들거렸다. 예상치 못한 손님의 등장은 그의 평온했던 일상에 던져진 커다란 돌멩이와 같았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우 씨… 지금… 병원으로 와줄 수 있어요? ……민재… 민재 생모가 찾아왔어요.”
전화를 받은 현우 역시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연락이 없었던, 그저 막연하게 존재할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사람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클럽 뒷정리를 다른 코치에게 급히 맡기고 곧장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병원으로 향하는 내내 그의 머릿속은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했다. 왜 이제 와서 나타난 걸까?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혹시 민재를 다시 데려가려는 건 아닐까? 온갖 불안한 상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병원 주차장에서 만난 현우와 진수의 얼굴에는 긴장감과 불안감이 역력했다.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막막함과 함께, ‘우리가 함께라면 괜찮을 거야’ 하는 서로를 향한 무언의 위로와 지지가 담겨 있었다. 그들은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고,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진수의 연구실이 있는 층으로 향했다.
복도 끝, 작은 의자에 한 여자가 초조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마르고 창백한 얼굴, 불안하게 떨리는 손가락. 세월의 흔적이 엿보였지만, 어딘가 민재의 동그란 눈매를 닮은 듯한 인상이었다. 그녀는 현우와 진수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눈빛에는 죄책감과 미안함, 그리고 간절함이 뒤섞여 있었다.
“……혹시… 김진수 교수님, 이현우 코치님… 맞으신가요?”
여자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네, 맞습니다.”
진수가 애써 침착하게 대답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희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여자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눈가가 붉어졌다. 그녀는 두 사람 앞에서 깊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렇게 갑자기 찾아와서… 놀라셨죠… 저는… 민재… 민재를 낳은 사람입니다.”
현우와 진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숨죽인 채 여자의 다음 말을 기다릴 뿐이었다.
“……오랫동안… 정말 오랫동안… 민재가 어떻게 지내는지 너무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염치없어서 차마 연락드릴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여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러다 얼마 전에… 우연히… 민재가 다니는 학교 홈페이지에서… 가족 행사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두 분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는 민재 모습을 보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제 아이가… 이렇게 좋은 분들 만나서… 건강하고 밝게 잘 자라고 있구나… 너무 감사하고… 또 너무 죄송해서…”
여자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현우와 진수의 마음도 복잡하게 흔들렸다. 아이를 떠나보내야만 했던 그녀의 아픔과 죄책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괜찮으시다면… 잠시 제 연구실로 들어가서 이야기 나누시죠.”
진수가 딱딱하게 굳어있던 분위기를 깨고 제안했다. 그는 여자를 자신의 연구실 안으로 안내했고, 현우도 함께 따라 들어갔다.
따뜻한 차를 한 잔씩 앞에 놓고, 세 사람은 한동안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여자는 감정을 추스르려는 듯 애써 눈물을 참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오늘 이렇게 찾아온 것은…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절대로… 민재를 다시 데려가거나, 두 분의 삶에 폐를 끼치려는 것이 아닙니다.”
여자는 간절하게 호소하듯 말했다.
“그저… 멀리서나마… 민재가 잘 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고… 그리고…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제 아이를… 이렇게 훌륭하게 키워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여자는 다시 한번 깊이 고개를 숙였다.
현우와 진수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과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들이 막연하게 두려워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는 안도감과 함께, 그녀가 겪었을 고통과 아이를 향한 그리움에 대한 연민이 동시에 느껴졌다.
“……저희야말로… 민재를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민재는 저희에게 정말 소중한 아들이고, 저희 삶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 저희는 앞으로도 민재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맞습니다.”
진수도 동의하며 말했다.
“그리고… 민재가 자신의 뿌리에 대해 궁금해할 때, 저희는 언제든 당신의 이야기를 존중하며 전해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민재가 당신을 원망하기보다는, 자신을 위해 어려운 결정을 내려주신 당신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진수의 말에 여자는 다시 한번 눈물을 쏟았다. 하지만 이번 눈물은 죄책감이나 미안함보다는, 안도감과 감사함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두 분 같은 분들을 만나서… 민재는 정말… 행운아입니다.”
여자는 떨리는 손으로 가방에서 작은 사진첩 하나를 꺼냈다.
“이건… 민재 어렸을 때 사진 몇 장이에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나중에 민재에게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진수는 조심스럽게 사진첩을 받아들었다. 앳되고 귀여운 아기 민재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었다.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네. 민재가 조금 더 크면… 꼭 전해주겠습니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한번 깊이 인사를 하고 연구실을 나섰다. 그녀의 뒷모습은 여전히 위태롭고 슬퍼 보였지만, 처음 복도에서 기다릴 때보다는 한결 편안해진 듯했다.
여자가 떠나고 난 후, 현우와 진수는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예상치 못했던 손님의 방문은 그들에게 큰 충격과 혼란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민재의 뿌리, 생모의 존재,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온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괜찮아?”
현우가 진수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응. 괜찮아.”
진수는 현우의 손을 마주 잡으며 대답했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오히려… 마음이 좀 더 편안해진 것 같기도 해. 우리가 막연하게 걱정하고 두려워했던 것들이… 조금은 선명해진 느낌이야.”
“나도 그래.”
현우도 동의했다.
“그리고… 그녀를 직접 만나보니… 그녀 역시 자신의 선택에 대해 평생 아파하며 살아왔다는 게 느껴졌어. 민재에게… 언젠가는 꼭 이야기해줘야 할 것 같아. 낳아준 엄마의 사랑에 대해서도.”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현우와 진수는 잠든 민재의 방에 들어가 아이의 얼굴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평화롭게 잠든 아이의 모습은 그들에게 더없는 위안과 사랑을 느끼게 했다. 그들은 민재의 이마에 번갈아 입을 맞추고 조용히 방을 나왔다.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현우는 진수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오늘… 정말 고생 많았어, 당신.”
“당신도.”
진수는 현우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우리… 앞으로도 잘 해낼 수 있겠지?”
“그럼.”
현우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오늘 일을 겪으면서 더 확실해졌어. 우리 가족은… 그 어떤 시련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는 거. 우리는 서로를 믿고, 민재를 사랑하고, 그렇게 함께 나아가면 돼.”
예상치 못한 손님의 방문은 그들의 평온했던 일상에 잠시 파문을 일으켰지만, 그 파문은 오히려 그들의 사랑과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가 서로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고,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함께 헤쳐나갈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그들의 겨울밤은 이전보다 조금 더 깊어졌지만, 그만큼 더 따뜻하고 단단한 온기로 채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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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복 대신, 사랑을 입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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